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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존이 보낸 일꾼 다섯이 두 대의 트럭에 나눠 타고 목장 차도로 들어섰다. 트럭에는 울타리용 목재가 가득 실려 있었다. 그녀는 일단 뜨거운 커피부터 권하면서 수리해야 할 울타리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그녀의 제안을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마도 존에게서 그녀에게 어떤 일도 시켜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은 모양이었다. 래퍼티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걸 잘 알기에 미셀 역시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덕분에 그녀는 몇 주 만에 처음으로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전에는 도대체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마치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쨌든 내 목장에서 일하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다면 대체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그녀는 결국 존과 외출할 준비를 하는 것 외엔 달리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존은 9시가 채 안 돼 목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한 시간 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고 현관까지 나와 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멋지군.
그는 계단 위로 올라서며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감탄조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두 개의 하얀 단추로 고정하게 되어 있는 심플한 디자인의 옅은 노란색 실크 드레스를 걸친 미셀의 모습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햇살처럼 반짝이는 금발머리 역시 단정하게 틀어 올려져 있었다. 유일한 흠이라면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는 점이랄까.
아마도 저 안에 걸친 속옥 역시 실크 제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의 몸이 곧장 반응을 보였다. 곧이어 그녀의 몸에서 실크 속옷을 벗기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의 그녀를 자신의 침대에 눕히는 장면 역시뀉..조만간 그런 모습으로 그의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를 현실에서 보게 될 것이다.
미셀은 흰색 핸드백을 팔에 낀 채 그와 함께 차로 향했다. 내심 선글라스를 끼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짙은 회색 양복차림의 존은 마치 성공한 사업가처럼 세련돼 보였다. 물론 어떤 옷차림이든 어울릴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낡은 청바지 차림일 때보다 더욱 남성적인 매력이 돋보일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검은 머리카락 역시 단정하게 뒤로 넘겨져 있었다. 자동차 역시 평소의 픽업 트럭이 아닌 짙은 회색 메르세데스 스포츠카였다. 그 차를 보자 문득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빚을 갚기 위해 팔아야 했던 자신의 포르셰 생각이 났다.
당신의 일꾼들이 나를 도와주러 올 거라고는 했지만·..
미셀은 차가 고속도로로 진입하기를 기다려 말을 꺼냈다.
그들이 목장을 점령할 거라고는 하지 않았잖아요.
따가운 아침 햇살 때문에 존 역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굳어진 옆모습으로 향한 그의 표정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목장 일은 그들에게 맡겨두시오.
울타리 수리를 마치고 동쪽 목초지로 소들을 옮겨주기만 하면 돼요. 거기서부터는 내가 혼자 할 수 있어요.
소한테 물을 먹이고 거세를 하고 낙인을 찍는 것 같은 일들을 당신 혼자서 다 하겠다는 말이오? 낡은 트럭 한 대로 달리는 소한테 밧줄을 걸 수 있겠소?
미셀은 무릎 위에 놓인 손을 움켜쥐었다. 왜 이 남자는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쓸모 없는 장식품 신세가 되는 건 사양이었다.
혼자 그런 일들을 다 할 수 없다는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도울 수는 있지 않겠어요?
생각해 보겠소.
그는 애매하게 얼버무렸지만 절대 그녀가 그런 일들을 하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대체 그녀가 도울 일이 뭐가 있는가 말이다! 목장 일은 늘 흙먼지 속에서 뒹굴어야 하고 냄새나는 짐승들을 상대로 땀을 흘려야 했다.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고작 송아지 엉덩이에 낙인을 찍는 일 정도밖에 없지만, 겁에 질린 짐승들의 애절한 울음소리나 가죽 타는 냄새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그녀의 위장이 튼튼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내 목장이에요.
미셀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어조로 상기시켰다.
내가 돕게 내버려두든지, 아니면 아예 없던 일로 해요.
존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와 논쟁을 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녀가 그런 힘든 일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지만. 게다가 목장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나면 그녀의 마음이 바뀔 가능성도 컸다. 그녀가 그런 중노동을 좋아할 리 없지 않은가! 단지 지금 뒤로 물러서기에는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이리라.
템파 시에 도착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지만, 30분이 지나도록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먼저 침묵을 깨고 말을 꺼낸 사람은 미셀이었다.
내가 몰던 값비싼 스포츠카에 대해서 놀렸던 사람이 누구죠?
존은 미셀이 미끈하게 빠진 메르세데스 스포츠카를 지칭해 한 말이라는 걸 눈치채고 끙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은행가들 때문이오.
그는 설명조로 말을 꺼냈다. 솔직히 그는 고급 스포츠카보다는 픽업 트럭을 더 마음에 들어하는 편이었다. 그 자신 스스로를 평범한 목장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값비싼 물건을 선호하는 타입도 아니었던 것이다.
은행가라는 족속들을 가만히 보니까, 돈이 꼭 필요해 보이는 사람보다는 별로 필요 없어 보이는 사람한테 더 돈을 빌려 주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거요. 변호사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나도 시내에 볼 일이 있을 때는 그럴 듯하게 차리고 나오기로 했지. 이 차도 그런 의미에서 구입한 거요.
그리고 물론 데이트 상대를 구하기 쉽다는 이점도 있겠죠?
미셀이 약을 올렸다.
아마 픽없 트럭을 몰고 나갈 때와는 비교도 안 될걸요?
그건 잘 모르겠소. 혹시 픽업 트럭에서 해본 적 있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짓궂은 질문을 불쑥 던졌다.
글쎄요. 당신은 당연히 해봤겠죠?
그녀는 애써 태연하게 되받아쳤다.
열다섯 살 이후로는 해본 적 없소.
그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당신은 픽업 트럭에서 하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닐 거요, 안그렇소?
그래요.
미셀은 알아듣기 힘든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그녀가 데이트했던 남자들은 대부분 값비싼 스포츠카 아니면 실용적인 포드나 시보레를 몰고 다녔지만, 차종과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였다. 단 한 번도 차에서 그런 짓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녀가 원했던 건 오직 존 래퍼티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좀더 나이가 들어서 그를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니, 조금이라도 남자 경험이 있는 상태에서 그를 만났다면? 그랬다면 아마 그를 향한 강렬한 감정에 당황한 나머지 호전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 아무 일도 없었겠지만. 그는 결코 열여덟 살 풋내기 소녀를 상대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그런 남자가 아니니까 말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그를 다시 만났다면 상황이 변했을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러나 그려는 대학 졸업 후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필라델피아의 친구 집을 방문했고 그 곳에서 로저를 만났다.
두 사람은 12시쯤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미 그에게 양도할 땅이 결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절차가 간단했던 것이다. 양도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자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 허전하긴 했지만, 그녀로선 그가 이런 제안을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어떻게든 목장을 살릴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차로 걸어가던 도중, 그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미셀의 팔꿈치를 살짝 건드렸다.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 같소.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려면 허기가 질 것 같으니 말이오.
미셀 역시 배가 고픈 건물론이고 살을 태울 듯 뜨거운 열기에 온몸이 나른한 상태였기 때문에 쾌히 승낙하며 얼른 선글라스를 꼈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슬쩍 미소를 지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앞에 도착하자 먼저 조수석 문을 열고 그녀가 차에 오르기를 기다리던 존은 차에 올라타는 동안 드러난 미셀의 늘씬한 허벅지를 넋을 잃고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눈치도 못 챈 듯 치마를 단정하게 추스르더니 의아한 눈초리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뭐 깜박 잊은 거라도 있어요?
아니.
그제서야 그는 그녀의 다리에서 시선을 떼고 문을 닫은 다음 운전석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단지 그녀를 쳐다본 것만으로도 이미 아랫도리가 묵직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가 치마를 아래로 잡아당기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그 치마를 위로 끌어올리는 상상을 했고, 그녀가 좌석 등받이에 기대앉는 과정에서 옷 위로 가슴이 불룩하게 도드라졌을 때도 그 즉시 드레스를 찢고 그녀의 맨가슴을 드러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빌어먹을, 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너무나도 섹시했다! 오전 내내 단 두 개의 단추로 고정된 드레스를 풀어헤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장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는 인내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하긴 이미 10년이나 그녀를 기다리지 않았는가! 이제 그녀를 가질 때가 된 것이다.
그가 미셀을 데리고 간 곳은 도시 상업 지구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잘 나가는 곳이었지만, 그들은 즉시 창가 쪽 테이블로 안내를 받았다. 평소 지배인과 안면을 익혀둔 덕분인 듯했다.
자리로 안내되어 가는 내내 그녀는 그와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음, 이제 한 번이군요.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냉소적인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는 메뉴에서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뭐가 한 번이라는 거요?
남들 눈에 당신과 함께 있는 모습이 두 번만 눈에 띄어도 이미 당신과 잠자리를 같이한 사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난다는 얘기 못 들었어요?
그는 화가 난 듯 인상을 썼다.
원래 소문이라는 건 과장되게 마련이오.
보통은 그렇죠.
그럼 내 경우는 아니란 말이오?
당신이 말해보세요.
존은 메뉴를 옆으로 치우고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소문이야 어찌됐든 걱정할 것 없소. 당신과 관계를 가지는 동안에는 당신만이 나와 침대를 나눠 쓰는 유일한 사람이 될 테니까.
미셀은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천천히 메뉴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혼자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에요?
그녀는 애써 가볍게 말했다.
아니, 다만 계획이 그렇다는 거요.
그의 목소리는 남성적인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지금껏 그를 거절한 여자는 한 명도 없었을 테니까. 그는 다른 사람을 압도하는 강한 의지의 화신이었다. 소문으로는 그의 잠자리 테크닉 역시 놀랍다고들 했다. 그러니 단지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와 함께 침대에 드는 걸 기대하게 될 게 뻔하지 않은가!
미셀, 달링!
미셀은 그 달링이란 소리에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아무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여자라 해도 소름이 끼치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이런 순간에 누군가의 방해를 받게 된 것 다행이지만 말이다. 그녀는 곧 자신을 부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반갑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이 잠시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가서던 여자는 아무런 눈치도 못 챈 듯했다.
비치, 잘 지냈어?
미셀이 예의를 차려 인사를 건네자 존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이분은 존 래퍼티 씨. 존, 이쪽은 비치 섬너에요. 제 대학 동창이죠.
비치는 먹이감을 찾은 맹수처럼 눈을 번득이며 악수를 청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래퍼티 씨, 만나서 반가워요.
보석 반지가 주렁주렁 끼워진 비치의 화사한 손을 마주잡는 존의 눈에 희미한 조소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비치는 그 눈빛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사춘기 시절부터 비치와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들에게 익숙한 그로선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섬너 부인.
그는 상대가 다이아몬드 결혼 반지를 끼고 있다는 걸 의식한 듯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그럼 잠시만 실례할게요.
비치는 짐짓 한숨을 내쉬며 존이 빼내준 의자에 앉았다.
거래처 사람과 부부 동반 모임이 있어서 남편과 함께 이곳에 왔답니다. 사업상 가끔 있는 일이죠. 그건 그렇고 미셀, 정말 오랜만이다! 플로리다엔 무슨 일로 왔니?
내 목장이 여기서 북쪽으로 좀 올라가면 있거든.
미셀이 대답했다.
달링, 그럼 팜 비체에도 좀 들르렴. 며칠 전에도 누가 그러더라. 네 얼굴 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나도 그러고 싶지만 할 일이 많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미셀은 비치의 초대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친구들 역시 그녀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고 있는 것뿐일 테고.
이런, 일이라니! 그런 일들은 다른 사람한테 맡겨도 되잖니?
비치는 우아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참, 래퍼티 씨도 꼭 함께 모시고 와.
비치는 갈망 어린 눈빛으로 존을 쳐다보았다.
래퍼티 씨, 당신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거에요. 약속드리죠. 가끔은 좀 즐기기도 해야 하잖아요, 안 그래요?
존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렇겠죠.
어떤 사업을 하고 계세요?
소를 키우죠. 제 목장이 미셀의 목장 바로 옆에 있거든요.
오, 그럼 목장주시군요!
비치는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비치 역시 다른 여자들처럼 말을 타고 바람처럼 대지를 달리는 로맨틱한 이미지만을 떠올리고 있을 게 뻔했다. 목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등이 휠 정도로 힘든 노동이 따른다는 건 무시해 버리고 말이다! 아니, 어쩌면 목장보다는 그가 목장주라는 사실이 비치를 저렇게 황홀하게 만든 원인인지도 몰랐다. 미셀은 다시는 저런 표정으로 존을 쳐다볼 생각조차 못하게 친구를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감추느라 갖은 노력을 다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느새 무릎에 놓인 손에 힘을 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행히도 잠시 후 비치는 아쉬운 듯 자기 테이블로 돌아갔다. 존은 엉덩이를 흔들며 테이블 사이로 걸어가는 비치를 흘끗 쳐다보곤 재미있다는 얼굴로 미셀을 돌아보았다.
도대체 누가 그녀를 비치라고 부를 생각을 한 거지?
더 이상 그의 즐거움을 나누지 않는 것은 어려웠다.
그녀의 진짜 이름은 엘리자베스예요. 비치는 일종의 별명이죠. 대학 시절 가장 프레피(기숙학교 출신의 상류층 자제들을 가리키는 말)다운 학생이었거든요.
난 아이큐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줄 알았는데뀉.
존은 냉정하게 말하곤 웨이터가 주문을 받기 위해 테이블로 오자 메뉴로 시선을 돌렸다.
미셀은 비치가 한 테이블에 길게 머무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비치는 엄청난 수다쟁이로 거의 모든 소문이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비치가 주절거리며 늘어놓은 소문들을 잠자코 들어줄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대학 시절에도 비치와 같은 그룹에서 활동은 했지만 의도적으로 그들과 거리를 두고 대했던 편이었다. 다들 지나치게 재미만 추구하는 부류였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존은 사업상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면서 그녀에게 잠깐 기다려 줄 것을 요청했다. 미셀은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지만 곧 그의 일꾼들이 대신 소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동안 혼자서 목장 일을 돌보느라 그녀는 많이 지친 상태였다. 게다가 오늘 하루는 그녀에게 있어서 많은 의미를 지닌 날이었다. 오늘만큼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것도 처음이었거니와 그들이 잠자리를 같이하게 될 거라는 그의 오만한 확신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그와 시간을 보낸 탓인지 오늘 하루가 끝나는 게 아쉽게 느껴지기까지 했던 것이다.
뭐,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으니까요.
그녀는 결국 그와 함께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템파 시를 떠난 건 어둠이 내린 후였다. 존의 일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약속 장소까지 데리고 가준 덕분에 그녀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어쨌든 그가 볼 일을 마친 건 거의 6시가 다 되어서였다. 그들은 그의 제안으로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출발하기로 했다. 그 바람에 8시가 다 되어서야 템파 시를 떠나게 된 것이다.
미셀은 저녁 식사 중에 마신 와인 때문에 약간 몽롱한 상태로 조수석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다행히도 19번 국도는 그리 붐비지 않았지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한 탓에 그는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규칙적인 와이퍼의 움직임은 미셀을 더욱 졸리게 만들었다. 창문에 습기가 차서 뿌옇게 흐려지자 존은 에어컨을 더 세게 틀었다. 통풍구로 흘러나오는 차가운 바람에 그녀는 졸음이 싹 달아난 듯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얇은 실크 드레스 틈으로 한기가 밀려들자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존은 아무 말 없이 차를 갓길로 갖다댔다.
왜 멈추는 거에요?
당신이 추워하는 것 같아서뀉·.
그는 양복 재킷을 벗어서 미셀에게 걸쳐주었다. 그의 체온과 체취가 남아 있는 재킷의 온기에 미셀은 다시금 졸음이 몰려 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도 두 시간은 더 가야 하니, 잠시 눈을 붙이도록 해요.
으음뀉·.
그녀는 졸음이 한껏 묻은 목소리로 동의했다. 존은 조용히 그녀의 눈꺼풀이 감기는 걸 지켜보다가 충동적으로 그녀의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집에 도착할 즈음이면 술기운도 사라질 것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그의 남성이 단단히 조여졌다.
그는 미셀이 말짱한 정신으로 침대에서 제대로 반응을 보여주길 바랐다. 어쨌든 오늘밤은 절대 혼자서 잘 생각이 없으니까. 그는 하루 종일 그녀를 만지고 또 느끼고 싶은 욕구와 싸워야 했다. 천하의 존 래퍼티가 이 성질 까다롭고 철없는 응석받이로 자란 여자를 절실히 원하게 된 것이다.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그렇게 떠받드는 이유도 이해가 갈 정도였다. 아마도 태어나 요람에 누워서부터 그런 대접을 받았을 테니까.
이제 그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부드러운 그녀의 육체를 개봉하며 그동안의 기다림을 보상받을 작정이었다. 비록 그에게 저항을 하고 있지만, 그는 미셀 역시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셀은 어떤 남자든 가까이 있을 때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곁에 있을 때도 그랬다. 로저가 한밤중에 깊이 잠들어 있던 그녀를 공격했던 이후로 나타난 증상이었다. 평화로운 잠 속에 깊이 빠져 있디가 갑작스레 겪은 폭력으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은 육체적인 상처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막 잠에 빠져들기 직전, 미셀은 자신이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다른 남자가 아닌 존과 함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의 재킷이 그녀를 따뜻하게 보호해 주듯 그의 존재 자체가 그녀를 안심시켜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화가 나서 벌을 주듯 그녀를 거칠게 다룰 때도 그의 손길만은 부드럽기 그지없지 않았는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깊은 울림이 있는 벨벳 같은 목소리가 그녀의 잠을 깨웠다.
[허니, 집에다 도착했소. 당신 팔을 내 목에 둘러요.]
미셀은 여전히 잠에 취한 듯 멍하니 눈을 뜨고는 차문을 열고 그녀 위로 몸을 굽힌 존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그녀는 생긋 미소를 지었다.
[내가 돌아오는 내내 잔 건가요?]
[아기처럼 잘 자더군.]
그는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그녀의 목 뒤와 무릎 뒤로 각각 팔을 밀어넣었다. 그가 자신을 번쩍 안아들자 그녀는 나지막이 비명을 지르며 얼른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재킷에 푹 싸여 있는 덕분에 그녀는 거의 비를 맞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그녀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제 그만 내려줘요.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다구요.]
그녀는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을 의식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는 이제 마치 어린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그녀를 안아든 채 계단을 뛰어올라가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소.]
2층에 도착하자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목 아래 움푹 파인 곳에 얼굴을 묻은 채 그녀의 달콤하고 따스한 체취를 한껏 음미하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음, 당신에게선 좋은 향기가 풍기는군. 술기운은 완전히 가신 거요?]
그의 부드러운 애무는 그녀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을 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안아든 채 한쪽 어깨로 침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득 그녀의 뇌리에 그가 술기운 운운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혹시 농담이 아니라 내가 정말 술에 취한 줄 알고 그런 건 아닐까?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던 거예요. 술기운 때문이 아니라.]
미셀은 그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설명했다.
[잘됐군.]
그는 푹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침실문을 닫았다. 그들은 이제 어둠 속에 남겨졌다. 비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따뜻한 체온과 단단한 육체의 감촉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안심이 되었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탐욕스럽게 그녀의 입술을 차지하고 곧 이어 그녀의 입 안으로 혀를 밀어넣었다. 그는 타오르는 남성의 굶주림으로 그녀에게 키스하며 그녀의 달콤함을 한껏 빨아 들였다. 그의 강한 욕구에 그녀 역시 생생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그에게서 입술을 떼고 희미한 달빛 아래 드러난 그의 단호한 얼굴 표정을 발견한 미셀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오늘밤 여기서 자고 갈 거요.[
그가 거칠게 중얼거렸다.
[너무 오래 끌었소.]
그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미셀 역시 그가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마치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를 부르고 있는 듯했다. 존 래퍼티 같은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그를 원하는 마음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 어떤 반항도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들 사이는 항상 이랬다. 타오르는 갈증은 이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부풀었다.
그는 다시금 미셀의 입술을 덮친 채 침대로 데려갔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그녀의 몸위로 몸을 겹쳤다. 미셀은 순간 자신을 엄습하는 강한 쾌락에 하마터면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는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침대 옆 스탠드의 스위치를 켜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검은 눈이 미셀의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듯한 눈에 어린 정열과 키스로 부풀어오른 도톰한 입술을 응시했다. 다음 순간 그의 가슴이 남성적인 만족감으로 가득 찼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넣어 다리를 벌리게 한 다음 벌써 촉촉이 젖어든 은밀한 부분에 자신의 아랫도리를 갖다댔다. 미셀은 옷을 통해 그의 단단함이 느껴지자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에야 비로소 그가 오늘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렇게 그녀의 침대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에 지친 그는 마침내 그녀를 가질 작정으로 하루 종일 인내심을 갖고 그와 함께 있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그녀를 길들였다. 하지만 이제 그 인내심은 바닥이 난 상태였다. 게다가 그녀 역시 더 이상 그에게 저항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에게선 그만큼이나 뜨거운 욕구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내 거야.]
그는 거친 음성으로 그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리고는 한쪽 팔꿈치로 체중을 지탱한 채 자유스런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의 드레스를 고정시킨 두 개의 단추를 풀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던 선물 포장을 푸는 것처럼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천천히 드레스 자락을 옆으로 젖힌 그는 바로 눈앞에 드러난 그녀의 몸을 황홀한 듯 훑어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정열에 휩싸였다. 그녀는 브래지어나 슬립을 아예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드레스의 안감이 그 하늘하늘한 천 아래 단지 팬티 스타킹과 팬티라는 이름을 가장한 레이스 조각을 걸쳤을 뿐이라는 사실을 감추어 준 것이다. 진작에 드레스 아래로 브래지어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면 그는 그 즉시 드레스 앞자락을 풀어헤치고 그녀의 젖가슴을 맛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녀의 젖가슴은 풍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높이 솟아 있었고, 산호색 유두는 이미 구슬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그는 거친 신음을 흘리면서 머리를 숙여 그녀의 젖가슴으로 입술을 가져가 뾰족하게 솟은 유두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며 새틴처럼 부드러운 새하얀 피부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반대편 젖가슴도 감싸쥐고 부드럽게 주무르며 엄지손가락으로 유두를 굴렸다.
그녀의 목에서 날카로운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의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찔러넣고 등을 활처럼 휜 채 그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그는 그녀의 체취와 달콤함에 온통 빠져들었다.
미셀은 그의 아래에서 몸을 비틀며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그의 셔츠를 벗기려 했다. 하지만 젖가슴에 느껴지는 그의 입술이 그녀를 미칠 것처럼 만들어 도저히 그의 셔츠를 벗길 수가 없었다. 그의 혀가 움직일 때마다 온몸의 신경이 들불처럼 확 타올랐다. 그녀는 온통 몸을 떨며 쾌락에 몰두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윽고 몸을 일으켜 셔츠를 옆으로 벗어던진 그는 이어서 신발과 양말, 바지와 속옷까지 차례대로 침대 밑으로 내던진 다음 완전히 벌거벗은 몸으로 미셀의 허벅지 사이에 무릎을 꿇고는 그녀의 팬티스타킹과 팬티도 제거했다.
그제서야 미셀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너무 오랜만의 일인 데다 그녀에게 있어서 섹스는 즐거움과는 전혀 거리가 먼 단어였던 것이다. 존이 그녀의 위로 몸을 숙이고 그녀의 다리를 더 넓게 벌리자 미셀은 딱딱한 남성이 자신의 은밀한 부분에 닿는 충격을 느끼고 전율했다.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그녀는 남자의 강한 힘 앞에 여자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존은 대부분의 남자들보다 강한 남자였고, 그의 성욕 역시 무척이나 야성적이었다. 원초적인 남성의 공격성과 성욕의 본질을 그대로 갖춘 남자 중의 남자인 것이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 손가락이 그의 가슴을 덮은 체모에 닿자 공포감이 더욱 커졌다. 그녀는 가냘픈 목소리로 그에게서 확신을 구했다.
[존, 제발 나를 아프게 하지 말아요.]
막 그녀의 몸 위에서 자세를 잡던 그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따뜻하고 달콤한 육체로 날 유혹하는 것과 동시에 고통을 주지 말라고 애원을 하다니, 대체 왜 저렇게 통증을 무서워 하는 걸까? 빌어먹을, 도대체 그녀에게 이런 상처를 입힌 녀석이 누구지? 분노의 씨앗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지금은 용솟음치는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게 더 우선이었다. 지금 당장 그녀를 가져야 했다.
[베이비, 안 아플 거야.]
그는 부드럽게 그녀를 안심시켰다.
[당신을 아프게 하지는 않을 거요.]
그는 한 팔을 그녀의 몸 아래로 밀어넣고 팔꿈치에 체중을 지탱한 채 그녀를 들어올렸다. 그녀는 즉시 작은 신음 소리를 내질렀다. 무의식적인 쾌감의 소리였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미셀은 촉촉한 안개에 젖은 것 같은 시선으로 그의 검은 불길 같은 시선을 보듬어 안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는 엉덩이를 잔뜩 조인 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미셀은 전율을 일으키며 저도 모르게 다리를 들어 그의 허리에 감았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거친 신음을 토해내다 화들짝 놀라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는 여전히 태울 듯 강렬한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 돼.]
그가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손을 떼, 베이비. 당신의 소리를 듣고 싶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제발 내게 들려줘.]
몸 속 깊은 곳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오는 그를 맞이하려는 듯 그녀의 속살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다음 순간 갑자기 공포가 그녀를 엄습했다.
[멈춰요! 존, 제발, 더 이상은 안 돼요! 아 .당신은 너무 커서 아.. 제발 난 할 수 없..]
[쉬, 쉬..]
그는 부드러운 속삭임과 키스로 그녀를 달래며 벨벳처럼 부드러운 귓바퀴를 자근자근 씹었다.
[베이비, 괜찮아. 걱정하지 마. 당신을 아프게 하진 않을 거요.]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의 모든 본능은 그에게 그녀의 속살 깊이 진입할 것을 거세게 요구했다. 그는 강철 같은 자제력을 발휘해 자신을 억눌렀다. 그녀를 아프게 할 수는 없었다. 안개처럼 젖은 초록색 눈에 어린 공포를 발견한 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마침내 그녀가 섬세한 실크처럼 부드러운 속살로 그를 이끌어 들이기 시작했다. 순수한 쾌락의 물결이 밀려들자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관능적인 테크닉으로 그녀를 더욱 흥분시키며 천천히 그녀의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 자체가 그에게서 새로운 환희를 이끌어 냈다. 그 역시 정신을 잃을 정도의 욕망으로 그녀를 원했다.
미셀은 점점 자제력이 사라지는걸 느꼈다. 하지만 자제력 따위는 더 이상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 그녀에게 존재하는 건이 지나치게 강한 남성의 아래에서 몸부림치는 뜨거운 육체뿐이었다. 한순간 강력한 긴장감이 온몸을 욱죄며 뜨거운 열기와 결합해 그녀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산 채로 타올라 무력하게 몸을 비틀 뿐이었다.
애원하는 듯 작은 흐느낌이 새오나오자 존은 얼른 그녀의 입술을 덮고 그 애원을 자신의 입 안으로 흡수하면서 그들의 몸 사이에 손을 밀어넣어 부드러운 여성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미셀은 거대한 쾌락의 정점에 올라 마구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그런 그녀를 꼭 붙잡고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느끼게 했다.
이윽고 미셀은 온통 땀으로 젖은 몸을 축 늘어뜨린 채 흐느꼈다.
[나..난 몰랐어요.]
그녀는 띄엄띄엄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을 타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존은 잠시 호흡을 고르며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로 하여금 더욱 깊이 자신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녀 역시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그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마침내 그는 거친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며 그녀의 몸 위로 무너져 내렸다.
한동안 물밀 듯 몰아치는 강한 절정감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 잠시 후 그녀가 갑갑한 듯 몸을 꿈틀거리는 걸 느끼고서야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한쪽 팔꿈치로 몸을 지탱한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강한 만족감과 남성 특유의 오만한 자부심이 부드럽게 어려 있었다.
존은 온통 땀에 젖어 그녀의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떼어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온전한 사랑을 받고 난 여자에게서만 가능한 관능적인 피로감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문득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전에는 한 번도 섹스를 즐긴 적이 없었던 건가, 그런 거요?]
그녀는 볼을 붉게 물들이며 그를 외면했다.
[당신의 잘난 자존심이 더 기고만장해지겠군요.]
미셀이 뒤로 물러서려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더 이상 그녀가 뒤로 물러서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녀의 대답을 듣고 싶은 질문들이 맴돌고 있었다. 미셀은 이제 그의 것이다. 물론 그녀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하지만 이렇게 그의 사랑으로 달콤하게 변한 그녀를 품에 안고 있는 한, 곧 그녀도 자신이 그에게 속해 있다는 걸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는 미셀을 돌봐주고 어느 정도까지는 그녀의 응석을 받아주기도 할 작정이었다. 그녀는 목장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녀의 투지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녀는 결코 그런 험한 일에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도 곧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물론 호화판 여행을 시켜주거나 보석으로 치장시켜 주느라 돈을 낭비하지 않겠지만, 그녀에게 안락한 생활을 제공할 자신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침대에서 그녀를 만족시켜 줄 자신도 있었다. 그녀를 가지고 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지금도 그는 또 다시 그녀를 향한 욕망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는 다시금 그녀를 어두운 욕망의 소용돌이로 이끌었다. 미셀은 눈을 감고 그의 품안에서 몸을 활처럼 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녀는 그가 가진 열정적인 강한 힘에 굴복하게 된다면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잃게 되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그의 품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잊고 단순히 그의 여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