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그런 밤을 지내고도 어떻게 얼굴에 흔적이 남질 않는 건지? 에비는 일하러 갈 준비를 하면서 생각해 봤다. 피로를 풀어 주는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나서 모든 일에 만능인 로버트가 역시나 멋진 솜씨로 준비해 준 아침식사를 먹고 나자 그는 집에까지 그녀를 바래다주고 아쉬운 키스를 한 다음 일을 보러 갔다. 헌스빌에 일이 있어 나가지만 그녀가 계류장을 닫기 전에 데리러 오든지, 늦게 되면 그녀의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녀는 일상적인 일들을 하려 했지만, 자신의 인생이 모두 뒤집힌 것 같았고 어떤 것도 예전과 똑같지 않았다. 그녀도 달랐다. 새롭게 눈을 뜬 몸이 불편하면서도 다시 그의 것이 되길 열망하는 여자로 변했다. 그와 살을 맞대기 전에는 그 정열이란 것이 그토록 야만스럽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강렬한 것으로, 통증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정도란 것을 결코 알지도 못했고 의심도 안 했다.
그녀는 전보다 더 그를 원했다. 그녀의 본성에 깊이 숨어 있던 관능이 일깨워져 그의 가벼운 손길에도 반응하게 되었다. 그를 생각하면 다리를 들어 그를 감싸고 그녀 안으로 거세게 밀려오는 남성을 받아들이고 길들이려는 욕구로 전신이 욱신거렸다. 따스하고 강한 그의 체취는 그녀를 흥분시켰다. 절정의 순간에 그가 고개를 한껏 뒤로 제치자 목의 울대가 그대로 도드라지며 터진 큰 신음소리가 떠올랐다.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쳐다보며 재빨리 머리를 한 가닥으로 땋았다. 그녀의 눈 밑에는 그늘이 져 있었지만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뭐랄까‥‥‥. 평소의 그녀처럼 보였다. 표정에 변화가 있다면, 눈빛이 변했다고 할까. 전에는 없던 반짝거림이 생겼다.
얼굴은 변한 게 없지만 그녀의 몸에는 사랑의 낙인이 군데군데 표가 났다. 그의 수염이 스쳤던 젖가슴은 핑크색으로 따가웠고 그의 입술로 유린을 받았던 유두는 브래지어에 스칠 때마다 아렸다. 그가 절정의 순간에 거칠게 붙잡았던 엉덩이에도 작은 멍 비슷한 자국이 있었고 허벅지는 뻐근했다. 그리고 깊은 곳은 걸을 때마다 쓰라려서 그의 것이 된 자신의 육체를 새롭게 느끼게 해주었다.
계류장에 도착한 시간은 평소보다 일렀지만 로버트에 대한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이 필요했다. 운이 좋으면 셰리가 버질 할아버지를 일찍 모셔 올지도 모르지.
크레이그는 보트에 가스를 넣고 있었다. 가스 주입을 끝내고 그는 현찰과 영수증을 카운터로 가져와 보관함에 넣었다.
"어,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어제 저녁 즐거운 시간 보내셨어요?"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얼른 표정 관리를 하며 대답했다.
"응, 그랬어. 저녁식사를 하고 춤도 추고 그랬지. 내가 일찍 온 이유는, 저기‥‥‥."
"어, 재밌으셨으면 됐어요. 아줌마가 그 아저씨와 함께 외출하셔서 기뻐요. 이 계류장을 키우느라고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셨으니 이제 좀 즐기실 때도 됐어요"
그는 내려오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조숙하게 말했다.
"시간을 바꿔 줘서 고맙다."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다른 손님이 가스를 주입하러 선착장에 도착했고 크레이그는 뛰어 나갔다. 에비는 아침에 도착한 우편물들을 살펴보며 분류하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상품광고들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영수증들은 나중에 결재하기 위해 한쪽으로 치웠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뉴욕의 한 은행에서 온 편지가 있었다. 신용카드를 신청하라는 편지로 생각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다가 혹시 몰라서 개봉하고 내용물을 꺼냈다.
30초 후,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눈썹을 찡그리며 책상 위에 편지지를 올려놓았다. 아무래도 무슨 착오가 있는 것 같았지만, 자신의 주소와 대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는지는 수수께끼였다. 한번도 거래한 적이 없는 그 은행의 편지는 냉혹할 정도로 간단하게 상환기일의 연체가 잦아서 앞으로 한 달 이내에 대출금 전액을 상환하지 않으면 압류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계류장을 담보로 자신이 대출 받은 금액과 편지에 적힌 금액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면 아예 무시했을 것이다. 정기적인 월부금 상환으로 처음의 대출원금보다 잔액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선지 그녀의 대출 서류가 그쪽 은행으로 흘러 들어갔고, 이 잔인한경고에 따르면 30일 이내에 그녀는 정확하게 1만 5천 2백 72달러를 그 은행에 상환해야 했다.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신속하게 해결해야 했다. 에비는 거래은행에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대출 담당자를 바꿔 달라고 했다. 담당자인 토미 파울러는 사실 그녀의 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내선 연결 신호음이 들리더니 토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비, 안녕? 어떻게 지내?"
"응, 잘 지내. 카렌과 아이들은 어떠니?"
"우리도 잘 지내. 카렌은 아이들이 자기를 미치게 만든다고 불평하지만. 어제도 빨리 방학이 끝나지 않으면 차라리 감옥에 들어가서 평화를 즐기고 싶다고 하던걸."
에비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토미네 아이들은 정말 기운이 남아도는 장난꾸러기들이었다.
"뭘 도와줄까?"
토미가 물었다.
"정말 이상한 편지를 받아서 말이야. 뉴욕의 한 은행에서 내가 계류장을 담보로 융자받은 대출금 전액을 30일 이내에 상환하라는 내용이었어."
"그래? 무슨 일이지? 네 계좌번호 좀 불러 봐,"
"아, 지금 없는데. 은행 관련 서류들은 모두 집에 있어,"
"괜찮아. 그럼 네 이름으로 조회해 보도록 할게. 잠시 기다려."
그녀는 토미가 콧소리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컴퓨터 키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노래를 멈추고 침묵이 흘렀다. 침묵이 너무 길어져서 에비는 그가 자리를 비우고 나갔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다시 키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 침묵이 흘렀다.
그가 수화기를 들고 만지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비, 음‥‥‥."
그의 음성에 유감스러움이 짙게 흘렀다.
"왜? 무슨 일이야?"
"확실히 문제가 있네. 그것도 아주 큰 문제인데. 네 채권이 다른 은행에 팔렸어."
에비는 머리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무슨 뜻이지? 팔리다니?"
"그러니까, 우리 은행에서 채권을 가지고 있는 대출 건 중 몇 건을 판매했다는 얘기야. 흔히 있는 거래 유형이고, 채권 총액이 너무 많을 경우 은행들이 흔히 하는 방법이야. 다른 금융회사에서 구입했나 본데. 기록에 따르면 이 거래는 10일 전에 이뤄졌어."
"10일! 겨우 10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융자금을 상환하라는 소리를 한단 말이야? 토미,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네가 대출 조건들을 잘 이수했으면 그럴 수 없지. 혹시 최근에 대출금 상환을 지체한 적이 있니?"
그녀는 그가 자신의 대출금 상환기록을 앞에 보면서 얘기하고 있음을 잘 알았다. 최근에 몇 번 상환기일을 늦춘 적이 있었다. 그래도 한 달 이상 지체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 좀 늦었어."
그녀는 멍하니 대답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지출이 생겨서 다음주는 되야 상환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그가 답답한 듯 한숨을 쉬는 소리를 들었다.
"그럼 그들은 권리가 있어. 보통은 대출금 전액을 상환 받으려 하기보다는 월 상환금만을 독촉할 테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전화해 봐. 어쩌면 상당히 쉽게 문제를 풀 수도 있을 거야. 에비는 믿을 만한 고객이니까. 하지만 구두로 약속을 받지는 말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서류로 다시 약정하는 거 잊지 말고"
"알았어, 토미. 충고 고마워."
"별말을. 에비, 이렇게 돼서 유감이야. 우리 은행에서 채권을 갖고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알아.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알아봐야겠네."
"도와줄 일이 있으면 전화해."
"고마워."
그녀는 다시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편지지 상단에 있는 전화번호를 누르는 그녀의 심장고동이 빨라졌다.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음성의 소유자가 전화를 받더니 코 먹은 소리로 전화한 이유를 물었다. 에비는 편지지에 사인한 남자의 이름을 말했고,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내선 연결음이 들렸다.
통화 시간은 짧았다. 보로위츠라고 말하는 남자의 음성은 편지의 내용만큼이나 간략하고 인간미가 없어 보였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했고, 사실 도와주고 싶은 의도도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편지지에 쓰여진 대로 대출금 전액을 상환하든지, 아니면 채권자의 권리에 따라 담보물을 압류하겠다는 소리였다.
천천히 전화를 끊고 그녀는 창 밖을 내다봤다. 호수는 보트들로 북적이고 사람들은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계류장은 보트를 청소하는 사람들, 호수로 나가기 위해 출발 선로를 이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가스를 넣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 달 안에 1만 5천 여 달러를 마련하지 못하면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녀는 계류장을 사랑했다. 그녀와 매트는 연인이 되기 전에 먼저 놀이 친구였고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놀았다. 그녀는 선착장에서 몇 시간이고 뛰어 놀았고 이 호수의 냄새를 마음껏 맡으며 자랐다. 계류장의 리듬은 그녀의 심장박동만큼이나 그녀에겐 익숙한 것이었다. 매트가 일할 때 같이 옆에서 도왔고 그가 죽은 후엔 시부모들을 돕느라 거의 모든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들이 그녀에게 계류장을 남겨 주고 죽었을 때 그녀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이곳이 번창하게 만들었다. 그 노력과 정성은 모두 사랑의 산물이었다. 계류장은 그녀의 가족만큼이나 그녀가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돼 주었다.
이곳은 그녀의 왕국이며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더 소중한 집이었다. 이곳을 잃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대출금을 상환할 돈을 마련해야 했다. 명백한 해결책은 집을 담보로 다시 돈을 융자받는 것이었다. 대출금의 전체 금액이야 똑같을 테지만, 계류장을 담보로 융자받은 금액은 갚을 수 있을 것이고 다시 대출기한이 연장될 것이다. 또 다달이 상환해야 하는 월부금의 금액도 적어질 것 같았다. 충격과 공포가 어깨에서 들리자 그녀는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그녀는 다시 토미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문을 구했다. 그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데 동의했다. 상급자로부터 승인 사인을 받아야 하겠지만 문제가 될 이유가 없으므로 승인이 통과되는 대로 전화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한동안 앉아 있었다. 마치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기분이었다. 몸이 떨렸지만 그래도 승리감이 들었다. 계류장을 잃으면‥‥‥. 그녀는 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머리를 들고 창 밖을 내다 본 그녀는 자신의 왕국이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지를 살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계류장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너무 잘돼서 크레이그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왜 그녀가 도와주러 나오지 않나 궁금해 할 터였다. 에비는 환한 미소와 함께 활기차게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로버트는 그날 저녁 7시에 계류장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바빴던 에비는 역시 선착장 옆에서 햇빛에 잔뜩 그은 젊은이들의 보트에 가스를 넣어 주고 있었다. 연인 특유의 예민함으로 에비는 돌아봤고 그가 문 밖에서 그녀를 보고 서 있는 것을 봤다.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금세 갈게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다시 고객을 상대했다.
로버트는 대형 창문으로 카운터 뒤에서 계류장의 풍경을 쳐다봤다. 그는 에비가 대출금 상환 요구 편지를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고, 그녀의 대출금 채권을 사게 만들었던 금융회사에 전화를 해서 지시대로 일을 처리했다는 확인도 받았다. 카운터 위를 살펴보니 여러 우편물 중 맨 위에 그 편지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아마 곤궁에 처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유감스러웠지만 그래도 계획을 추진하기로 결심했다. 머서가 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그녀는 모른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가 이 일에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래서 더욱 재정적인 압박을 가했다. 그녀가 연관이 됐다면 대출금 상환을 위해서 다시 정보를 팔아야 할 테고, 연루가 되지 않았다면 머서를 감옥에 처넣자마자 그녀의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다른 일당들도 다 잡아넣을 것이다. 하지만 에비는 어떻게든 그의 것이었다.
그날 아침 이후, 그는 몇 번이나 죄가 있더라도 그녀를 감옥에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놀랐다. 이 문제는 조국의 안위가 관련된 문제였고 그의 조국에 대한 충성은 진심이었다. 그는 몇 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조국을 위해 협조했다. 에비가 조국을 배신했다면 그녀는 감옥에 가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녀를 감옥에 보낼 수는 없었다. 그녀가 검찰에 회부되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까맣게 그을린 남자들 한 무리가 나타났고 그 젊은이들은 거의가 이십대로 보였다. 그들은 천천히 에비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로버트는 창 밖의 광경에 인상을 썼지만 그들을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였다 해도 저렇게 멋진 몸매의 아름다운 여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마다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는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서 읽었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으므로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사실을 확인하려는 그의 정확한 성격에서였다. 재빨리 그는 내용을 읽었고, 만족했다. 그는 여백에 쓰인 에비의 메모를 봤다.
그녀는 '토미 파울러'라는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전화번호를 적어놨다. 또 그 아래에 '집을 저당 잡힐 것'이라고 쓰고 동그라미를 쳐 놨다.
그의 입술에 미소가 걸렸다. 확실히 현실적이고 영리한 여자였다. 안도감이 넘쳤다. 나사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누출하는 일에 진짜로 연루되었다면 그녀는 융자금을 갚기 위해 집을 저당 잡히는 것 같은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다른 판매 선을 구하려 했을 것이다. 그의 경험으로 볼 때 범죄자들은 절대 정직한 방법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것을 갈취해서 먹고사는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므로 다시 훔치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로버트는 다시 편지를 봉투에 넣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이 계획을 추진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철저하게 해야 했다. 그는 물론 집의 저당을 봉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에비야 죽도록 걱정하겠지만 나중에 다 보상할 것이다.
그는 의자에 앉아 그녀가 네 명의 남자들을 보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가 처음 그녀를 봤을 때처럼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 머리는 한 가닥으로 땋고 있었다. 그는 욕망으로 온몸이 짜릿했다. 에비의 옷 아래에 숨겨진 그 황홀한 피부의 감촉과 완벽한 몸매를 알고 그녀 안에서 뜨겁게 꼭 조여지는 느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욕망으로 몸이 떨렸고 그의 활활 타는 눈빛은 선착장을 가로질러 사무실로 다가오는 그녀에게 고정됐다. 그는 이제 그녀가 절정의 순간에 내지르는 소리와 어떻게 그에게 매달리며 경련을 일으키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맛과 체취를 알게 된 그는 다시 그 모든 것을 갖고 싶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와 그를 보더니 갑자기 멈춰 섰다. 흥분한 그를 보고 그녀도 같은 떨림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생각한 것보다 더욱 예민하게 그의 주파수에 맞춰져 있었다.
"이리 오시오."
그는 조용히 말했고,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그에게 뛰어들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그녀를 자신의 허벅지 사이에 끼웠다. 그녀의 팔이 그의 어깨에 감기고 그는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너무나 그녀를 갖고 싶었으므로 거세게 입술을 삼키듯 키스했다. 에비는 그의 심장을 멈추게 할 정도의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움직임으로 엉덩이를 돌리며 그를 자극했다. 그녀에게 키스하는 것도 중독인 것 같았다. 머서 따위나 컴퓨터 프로그램, 그리고 그녀가 관련됐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모든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가 있는 곳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키스는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오늘 더 사랑을 나누기에 그녀는 너무 쓰라릴 것이다. 그는 마지못해서 그녀의 입술에서 입을 떼고 이마와 턱의 곡선을 따라 키스했다. 아직 조금 더 자신을 억제해야 했다.
"오늘 하루 어땠소?"
그는 은행 대출 건에 대해서 그녀가 이야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정말 바빴어요"
그녀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대며 대답했다.
"당신은 어땠어요?"
"지루했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었소"
거짓말이었다. 어떤 조그만 일도 그는 지루해 했던 적이 없었다.
"당신이 오늘 여기 있었으면 했어요. 그랬더라면 당신한테도 일을 시켰을 텐데. 보트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강으로 나온 것처럼 붐볐어요."
그녀는 그의 어깨 너머로 창 밖을 보며 말했다.
"또 손님이 왔네요"
그녀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며 말했다.
이번 손님들은 가스를 넣을 손님들이 아닌지 사무실 안으로 떼지어 들어와 스낵과 음료수를 찾았다. 햇빛 아래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는지 그들에게선 선탠 오일 냄새가 났다. 실내로 들어오자 그들은 에어컨이 틀어진 시원한 곳을 나서기 싫은지 이쪽저쪽 다니며 낚시장비들을 살펴봤다. 에비는 그들을 재촉하려 하지 않고 친근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그녀 나이 또래로, 오늘 하루 호수에 놀이를 나온 사람들이었다. 아이들로부터 해방되어 하루를 즐기는 것이 얼마나 천국 같은지 얘기했고, 한동안 그들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삼았다. 그리고 좀더 있다가 친근한 인사를 하고 나갔다.
"마침내 둘만이 됐군."
로버트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어쨌든 문 닫을 시간이오."
"정말 잘됐네요."
에비는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다가 도중에 몸을 움찔거렸고, 곧바로 감추려 했지만 조금 늦었다.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자제력을 되찾아야 했다.
그는 그녀가 문단속하는 것을 도운 뒤,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러 가는 동안 에비를 먼저 집으로 보냈다. 그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시원한 잔교 쪽 베란다에 나가서 밤바람을 맞았다. 곧 에비는 지난밤 거의 자지 못한 여파로 졸음이 몰려왔고 그녀가 세 번째 하품을 하자 그는 일어서 손을 내밀었다.
"자, 잠꾸러기, 침대로 갑시다."
그녀는 그의 손에 손을 맡기고 일어섰다. 그는 침실로 그녀를 데려가서 천천히 그녀의 옷을 벗겨 주었다.
"로버트, 기다려요."
그녀는 망설이며 그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끌려 했다.
"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알고 있소"
그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
"당신이 회복될 만큼 시간을 준다고 말했잖소. 함께 자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잠을 잔다는 건 말 그대로 잠을 자는 거요"
그녀는 그의 품에서 긴장을 풀고 누웠고 그는 두 사람의 옷을 모두 벗겼다. 집 안이 매우 덥게 느껴졌지만 맨살로 침대에 누워 있으니 더위는 참을 만했고 그도 곧 졸음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나란히 몸을 겹치고 누워 그녀의 엉덩이가 그의 단단한 허벅지에 와 닿고 그의 손은 그녀의 젖가슴에 감기게 했다.
그는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녀는 이미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가 고르고 일정했다. 에비가 한 번도 진정한 의미로는 매트의 아내였던 적이 없는 것을 안 순간 그는 이 집에서 자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없어졌다. 물론 침대가 더 크니까 자신의 집이 더 편했지만 에비가 이곳에서 편한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사설정보원들에게 이곳에 있겠다고 얘기했고 에비가 지난밤 그와 함께 했다는 것도 알려줬다.
은행 대출금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말할 기회를 주었지만 에비는 아예 그 말은 하지 않았다. 트럭의 모터가 타버린 것도 말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의 문제는 혼자 해결하고 그에게 기대지 않았다. 개방적이고 친근한 성격의 소유자론 드물게 에비는 혼자서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 자립형이었다. 그녀가 도움을 요청했어도 거절했어야 했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자신에게 문제를 상의해 주길 바랐다. 기쁨뿐만 아니라 문제도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기를 원했다. 그들이 결혼하면 그는 그녀의 어떤 조그만 문제라도 다 알고 말 것이다.
그 순간까지 그는 미래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진 않았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에비를 원하는 것처럼 다른 여자를 원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까 의심이 갔다. 이 문제가 다 해결되면 그녀를 뉴욕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는 에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전통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결혼의 영속성을 원할 테고 그는 그녀와 결혼할 것이다. 다른 여자들도 그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난생 처음 그는 결혼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졌던 다른 연인들과는 달리 에비와 함께라면 지겨움을 느낄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에비가 다른 남자와 결혼할 가능성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자유를 잃는 것에 대한 후회도 없었다. 그녀를 실크 드레스와 값비싼 보석들로 치장시키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들어 앉히는 것을‥‥‥. 아니, 그의 무릎에 앉히는 것을 상상했고, 무엇보다 그녀가 지불해야 할 영수증 걱정을 하지 않게 하고 1주일 내내 일하지 않아도 되게 할 작정이었다. 그녀는 중고 냉장고나 덜컹거리는 고물 트럭을 타고 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생기는 눈가의 검은 그늘도 사라질 것이다. 출장 갈 때는 그녀를 데리고 가서 파리, 런던, 로마의 도시를 함께 관광하고 몬태나의 목장에서 함께 휴가를 보낼 것이다. 매들린은 그가 마침내 잡혔다고 놀리겠지만 에비를 좋아할 것이다. 그 황홀한 관능미에도 불구하고 에비는 여자들이 초면에 싫어할 타입이 아니었다. 친절하고 사교적인데다 예의도 바르고, 게다가 자신의 용모를 거의 의식하지 않았다. 에비보다 훨씬 미모가 덜한 여자들이 허영과 자만에 넘친 경우도 많이 봤다.
한 달, 아니 더 빨리 모든 일들을 해결하고 그들은 뉴욕으로 가게될 것이다. 그는 그녀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상상을 하면서 즐겁게 잠으로 빠져들었다.
평소처럼 에비는 새벽에 깨어났다. 에어컨이 없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로버트가 시트를 차낸 듯 그들은 맨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래도 그의 열기로 그녀는 따뜻했다. 그의 무거운 팔은 그녀의 엉덩이에 걸쳐 있었고 그의 숨결로 뒷목덜미가 간지러웠다.
그녀는 이틀 연속으로 그의 품에서 잠을 자다 보니 그가 없으면 고독을 어떻게 참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녀는 그의 품에서 빠져 나와 한쪽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고 옆으로 누웠다. 그는 즉시 깨어났다.
"무슨 일이오?"
질문과 함께 금세라도 공격할 준비를 하듯 그의 근육이 긴장하고 눈빛엔 두려울 정도로 위험한 빛이 돌았다.
재빨리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 그를 안심시켜 주었다.
"아뇨, 그냥 당신을 지켜보고 싶었어요."
그제야 그는 긴장을 풀고 베개에 머리를 눕혔다. 그의 올리브빛 검은 피부가 하얀 시트에 대비되었다. 검은머리는 헝클어졌고 그의 턱은 돋아난 수염으로 거뭇거뭇했다. 세련된 옷차림과 매무새로 가려지지 않은 그의 본성이 드러나 넘칠 정도로 강력한 남성미에 그녀는 매혹되었다. 강철처럼 단단한 벌거벗은 몸 그대로 누워 있는 그는 편안해 보였고 여러 해의 전쟁을 거쳐 숙련되고 근육이 발달한 전쟁 용사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손을 댔고, 그는 조용히 누워 그녀가 하는 일에 만족해 실눈을 뜨고 그녀를 봤다. 그녀는 사랑을 속삭이진 않았다. 그 사실을 되풀이 말해 그를 궁지에 몰아넣을 생각은 없었다. 대신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아는 데 집중했다. 태어나서 18년 간을 매트에 대해서 아는 데 보냈고,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만 같이 있을 수 있는 로버트에 대해 일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위로 몸을 구부리고 긴 머리를 그의 가슴과 어깨에 떨어뜨린 채 아래로 부드러운 키스를 하며 내려갔다. 아침에 일어난 그에게선 따뜻하고 달콤한 냄새가 난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가슴에 난 검은 털은 마치 고양이처럼 볼을 비비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로버트는 근육을 조여 오는 욕망에 몸이 움찔거렸지만 그녀의 애무를 더 받고 싶은 생각에 억지로 긴장을 풀었다.
"총애하는 애첩의 애무를 받는 술탄의 표정이 꼭 그랬을 것 같아요."
그녀가 그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마도."
그는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에반젤린, 당신은 정말 나를 미치게 만드는군"
그녀는 꿈처럼 달콤한 탐험을 계속해 그의 복부를 지나 허리로, 그리고 이른 새벽 우뚝 선 그의 남성 주위를 돌다가 마침내 허벅지로 내려갔다. 왼쪽 허벅지에 새겨진 그림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갔고 그것이 막 날아오르는 독수리혹은 불새를 새긴 문신임을 알았다. 겨우 2센티미터도 안 되게 작았지만 아주 미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놀랐다. 디자인 때문이 아니라 그런 것이 그의 몸에 새겨져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 윤곽을 따라 그렸고 그가 문신을 새긴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로버트는 문신 따위를 새길 남자가 아니었다. 지나칠 정도로 세련되고 단정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 완벽한 세련 속에 야성이 존재했고 아마도 그 부분이 문신이 속한 부분일 것이다. 보이는 것과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인정한 유일한 표시였을까?
"얼마나 오래된 거예요?"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는 그녀가 당황할 정도의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꽤 오래됐소."
정확한 대답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그녀가 들을 수 있는 대답의 전부임을 알았다. 천천히 그녀는 몸을 앞으로 숙여 문신을 혀로 핥았다. 그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남자의 정체를 알려주는 실마리인 문신을 부드럽게 혀로 애무했다.
낮게 울리는 거친 신음이 그의 목에서 터져 나왔고 그의 근육이 뻣뻣해졌다.
"나를 원해요?"
그녀는 속삭이며 다시 그를 혀로 핥았다. 자신의 여성스러운 힘의 위력에 취한 그녀에게서는 어느새 열기가 피어올랐다. 욕망이 그녀 내부에서 활활 타올라 그녀를 꽃처럼 피어나게 했다. 그녀는 욱신거리는 젖가슴을 천천히 그의 다리에 문질렀다.
그는 숨이 넘어갈 듯 웃으면서 그녀의 자연스러운 관능미에 넋이 나갈 뻔했다.
"오른쪽으로 10센티미터만 더 올라가서 상황을 보고 내게 당신 의견을 알려주시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잔뜩 성이 난 채 우뚝 서 있는 그의 남성을 감상하듯 쳐다봤다.
"음, 그런 것 같군요"
"당신 느낌은?"
에비는 그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욕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 느낌은‥‥‥. 기꺼이."
그녀는 그르렁대는 고양이소리를 내면서 그의 몸을 기어올라가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몸을 굴려 그녀를 깔고 올라탄 그의 얼굴은 흥분해서 피가 잔뜩 몰려 있었다.
"조심할 거요"
그는 거친 속삭임으로 약속했다.
그녀는 수염 때문에 까칠한 그의 턱을 만지며 허벅지를 벌려 그를 감쌌다. 그가 천천히 그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마음을 눈에 담고 속삭였다.
"당신을 믿어요."
그녀는 자신의 마음과 함께 몸을 모두 그에게 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