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빌스펜서] 너 하나만을 위한 사랑-9화 (9/24)

9

애비게일은 그가 편히 쉬도록 위층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누워 귀를 기울이니 나직한 소리가

들려 왔다. 그의 무게에 눌리는 침대 스프링 소리와 청동제 침대 머리 장식이 그의 머리에

부딪혀 낮게 울리는 소리였다. 잠을 못 이루고 한숨을 쉬며 뒤척이는 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졸음과 싸우며 아주 작은 소리라도 듣고, 이 집의 모든 동향을

파악하려 애썼다. 마을 선술집에서 떠드는 소리가 영원히 계속되기라도 할 것처럼 주기적으

로 들려 왔다. 개 짖는 소리가 저 멀리서 외로이 들렸다. 얼핏 잠들었다가 그 소리에 깬 그

녀는 몽롱한 잠 기운을 떨쳐 내며 바로 앉았다.

못 견딜 정도로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 잠시 기다린 후에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어둠과 고요가 무

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맨발로 신속하고 부드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주저하며 한걸음

씩 신중하게 내디디는 것보다 이 방법이 훨씬 더 소리가 적어 위험 부담이 없었다. 계단을

다 내려온 그녀는 움직임을 멈추고 다시 귀를 기울이며 마술을 걸듯 천천히 리듬 있게 호흡

을 조절했다.

다시 움직였다. 그녀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침실 문지방을 서슴없이 넘어갔다. 침대 발치에서

그가 자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시간만 지나고 발각될 위험도가 높

아질 뿐이었다. 수면 상태지만 본능적으로 그가 알아챌지도 몰랐다. 그녀는 분명한 걸음걸이

로 소리 없이 침대에 미끄러지듯 다가갔다. 그리고 몸을 굽히고 바닥에 거의 엎드린 자세를

취했다.

그가 갑자기 숨을 크게 몰아쉬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매트리스 밑에 셔츠로 싸인 총이 있을 것이다. 언제라도 금방 그가 손으로 꺼낼 수 있는 위

치였다. 다시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어 손을 뻗었다. 매트리스 밑에 손을 집어 넣으니 예

상대로 셔츠 더미가 손에 잡혔다. 딱딱한 금속 물체도 만져졌다. 몸이 떨렸다. 총을 잡아당

겨 보았다. 길쭉한 총신 때문에 침대 스프링에 걸려 잘 빠지지 않았다. 다시 조심스레 총을

더듬어 스프링 사이에 세로로 세우고 빼 보았지만 이번에도 나오지 않았다. 매트리스를 조금

만 들면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매트리스를 1인치 가량 들어 올리는 일이었다.

그녀는 숨죽인 채로 그가 몸을 뒤척여 돌아눕기를 기다렸다. 그가 몸을 굴려 스프링이 눌리

는 소리가 날 때 잽싸게 총을 빼낼 생각이었다. 마루가 너무 딱딱하고 차가웠다. 맨무릎이

저려오고 서늘한 냉기가 올라왔다. 그는 여전히 평화롭게 잠을 잤다.

또 다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오고 그에 답하는 늑대의 울음소리도 희미하게 들려 왔다. 차

가운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데도 졸음이 밀려왔다. 잠을 쫓으려고 몸을 약간 움

직였는데 뭔가 손에 차갑고 물컹한 것이 만져졌다.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으나 잠시 뒤 그것

이 돼지 방광이란 걸 알아차렸다. 그가 길고 강한 손가락으로 그 더러운 것을 움켜쥐었다 놓

았다했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어 지저분한 생각을 떨쳐 냈다.

바로 그때 그가 콧소리를 내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옆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작

은 동작이었으나 스프링 소리가 나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느슨

해진 스프링 사이로 셔츠 뭉치를 꺼냈다. 그녀는 작지만 생각보다 무거운 물건을 가슴에 품

고 호흡을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그녀는 침대 아래에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총의 무게와 총을 가지고 있다는 공포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이 무지막지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 성공한 것이다! 그녀

는 천천히 셔츠를 풀어 보았다. 그녀의 배와 가슴 위를 셔츠가 뒤덮은 꼴이 되었다. 셔츠에

서 강한 그의 체취가 풍겼다. 오싹 몸서리가 일었다. 그녀는 다시 셔츠로 총부리를 꽁꽁 감

쌌다. 총이 마루에 갑자기 떨어져도 안전할 수 있게.

그녀는 누운 채 신중하게 나갈 기회를 엿보았다. 힘에 겨운 듯 총을 질질 끌다시피 들어서

상대를 겨누는 우스꽝스런 장면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에 이 총을 그에게서 뺏으려고 벌였던

소동이 기억났다. 그녀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짓이었다.

그가 다시 고른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껏 긴장하고 숨을 죽였

다. 그러나 이미 가장 어려운 일에 성공한 뒤였다. 이 방을 빠져 나가는 건 그에 비하면 너

무나 쉬운 일이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돼, 조금만.

그는 가볍게 코를 골았다. 한 손으론 총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총신을 감싼 셔츠를

받쳐 들고 일어나 앉았다.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총알처럼 이 방을 뛰쳐나갈 작정이었

다. 그를 살펴보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의 머리가 그녀의 얼

굴과 너무 가까이 있었다. 그는 그녀를 등진 채 벽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일어나

소리없이 천천히 문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녀가 발을 놓기도 전에 커다란 손 하나가 그녀의 몸을 휘감아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재주넘기를하듯 공중에 있던 그녀의 발이 허공에서 휘둘려 벽에 부딪혔

다. 헝겊 인형처럼 그녀의 몸이 침대 위로 주르르 미끄러졌다. 그리고 공포와 함께 숨막힐

정도로 무자비한 무게가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녀의 몸이 뒤집히고 그가 그녀를 내리눌

렀던 것이다.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죽는 것이 이런 건가 생각되었다. 어깨가

바스러질 것 같은 엄청난 힘에 짓눌리니 견딜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그는 몸 아래 둥근 돌처럼 웅크린 사람에게서 여인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는 얼른 몸

을 일으켜, 움직이지 못하게 그녀의 두 팔을 그녀의 등뒤에 고정하려 했다. 버티는 그녀의

손에 총이 들려 있었다.

"이런 젠장, 당신이군. 내 침대 밑으로 숨어 들어와 몰래 총을 빼내다니! 당장 내 총 내놔!"

그가 으르렁 거렸다.

그는 총을 뺏으려고, 그녀가 가슴 앞에 꼭 쥐고 있는 손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

다. 그녀는 단단히 깍지를 끼고 결사적으로 버텄다. 그녀는 침대에 머리를 박고 총을 단단히

움켜쥔 채 몸부림 치며 반항했다. 그러나 그가 무지막지하게 등을 짓누르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의 단단한 손이 그녀의 팔을 죄어 왔다. 그가 총을 잡은 그녀의 손을 침대 위에

세게 쳤다. 눈앞이 번쩍였다. 짓눌린 폐가 파열될 것 같았다.

"멍청한 여자 같으니라구, 총 내놔! 이대로 순순히 당신을 내보낼 것 같소? 내가 그렇게 멍

청해 보이나?"

여전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공포에 휘감긴 그녀는 호흡조차 곤란해져 몸이 팽창해 터져 버

릴 것 같았다. 그에게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해 왔다. 목에서 덜거

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손이 느슨해졌다. 그는 그녀가 숨을 내쉬려고 헐떡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발버

둥치던 그녀의 다리가 움직임을 멈추고, 비참하게 경련을 했다.

그는 얼른 그녀의 등에서 내려왔다.

"오, 하느님, 애비!"

그녀는 나무늘보처럼 몸을 구부리고, 약하게 흐느끼며 숨을 헐떡이면서, 무릎을 움켜잡고 이

리저리 몸을 굴렸다. 그는 그녀의 몸을 펴서 산소가 조금이라도 더 들어가게 하려고 했으나

그녀는 더욱 단단히 몸을 움츠릴 뿐이었다.

결국 그는 궁여지책으로 그녀의 몸을 확 뒤집어 버렸다. 엎드리게 하면 몸을 구부릴 수 없으

리라. 그녀의 이마가 침대에 부딪히고, 공중으로 날아간 총이 벽에 부딪혀 침대 한 쪽 구석

에 떨어졌다.  그녀는 배를 움켜잡고 몸을 뒤틀며 살아남으려는, 본능적인 반응을 보였다.

제시는 호흡을 돕고자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아 올렸다.

"미안하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전혀 없었소."

여전히 그녀의 숨소리는 경주를 방금 마친 말의 호흡처럼 거칠었다. 그녀는 뭔가 따뜻한 게

엉덩이에 놓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애비, 괜찮소?"

그의 엄지손가락이 조금 전에 그에게 눌려 멍든 부분을 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헐떡이는 호

흡과 함께 신음과 흐느낌 소리를 내며, 아프게 누르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놓아 줘……."

그러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파자마바람으로 옆에서 그녀를 잡았다.

"무리해서 말하지 말아요. 우선 크게 심호흡을 해봐요."

그가 명령했다.

다시 그녀의 몸이 들어 올려졌고, 다행히 그녀는 폐에 가득 숨을 들이마실 수 있었다.

"날…… 내려…… 줘요."

그녀가 발버등을 치자, 그는 순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녀의 몸이 침대 속으로 푹 꺼져

들었다. 그가 무릎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의 몸무게로 인해 그녀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아프오?"

그녀는 그의 손이 부드럽게 자신의 등을 문지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터질 듯이 가

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음흉한…… 손이나…… 치워요."

힘겹게 그녀가 말했다.

"당신 탓이오."

그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등을 문질렀다. 따스함이 전해져왔다.

"이걸로 날 쏠 작정이었소?"

"그러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군요."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내가 멍청하게 순순히 당할 것 같았소?"

그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등을 한 번 톡 치더니, 오목 들어간 등뼈 부분을 쭉 훑어 내려갔

다. 그의 손놀림에 산토끼처럼 펄쩍 뛰듯 놀란 그녀는 침대 구석 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곳

에 떨어졌던 총이 그녀의 몸에 걸렸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요란한 침대 스프링 소리가 나고 그가

그녀의 다리를 잡고 뒤로 끌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총을 잡을 새도 없었다. 다시 결사적으

로 총이 있는 곳으로 기어가려 했으나, 그가 날듯이 그녀를 덮치며 쉽게 총을 집어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그는 야생마를 타는 카우보이처럼 그녀 위에 걸터앉아 그녀의 팔을 무릎으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젠 그도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고 고통스러운 듯 허벅지 상처를 손으로 가만히

눌렀다. 갑자기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다리에 찌르듯 고통이 가해지자 그가 버럭 화를

냈다.

"좋소, 고귀하고 고귀하신 애비게일 양. 총을 가지고 놀고 싶소? 좋소, 놀아 봅시다."

아픔으로 머리가 울리는 가운데 그녀는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그녀를

누르던 그의 몸이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가까이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그녀의

귀에 총을 갖다 댔다.

"저쪽으로 뒹굴어."

말려 올라간 잠옷을 끌어내리려고 허둥대던 그녀는 등에 와 박히는 차가운 총부리를 느꼈다.

"뒹굴어."

단호한 음성으로 다시 그가 명령했다. 총이 더 깊이 몸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공포에 떨며

벽 쪽으로 몸을 굴렸다.

"왜 항상 깨어날 때마다 당신이 내 침대 근처에 있는 거지?"

그가 추궁했다.

감당할 수 없는 두통이 일었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안고 두눈을 감았다. 그의 유들유들한 말

이 계속되었다.

"애비, 왜 날 이 집에 데리고 온 거요? 총잡이 침대로 뛰어드는 게 당신 수법이오? 상냥한

간호사인 척 둘러대지 말고 뭐라 말해 봐요. 간호사, 쳇! 사람들에게 다 얘기하겠소, 지금

있었던일까지도.

당신은 아무 이유도 없이 내 수염을 몽땅 없애 버렸소. 그리고 방광이 터질 지경이 될 때까

지 소리 쳤지만, 당신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가 변기를 나한테 내던졌소. 나뭇가지로 내

목을 찔러 대서 며칠 동안 말도 못 하게 만들고, 거의 날 아사 직전까지 몰고 갔소. 게다가

독약과도 다름없는 간을 먹여서 얼간이처럼 위액까지 토하게 만들었소. 그리고 돼지 오줌통

을 음식이라고 가져왔소. 게다가 지금은, 이게 마지막일 것 같지는 않은데, 날 쏘려고 했소.

"당신을 쏘려고 하지 않았어요!"

"이봐, 애비게일 양, 당신은 바로 현장에서 잡혔단 말이오. 아, 최근에 당신이 나한테 한 말

이군."

"당신은 멜처 씨를 쏘았어요. 없어진 그의 발가락이 증거예요. 난 아무도 쏘지 않았어요. 단

지 총을 찾았을 뿐이에요."

"당신이 총을 쏘지 못한 건 내가 더 빨랐기 때문이오. 왜 그러오? 머리가 아프오?"

"벽에 부딪혔어요."

"또 이 말을 하게 하는군. 그건 당신 탓이오. 당신이 이 방을 몰래 숨어 들어왔을 때 이미

예견한 일 아니오. 이젠 살금살금 걷는 것도 너무 많이 써서 약효가 듣지 않소."

"난 당신 목숨을 살렸어요. 배은망덕한 사람 같으니!"

그녀가 소리 쳤다. 그는 허풍을 떠는 것이다. 진짜 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납작하게 엎드린 그녀의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 무릎으로 그녀의 가슴을 내리눌렀

다.

"배은망덕하다고?"

그가 기분 나쁘게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래, 원래 난 배은망덕한 놈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당신이 나한테 한 짓에 제대로 대응조

차 못 한 것 같군. 하지만 이번엔 당신과 같은 방법으로 해주지. 당신이 한 대로 그대로 갚

아 주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신도 그걸 원하지 않는가?"

"아,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오, 그렇다면 서비스의 대가라고 해 두지."

"그렇지 않아……."

그녀는 방어하듯 두 팔로 가슴을 감쌌다.

"자, 당신이 내 키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봅시다."

그는 그녀가 저항할 기회도 주지 않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어느새 그녀는 침대와 그의 몸 사

이에 옴짝달싹도 못하게 갇혔다.

그는 강인한 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잡고 청동 침대 머리 장식에 고정했다. 그의 얼굴이 가까

이 다가오자 그녀는 얼른 얼굴을 돌렸다. 그가 다시 키스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얼굴

을 돌려버렸다.

"허, 게임을 하자는 뜻인가?"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내려 그녀의 등뒤에 단단히 붙잡고 자신의 몸무게로 그녀를 압박했지

만 소용이 없었다. 이윽고 그는 자유로운 한 손으로 방금 전에 감아서 상큼한 그녀의 머리를

올리고는 그녀의 목뒤를 움켜잡았다. 고개를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단단히.

서서히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로 내려가서 혀로 살짝 그녀의 이를 더듬었다. 애비게일이

발작하듯 튀어오르며 반항했으나 뒤로 꺾인 팔의 고통만 더 심해질 뿐이었다. 그의 완력 앞

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제 그는 느긋이 그녀의 입술을 완전히 점거했다. 그의 혀는 고

문하듯 부드럽고 매끄럽게 그녀의 입안 구석구석을 촉촉히 적시며 헤집고 돌아다녔다.

그녀는 그에게 도저히 대항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지 축 처진 듯

가만히 누워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순순히 당하는 것뿐이었다. 더 이상 두려움도 저항

도 보여 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녀가 저항을 포기했다는 걸 알아챈 그는 미끄러지듯 입술을 그녀의 턱 아래로 가져가며 속

삭였다.

"애비, 당신이 나한테 했던 것을 하나씩 되갚아 줄 생각이오."

그러고는 다시 코로 그녀의 얼굴을 비벼 가며 그녀의 입술로 얼굴을 가져갔다. 그녀의 입은

굳게 다물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입술 위에서 그가 낮게 웃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애비, 마음에 드오?"

그녀의 심장은 춤을 추듯 둥둥거리고 꼭 감은 두 눈썹이 부르르 떨렸다. 그가 입술을 위로

움직이더니 그녀의 코를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물었다. 그의 입술이 지나간 자리는 축축한

타액의 흔적이 남았다. 그는 입 한가득 그녀의 뺨을 물고 할아 댔다. 전신이 부르르 떨리며

뜨거운 것이 스치듯 그녀의 몸을 지나갔다. 등뒤로 손이 붙잡힌 채, 몸이 침대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같았다.

죽고 싶었다. 아니, 살아 있다는 느낌이 너무나 생생했다. 애비게일은 온몸을 뚫고 지나가는

이 느낌에 완전히 압도되어 버렸다. 그녀의 몸 이곳저곳에서 세포 하나하나가 뛰쳐나가려는

것 같았다.

목을 압박하던 그의 손이 스르르 가슴 골짜기를 내려가 허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손가락 하

나로 즐기듯 그녀가 입은 옷의 단추를 풀어 나갔다.

"이봐, 내 셔츠를 가져다 버리려고 그랬지? 당신이 내 걸 훔쳤으니…… 나도 당신 걸 훔치겠

소."

그의 나직한 속삭임이 들렸다. 단추를 다 푼 그는 천천히 손가락 하나로 코르셋을 젖혔다.

그리고 드러난 그녀의 가슴을 손등으로 스치듯 쓸어 내려갔다. 봉긋 솟아오른 두 언덕 사이

에서 그의 손이 미끄럼을 탔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눈꺼풀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애비, 당신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다 알 거요. 온갖 이상한 방법으로 나를 괴롭혔지

. 이젠 내가 제대로 된 방식을 보여 주지."

그가 드러난 그녀의 가슴을 손으로 동그랗게 말아 쥐자 그녀의 두 눈은 놀람으로 둥그래졌다

. 그의 검은 콧수염이 그녀의 얼굴로 다가왔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와 닿았다. 그가 그녀의

가슴을 만지작거리고 팔꿈치로 그녀의 갈비뼈와 배를 애무하듯 비벼 대자, 가슴이 그녀의

의지를 배신하고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녀의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미 그녀의 입을

점거한 그의 키스 때문에 호흡조차 곤란할 지경이었다.

"애비, 침대 목욕은 어떻소? 한 가지 더 당신에게 빚진 게 있지."

따스하고 축축한 그의 혀가 목욕을 시키듯 원을 그리며 가슴주위를 핥아 내려갔다. 그녀는

숨을 불규칙하게 내쉬었다. 자신의 가슴이 그의 입 속으로 사라지는 걸 저지할 수 없었다.

더욱 붉어진 그녀의 유두를 그는 혀로 가볍게 툭툭 치고, 햝고, 입 안 가득 물고, 흠씬 빨아

대며 아프지 않게 이로 깨물기까지 했다.

애비게일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목구멍에서 야릇한 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녀의 어깨가 매트리스를 파고들자 그제야 그의 입술이

아래로 이동했다. 그의 축축한 혀가 가슴의 골짜기를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몸에 닿는 촉촉

한 혀의 움직임에 그녀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그는 마치 꿀을 빨아 대는 벌처럼 그녀의 배

꼽에 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바로 배꼽 밑에 키스를 하고는 머리를 들었다.

"계속할까? 아니면 당신처럼 중도에서 그만둘까?"

"제발."

그녀가 애원했다.

"제발 뭐요? 제발 그만두라는 말이오, 제발 계속하라는 말이오?"

"제발 멈춰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목도 울음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다리 사이도 젖어들

었다.

"아직은 안 되지. 아직 끝나지 않았소. 애비, 기억나오? 날 살리겠다고 피가 통하지도 않게

꽁꽁 묶어 놓은 것 말이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의 맥박이 또 다시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그가 몸을

뻗쳐 그녀의 손목을 침대 머리맡의 청동 장식에 고정했다. 그가 잡아당길 때마다 청동 소리

가 낮게 울렸다. 단단해진 그의 몸이 느껴졌다. 스스로에게 반역하듯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

다. 호흡이 가빠 왔다.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으나 그는 몸으로 그녀의 흐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흐느낌에는 갑자기 깨달은 새로운 감정에 대한 두려움이 들어 있었다.

그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꽉 감긴 두눈과 벌어진 입술이 떠는 것을.

그는 그녀의 뺨을 툭 쳤다.

"애비, 몇 살이오? 나한테 거짓말한 거요? 너무 나이를 먹어 걱정스럽다고 하지 않았소? 그

런데 지금 두려워하고 있잖소. 원래 그런 거요, 아니면 처음이라서 그런 거요?"

흐느끼는 소리가 그녀의 목을 타고 새어 나왔다.

"서른세 살이에요. 당신을 증오해요."

그녀가 속삭였다.

"죽을 때까지 당신을 증오할 거예요."

그에 대한 두려움이 가시고 새로운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건 그녀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 그녀의 피와 살 모든 것이 그의 말과 움직임에 반응을 보였다.

내 손이 언제부터 풀어져 있었지? 그녀의 두 팔은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것처럼 바로 옆에 버

려져 있었다. 뜨거운 그의 입김이 얼굴에 느껴졌다.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눈가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가 그를 머뭇거리게 했다. 그녀는 그의 몸 아래서 무방비 상태로 패배를 인정하

듯 누워 있었다. 불현듯 예전의 깐깐하고 불을 뿜듯 화를 내는 노처녀 애비로 돌아갔으면 하

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어쨌든 시작은 한 거지?"

그녀의 몸을 떨게 만든, 음침한 울림이 사라진 목소리였다.

그녀는 울음을 삼키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여전히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누군가 내 집 안에 열차 강도를 데려다 놓았고, 그 강도에게는

콧수염이 있다는 거예요."

"애비."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고 내가 심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밀치며 침대를 빠져 나가려 했다. 침대가까지 몸을 밀치며 간 그녀는 시

트를 움켜쥐고 일어서려고 했다.

움켜쥔 시트가 침대 청동 장식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몇 번 시트와 실랑이하다가 그녀는

시트를 내려놓고 가슴을 가린 채,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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