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빌스펜서] 너 하나만을 위한 사랑-24화 (24/24)

24

종소리가 울려 데이비드는 고개를 들었다. 본스 빈레이가 붉은 천이 덮인 의자 사이를 지나

그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본격적인 추위가 몰아닥친 뒤로 본스는, 미치의 베란다보다 훨씬

따뜻하고 언제나 뜨거운 커피가 준비되어 있는 멜처의 가게에서 빈둥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 애비게일을 가까운 곳에서 바라볼 기회도 가끔씩 주어졌으므로 금상첨화였다.

그녀는 오늘 가게에 없었다.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본스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본스."

데이비드는 은행 강도처럼 우락부락한 사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는 본스가 애

비게일에게 남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 묘하게 부담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자신이 애비게일에게 선택받았다는 자부심으로 본스에게는 자주 선심을

썼다. 본스는 선택받지 못한 자로서의 자격지심으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내심 코방

귀를 꼈다. 그로서는 애비게일이 멜처에게서 무슨 매력을 발견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안녕하시오, 데이비드."

"어제 역에 도착한 애비게일의 소포를 가져다 주어서 고마웠소.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죠.

며칠 전부터 화관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본스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애비가 당신을 보게 되면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라고 했소."

"지네."

"그녀는 지금 사진을 찍으러 호텔에 가 있을 거요."

"네에."

데이비드는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왜 당신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치고 당신이

모르고 있는 건 없을 텐데 말이오."

본스는 여전히 마룻바닥을 내려다보며 소리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건 사실이죠. 어제만 해도 그래요. 2시 20분 기차에서 더프레인이 사진 장비를 잔뜩 떠매

고 내리는 걸 본 사람은 아마 나 밖에 없을 거요. 에드윈네 호텔로 들어가더라구요."

본스는 담배껌을 꺼내서 씹기 좋은 크기만큼만 물어뜯었다. 데이비드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더, 더, 더프레인이라구요?"

"그렇소."

"그, 그럴 리가……. 당신이 잘못 본 걸 거요, 본스. 사진 장비를 가지고 내린 사람이라면

더프레인이 아니라 데, 데이먼 스미스일 거요."

"아, 금발 머리에 키 작은 사내 말이오? 아녜요, 그 사람은 오늘 아침 9시 50분 기차로 도착

했는걸. 방금 전에 말한 그 작자는 어제 오후 기차로 도착해서 에드윈네 호텔에 묵었다니까

요. 내가 아는 바로는 아직도 그 호텔에 묵고 있소."

본스는 통통한 무쇠 난로의 뚜껑을 열고 걸찍한 타액을 뱉어냈다.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그

는 계속해서 곁눈으로 데이비드를 훔쳐보았다.

"애, 애비게일을 만나러 가, 갈 시간이오. 사, 사진 촬영이 끝날 때쯤 데, 데리러 가기로 했

거든요. 난 이, 이만 실례해야겠소."

"얼마든지 그러슈."

본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코트를 가지러 허겁지겁 뒷방으로 달려가는 데이비드의 뒷모

습을 지켜보았다.

"3분 뒤 데이비드는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어이, 데이비드, 사업 준비는 잘 되어 갑니까?"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시, 시작할 수 있게 모,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에드윈은 데이비드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눈치채고 상냥하게 웃어 주었다.

"원래 결혼식을 올리기 전 24시간이, 제일 견디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그렇죠,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훌륭한 가게와 아내가 있는데 무얼 걱정해요. 틀림없이 행복해질 테니 염려는 붙들

어 매라구요."

여느 때의 데이비드라면 에드윈의 호의에 기꺼이 웃음을 돌려주었겠지만, 오늘 그는 걱정스

런 표정으로 되물었을 뿐이었다.

"애비게일이 여기에 있소, 에드윈?"

"물론이오."

에드윈은 천장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올라간 지 벌써 한 시간째요.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 보니 굉장한 사진을 찍는 모양

이오."

"그, 그녀와 자, 잠깐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럼 어서 올라가 보시오. 스미스 씨는 8호실에 묵고 있어요. 복도에서 왼쪽 끝방입니다."

"고맙소, 에드윈. 찾아보겠소."

2층 복도에는, 좁고 긴 창문에 드리워진 레이스 커튼 틈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 데이비드는 빛바랜 장미 무늬 카페트 위를 소리없이 걸어갔다. 발가락이 저려 오고, 심장

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한 시간이라고? 한 시간 동안이나 그녀가 여기에 있었단 말인가? 사

진을 찍는 데 한 시간씩이나 필요하나?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데이먼 스미스와 함께 있을 거

야, 분명해. 그래, 출장 촬영이니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인화하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필요

할 거야.

8호실 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다.

안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허스키한 남자목소리와 필사적인 여자의 목소리

였다. 데이비드는 갑자기 온몸에서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벽에 손을 짚었다. 데이비드는

바짝 귀를 기울였다.

"그만, 제스……."

오, 하느님. 그것은 애비게일의 목소리였다. 데이비드는 믿기지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발

걸음을 옮기려고 했지만, 카페트에 새겨진 장미 넝쿨이 살아나 그의 발목을 옭아 매기라도

한듯 그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는 곧이어 흘러나오는 사내

의 목소리를 들었다.

"당신이 나를 제스라고 부르는 게 너무나 좋아. 멜처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때는 그를 뭐

라고 부르지?"

길고 긴 침묵이 뒤따랐고, 데이비드의 머릿속은 저질스런 영화의 한 장면으로 가득 찼다. 그

의 이마에 땀이 배어 나왔다. 여길 떠나야 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서! 그러나 그 전

에 벌써 더프레인의 열정적이고 거친 목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다.

"멜처도 이렇게 당신을 뜨겁게 달굴 줄 아나? 나처럼 그도 당신의 가슴을 단단하게 만들고,

당신의 몸을 촉촉하게 만들 수 있느냐구?"

그리고 애비의 흐트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뇨, 전혀 아니에요, 제스. 절대로 당신처럼 할 수는 없어요."

심한 욕지기가 밀려와 데이비드는 순간 머뭇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연인들의 음란한 목소

리는 계속해서 방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픈 유혹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 걸음 다가서며 문을 밀쳤다.

눈을 감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애비게일의 비스듬한 옆모습이 보였다. 헝클어진 긴 머

리가 맨살이 드러난 등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는 허리선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녀는 한 쪽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은 제시 더프레인에게 가슴을 내맡기고 있었다.

제시 더프레인이 애비게일의 맨살에 입술을 댔다. 그녀의 신부 베일은 두 사람의 무릎 아래

에 짓이겨져 있었고, 화관은 애비게일의 뒤에 놓인 흔들의자 아래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

다. 널부러져 있는 머리핀과 빗, 그리고 그가 결혼 선물로 애비게일에게 사 준 새틴 구두 사

이사이로 진주 단추가 흩어져 있었다. 내일이면 자신의 아내가 되기로 했던 여인이 시커먼

남자의 턱을 잡아당겨 자신의 가슴으로 이리저리 인도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데이비드는 구역

질이 났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부드러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수치심에 온몸의 피가 얼굴로 솟구치는 것을 느끼면서, 데이비드는 간신히 소리쳤다.

"애비게일!"

그녀가 움찔 뒤로 물러났다.

"데이비드! 오, 이런!"

"당신은 날 완전히 기만했소!"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러나 제시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끌어안아 드러난 가슴을

가려 주었다. 그리고 무릎으로 그녀를 단단하게 보호했다.

"말조심 하는 게 좋아, 멜처. 애비에게는 잘못이 없어. 이건 내가 설명해야 할 일일세."

제시의 가슴에 기대고 있는 애비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데이비드가 씩씩거렸다.

"이, 이 인간 쓰레기! 결국 내 생각이 옳았군. 당신들은 똑같은 인간 쓰레기야!"

"마음대로 생각하게. 그녀가 어쩌다 자네 같은 사람과 결혼을 하려 했는지 알 수가 없군."

"나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너나 가지라구!"

"애비가 물건인가!"

제시는 애비게일의 드레스를 어깨 위로 올려 주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멜처를 노려보았다.

"딱 맞는 말이잖아. 그 여자가 너한테 울궈낸 돈을 생각해 보라구, 이 개자식아!"

애비게일은 자신을 밀치며 일어서는 제시의 근육이 바짝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그만! 그만들 해요!"

애비는 치맛자락을 움켜 쥐고 일어서려고 애쓰며 울부짖었다. 그녀는 제시를 따라 일어섰다.

찢어진 옷과 엉망으로 흐트러진 그녀의 매무새에서 데이비드는 조금 전 흘러나온 음탕한 소

리들이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데이비드에게 다가서려는

듯 발걸음을 떼었지만, 그는 그녀가 무슨 더러운 물건이라도 되는 양 뒷걸음질을 쳤다.

"데이비드,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데이비드. 날 용서해 주세요. 이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

그녀는 헐렁한 옷을 한 손으로 누르며 떨리는 다른 한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사과의

말도, 변명도 그녀의 수치심을 더해 주었을 따름이었다.

"거짓말쟁이 창녀 같으니라구."

넌덜머리 난다는 듯 데이비드가 으르렁거렸다. 놀랍게도 더듬거리던 말투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내가 알아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나랑 결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즐기자,

이거였나? 원래부터 나 대신 원했던 저 개자식과 딱 한 번만 더 놀아나려고 했단 말이지? 좋

아, 그놈에게 아주 가라구!"

데이비드가 그런 식으로 심한 말을 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런 광경을 목격했으니

그가 자신을 얼마나 천한 여자로 생각할까 애비게일은 데이비드의 소매를 붙잡았다.

"데이비드, 제발……."

그러나 그는 그녀의 손이 마치 더러운 물건이라도 되는 듯 매섭게 뿌리쳤다.

"날 건드리지 말아. 다시는 건드리지 말란 말야."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가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등을 돌려 뒤

도 돌아보지 않고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방을 나갔다.

텅 빈 문가를 멍하니 바라보며, 애비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으로 온몸

을 떨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입을 두 손으로 가리고 그녀는 오랫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못

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 죽고만 싶었다.

"그는 이제 절대로 나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한 시간도 못되어서 마을 전체가 이 사실을

다 알아 버릴 거라구요. 난 어쩌면 좋죠?"

그녀는 한참 동안 관자놀이를 문지르더니 자신의 몸을 껴안고 미친 듯이 앞뒤로 흔들어 댔다

제시는 그런 애비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데이비드 멜처라는 사람이 그녀

에게 저토록 큰 존재였던가?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말했다.

"간단하지. 나와 결혼하면 되잖소."

"뭐라구요!"

애비게일은 빙그르르 몸을 돌려 정신 나간 사람을 보듯 그를 응시했다. 그러나 갑자기 그녀

는 웃음을 터뜨리다가 다시 울면서 기묘한 몸짓을 반복했다.

"그거 아주 재미있는 생각이네요. 당신과 결혼해서 우린 평생 동안 싸우고 서로 물어뜯고 할

퀴면서 그렇게 사는 거예요. 서로 자기가 더 잘났다고 떠들어 대면서 말예요."

그녀는 다시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재밌어요, 더프레인 씨."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뒤범벅이었다.

제시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갑고 심각해서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요. 가끔은 아주 재미있을 거요, 매켄지 양. 재미있고 흥분되고 멋지겠지. 왜냐하면 그

게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니까 말이오. 당신과 떨어져 있는 동안, 난 당신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었소. 내 기억 속의 당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 이렇게 돌아온 거요."

"당신은 데이비드와 나 사이를 고의적으로 훼방놓으려고 돌아온 거예요. 부정하지 말아요."

"그걸 부인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어젯밤 당신과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소.

오늘 여기에서 일어난 일은 절대 계획적인 게 아니오. 그냥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것뿐이라

구."

"하지만 당신은, 당신은 반강제적으로 나를 이 방에 들어오도록 했어요. 그리고 저 흔들의자

에도……."

"그렇지만 당신도 나만큼이나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잖소."

애비는 진실을 인정하고 직면하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동 때문에 마음이 뒤죽박죽이었다. 오늘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 그

녀는 제시를 피해 방 구석에 세워져 있는 가리개로 걸어갔다.

"사람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당신은 게임을 즐기고 있었겠죠. 그래서……."

"이건 게임이 아니오, 애비 "

제시가 그녀의 뒤를 바짝 쫓았다.

"난 당신에게 청혼을 하고 있는 거요."

그녀는 짜증스럽게 소매의 단추를 풀었다.

"아, 그럼 우린 두고두고 스튜어트 정크션의 웃음거리가 되겠군요. 요조숙녀인 양 거드름을

피우던 애비게일 매켄지와 열차 강도의 연애 사건이라고 말이에요."

애비는 그를 향해 돌아서서 소매를 잡아당기며, 가십거리를 소곤대는 사람들처럼 목소리를

낮추었다.

"세상에, 기억나요?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그 애비게일 양이 결혼식

전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들통이 났다잖수. 어쩌구저쩌구."

그녀가 다시 등을 돌리며 신경질적으로 웃옷을 잡아 내렸다. 그는 애비에게 좀더 가까이 다

가섰다.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란 걸 증명해주는 말이잖소. 당신은 그 사람보

다 나와 있는 시간을 더 즐겼소. 그건 당신도 부인하지 않을 테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도

오늘 내게 그렇게까지 허락하지는 않았을 거요."

옷가지로 가슴을 가리며 그녀가 제시에게 대들었다.

"어떻게 감히 나와 데이비드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죠?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

었어요! 아무것도! 우리 사인 새벽에 내린 눈처럼 순수해요. 마을 전체가 다 알고 있는 사실

이라구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눈을 부라리며 닿을 듯이 얼굴을 마주 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오? 이 마을이 당신에게 해준 거라곤 스무 살밖

에 되지 않은 당신에게 노처녀딱지를 붙여 준 것뿐이잖소."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까 여기서 나가 주세요!]

그녀는 그에게 등을 돌리고 허리를 구부려 웨딩드레스에서 몸을 빼냈다. 주름이 많이 달린 하얀 속바지가 드러났다. 그는 하얀 무명천 아래로 희미하게 비치는 그녀의 몸매를 훑어보았다.

[내가 여기서 나갈 땐, 내가 사 준 비싼 코트를 입은 당신의 팔짱을 끼고 나갈 거요. 그리고 내 기차에 올라 이 마을에 영원히 작별을 고하는 거요.]

그녀는 아무 말없이 계속해서 화난 동작으로 캐미솔을 입었다. 그는 허리에 있는 끈을 묶느라 고개를 숙인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채를 감상했다.

[아직도 돈 자랑이 끝나질 않았나 보죠?]

그녀는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오늘 돈으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녀는 페티코트와 치마를 입고 허리 단추를 채웠다.

[당신을 사다니! 난 당신을 사려는 게 아냐. 난 당신이 자진해서 내게 와 주기를 바란다고!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당신이 원하기 때문에 자청해서 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요.]

[당신은 오늘 나를 유혹하려고 애당초부터 계획을 세운 거예요. 아니란 말 하지 말아요.]

그녀는 가리개에 걸쳐 두었던 블라우스를 꺼내서 팔을 꿰었다. 제시는 등뒤로 바짝 다가서서 그녀의 가슴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녀는 이제 그의 유혹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심히 그의 손을 밀쳐 내고,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 나갔다.

[자, 이제 우린 비긴 거요. 안 그래, 애비?]

그는 애비의 귀 뒤로 빗어 넘겨진 머리칼에 입술을 눌렀다.

[당신은 한번도 나에게 유혹당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소?]

그는 연한 장밋빛 목덜미를 입술로 간질이며, 그녀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을 일깨우기 위해서 열렬하게 그녀의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애비는 그의 손을 밀쳐 냈다. 그러나 그는 더 단단하게 그녀를 안으며 반쯤 열려진 블라우스속으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목 뒤의 우묵한 부분에 키스하며, 그는 그녀의 배를 애무하던 손을 아래로 내려보냈다. 한 사람은 놓지 않으려 하고 한 사람은 놓여 나려고 하는 격렬한 몸부림 때문에 가리개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주 뻔뻔스러운 방법으로 구혼을 하는군요!]

애비는 그의 손목을 잡아당겨 포옹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제시는 힘찬 팔로 그녀의 허리와 가슴을 감싸 안아 자신의 단단한 몸에 밀착시켰다.

[느껴 봐요. 원하지 않으면 그렇다고 말을 해봐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내가 모른다고 소리쳐 보란 말이오.]

한순간 그녀가 저항을 멈추자 그는 팔에서 힘을 풀었다. 그녀가 돌아섰다.

[나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모르는데 당신이 어떻게 안다는 거예요?]

애비는 데이비드가 휑하니 열어 놓고 간 문을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다시 한번 가르쳐 주지.]

그가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며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의 심장이 다시 세차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제시는 언제나 그랬다. 그녀의 마음을 원하는 대로 휘저어놓을 수가 있었다. 애비는 혼란스러웠다. 싸움을 거는 고양이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애비가 천천히 옷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그도 뒤를 따랐다. 문 앞을 지나치다 애비가 열린 문을 닫으려고 멈춰 서자, 제시가 바람이 일 만큼 재빠른 동작으로 방문을 닫았다. 놀란 눈으로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온몸의 신경줄이 팽팽해지고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제시는 등뒤로 손잡이를 잡은 채 문에 기대 섰다. 한 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에 포갠 그의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그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묘한 미소를 지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상냥하고, 유혹적이었다.

[우린 다시 하나가 될 거란 사실을 당신도 알고 있잖소. 우리 둘 다 굉장히 좋아하는 사랑의 춤을 추는 거요. 이건 언제나 우리가 시작하는 방식이었어, 애비. 내가 쫓아가면 당신은 도망을 가지. 하지만 이건 싸움이 아니오. 당신도 알잖아. 결국엔 우리 둘 다 이기게 될 테니까.]

그는 천천히 문에서 어깨를 떼었다.

[그러니 이리 와요, 귀여운 암고양이. 사납게 달려들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말을 맺는 그의 목소리가 거친 속삭임으로 바뀌었다. 애비는 그와 하나가 되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내내 그를 그리워하고 또 원했었다. 그녀의 가슴은 지금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던 황홀한 경험을 다시 한번 기대하며 요란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슴이 눈에 띄게 오르락내리락 했고, 눈빛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입은 다시 한번 앙탈을 부리고 있었다.

[이리 와서 어디 한번 해봐요! 해보라고 요! 그래요, 나와 결혼해요! 그 다음엔 뭐죠? 평생 동안 이렇게 으르렁거리며 사나요?]

그의 얼굴에 미소가 크게 번졌다.

[당신 말이 빌어먹게도 옳소.]

[오, 이, 이...]

[제기랄.]

그는 중얼거리며 튕기듯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문 쪽으로 밀어붙였다. 애비의 등이 문에 부딪혔다. 그의 손이 난폭하게 그녀의 겨드랑이를 잡아 올렸다. 바닥에서 발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애비는 성급하게 달려드는 그의 입술을 받았다. 그는 손바닥을 그녀의 가슴 옆 부분에 기둥처럼 세우고, 입술과 몸으로 그녀를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눌렀다. 그는 능숙한 혀로 애비의 몸 속에 숨어 있는 관능을 불러일으켰다. 제시의 몸이 그녀의 몸에 폭풍처럼 다가드는 동안, 그녀의 머리 속으로도 폭풍 같은 감정이 몰려들었다. 그는 허리케인처럼 거칠어진 숨결을 그녀의 얼굴에 쏟아내며 깊숙한 입맞춤으로 그녀를 사로잡았다. 드디어 입술을 뗀 그는 사납게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들여다보았다.

[젠장, 사랑하오, 애비. 아까 당신에게 장난처럼 내뱉은 말은 내 진심이었소. 데이비드를 대신한 게 아니었단 말이오.]

그녀는 혀가 굳어 버린 것 같았다. 제시가 아직도 자신을 문에 기대어 들어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그는 서서히 애비를 내려 주었다. 그녀의 머리칼에 남아 있던 마지막 머리핀이 흘러내렸다. 애비의 발이 바닥에 닿았다. 제시는 그녀의 가슴을 가볍게 쥐면서 그녀의 눈을 뚫어질 듯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투명한 눈 속에서 자신의 말에 대한 반응을 찾기라도 하는 듯.

[어쩔 테요, 애비?]

그녀의 눈빛은 훨씬 부드러워졌지만, 아직도 혼란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과 어떻게 결혼을 하란 말이에요?]

그의 얼굴에 고통스런 표정이 스쳤다. 그는 가슴을 애무하고 있던 손을 늑골 부분으로 내리며 사과하듯 말했다.

[이런, 아팠소? 당신을 아프게 하려던 건 아니었소.]

제시는 그녀의 눈꺼풀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다시 그녀의 푸른 눈을 들여다보았다.

[정말로 내가 무섭소, 애비? 조금도 날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단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뿐이오. 당신을 웃게 만들고, 환희에 찬 신음 소리를 내뱉게 하고...하지만 절대로 아프게 하지는 않을 거요. 이렇게...]

그는 또다시 입술로 애비의 눈을 감겼다. 감미로운 짧은 키스가 그녀의 콧날을 따라 뺨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섬세한 턱을 지나 그녀의 입술에 멎었다. 그의 입술을 맞은 애비의 입술은 어느새 촉촉하게 벌어져 있었다. 제시는 여며지지 않은 블라우스 속으로 그녀의 어깨를 안고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강한 포옹과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달콤했다. 따뜻한 그의 혀끝이 그녀의 입술과 이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애비의 귀로 입술을 옮겼다

[당신도 인정해야 해, 애비. 이건 당신도 원하는 거야. 내게, 그리고 당신 스스로에게 정직해져야지.]

[이런 식으로 당신에게 잡혀서 나더러 어떻게 정직해지라는 거죠? 제시, 이런 상태론 제대로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고요.]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의 힘이 느슨해졌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도망이라도 칠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애비와 얼굴로 손을 들어 올리는 제시의 손가락이 그녀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애비, 내가 떠났을 때 당신은 내게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빈방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소. 그게 뭘 의미하는지 당신은 모르겠소?]

애비가 애원하는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그녀를 놓아 주지 않았다. 그의 손이 다시 옷 속으로 들어와 그녀의 늑골 위에 놓였다. 엄지손가락이 황홀한 떨림을 불러일으키며 가슴의 아래부분을 조금씩 건드렸다.

[난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친 듯 머리를 문에 기댔다.

[당신에겐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소. 난, 당신 스스로 자신에게 어울릴 거라고 꿈꿔 오던 인물과는 물론 정반대의 사람이오. 하지만 난 장담할 수 있소. 나야말로 당신에게 꼭 맞는 사람이오, 애비.]

그녀는 울먹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난 모르겠어요. 모르겠어.]

[아니, 당신은 알고 있소. 우리가 살아가게 될 인생이 어떤 건지 당신은 알고 있다고. 우린 뭐든 잘해 낼 거요. 얘기를 나누다가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나누면서...당신은 대체 뭘 두려워하는 거요? 또다시 마음에 상처를 입을 까봐? 마을 사람들이 뭐라고 수근거릴 까봐? 그것도 아니면, 데이비드가 뭐라고 할까 봐? 그래서 두려운 거요?]

그녀는 눈을 뜨고,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창문과 바깥에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난 데이비드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었어요.]

감정이 복받쳐 올라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애비는 다시 눈을 꼭 감았다.

[당신 자신이 구원 받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던 거요.]

[아니에요, 누구도 그런 식으로 상처를 받아서는 안돼요.]

[13년 전의 당신은 어땠소?]

애비가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잘못한 걸 당신이 옳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 양심의 가책이 덜어지진 않아요.]

[그럼 내게도 데이비드의 대한 당신의 가책을 나누어 줘요. 그것이 당신의 마음을 얻는 길이라면, 지금 당장 그에게 달려가 사과라도 하겠소.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거요, 애비?]

애비의 눈에서 눈물이 쭈르르 흘러내렸다. 데이비드를 만나서 사과를 하겠다는 제시의 말은 진심이었다. 제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꼭 손에 쥐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자신을 원하고 있는지가 가슴에 와 닿았다. 하지만 애비는 여전히 문에 등을 기대고 서서 그가 자신을 좀더 설득시켜 주기를 바랐다. 사랑의 고백을 들으며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그 순간이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우리에겐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소, 애비. 당신이 살고 싶은 도시를 아무거나 하나 골라잡으면 돼요. 다른 철도 회사 사장의 아내처럼 콜로라도 온천에 별장을 짓고 살수도 있소. 어느 곳이든 당신이 말만 하면 우린 그곳으로 가는 거요. 뉴올리언즈에서부터 시작하는 건 어떻겠소? 당신에게 대양을 보여 주리다. 우리 가족들도. 당신은 언제나 넓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잖소. 당신은 멜처의 구두 가게에 케이프 코드식 쇼윈도를 만들어서 마음을 달래려고 했지. 당신이 원한다면, 직접 케이프코드로 데려가서 실물을 보여 줄 수도 있소.]

제시의 눈 속엔 진심이 가득했다.

[난 당신을 돈으로 사고 싶지 않소.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을 가지고 싶어. 내겐 돈이 많소, 애비. 그래서 뭐가 잘못이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내 돈을 쓰고 싶다는데, 뭐가 잘못이냔 말이오. 난 당신에게 생명을 빚진 사람이오. 당신이 구해 준 내 생명을 당신에게 돌려주겠소.]

그것이야말로 애비가 수백 번도, 아니 수천 번도 더 꿈꿔 오던 일이었다. 제시가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며 자신의 피를 들끓게 만드는 장면을 애비는 항상 꿈꿔 왔다.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의 품안에 온 세상을 안겨 주겠다고 약속하는 그의 강렬한 눈빛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자신에 대한 제시의 사랑을 깨닫고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말을 잃었다. 지금 여기에 서있는 사람이 정말로 나란 말인가? 이게 생시일까? 내게 진정한 사랑을 맹세하고 있는, 숨이 멎을 만큼 잘생긴 이 남자가 정말로 내 남자인가? 그녀는 가슴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제시는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비비며 귓불을 살며시 깨물었다. 그리고 촉촉한 혀끝으로 그녀의 귓속을 애무했다.

[그게 내가 바라는 것들이오, 애비. 당신이 지금 당장 원하는 건 뭐지?]

뜨겁고 거친 그의 숨결이 귀에 느껴졌다. 묘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애비는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당신의 본능을 무시해선 안돼요. 지금 당신 몸의 은밀한 부분에 손을 대 보면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있지. 그걸 부인하려 들지 말아, 애비. 전에도 당신은 나를 원하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요.]

애비는 제시 이외의 다른 사람은 닿아 보지 못한, 자신의 몸 깊숙한 곳이 그의 말을 긍정이라도 하듯 금새 젖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가슴이 단단해졌다. 숨결도 흐트러졌다. 목덜미에 난 머리카락에도 신경이 연결된 것처럼 하나하나 일어나 제시의 손길에 반응하고 있었다. 동그란 그녀의 배를 성난 그의 남성이 눌러 왔다. 문에 기댄 애비의 머리 양쪽에 손바닥을 짚고 서서, 제시는 자신의 몸으로 그녀의 몸에 부드럽게 그림을 그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둥글게. 애비는 그의 감각적인 구애의 춤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의 뜨거운 열기가 부드러운 접촉을 통해 자신에게 전해지기를 기다렸다. 블라우스 여밈이 벌어져 얇은 캐미솔 속으로 그녀의 도드라진 가슴이 비쳤다. 단단해진 융기는 흐느적거리는 옷감 아래에서 작은 종처럼 솟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깨어나는 감각에 몸을 떨었다. 그의 몸짓은 너무도 황홀했다. 제시는 그녀의 입가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아직도 어깨를 문에 단단히 기대고 있었지만, 가슴은 그를 향해 있는 힘껏 내밀어져 있었다. 차츰 마음과 육체의 문을 열기 시작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내려뜨려 그녀를 풀어 주었다. 그리고 애태우듯 애비의 눈가를 혀끝으로 간질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사랑을 모르고 살아왔다. 제시는 그녀를 평생 동안 넘치는 사랑으로 감싸 안으리라 다짐했다. 아무런 말도 필요 없었다. 등뒤에 감추고 있던 애비의 손이 그의 엉덩이를 더듬어 올라오더니 뜨거운 그의 몸을 다시 그녀에게로 밀착시켰다. 제시는 그녀의 머리칼에 얼굴을 파묻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뒤로 한 쪽 팔을 둘러 허리를 안았다. 균형을 잡기 위해 문 손잡이를 잡고 있던 그의 다른 손이 페티코트로 덮인 그녀의 엉덩이에 놓였다. 하지만 여러 겹의 옷감 너머로 그녀의 몸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애비는 그의 모든 몸짓을 배우려는 듯 두 손을 그의 허리 아래에 대고, 그를 따라 하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취한 듯한 눈으로 그를 향해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며. 제시의 입술이, 활짝 열려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입으로 내려왔다. 두 사람의 혀가 얽히고, 말랑한 속살이 부딪쳤다. 다시는 갈라서지 않을 것처럼 몸을 기댄 두 사람의 맥박이 함께 뛰기 시작했다. 제시의 몸과 문 사이에서, 애비가 몸을 뒤틀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귀로 올라갔다.

[애비, 당신을 침대로 데려가서 당신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뜨겁게 사랑을 해주겠어.]

그는 그녀가 몸을 떠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몸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는 환히 알 것 같았다. 그의 몸도 옷 속에서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서 옷 위로 애비의 가슴을 물었다. 그녀가 다시 몸을 뒤채며 가쁜 숨을 몰아 쉬더니 감았던 눈을 활짝 떴다. 제시가 가뿐하게 그녀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두 팔을 넓은 그의 어깨에 두르고, 천천히 침대로 다가가는 동안 그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인정하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말할 때까지, 사랑은 미뤄 둘 거요.]

그들은 서로의 강렬한 눈길을 응시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단단한 가슴에 닿아 있는 그녀의 부드러운 젖가슴이 눌렸다. 제시가 한 쪽 무릎을 꿇으며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자 침대의 스프링이 환영의 노래를 불렀다. 그가 두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며 초록빛 눈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사 준 거든 아니든 간에 다른 남자와의 결혼식에 입을 예정이었던 페티코트의 방해를 받고 싶지는 않군.]

그는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익숙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에 매달린 단추를 풀었다. 또다시 타오르는 흥분 감을 전신으로 느끼며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길다란 속눈썹 아래에서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에 열기가 퍼졌다. 그는 페티코트를 벗겨 내리고 나서 애비의 손을 잡아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이 당신의 아름다운 목을 가리기만 하는 그 빅토리아 식 블라우스도 마음에 들지 않아.]

제시는 지루하도록 느린 동작으로 그녀의 블라우스를 벗겼다. 그녀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그의 손길에 몸을 내맡겼다. 하지만 장난스럽게 한마디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당신과 결혼을 하건 말건, 난 숙녀로서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을 거예요.]

[좋소. 마음대로 해요. 다른 철도 회사 사장 부인들과 함께 차를 마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라면 얼마든지.]

그가 벗겨낸 블라우스를 어깨 너머로 던져 버렸다.

[하지만 우리의 침실에선 당신의 캐미솔과 함께 얌전하게 옷장에 걸어 둬야 하오. 그리고 이것도.]

그는 애비의 속바지 허리밴드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고무줄을 튕겼다. 그녀는 얌전하게 드러누워 머리 위로 팔을 뻗으며 그의 사랑 가득한 손길이 닿기를 기다렸다

[그 옷들도 당신이 사 준 셈이니까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그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조끼와 셔츠를 벗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애비의 페티코트와 블라우스 위로 집어 던졌다.

[그렇지. 신혼 여행 때 입으려고 샀다는 그 초록색 외투도 마찬가지요. 당신도 내가 부자라는 사실을 좋아하는가 보군. 자꾸만 그 얘기를 꺼내는 걸 보니.]

그는 허리띠에 손을 댔다.

[난 조그만 구두 가게를 하나 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대꾸하며, 바지 위로 불쑥 솟아오른 그의 남성을 손등으로 살짝 어루만졌다. 바지에서 애비의 손가락이 떨어지자 제시의 눈이 불타 올랐다. 태연하고 느린 동작으로 그는 바지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내려갔다.

[이 일을 끝내고 나면, 당신의 이름이 그자의 이름과 나란히 씌어 있는 그 빌어먹을 놈의 간판을 총으로 쏘아 떨어뜨릴 거요.]

상스러운 어투마저 사랑스럽게 들릴 만큼 그의 목소리는 감미로웠다. 그의 바지가 벗겨졌다.

[그저 간판일 뿐이에요.]

애비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절대 안돼.]

그는 퉁명스럽게 말하고 나서 캐미솔에 달린 끈을 풀었다. 옷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캐미솔을 밀어 올리며, 그는 애비의 곁에 자신의 몸을 눕혔다. 그녀의 호흡이 다시 거칠어졌다.

[내가 그토록 바보처럼 내주었던 당신을 가까스로 다시 되찾았는데, 지금 그 간판을 그냥 두라고 말하는 거요?]

그는 고개를 숙여 캐미솔 아래로 드러난 늑골의 오목한 부분에 입을 맞추었다. 눈을 감은 채로 애비가 속삭였다.

[우리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아마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그는 입술로 그녀의 살결을 간질이며 쿡쿡 웃었다.

[그리고 나선 아마 집으로 달려가 우리 생각을 하면서 자기네들도 사랑을 나누겠지.]

[사람들이 전부 다 당신 같지는 않아요, 제스.]

애비는 그가 어서 서둘러 주기를 바라며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느릿느릿 그녀의 애를 태웠다. 이윽고 속바지 단추가 다 풀리고 골반까지 밀려 내려갔다. 그녀의 동그란 배가 드러났다.

[알아. 하지만 당신은 나와 같은 사람이오. 모든 면에서 우린...]

그의 입이 골반 뼈 옆으로 우묵한 부분에 닿자 그녀는 쾌감으로 몸을 비틀었다. 그녀의 마지막 옷이 천천히 벗겨져 내려갔고, 제시의 입맞춤이 그 길을 따라 움직였다. 자신의 몸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의 부드러운 혀의 감촉에 애비의 입술이 저절로 벌어졌다.

[당신의 몸을 난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소.]

그녀의 민감한 부분으로 입술을 움직이며 그가 거친 호흡 사이로 속삭였다. 그녀의 몸이 활처럼 휘어져 전율했다. 제시는 그녀를 어떻게 사랑해 주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애비가 더 이상 참지 못할 순간에 이르자 그는 그녀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자신의 뜨거운 몸을 그녀의 몸 위에 올렸다.

[어서 말해 줘, 애비.]

뒤로 젖혀진 그녀의 턱밑에 키스하며 그가 간절하게 말했다.

[지금 이렇게 당신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말해 줘.]

애비는 눈을 뜨고, 사랑으로 가득 찬 그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팔꿈치에 기대어 상체를 들어 올린 채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려 그를 자신의 몸 안으로 인도했다. 힘차게 몸을 움직이고 있는 그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녀는 육체의 리듬에 맞추어 사랑을 고백했다.

[사랑해요, 제시.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긴 사랑의 의식 뒤에 마지막 몸짓이 끝날 때까지도 그녀의 속삭임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하던 그녀의 입술이 절정에 이르러 신음을 토하고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그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마음에 새겼다. 곧 이어 그도 절정의 순간에 몸을 던졌다. 방안은 조용했다. 쌓여 있는 눈에 반사된 오후의 햇살이 비쳐 들 뿐이었다. 애비는 그의 목덜미를 덮은 검은 머리카락을 무심히 쓰다듬었다. 돌연 그녀는 눈을 꼭 감았다. 오늘의 사랑을 그와 지내는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되새기며, 그를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제시, 오, 제시...]

그도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주고 가만히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의 평온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기차가 올 거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아랫입술과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기차 시간도 당신에게 맞추나 보죠?]

[애비게일 매켄지 양은 어떻소?]

그가 숨을 멈추고 물었다. 애비는 사랑스러운 그의 짙은 눈빛을 응시하다가 부드럽게 소곤거렸다.

[아마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녀가 그의 눈꺼풀을 열면서 물었다.

[그런데 집 안 가득 준비되어 있는 결혼 케이크랑 샌드위치는 어쩌죠?]

[쥐나 먹으라고 내버려 둬요. 아마 오트밀보다 훨씬 좋아할 거요.]

[내버려 두라니 요?]

애비가 의아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는 다시 팔꿈치를 세우고 윗몸을 일으켰다. 애비를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당신은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나면, 내 팔짱을 끼고 곧장 역으로 가는 거요.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이제부터 모든 게 새로 시작될 테니까.]

[내 집과 재산, 그 모든 걸 그냥 그렇게 남겨 두고 떠나란 말이에요?]

[그렇소, 그냥 그렇게...]

[그렇지만 온 마을 사람들이 우리가 이 호텔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우리가 곧장 역으로 가게 되면 오히려 소문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 될 거예요.]

[그렇겠지, 애비게일 양과 그녀의 열차 강도가 그 사람들 코밑을 지나 특등 열차 칸에 오른다면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키지 않겠소?]

애비가 생각에 잠겨 그를 쳐다보았다.

[제시, 당신은 그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은 거로군요?]

[벌써 우린 충격을 주었소. 그러니까 마지막은 침착하게 마무리를 하자고.]

그녀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위에서 눌러 오는 제시의 무게 때문에 그녀는 소리없이 약간 어깨를 들썩였을 뿐이었다. 그녀의 웃음은 그의 걱정을 덜어 주었지만, 확실하게 그러겠다고 대답하기 전까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시 진지한 얼굴로 애비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우린 서로 무척이나 달라요, 제시. 물론 공통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린 정반대라고요. 당신을 위해서 내가 변할 수는 없어요.]

[난 당신이 변하는 걸 원하지 않소. 당신은 내가 변하면 좋겠소?]

짧은 순간이지만, 제시는 그녀가 무슨 대답을 할지 두려웠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지만 애비는 그의 얼굴에 스치고 지나간 장난기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제시의 뒤에 앉아 그의 어깨를 쓸어 내리며 등에 입을 맞추었다.

[아뇨, 지금의 당신 그대로가 좋아요, 제시. 지금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요.]

제시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어서 갑시다.]

그녀는 그의 손을 맞잡고, 그가 일으켜 주기를 기다렸다. 그가 그녀를 잡아당기자 애비는 그의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둘은 함께 웃었다.

[물러나요, 아가씨. 안 그러면 덴버 행 3시 29분 기차를 놓치게 될 거요.]

제시는 그녀를 놓아 주면서 엉덩이를 장난스럽게 두드렸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옷을 입었다. 그녀가 찢어진 웨딩드레스와 단추, 구두를 집으려 하자 그가 부드럽게 명령했다.

[그것들은 그냥 둬요.]

[그렇지만...]

[두라니까.]

애비는 어머니의 드레스를 내려다보았다. 손에 잡힌 새틴 구두의 감촉이 데이비드의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제시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제시, 모든 걸 두고 떠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녀는 절박하게 눈길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데이비드를 그런 식으로 떠날 수는 없어요.]

제시는 무표정한 얼굴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겪은 대로 그에게 상처를 남겨 줄 수는 없어요. 가게로 가서, 처음부터 상처를 입히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고 그에게 설명하면 안 될까요?]

그녀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사진 케이스의 끈을 조 이는 제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래요. 그렇게 해서 우리 사이에 있는 그의 존재를 영원히 사라지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요.]

제시 더프레인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것은 가장 하기 힘겨운 말이었다. 조금 뒤 그는 애비에게 새 코트를 입혀 주었다. 문가에 서서 그들은 잠깐 동안 방안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가리개, 찢어지고 구겨져서 널브러져 있는 웨딩드레스, 방 전체에 흩어진 진주 단추, 엉망으로 던져진 베일과 버려진 새틴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제시가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 애비는 안으로 들어가 구두를 집어 들었다. 그들은 호텔을 떠나 차갑고 청명한 겨울 오후의 거리로 나섰다. 거리의 끝에 있는 구두 샵을 향해 보도를 걸으며, 그는 애비의 팔을 단단히 잡았다. 그녀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 하얀 색 하이힐을 데이비드 멜처에게 돌려주는 동안, 그는 밖에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조바심을 치며 기다렸다. 불과 몇 분에 지나지 않는 시간이 그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종소리가 울렸다. 제시는 고개를 들어 문을 나서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는 역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걸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 그는 아무래도 심사가 편치를 못해 심각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애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랑해요, 제시.]

그제서야 그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긴 거리를 걸어 내려갔다. 역에는 기차가 금새라도 달려나갈 듯이 하얀 증기를 차가운 콜로라도 하늘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끝에서 두 번째 객실 옆에는 말채 나무 이파리의 문장으로 둘러싸여 RMR이라는 이니셜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애비는 문장과 제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영문을 묻기 위해 입술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 전에 제시는 특등 칸 객차로 그녀를 안아올렸다. 계단을 오른 제시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황량한 거리를 심각하게 내다보았다. 그러더니 그녀를 내려놓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요. 어디 가면 안돼요.]

그리고 나서 그는 서둘러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제시는 무척이나 침착한 표정으로 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데이비드와 애비게일 멜처 라는 이름이 새겨진 간판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두 발의 총성이 울렸고, 중심가 상점의 모든 사람들이 대체 무슨 일인가 보려고 뛰쳐나왔다. 달려 나온 마을 사람들은, 멜처의 구두 샵 앞 눈 위에 떨어져 있는 간판과 기차 안으로 사라지는 제시 더프레인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객실 안으로 들어간 그는 총소리에 놀라 벌어진 애비의 입술을 자신의 입으로 막았다.

[집만한 곳이 없다니까.]

긴 키스가 끝나고 나서, 제시가 뒷발로 문을 닫으며 말했다.

[집이라니 요?]

에메랄드빛 벨벳으로 장식된 객실 내부를 흘긋 바라보며 그녀가 되물었다.

[여긴 뭐죠?]

그녀는 주변을 자세히 보려고 몸을 틀었다. 그가 다시 그녀의 목에 입술을 댔다. 아직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 사랑 애비, 여긴 특별 주문한 우리의 신혼 여행 객실이오.]

애비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흔한 객차의 내부가 아니었다. 초록색 벨벳으로 덮여 있는 대형 침대와, 고급스러운 샴페인이 올려져 있는 아담한 2인용 식탁, 불이 활활 타고 있는 장식이 화려한 난로, 그 곁에 놓여 있는 황동 욕조...푹신한 의자가 놓여 있고 두툼한 카펫이 깔린 그곳은 고급 호텔방처럼 사치스러웠다.

[제시 더프레인, 이 거짓말쟁이 악당! 어떻게 우리가 필요한 시간에 맞춰서 이 기차가 스튜어트 정크션에 도착할 수 있었죠? 내 말을 뭐로 듣는 거예요. 당장 내 목에서 입술을 떼라고요!]

그러나 애비는 자신도 모르게 깔깔거리고 있었다.

[내가 당신의 목에서 입술을 떼는 날은, 죽어서 차가운 흙으로 돌아가는 날이 될 거요, 애비게일 매켄지 양.]

[그렇지만 여긴 분명히 특등 칸이에요. 게다가 당신이 주문을 했다니,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은 나를 꼬여 내려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는 말이잖아요!]

[예쁜 입 다물어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시는 그녀의 입술을 덮고 객차 끝에 놓인 대형 침대로 이끌었다.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두 사람의 입술이 어긋났다. 그들은 입술을 맞댄 채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널찍한 침대에 애비를 쓰러뜨리고 난 뒤 일어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뭘 먼저 할까? 목욕, 저녁 식사, 샴페인, 아니면 나?]

[시간이 얼마나 있는데요?]

벌써부터 코트의 단추를 풀며 그녀가 물었다.

[쉬지 않고 뉴올리언스 까지도 갈 수 있지.]

짓궂게 그녀를 훑어보며 그가 건달처럼 싱긋 웃었다. 외투를 벗으며 애비는 황동 욕조와 샴페인 병, 2인용 식탁, 그리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세상으로 차례차례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매 단추를 풀고 있는 그녀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음, 그럼 네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건 어때요?]

그의 눈썹이 꿈틀 위로 올라갔다.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던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셔츠의 앞 단추를 열었다.

[이런, 빌어먹을.]

제시 더프레인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짙은 수염이 애타게 그녀에게 다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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