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를 들은 에비는 출입구 쪽 의자에 불안하게 매달려 있는 조그만 아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자, 아빠가 오셨다."
속삭이는 그녀의 말에 아이의 커다란 눈이 기쁨으로 동그래졌다. 그녀는 아이를 품에 안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제했다. 때때로 용솟음치는 사랑의 감정이 너무 강해서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로버트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을 본 그의 초록빛 눈에 형용하기 어려운 빛이 돌았다. 기쁜 탄성을 지르며 아이는 의자를 놓고 뒤뚱뒤뚱 로버트에게 뛰어들었고 곧 넘어질 듯 불안해 보였다. 창백하게 질린 로버트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바닥에 툭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아이를 품에 안았다.
"오, 이런."
충격을 받은 듯 그가 말했다.
"내 딸이 걸어!"
"걷기 시작한 지 막 두 시간 됐어요."
엔젤이 자기 아버지의 실크 넥타이를 오동통한 손으로 붙들고 옹알거리는 것을 보고 에비가 웃으면서 말했다.
"비틀거리며 마루 위를 걷는 걸 볼 때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아요."
"걷기엔 아직 어리지 않아? 이제 겨우 7개월 된 아기인데."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진 못한 그는 솜털처럼 부드러운 검은 머리털로 뒤덮인 딸을 내려다보았다. 5개월 무렵 엔젤이 기기 시작했을 때도 충격을 받았었다. 가능하면 사랑스러운 어린 딸이 다섯 살이 되어도 자신의 품안에 있었으면 싶었다. 물론 엔젤은 자신의 용감한 행동을 볼 때마다 느끼는 아빠의 공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기를 안은 채 그는 에비를 껴안고 긴 키스를 했다. 아기가 손가락으로 그들의 입술 사이를 찌르며 방해해도 그들의 키스는 열렬했다. 그들은 아기의 이름을 제니퍼 엔젤리나라고 지었지만 아직은 그냥 자연스럽게 엔젤이라고 불렀다. 잠을 자고 있을 때는 정말 천사였다. 하지만 깨어 있을 때는 겁이라곤 전혀 없는 꼬마 악마였다.
에비는 그의 입술에 매달려 키스하면서 손으론 그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하루 종일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그녀는 사실 조금 흥분하고 놀란 상태였다.
"당신 말이 맞았어요."
그녀는 자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초록빛 눈을 반짝거리며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맞았다...그래?"
그녀는 웃으면서 그를 꼬집었다.
"그렇다는 것을 잘 알면서."
그들은 둘째를 갖기로 했었다. 임신과 출산 모두 비교적 쉽게 겪었던 에비는 그들이 새로 짓고 있는 집에 두 명의 아기가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3주 전에, 그들은 결혼한 지 1년 4개월이 흘렀는데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뜨거운 정열로 사랑을 나누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성스런 의식을 거행하듯 아침 사랑을 나눌 때 로버트가 졸린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난밤 아기를 만든 것 같아."
초기 임신 진단을 받기도 전에 그녀도 이미 임신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자궁에서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그의 넓은 어깨에 기대며 첫 임신으로 겪어야 했던 공포의 순간을 떠올렸다. 로버트를 사랑하는 것도 갖고 있는 모든 용기를 다 끌어내야 했지만, 자신과 로버트의 분신인 새 생명이 생기자 그 아기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상처 입을 것이 두려워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에비의 얼굴을 보고 단번에 그녀의 기분을 눈치챈 로버트는 하루 종일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다. 팰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출근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모든 약속을 취소하게 한 뒤, 무릎 위에 그녀를 안고 그녀를 사랑하면서 하루를 함께 보냈다. 그의 해결책은 어떻게 아기가 생기게 됐나를 상기시킴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습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의 계략은 역시 성공했다.
엔젤은 이제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렸다. 한숨을 쉰 그는 에비를 풀어주고 아기를 바닥에 내려 줬다. 아버지의 손에서 풀려난 아기는 비틀거리는 로켓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에비는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갔고 그들은 함께 소중한 딸이 바닥에 파인 홈을 만지작거리며 노는 것을 지켜봤다.
귓가에 건강하게 고동치는 그의 심장소리에 안심하며 에비는 머리를 그의 가슴에 기댔다. 그는 에비보고 사업 때문에 바쁜 그의 스케줄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자기가 업무 시간을 조정해서 가능한 모든 순간을 에비와 엔젤과 함께 보냈다. 그가 무서울 정도로 강한 집중력을 가진 사람이란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쏟아 부어지는 관심과 강렬한 사랑 속에서 에비는 찬란하게 피어났다. 로버트는 가볍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에비를 사랑하는 일에 걸었다.
그의 손이 에비의 복부로 옮겨가서 안심시키듯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좋소?"
그가 조용히 물었다. 얼굴을 그를 향해 들고 에비는 빛처럼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사랑으로 새로운 힘을 얻은 에비의 얼굴에서 과거의 그늘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떻게 더 좋을 수 있나 싶을 정도예요."
로버트는 그녀에게 키스했고 그들은 친숙하고 달콤한 욕망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에반젤린, 사랑하오!"
그녀를 더 가깝게 끌어안으며 로버트가 말했다. 그녀를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만족스런 것이었다. 그가 옳았다. 에반젤린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전부를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의 영혼과 심장을 주고 그는 에반젤린의 빛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