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사랑 에반젤린-7화 (7/19)

7장

오늘은 에비를 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유사이래 영원히 계속돼온 이 여자, 남자의 유혹 게임에 있어서 그는 전문가였다. 끈질긴 데이트 신청으로 그녀는 그가 오늘도 전화를 하거나 계류장에 들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연락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중심을 잃고 방어벽이 약화될 것이다. 이 유혹 게임은 여러 면에서 체스와 비슷하므로 상대편이 추측하지 못할 수를 쓰는 사람이 게임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었다.

그는 주도권을 쥘 것이다. 연애 게임에 대한 그의 본능은 대적할 대상이 없었다. 그녀를 유혹하는 데 몇 주가 걸릴지 라도 결국 에비는 그와 한 침대를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파워넷과 관련한 혼란을 처리하고 난 뒤 머서와 에비는 체포되고, 그는 홀가분하게 뉴욕으로 돌아갈 것이다.

빌어먹을‥‥

바로 그게 문제였다. 에비가 감옥에 갇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곳에 내려올 때는 격분한 상태여서 그녀와 그녀의 애인 녀석을 모두 감방에 처넣겠다고 단단히 결심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녀를 품에 안고 머리가 아찔해지는 달콤한 키스를 맛보기 전이었다. 그건 그 아름다운 담갈색 눈에 그림자처럼 깔린 슬픔의 잔영을 보기 전에 한 생각이고, 이제는 그 슬픔이 더 깊어지게 만들지는 않아야겠다고 고민하는 남자가 되었다.

정말 죄가 있기는 한 건지? 처음에는 분명히 죄가 있다고 믿었다. 그녀를 알고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범죄를 저지르다 보면 흔적이 남아 눈빛이 유난히 냉혹하다든지, 양심이 없다든지,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인격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봐 왔지만 에비에게선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가 얼었다. 더구나 간첩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조국을 배반한다는 점에서 가장 냉혹한 인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에비에게선 냉혹함은커녕 따뜻한 감정이 넘쳐흘렀다.

제이슨을 구하려고 강으로 뛰어드는 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그녀였다. 행위 자체로 볼 때는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낮선 사람이라도 같은 일을 할 테고, 핏줄이니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강바닥에서 소년을 구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시간을 머물렀다. 그의 도움이 없었으면 그녀가 수면 밖으로 떠오르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제이슨을 구하지 못했다면 에비가 자신의 목숨을 포기했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뱃속 깊이 한기가 도는 것 같았다.

컴퓨터로 업무를 보기 위해 실내로 들어왔지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런 한기를 가시게 해줄 햇볕을 쐬기 위해 잔교 베란다로 나갔다.

깊이가 있는 사람만이 그런 회생이 가능하다.

그는 잔교의 난간을 붙잡고 강물을 쳐다보았다. 강물은 초록빛이라기보다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빛을 반사한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산들바람조차 불지 않는 날씨여서 수면은 잔잔했다. 강가의 둑에 부딪혀 나는 파도소리에 그의 마음이 끌려가는 것 같았다. 생명체의 근원인 바다. 사람들은 그 오랜 생명의 기원을 파도소리에서 느끼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평화롭게 보이는 강물이 에비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다.

다시 한기가 들자 그는 몸을 떨었다. 그렇게 화가 나거나 또 겁이 난 적을 기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두려움과 분노라는 감정을 표면에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내부 깊은 곳에서 그것들이 들끓어 올랐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생긴 분노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에비와 얽힌 운명에 대한 마음속 깊은 곳의 원초적인 분노였다. 에비를 고발해마 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을까? 그는 코웃음을 쳤다. 그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사실 그녀를 껴안고 사랑을 나누지 못할 것에 대해 화를 냈던 것이다. 그녀를 갖지 못하고 지내게 될 수많은 날들에 대해서.

에비가 진정 조국을 배신할 만한 사람인지, 그는 자신이 가진 정보에 대해서 의심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우유부단함은 로버트의 평소 성격과 거리가 멀었고, 이번 일에 대해 그는 점점 참을성이 없어졌다. 에비의 죄에 대한 확증이 없다는 의심만으로 계획을 변경할 수는 없었다. 죄가 없다면 그녀에겐 피해가 없을 것이다.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약간 불편한 순간은 겪겠고 걱정이야 하겠지만 결국 그녀는 무사할 것이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정오가 약간 지난 시간이었다. 지금쯤 계류장에 있을 것이다. 그녀를 감시하게 한 사설정보원에게서 보고가 올 때가 되기도 했다.

때를 맞춘 것처럼 전화가 울렸고, 그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녀는 오늘 아침 헌스빌로 외출했습니다."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간 곳은 사무실 빌딩이었습니다. 그녀와 같이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에 문이 닫혀서 간 곳은 알 수 없었지만 아래층 로비로 돌아올 때까지 한 시간 23분이 걸렸습니다. 그 다음 곧장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계류장으로 갔습니다. 머서는 그 동안 파워넷의 사무실에서 근무 중이었으며, 전화 통화를 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전혀 연락한 적이 없습니다."

"그 사무실 빌딩의 임차인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오?"

"리스트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두 개의 보험회사, 한 개의 부동산 사무실, 네 명의 의사, 네 명의 변호사, 세 명의 치과의사, 그리고 임시 사무소 한 개와 두 개의 컴퓨터 프로그램 회사가 있었습니다."

로버트는 속으로 욕이 나왔다. 그는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녀가 간 곳을 파악하시오 두 개의 프로그램 회사를 먼저 조사하도록 하고"

"예, 잘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면서 그는 욕을 지껄였다. 왜 쇼핑을 하거나 은행 업무를 보거나 하지 않았을까?

그는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녀의 이가 부딪치도록 마구 흔들어 주고 싶었다.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그녀를 가둬두고 완전히 항복을 할 때까지 그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이런 감정들은 그에겐 생소한 것이었지만 그 감정들이 생겼음을 부정할 순 없었다. 다른 여자들은 불가능했던 방법으로 그녀는 그에게 이상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화도 나고 답답해진 그는 한바탕 욕설을 지껄이면서 충동대로 행동했다.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지프차에 올라탔다. 빌어먹게도 그녀가 보고 싶었고, 그래서 보러 가야만 했다.

오늘 버질은 다시 계류장을 방문중이었다. 무릎이 많이 나아졌다고 했고 실제로 덜 힘들게 걸었다. 오늘은 꽤 바쁜 편이어서 손님들이 꾸준히 드나들었고, 버질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노인들과 동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낚시꾼 한 사람이 구매한 청량 음료수와 과자. 그리고 가스 주입비를 계산하는 중에 문이 열렸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고도 로버트가 들어섰음을 알았다. 피부의 신경세포가 찌릿하면서 신호를 보냈고 한순간 낭패감이 들었다. 어리석게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를 만나지 않기를 바랐고, 내일 저녁 그와 외출하기 전에 어지러운 감정을 추스를 수 있기를 바랐다. 반면에 그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이 감정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 역시 잘 알았다. 눈앞에 없어도 계속 그를 생각하고 있는 그녀였다. 손님이 가고 나서 보자 그는 한참 버질과 이야기 중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은 한 번 본 로버트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청바지에 헐렁한 흰색 면 셔츠 차림이었다. 검은머리에는 카키색 야구모자를 쓰고 값비싸 보이는 선글라스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의 맥박이 흥분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청바지는 오래돼 보였지만 실크 양복만큼이나 그에겐 캐주얼한 복장도 어울렸다. 그가 그녀의 팔을 잡자 마치 스파크가 이는 것처럼 전류가 흘렀다.

"잠시 보트를 몰고 나가 강의 지리에 대해 배워야겠소."

하루 종일 계류장에서 얼쩡거릴 작정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안심이 되는 동시에 실망한 자신을 발견했다.

"안내원은 구했어요?"

"아직이오 하지만 초보자를 위한 지도가 있지 않소?"

"네. 별문제는 없을 거예요 지도를 드리겠어여."

"좋소"

로버트는 버질을 쳐다보았다.

"도드 씨, 제게 호수 주위를 안내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오후에 바쁘지 않으시다면요"

버질은 갑자기 흥미가 이는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으흠‥‥‥ 바쁘냐고? 나는 아흔셋이라오. 이 나이에 무슨 계획을 짠단 말이오 지금 당장 숨을 멈출지도 모르는 상황에."

웃음기가 도는 로버트의 눈이 초록빛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그럼 함께 나가 보시겠습니까? 물론 보트에 시체가 있게 되면 진짜 문제가 되겠지만‥."

버질이 안락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봐, 젊은 양반. 당신이 나를 배에 태우는 모험을 하겠다면, 나도 당신이 시체를 치우지 않아도 되게 협조를 하겠소."

"좋습니다. "

로버트는 에비에게 윙크를 하곤 몸을 돌렸다.

버질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에비는 고개를 저었다. 버질을 말리려는 헛된 수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랑했던 강에서 한두 시간 보내는 정도는 오히려 버질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로버트가 조심스럽게 보트를 몰 것도 확신했다. 그는 버질이 강에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란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두 사람 모두 조심해요"

그녀는 당부하듯 말했다.

"버질 할아버지, 모자 쓰시는 거 잊으시면 안 돼요"

"안 잊을 거야. 안 잊는다구."

그는 짜증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날씨에 모자도 안 쓰고 밖에 나갈 정도로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야?"

"선착장으로 보트를 몰아 오겠습니다."

계류장까지 버질이 걷지 않아도 되게 보트를 선착장으로 가져온다고 하는 로버트가 고마웠다. 그는 문까지 갔다가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다.

"잊은 게 있소"

"뭐요?"

그는 그녀의 턱을 한 손에 감싸고 고개를 숙여 조용히 키스했다. 정열이 넘치는 키스가 아니었다. 가벼운 접촉이었지만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심장은 고동치고 정신은 혼미했다.

"바로 이것"

그는 중얼거렸다.

그녀는 버질이 껄껄 웃는 소리를 들었고, 낚시도구 물품들이 걸려있는 곳에 서 있던 다른 손님들의 흥미로운 눈길도 의식해야 했다. 붉어진 뺨을 숨기기 위해 얼굴을 숙이고 잠시 서류들을 만지다가 안정을 되찾은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

버질은 그녀의 팔을 다독여 주었다. 아흔 넘은 인생의 연륜으로 등이 굽었지만 아직도 에비보다는 키가 큰 노인이었다.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저 젊은이가 그날 베키의 아들 녀석이 물에 빠졌을 때 구해 일을 했단 소릴 들었어."

그녀는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제이슨과 나는 아마 물에 빠져 죽었을 거예요."

"꽤나 동작이 빠른 놈 같은데, 그렇지?"

다시 얼굴이 붉어진 에비는 손을 휘저어 버질이 더 말하지 못하게 막았다. 로버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들 앞에서 키스를 한 것일까? 그가 애정 표현을 공공연하게 하는 타입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깊이 마음속에 담아두는 타입으로 보였는데 그런 짓을 하다니!

엔진이 천둥처럼 크게 울리는 검정 보트를 몰고 그가 선착장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창을 통해 지켜봤다. 우뚝 솟은 코에 걸린 선글라스는 그에게 냉정하고 강한 인상을 주었다. 군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표정에 그녀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로버트 캐넌에 대해서 그녀는 너무 몰랐다.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 새로 집과 보트, 지프차를 동시에 사려면 왜 많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어디 출신인지, 가족은 있는지, 혹시 결혼한 경력은 있는지? 아니, 지금 결혼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이가 있을까? 그에 대해서 모르는 사실들을 꼽다 보니 갑자기 추워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남자를 알았다. 냉정하고 복잡하며 사생활을 결사적으로 보호하는 사람,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항상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남자. 그 거리가 육체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만이 아시겠지만 그는 그녀가 만나 본 중 가장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남자였다. 감정적인 면에 있어선 그의 내심을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가 자제심이 강한,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제력이 강하다는 부분은 그녀도 인정을 하지인 거기에는 또 정열의 불꽃을 일게 하는 야성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는 무자비하고 독재자처럼 굴지인 그럼에도 단 한 번 본 노인네가 보트를 타고 나가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강으로 데려가는 사람이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로버트가 선착장으로 보트를 갖다 대는 것을 본 버질이 절뚝이면서 서둘러 걸어가는 것을 보니 겁이 났다. 로버트는 강한 팔로 버질을 잡아 보트에 태워 주었다. 보트 좌석에 앉는 버질의 얼굴에는 웃음이 활짝 피어났다. 로버트는 구명조끼를 건네주었고, 버질은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다는 것에 내기해도 좋은 구명조끼를 얌전히 입었다.

질식할 것처럼 죄어 오는 두려움만큼이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빨리 깊이 끌리게 되다니.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거의 없었다. 그저 매혹되었을 뿐. 매트가 죽고 난 후 그 길고 외롭던 12년만에 자신의 삶에 끼여든 첫 남자였다. 그의 능숙한 키스로

그녀의 정열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일까?

어떤 남자에게도 이렇게 격렬하게 끌려 본 적이 없었다.

매트와는‥‥ 함께 자랐다. 1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이어서 자신만큼이나 매트에 대해서 잘 알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짝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촛불처럼 천천히, 순수하게 타올랐다. 하지만 로버트는 용광로였고, 그녀는 곧 타고남아 재가되고 말 것이다.

랜든 머서가 계류장사무실로 들어왔을 때는 로버트와 버질이 배를 타고 나간 지 한 시간 정도 됐을 즈음이었다.

"아, 인형 아가씨!"

그는 활기차게 그녀를 불렀다.

"아름다운 인형 아가씨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는지?"

그를 쳐다보는 그녀는 무표정이었다. 주위에 사람이 있었으면 싶은데, 불행히도 한참 바쁠 때가 지나 계류장엔 그녀 혼자였다. 물론 혼자 있는 지금이 머서를 추적하기에는 좋은 기회였다. 다시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

"아, 머서 씨, 안녕하세요."

"랜든이라고 불러요."

역시 똑같은 말이었다. 자신의 멋진 체격을 자랑하듯 잔뜩 폼을 잡고 카운터에 과장된 포즈로 기대고 섰다. 머서가 잘생긴 남자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를 보면 홴지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도 보트를 대여하실 건가요?"

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지만 어떤 배가 비었는지 알아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로 몸을 돌렸다. 그의 관심을 피하는 길은 모르는 척하는 것이 최상이었다.

"물론이오 한동안 낚시를 안 해서 말이오 낚시 생각이 하도 나서 오늘은 일하다 말고 왔다오"

그는 자신의 말이 웃긴지 크게 소리내서 웃었다.

에비도 예의상 웃어 줬다. 언제나처럼 똑같은 낚싯대에 도구상자를 손에 들고 있었다. 꼬리가 잘라진 미끼도 똑같았다.

"특별히 원하는 보트가 있으세요?"

"아니, 아무 보트나 좋아요"

그가 더 가까이 몸을 숙였다.

"돌아와서 같이 저녁이나 먹으면 어떻겠소? 이 근처 말고 버밍햄에 멋진 레스토랑을 알고 있는데."

"감사합니다만 오늘 저녁엔 바빠서요"

흥미 없다는 듯 말했는데도 머서는 자신의 매력을 너무 과신하고 있어서 그녀가 그에게 무반응이란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럼 내일 저녁은 어떻소? 내일은 토요일이니 애틀랜타로 가서 정말 재밌게 놀아 보면 어떨까? 그 다음날은 휴일이니 출근할 걱정도 없고"

"계류장은 1주일 내내 영업한답니다."

"아. 알았소 그럼 내일 버밍햄으로 갑시다."

"머서 씨, 아뇨, 내일 저녁도 바빠요."

"아, 그러지 말고.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그래요? 어떤 일 인진 모르지만 미뤄 버려요."

그녀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간신히 예의를 차리고 말했다.

"내일 저녁에 데이트가 있어서요"

"이런‥‥‥‥ 질투가 나는데. 그 운 좋은 남자는 누구요?"

"모르시는 분일 거예요"

열쇠 보관함에서 보트의 시동키를 꺼내서 카운터 위에 올려놨다.

"자, 여기 있습니다. 선착장 맨 끝에 있는 7번 보트예요"

그는 지갑을 열어서 40달러를 꺼냈다.

"두 시간 내에 돌아오겠소."

그가 시동키를 집어들고 말했다.

"좋습니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고기도 많이 잡으시고‥‥."

"잡아 본 적은 없지만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다오."

그는 도구상자를 집어들고 서둘러 나가면서 말했다.

에비는 돈을 현금 보관함에 넣고 잠근 뒤 머서가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역시 오늘도 그는 주위를 돌아보면서 특히 주차장과 도로 쪽에서 차가 들어오는지 살피고 있었다.

재빨리 전화기를 들고 그녀는 수리창고에서 일하는 버트를 호출했다. 머서가 보트에 올라탈 때 버트가 전화를 받았다.

"버트, 잠깐 보트 타고 나갈 일이 생겼어요 사무실은 문을 잠가 놓을 테니 내가 나간 동안 가스펌프대만 지켜 줘요"

"알았어요"

언제나처럼 아무 질문 없는 대답이었다. 버트 마르더스는 호기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머서는 선착장에서 천천히 멀어져 갔다. 에비는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집어든 다음 서둘러 나갔다. 문을 잠근 뒤 자신의 보트 쪽으로 뛰어갔다.

그녀가 보트에 닿았을 무렵 머서는 호수 쪽으로 한참 나간 상태였고, 곧 보트가 속력을 내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보트에 몸을 던지듯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모터는 곧 부릉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임대 보트에 비해선 속력이 빠른 보트였지만 물위에서 속력을 내면 차이를 구별하기 힘들었다.

선착장에서 출발할 때는 천천히 배를 몰아 나가야 했다. 너무 빨리 몰아 물결을 출렁이게 되면 계류장에 정박 중인 다른 보트에 물이 들어가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거리가 멀어질까 그녀는 마음이 급했다. 곧 충분히 멀리 나오자 그녀는 엔진을 급속 발진시켰다. 모터에서 굉음이 났고 보트의 선미가 공중에 들리면서 배는 앞으로 획 튀어 나갔다. 보트에 속력이 붙기 시작했다.

그녀는 머서를 찾아서 호수 위를 둘러보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멀리 가버려 가까운 곳에서 그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기가 곤란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세 척의 보트 중에서 어떤 것이 머서가 몰고 있는 것인지 ‥‥‥

태양 빛은 아직도 전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 찬란한 빛으로 수면을 거울처럼 만들었다. 뜨거운 열기가 거세게 느껴지고 얼굴을 둘러싼 머리카락들이 피부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강물 냄새는 곧 허파에 가득 차 고요한 황홀감이 온몸에 퍼졌다. 얼굴에 스치는 산들바람, 속도감, 물결을 가르고 미끄러지듯 달리는 보트에 타고 있는 느낌은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었다. 호수에는 다른 보트들도 있고 강가를 따라 여러 집들이 눈에 띄었지만, 물위를 빠르게 미끄러져 갈 때면 그녀는 하느님과 단둘만이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머서란 작자가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저지르고 있는지만 알면 만족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에 들어오던 보트 중 하나가 다른 계류장에 정박하는 것을 보았고, 보트에서 내린 사람은 둘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보트 둘 중 하나였다. 그녀의 모터보트는 계속 속도를 내고 있었고, 다른 보트 하나는 그녀의 보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반대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임대보트가 자신의 보트보다 속도가 느릴 테니 뒤로 쳐진 보트가 머서의 보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보트의 속도를 감속하며 적당히 멀리 떨어져서 머서를 계속 따라갔다.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잘 구분이 가질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머리를 뒤로 동여매고 있으니 머서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

그는 호수에 떠있는 작은 섬들 사이로 향해 가고 있어 너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머서가 정박하기 위해 엔진을 끄게 되면 다른 보트가 달리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보트를 세운 채 낚시하는 체하는 것뿐이었다.

머서의 보트는 두 개의 섬 사이로 들어가더니 속도를 줄였다. 에비는 계속 속도를 유지하며 그를 스쳐 지나갔다. 둘 사이는 2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그가 오른쪽에 있는 섬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서 멀어져 반대 방향으로 갔다. 화물을 잔뜩 적재한 화물선이 다가오고 있었고, 자칫하면 그 화물선이 머서의 보트와 자신의 보트 사이에 끼여들어 머서의 위치를 놓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화물선을 스쳐 지나가면 머서의 보트에 너무 가깝게 접근하게 되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긴 머리를 셔츠 안으로 집어넣고 보트의 선미를 돌려 화물선을 스치며 돌아갔다.

"건터스빌 호수 지리는 알기가 꽤 쉬워."

버질이 말했다.

"팸이 건설되기 전부터 여기서 낚시를 했으니 나야 물론 눈감고도 다닐 수가 있지. 예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젠 얼마 없어. 그 때는 강이 자주 범람해서, 그 루즈벨트 일당들이 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결정하더라구. 그 뒤엔 홍수가 없어졌지. 그때 자주 범람하던 땅들이 물 속으로 다 가라앉았으니 당연한 얘긴가? 정부 녀석들은 그것을 홍수조절정책이라고 부르더만. 하지만 그 녀석들이 한 짓은 국민들의 땅을 빼앗아 물 속에 잠기게 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

"하지만 댐 덕분에 테네시 강 지역에 전기가 들어왔지 않습니까?"

로버트는 물었다. 시속 30킬로미터 정도의 느린 속도로 보트를 달리고 있어, 목소리를 조금 높여야 하긴 했지만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버질은 코웃음을 쳤다.

"전기야 들어왔지. 세상이 밝아지니 좋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 녀석들이 우리들 삶을 편하게 하기 위해 댐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젠장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그때는 대 공황으로 불경기였고 루즈벨트는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면 제2의 바벨탑도 건설했을 녀석이야. 전쟁으로 다시 경기가 살았으니 운이 좋은 녀석이지."

"전쟁이 났을 때 전투에 참여하셨습니까?"

"그때 벌써 노인네 취급을 참더군."

버질은 껄껄거렸다.

"상상해 봐! 70년 전 그 녀석들이 나보고 너무 늙었다고 했다니까. 1차 대전엔 당연히 참여했지. 그 녀석들을 속이는 건 간단했어. 나이를 속이고 종군했지. 뭐, 자세히 살피지 않기도 했고‥‥ 싸울 남자들이 필요했으니까. 2차 대전 땐 젊은애들 교육하는 일을 했어. 국내에서 머물면서 말야. 마누라는 내가 그렇게 전쟁에 참가하러 집을 떠나는 것을 아주 싫어했지.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혼자 돌봐야 했으니‥‥ 만일 해외로 나가기라도 했으면 아마 경을 치고 덤볐을 거야. 전쟁이 시작됐을 때 큰아들 녀석이 열 일곱 살이었는데 해군으로 참전했어. 아들이 전쟁에 나가 있는 것만으로도 마누라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귀환했었어. 그런데 태평양전쟁에서도 살아 돌아온 녀석이 2년 후 폐렴으로 죽어 버리다니, 인생은 가끔 정말 알 수가 없어. 앞으로 별로 많은 날을 살 것 같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살 작정은 아니었다구."

노인네는 곧 침묵 속으로 잦아들었다. 아마도 가까웠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되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 호수에는 크리크(움푹 들어간 후미)가 많아. 우리가 방금 지난 곳은 쇼트 크리크라 부르고, 저곳은 타운 크리크라고 하지."

로버트는 이미 호수의 지도를 살펴봤으므로 버질이 크리크의 이름을 말하자 머리 속에서 지도가 그려졌다. 강의 해협 표지판이 걸려 있으므로 안전한 지역에 머무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강의 해협 쪽으로 가면서는 버질이 가진 전문지식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너무 얕은 곳으로 잘못 들어가면 보트 바닥이 암초에 걸려 난파할 위험이 있었다. 잠시 버질은 강의 위험한 암초 지역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떠나 보내야 했지. 어머니, 아버지는 물론 형제자매들도. 우리는 열 여섯 형제였는데 지금은 나만 살아 남았어. 엄청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고, 그 아이의 아이들이 또 태어났어. 마누라는 예순넷 되던 해에 죽었어.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도 않은데 말야. 세 명의 자식들을 먼저 보냈지. 부모는 절대 자식보다 오래 살면 안 돼. 옳은 일이 아냐. 같이 자란 친구 녀석들도 다 죽었어. 그렇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먼저 보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무척 소중해."

흐릿한 푸른 눈동자가 갑자기 로버트를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에비는 아주 특별한 여자야. 젊은 나이에 참으로 슬픈 일들을 많이 겪었지. 그러니 진심이 아니라면. 에비를 그냥 놔두고 북부로 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로버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에비와 친척 되십니까?'

그는 버질의 전투적인 말투를 무시하고 물었다. 아흔세 살이나 되는 노안네와 말싸움을 벌일 일은 없었다.

버질은 콧김을 뿜었다.

"핏줄은 아니지. 하지만 에비가 태어나면서부터 쭉 봐 왔어. 나도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해. 그래서 요즘 연애하는 것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고 결혼하지 않고도 동거부터 하는 것도 알아. 내가 얘기하는 것은 그런 쪽 이야기가 아니야. 심심풀이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라면 다른 여자들을 알아보라구. 에비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로버트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에 휘말렸다.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버질의 참견에 본능적으로 화가 난 것이었다. 사생활에서나 사업을 하면서 누군가로부터 충고를 듣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그였다. 하지만 한편 재밌기도 했다. 그는 서른여섯 살에 벌써 정치적으로 재정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런데도 버질 노인에겐 그저 젊은 녀석에 지나지 않는 취급을 받는 것에 하마터면 미소를 지을 뻔했다.

그럼에도 에비가 재미나 찾는 여자가 아니라는 경고의 말에 신경이 쓰였다. 에비 자신도 그런 경고를 했었다. '진심이 아니라면 키스하지 말아요.'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버질 노인의 말을 듣다 보니 신경이 쓰였다.

"개인적인 생활에 대해서 남의 참견을 들을 생각은 없습니다."

불쾌하다는 것을 가볍게 표시할 정도만큼만 딱딱하게 말했다.

"하지만 에비에 대한 관심은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

어떤 면에서도 가벼운 부분은 없었다.

"그런데 에비가 살면서 슬픔을 많이 겪었다는 건 무슨 말씀입니까?"

버질의 말뜻은 명확했다. 그녀에게 상처 입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 말은, 에비의 삶이 그리 쉽지 않았다는 거지. 오래 살다보면 슬픈 일은 누구에게나 오지인 어떤 사람은 남보다 더 심하게 겪어야 해. 결혼한 다음날 매트를 그런 식으로 잃고 나서 에비는 완전히 변했어. 그녀의 눈동자는 예전처럼 햇살같이 반짝이지 않아. 매트가 죽은 뒤 당신이 나타나기 전까지 다른 남자는 쳐다본 적도 없었어. 그러니 그녀를 실망시키지 말게."

로버트는 질투심에 휩싸여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 질투라? 여자에 관한 한 한 번도 질투심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의 여자들은 전적으로 그에게 충실했고 그렇지 않다면 관계는 끝이었다. 완전히 끝. 12년 전에 이미 죽어 버린 소년이라고 해도 좋을 남자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지금까지 정절을 지키고 결혼반지를 끼고 있을 정도의 에비였다. 머서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잘못 짚은 것 같았다. 가능성은 있지만 이 경우 앤 아닌 것 같았다. 머서와 성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은 기뻐할 사실이었다. 하지만 추억 속에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그녀에겐 화가 났다. 그녀는 ‘당신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이미 죽어 버린 남편에게 정절을 지키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매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알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을 알아야 할 때라고 느꼈다.

"착한 아이였지. 기회가 닿았다면 아주 훌륭한 남자가 됐을 거야. 정직하고 성격 좋고 친절했지. 같이 다니던 또래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매트는 정말이지 나쁜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었어. 에비 외에 다른 여자애들과 데이트를 한 적도 없고, 에비도 마찬가지였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둘은 결혼하기로 계획을 세웠을걸. 개들처럼 서로 사랑하는 애들은 본 적이 없었어. 그렇게 짧은 시간밖에 같이하지 못한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 안된 일이야.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아이도 갖지 못했고, 정말 안됐어. 매트가 죽고 난 뒤엔 살아갈 희망을 줄 것이 정말 필요했는데."

로버트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매트 쇼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에비가 그렇게나 깊이 사랑했다는 소리를 더 듣다간 화를 내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언제 화를 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지만, 지금은 분통을 터뜨리기 일보직전이었다. 화나는 이유를 분석하려 하지도 않은 채 그는 그저 마음속 깊이 냉혹하게 담아 둔 뒤 계류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과속으로 달리는 굉음으로 더는 대화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15분 후 그들은 선착장 쪽으로 천천히 보트를 몰아가고 있었다. 모터소리가 들리자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수리창고에서 나와 선착장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로버트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뒤 버질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셔서 저랑 같이 잠시 있으세요 에비가 사무실을 닫고 잠깐 보트를 몰고 나갔어요"

"그게 언제요?"

로버트가 날카롭게 물었다. 기계공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한 시간쯤 됐을 걸요 시간엔 별로 신경을 산지 않아서."

비가 주룩주룩 오는 늦은 오후에도 계류장 문을 닫지 않았던 에비가 오늘처럼 화창하고 날씨 좋은 날에 문을 닫다니. 로버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주차장 쪽을 쳐다봤다. 그는 머서의 자동차 쪽을 쳐다봤다. 그는 머서의 자동차 모델과 색상을 알고 있었고 그 차가 바로 거기에 서 있었다.

빌어먹을‥‥‥ 반역행위나 하는 개자식을 만나러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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