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합격 후 고향에 돌아온 날, 눈을 떴더니 늪지였다.
거대한 애벌레, 움직이는 나뭇가지, 머리가 두 개인 새…. 수지에겐 모든 게 낯설고 위험하기만 한 늪지.
그곳에서 낯선 남자가 그녀 앞에 나타난다.
“네가 내 죽음이라고?”
[임무: 운명의 적수가 될 존재를 미리 죽인다.]
렉스는 이 임무를 무시하고 수지를 가만히 두고 보기로 한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이런 죽음이라면 즐겨 볼 만하지 않나.
하지만, 그들을 이대로 두기엔 그는 왕국에게 너무나도 귀중한 병기였고,
그녀는 그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
피를 씻어내는 그 앞에서 수지는 홀린 듯이 서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몸매엔 여유로움과 나른함만이 가득했다.
그를 따라 흐르는 물방울마저 부러워, 몸 깊숙한 곳이 간지러웠다.
“지금 어떤 눈으로 날 보고 있는지 아나?”
수지는 움찔거렸다. 훤한 바깥에서 그를 탐한 것이 부끄러워 차마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렉스는 더 낮게, 열기 띤 목소리로 속삭였다.
“걱정 마. 추궁하려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좋다고 말해 주는 거야.”
렉스는 수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탄성은 그의 목구멍으로 삼켜졌다.
수지는 눈물을 머금은 채 하나의 불덩이 같은 그의 몸을 껴안았다.
그의 열기는 깊숙이 수지의 몸 안에 자리잡았다.
그가 없어도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