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빌스펜서] 너 하나만을 위한 사랑-4화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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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주먹을 꽉 주었다. 젠장, 자신만 아는 독선적인 암캐 같으니라고! 열차 강도? 흥, 난

열차 강도가 아니라고! 그런데 멜처라는 사람은 누구지? 분명히 저 여자의 남편은 아니었다.

그러면 보호자? 하! 독거미처럼 보호막이 필요한가 보지.

애비게일은 사시나무처럼 떨며 부엌에 앉았다. 조각난 접시파편이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왜 도허티 선생님 말씀대로 조심하지 않았을까. 너무 후회스러웠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녀에게 그런 욕설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지금 당장 저 난폭하고 상스러운 남자

를 여기서 내쫓고 싶었다. 당장!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내보내야겠어. 그녀는 지끈거리는 이

마에 팔을 얹었다. 그를 돌볼 시간이 없는 도허티 의사는 계속 간호를 해 달라고 부탁할 것

이다. 그리고 멜처 씨도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될 것이다. 게다가 남은 그녀의 생활비가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돈이 필요했다.

한편 침실에 있는 남자는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썼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대답할 때까

지, 포효하는 호랑이처럼 고래고래 악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친바람 소리만 날 뿐이었다. 온몸을 뒤틀어 보았다. 다리와 허리, 아랫배 부근이 불에 덴

듯 아파 왔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린 그는 이를 갈며 고통을 참았다. 어떻게 날 찾아냈을까.

"꼬박 이틀 동안이나……."

그는 벌떡 일어나려다 엄습해 오는 고통에 다시 누웠다. 빌어먹을 여자 같으니라고! 항상 이

렇게 고양이처럼 조용히 걸어다니나? 이 여자는 어느새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무척 침착한 태도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극도로 감정이 배제된 목소리였다.

"당신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아닌 침대 머리 장식을 보며 말했다.

아직도 화가 난 걸까. 그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만

반의 준비를 했나 보군. 당하지 않으려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정을 취해야 했다. 그러나 그

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참아 본 적이 전혀 없었다. 가만있자, 저 여자가 뭔가 단단히 결

심을 한 것 같은데?

차가운 음성으로 그녀가 지시하기 시작했다.

"말하지도 다리를 당기지도 마세요. 돌아누울 수 있게 우선 몸을 밀어 드릴게요."

그리고 침대 옆으로 왔다. 그녀는 그의 무릎 밑에 있던 쿠션을 빼고 놀랄 정도로 부드럽게

무릎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깔려있는 시트가 빨려가지 않게 꼭 잡고, 그의 몸을 굴려 벽을

보게 했다. 그는 여전히 몸에 시트를 덮고 있었다. 그녀는 사기로 만든 납작한 팬을 바로 뒤

에 놓고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방문걸쇠가 잠기지 않을 정도만 닫은 채.

도대체 어떤 여자인 거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접시를 깨뜨리며 암캐라고 욕을 해댔는데,

아무 일 없는 듯 살며시 다가와 변기를 놓고 가다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대개 여자들은

아무리 환자 혼자 있더라도, 이런 상황이면 어떤 시중도 들어 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저 여

자는 달랐다. 왜 보복을 하지 않을까? 내 매서운 눈초리에 겁을 먹었나?

아까처럼 표정 없는 얼굴로 조용히 그녀가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칠 뿐 둘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녀는 변기만 다시 가져갔다.

그를 홀로 남겨놓고 나왔다. 통쾌했다. 애비게일은 아침에 그가 보여 준, 도저히 참을 수 없

는 태도에 완벽하게 복수를 해주었다. 그의 입 안에는 그가 너무나 알고 싶어하는 수백 가지

물음이 꽉 차 있으리라. 그래, 좋아! 계속 끙끙대시지! 이제 그는 어떤 것도 물을 자격이

없었다.

온갖 꽃무늬로 장식된 애비게일의 방 안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빌어먹을 암캐 같으니라고!

그는 몇 시간을 고심했다. 묻고싶은 것이 있어도 차갑고 위엄 있는 그녀의 분위기에 밀려 도

대체 물어 볼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열차 강도라는 말과 함께 혐오스런 시선을 받았던 아

까 일을 생각하니, 지금도 피가 끓어올랐다. 유리병 속에 앉은 멍청한 호박벌처럼, 그는 이

비위 거슬리는 여자의 노란꽃 정원에 잡혀 버렸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콧노래 소리가 부

엌에서 들려 왔다. 자신과 달리 그녀는 콧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니, 그 나지막한 소리가 더

욱 그의 신경을 긁었다. 아무리 후하게 돈을 준다고 해도, 다시 저 여자의 삐삑거리는 콧노

래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녀가 위층으로 을라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멜처라는 사람과 둘이서 저녁을

먹으러 내려왔다. 둘의 대화가 조용한 집 안을 맴돌았다. 말소리를 들어 보니 서로에게 호

감을 가진 것 같았다.

"오, 애비게일 양, 테이블에 한련화가 있군요!"

"아니, 한련화라고 정확하게 이름을 알아맞추는 남자분을 뵈니 정말 기쁘군요."

"아직까지 한련화를 키우는 여자분을 뵈니, 저도 기쁩니다."

침실 안에서 대화를 듣던 남자가 주위를 살펴보았다.

"내일쯤이면 마당에 잠시 나가 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제가 잡초를 뽑을 동안만요."

"정말 나가 보고 싶습니다, 애비게일 양."

"그러면 내일 바깥 바람을 쐬도록 하지요, 멜처 씨."

그녀는 약속을 하고 물었다.

"참, 레모네이드 좋아하세요?"

"데이비드라고 불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면 내일 저와 함께 정원에서 마시는 게 어떠신가요?"

"기대하겠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애비게일은 멜처가 침대로 가도록 도와 주었다. 아래층에 있던 남자는 그들

이 위로 올라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밖은 조용해졌다. 지금쯤 데이비드 멜처가 애비게

일 양에게 키스를 하고, 복숭아빛으로 발갛게 물들어 팔락거리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는 걸

까?

애비게일은 멜처와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시커먼 짐승 같은 사람을 먹이는

소름 끼치는 일을 하기 위해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솔직히 그녀는 그가 굶어 죽도록 그

대로 내버려 두고 싶었다. 싫은 감정에다, 그 사람 옆에 가기를 꺼리는 두려움이 섞였다. 마

음을 단단히 먹고,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밀크 토스트(버터를 바르고 우유에 적신 토

스트)를 무기 삼아 씩씩한 걸음걸이로 다가갔다. 쟁반을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가 다시 폭력을 행사하려고 하면 이걸 던져서 화상을 입힐 작정이었다.

"밀크 토스트를 가져왔어요."

그녀가 말했다. 불쾌한 음성이었다.

"흥!"

토스트만 달랑 가지고 온 그녀를 보고, 그가 입 모양으로 불만을 알렸다.

"난 굶어 죽을 지경이오."

"제가 바라는 바예요."

애비게일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하고 냅킨을 그의 턱에 들이밀었다.

"드세요."

뜨거운 우유의 비린내가 풍겨 매스꺼웠다. 그녀가 무작정 우유를 찍은 빵 조각을 그의 입 안

에 넣었다. 그는 그냥 꿀꺽 목으로 넘겨 버렸다. 토할 것만 같았다. 게다가 뜨거운 우유 한

모금 한토금이 고문이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입 안이 전부 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

직도 그에게 화가 나서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는 꾹 참고 빵을 받아먹었다.

다시 서로를 협박하듯 험악한 눈초리가 공중에서 부딪혔다. 두 사람은 서로 공격과 수비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팽팽히 맞섰다. 그는 온순하게 행동하면서 물을 기회를 기다렸고,

애비게일은 난폭한 행동이 보이면 즉시 반격을 해서 안전하게 방을 나갈 준비를 했다. 그녀

는 이상스레 가만히 받아먹는 그가 오히려 수상쩍었다. 뭔가 속셈이 있는 걸까? 그녀는 점점

초조해졌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그가 말을 할 수 없게 계속 먹이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녀

의 승리였다. 결국 그는 품위 있게 대화를 꺼낼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녀는 타 들어가는

그의 애간장을 무시한 채 유유히 방을 나갔다.

부엌에 돌아오니 긴장이 갑자기 풀려 피로가 덮쳐 왔다. 그녀의 몸은 온통 기진 맥진이었다.

아차, 이런 세상에. 그녀의 잠옷이며 베개며 잠자리에 필요한 모든 것이 그 침실에 있었다.

또다시 그 방에 들어가야 했다. 고민 끝에 그녀는 핑곗거리로 양치질을 생각해 냈다.

침실 문 앞에서 깊은 심호흡으로 용기를 모은 뒤 애비게일은 발끝으로 서서 살짝 안을 들여

다보았다. 그는 창문을 보고 있었는데 턱 근육이 긴장되어 있었다. 오, 아직도 화가 안 풀렸

나봐. 수염이 다시 자라기 시작해서 그의 얼굴은 더욱 검어 보였다. 면도를 해서 일부러 드

러낸 입술이 보였다. 콧수염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그가 알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갑자기 전

율이 일었다. 제발, 제발 빨리 자라라!

그녀는 문지방을 소리 없이 밟고 들어가며 말했다.

"이젠 문화인답게 행동할 준비가 되었나요?"

그가 머리를 홱 돌렸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린 채 주먹을 불끈 쥐고 고통을 참아 냈다.

빌어먹을 고양이 발 같으니라고!

"날 무관심으로 죽여 없애려고 한 게 아니었나?"

그는 삐걱거리는 듯한 소리로 작게 말하며, 손으로 배를 눌렀다.

"아니면 그 알량한 밀크 토스트 때문에 왔소?"

데이비드 멜처가 보냈던 따스한 찬사가 생각났다. 그녀는 냉랭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당신을 조금이나마 가르쳐 보려고 했는데 실패했군요."

그리고 등을 돌려 나가려 했다.

"안 돼, 기다려요!"

귀에 거슬리는 목쉰 소리가 들려 왔다.

"캐머런 씨, 기다리라고요? 무엇 때문에요? 모욕을 받으려고요, 욕을 들으려 고요? 아니면

당신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대가로 내 물건이 깨지는 것을 보려고요?"

"그런 구정물 같은 게 음식이야? 난 굶어 죽을 지경인데 수프하고 밀크 토스트만 가지고 와?

흥, 빨리 염병할 엉덩짝을 들고 나가, 음식다운 음식을 가져와! 여기에 가만히 누워 있는

건 듣고 싶은 대답이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당신 뼈다귀가 아직 제자리에 붙어 있는 거라구

, 알았나!"

그가 분노를 폭발시키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화를 당하지 않으려면 불 같은 그의 성미를 약

간이나마 가라앉혀야 했다. 그래서 애비게일은 침착하고 거만하면서도 예의를 갖춘 말씨로

그를 비꼬았다.

"어머나! 어휘력이 풍부하시네요, 캐머런 씨. 구정물, 엉덩짝, 뼈다귀. 진짜 언어학자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그녀는 척추를 꼿꼿히 세우고 그를 깔보듯 내려보았다. 그리고 스며나오는 두려움을 누르며,

그녀에게 지배력이 있음을 알리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뭔가 대답을 듣고 싶다면, 욕설은 그만두세요. 공손한 태도를 취해 줘요. 명령은 하

지 말아요! 명령권이 있다면 저한테 있어요, 아시겠어요? 당신은 내 보호하에 있단 말이에요

. 당신같이 비열한 사람한테 내가 도움을 주었다니 후회 막심이에요. 그리고 절대, 절대로

터무니없이 무례한 태도와 욕설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자, 제가 나갈까요? 아니면 제 말에

동의하시겠어요?"

그의 턱에서 한 번 경련이 일었다. 그리고 그녀를 올려보고 속삭였다.

"대단하군!"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와요. 내 성질을 죽이도록 노력해 보겠소."

"선생님, 노력보다는 그렇게 하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애비게일은 매섭게 그의 말을 받았다. 부드러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깍듯한 예의를 갖춘 말로 그가 응수했다.

"그 정도면 만족스럽군요. 양칫물을 가지고 왔어요. 양치를 하고 나면 내일쯤 목이 훨씬 나

아질 거예요."

그러나 흔쾌한 말과 달리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듯, 그녀는 그의 곁에 다가서길 주저했다.

거칠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윙크를 한다면, 그녀는 오히려 뒤로 물러설 것 같았다. 그

래서 그는 윙크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레 그녀가 다가왔다.

"자, 입 안을 헹구세요. 마시진 말아요."

그녀는 물을 마시기 쉽게 입가에 가져갔다. 그는 반쯤 입 안에 물을 머금었다가 벌컥 다시

뱉었다.

"윽, 무슨 맛이 이래! 이거 오줌 아냐?"

"캐머런 씨!"

고스란히 물벼락을 맞은 애비게일은 한 발짝 물러서며 날카롭게 외쳤다.

그녀에게 물을 뿜어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분고분 행동해서 그녀의 대답을 끌어내야 했는

데, 지금 이 행동은 자기 발부리를 스스로 밟는 꼴이었다.

"미안하오."

그녀가 듣기엔 성의 없는 사과였다.

얼마 동안 그녀는 화를 삭이는 것 같았다. 그녀가 무뚝뚝하게 그릇을 다시 내밀자, 그는 얼

굴을 찡그리며 그릇 속의 물을 들이켰다. 그가 목 안을 헹구는 동안 애비게일이 설명해 주었

다.

"식초와 소금, 매운 후추를 넣은 저희 할머니의 처치법이에요."

이번엔 그가 그릇을 뿌리쳤다.

"헹궈요!"

전제 군주처럼 오만하게 명령하며 그녀가 그릇을 들이밀었다. 그는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지

만 결국 다시 입 안을 행궜다. 속에 뭔가를 더 섞은 것 같았다.

"도대체 내 목이 어떻게 된 거요?"

그는 제대로 목소리를 못 내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는 슬며시 죄책감이 들었다. 사실 그녀가 부들풀로 만든 대롱을 그의 목 안에 집어넣으

려고 해서 상처가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를 살리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말했잖아요. 당신이 의식을 잃은 동안 이물질이 생긴 거라고요.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예요.

버룻없는 행동을 알아서 스스로 자제해 준 점에 대해선 고맙게 생각해요."

"총에 맞은 데다가…… 질식해서 죽을 위험까지 있는데, 어떤 남자가 악담을 퍼붓지 않겠소?

그리고 이 손은 왜 이렇소?"

"총 잡는 손요?"

그가 저지른 중죄를 상기시키며, 그녀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는 이마에 주름이 질 정도로 얼굴을 험악하게 찡그렸다.

"난투극 속에서 누군가에게 얻어맞을 때 부츠 뒷굽에 밟힌것 같군요."

"지독하게 아프군."

"네, 그렇게 보이는군요. 하지만 열차를 강탈하려다 얻은 상처잖아요. 자업자득이죠."

"씨팔, 난 열차 강도가 아니오!"

그가 격렬한 어조로 속삭였다.

장롱으로 가 옷을 꺼내는 그녀의 등이 대꼬챙이처럼 빳빳하게 굳었다. 애비게일에게는 그의

상처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보다 쉽사리 내뱉는 그의 험한 말이 훨씬 견디기 힘들었다. 하

지만 그의 입에서 교양 있는 말이 나오게 하는 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아, 이 무례한

사람을 따끔하게 만들 말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멜처 씨가 위층에 누워 계세요. 당신 때문에 다쳤지요. 그래서 당신을 상대로 법원

에 피해 배상을 청구할지도 모르겠군요."

"멜처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요?"

"당신이 쏜 사람이에요. 그 사람도 당신을 봤고요."

"뭐라고!"

"두 사람은 열차로 여기 스튜어트 정크션에 운반되었어요. 당신이 RMR 열차를 강탈하려는 걸

목격한 승객이 수십 명은 될 거예요. 멜처 씨가 당신을 제지하려고 그랬다는군요. 그리고

난투를 벌이다가 두 사람은 서로를 쏜 거예요."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음성은 너무나 확신에 차 있었다. 그 말을 들으니,

이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아낸 셈이었다.

"그러면 여기가 스튜어트 정크션이오?"

"네."

"그리고 난 악당이고?"

"물론요."

그녀는 거만하게 고개까지 끄덕였다.

"그리고 그 멜처 씨는 이 마을의 영웅이겠군."

너무나 당연한 말인지 그녀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를 돌보는 영광을 차지한 거요, 애비게일 양?"

그녀는 비꼬는 그의 말투를 알아채지 못하고 대답했다.

"자원했어요. 그리고 RMR 회사에서 보수를 지불한다고 했고요. 저도 마침 돈이 필요하거든요

."

"RMR에서 당신한테 돈을 준다고요?"

"네, 맞아요."

"이 마을엔 의사도 없소?"

"도허티 선생님이 계세요. 내일 볼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오시지 않은 걸 보니, 아마 마을

밖으로 왕진을 가셨나 봐요. 더 궁금한 게 있으면 그분께 여쭤 보세요. 무척 피곤하군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캐머런 씨."

그의 질문을 가차없이 자르며, 그녀는 기린처럼 머리를 들고 기운차게 나갔다. 그는 또 다시

미칠 지경이 되었다. 저렇게 차가운 여자는 처음 보았다. 그 냉정함이 그의 울화통을 박박

긁어 댔다. 게다가 그 뻣뻣함까지. 안녕히 주무세요, 캐머런씨! 쳇! 난 캐머런이 아니라고.

내 이름조차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군. 환자가 고통을 느끼는 걸 고소해 하며, 점잔 빼는 몸

짓으로 이것저것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명령이나 하고. 하, 굽히지 못할 정도로 단단하게 코

르셋을 조일수록 품위까지 생기는 줄 아나?

저 여자와 멜처라는 사람이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저 여자가 만든 야릇한 주스-아까의 그

양칫물-를 멜처가 마실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벌거벗은 자기 엉덩이를 내려다보았다. 알

몸으로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보고 저 여자가 어떻게 반응했을까? 상처가 심하지 않

았다면 그는 몸을 흔들며 크게 웃었을 것이다. 아니지, 저 여자는 냉혈 동물이라고. 그리고

다시 그녀가 어떻게 이 상처를 치료했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어두워졌다.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에서 옷을 갈아입겠지. 그는 혹시

나 코르셋을 벗는 소리가 들릴까 귀를 기울였다.

이 집엔 당연히 남는 침실이 있었다. 그러나 애비게일은 선뜻2층 침실로 올라가기가 어려웠

다. 그 침실은 멜처의 방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데이비드 멜처 사이에는 어느

정도 친밀함이 생겨나 있었다. 그곳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느니, 차라리 2층에서 먼

여기 긴 의자에서 잠을 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캐머런 씨가 두려웠

으나, 그는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였다. 너무 피곤했다. 그가 죽든 살든 지금은 간호 시중을

멈추고 잠만 잘 생각이었다.

*   *   *

잠이 깬 애비게일은 으스스 몸을 떨며 뻑뻑한 목을 움직였다. 뭔가가 그녀를 깨웠다. 아직

한밤중이었다. 창문 밖에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이슬을 머금은

밤의 냉기가 느껴졌다.

"애비게일 양."

거친 속삭임 속에 그녀 이름이 실려 나왔다. 그가 부르는 소리였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잠옷

에 채워진 단추를 확인했다.

"애비게일 양?"

그가 다시 작은 소리로 불렀다. 애비게일은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램프도 없이 방으로 들

어갔다. 방 안이 어두웠지만 그녀는 익숙하게 침대로 걸어갔다.

"애비게일 양?"

그의 거친 음성이 약해져 있었다.

"네, 저 여기 있어요, 캐머런 씨."

"무척, 무척 아프오. 도와 줄 수 있소?"

"살펴볼게요."

거짓으로 꾸미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녀는 재빨리 램프를 가지고 와서 눈을 감은 그를 살펴

보았다. 발로 차 버렸는지 덮여있던 시트가 그의 다리 옆에 구겨져 있었다. 붕대를 풀고 붙

여놓았던 약초를 떼어 보았다.

"오, 하느님."

찌르는 듯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구멍 뚫린 상처 주변이 지저분한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상처가 곪는 격한 냄새가 풍겼다.

"도허티 선생님을 모셔 올게요."

그녀는 목이 메는 소리로 외치고는 서둘러 달려나갔다.

항상 고상하고 까다로웠던 애비게일 매켄지 양이 맨발로 거리를 달렸다. 이슬에 잠옷이 촉촉

히 젖어들었고 그녀의 부드러운 발은 몇 번이나 자갈에 미끄러졌다. 바람에 머리가 풀어져

나부꼈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허티 의사의 집 문을 쾅쾅 두드렸지만 아무런 기척

이 없었다. 오늘 밤엔 환자를 보러 들르지도 않았다. 틀림없이 선생님은 아픈 말과 함께 마

굿간에서 자거나, 수마일 밖에서 아이를 받고 있을 것이다. 다시 집으로 달려가면서 애비게

일은 멍청한 자신을 욕하며 기도했다. 이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허티 의사에게 물어

놓지도 않았다.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절대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남자 때문에 너무 화가 나 새로 처치가 필요한지 상처

를 살펴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그렇게 방치해서는 안 되었다.

-분노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숨어 있는 것이란다.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을 이제야 정확히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잠옷을 무릎 위로 들어 올리며 현관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그의

침대 옆에 섰다. 그는 눈을 감은채 식은땀을 흘렸다. 호흡이 너무 약했다. 그에 대한 분노나

두려움은 깨끗이 잊어지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이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

에 없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침대 밑에 넣어 둔 책을 찾았다. 할아버지 시대에 대형 마차

를 타고 대초원을 횡단할 때 썼던 처방책이 적힌 책이었다. 사람과 동물을 위한 치료법이 함

께 적혀 있었다. 그녀는 결사적으로 그 책을 넘겼다.

애비게일이 미친 듯이 책장을 넘길 때 그가 불편한 듯 움직였다.

"의사는 어디 있소?"

거친 속삭임에 그녀는 날듯이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쉬."

그녀는 그를 토닥여 안심시키고는, 계속 책을 뒤적이다 드디어 처치법을 찾아냈다. 그녀는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비틀거리며 문으로 걸어나갔다.

"숯과 누룩, 숯과 누룩."

그녀는 기도를 하듯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잠자듯 미동도 하지 않던 그에게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땡그렁하고 난로 뚜껑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야!"

그는 웃음 지었다. 그렇게 조심성 많던 여자가 스스로 상처를 내다니. 눈앞이 흐려졌다. 딸

랑딸랑 울리는 소리, 천을 찢는 소리, 물 소리가 났다. 한아름 뭔가를 든 채 나타난 그녀의

모습이 뿌옇게 보였다. 너무나 반가웠다. 그러나 그녀가 상처를 닦아낼 때는 구세주인 양 반

가웠던 감정과는 정반대였다. 그녀는 통증을 가라앉히기는커녕 더욱 가중시켰다.

"미안해요, 캐머런 씨. 하지만 이렇게 해야 돼요."

그는 자꾸 애비게일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제발 그러지 말아요. 제발요, 당신을 다시 묶어 놓을 시간이 없어요."

그녀가 간청했다.

그는 깊고 짜증나는 듯한 신음 소리를 냈다. 그녀는 한껏 찡그린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그

의 한쪽 손이 시트를 움켜쥐었고, 다른 손은 매트리스를 쳤다. 이윽고 부패해서 쓸모없는 살

을 제거한 그녀는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치료를 하는 그녀는 자신이 아픈 듯 눈물을 글썽이며 상처를 소독했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

했다.

"다 되어 가요, 캐머런 씨."

그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힘이 없어진 그의 손이 자신의 잠옷

앞섶을 잡게 가만히 놔 두었다. 그는 그녀의 잠옷을 움켜쥔 자기 손을 입 쪽으로 잡아당겼

다.

"내 이름은 캐머런이 아니오, 제시요."

"제시라고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망각의 강으로 빠져 들었다. 그의 손이 떨어지고 그의 입술은 여전히 그녀

가까이에 있었다.

그가 죽도록 놔 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따스하고 축축한 누룩을 숯과 섞으며 이 혼합물이

그를 살리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번엔 자신의 고집과 부주의로 사람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자신을 어떻게 대했든, 생명 앞에서는 모든 게 무의미했다. 그

가 살아날 것이라고 그녀는 고집스럽게 되뇌었다.

다시 어젯밤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행동하기 전에 지금 이 공포감을 먼저 상기할 것

이다.

책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따스하게 고약을 만들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두 개를 만

들어 부엌으로 가서 다시 데웠다.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밖에서 나무를 더 많이 가지고 왔

다. 그러나고약은 여전히 빨리 식었다. 그 위에 겨자를 섞었다. 그녀가 아는, 온기를 지속시

키는 방법이라곤 이것뿐이었다 그래도 고약을 자주 갈아 주어야 했다. 상처에 붙여 놓는 것

보다 그녀가 손으로 받치는 것이 더 나았다. 그는 발작하듯 고약을 뿌리치려 하거나 거칠게

몸부림을 쳤다. 그녀는 부엌과 침실을 수십 번 오갔다.

그의 신음 소리가 다시 들리자, 부엌에서 고약을 데우던 그녀는 방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

녀는 젖은 수건으로 그의 입술을 적셔 주고는, 물도 몇 방을 입 안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삼킬 수 있게 목을 부드럽게 문질러 주었다. 때때로 병을 이겨낼 수 있게 그의 새로운

이름, 제시를 불러 주기도 했다.

"이봐요, 제시. 제발 날 좀 도와 줘요."

그녀가 단호하게 속삭였다.

그에게는 이 말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제시, 지금 죽으면 안 돼요. 지금 가기엔 너무 일러요."

그는 헛소리를 하며 몸을 뒤척였다. 그러면 그녀는 그가 똑바로 눕게 온 힘을 기울여야 했다

긴박해진 그녀가 외쳤다.

"제시, 힘내요. 당신이 싸움꾼인 줄 다 알아요. 제발 이겨 내요."

그러나 그녀 자신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뭘 말하는지, 그가 누구인지, 자신이 누구인

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점점 희미해졌다.

이윽고 그녀도 저 깊은 무의식의 나락으로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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