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지 보고서 (148)화 (148/163)

148화

“그, 그렇습니까?”

“공격을 서둘러요. 그가 마나를 쓰지 못할 때 한시라도 빨리 처리해야 하니까!”

알겠다며 연금술사가 대포를 가동했다. 가열된 무기에선 곧 뜨거운 바람이 전해졌다. 그 탓에 미친 듯이 머리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서 로리엔은 복잡한 심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만들어 줄게요.”

부서진 그를 다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망가진 신체는 마나로 고치고 엇나간 의식은 더 좋고 새로운 걸로 교체할 수 있다고. 그렇게 또 하나의 완벽한 렉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몇 번을 실패하더라도 다시 만들어 내면 돼. 그러니 슬퍼하지 마.’

그렇게 저를 위안하며 그녀는 수하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준비가 끝난 포열에서 빛과 열이 쏟아졌다.

하얀 마나가 왕성 마당의 한 점을 향해 달려간다. 주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평소보다 적은 마나였다. 하지만 로리엔은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렉스는 방어력이 없어진 상태기 때문에 충분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어?’

그러나 빛이 터져서 주변의 땅이 들썩이는 것도 잠깐, 곧 연기를 뚫고 인영 하나가 솟구쳐 올랐다. 로리엔은 입을 벌렸다. 옆에 있던 연금술사가 당황해서 외쳤다.

“소, 손에 들린 건 뭘까요? 꼭 왕성의 부서진 벽처럼 생겼는데…….”

그의 추측은 정확했다. 로리엔은 곧 이쪽을 무섭게 노려보는 렉스를 발견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가 던진 벽이 기구를 강타했다.

“큭!”

로리엔은 휘청거리는 기구에서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고개를 들자 반으로 갈라지는 간판이 보인다. 수하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로리엔은 얼이 빠져서 난간을 잡고 일어섰다. 금세라도 낙하할 것처럼 불안하게 흔들리는 기구에서도 그녀는 렉스를 다시 돌아봐야 했다.

‘도대체 마나 보충으로 신체가 얼마나 강화된 거야?’

마나의 양이 육체의 힘을 강화한다는 건 이미 증명된 가설이었다. 온몸에 그을음이 묻었을망정 여전히 멀쩡하게 두 발로 서 있는 그는 이전 마나 공격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것처럼 땅으로 내려앉았다. 로리엔은 허망해져 고개를 돌렸다. 용골이 부서져 바닥부터 무너져 내리는 배는 금세라도 산산이 조각날 판이었다. 그녀는 연금술사들이 애타게 마법의 가루를 찾는 것을 보면서 조용히 버드로 걸음을 옮겼다. 연락용 버드에는 한 사람 정도는 올라탈 수 있다. 원래 그런 용도는 아니었으나 지금은 위급 상황이니까.

버드를 찾아 단추를 누르자 불안한 기계음이 들리면서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로리엔은 서둘러 날갯죽지 위에 걸터앉았다.

“로, 로리엔 님?”

로퍼가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버드에는 두 사람이 탈 수 없으니까. 그녀는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며 버드의 머리를 강하게 쳤다. 새가 평소 같지 않은 무게에 우려스럽다는 듯이 휘청거리며 하늘로 떠올랐다.

“로리엔 님!”

간절하고 겁에 질린 음성은 오래지 않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로리엔이 홀로 버드를 타고 수도 아래로 남하했을 때였다. 마나 광산의 일로 원로 귀족들과 말다툼을 하고 흥분한 채 돌아온 왕자는 왕성이 반쯤 허물어진 것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더도 말고 두 시간 나가 있던 거였다. 그 사이 맹공격을 받은 것처럼 왕성이 파괴되어 있다는 게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왕자는 몇 번이나 제 눈을 감았다가 떠야 했다. 그가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간신히 물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사령관님께서…….”

“사령관?”

왕자의 눈썹이 구겨졌다.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이 형편없이 일그러진 미간을 보면서 기사는 실수하지 않게 그의 긴 이름을 내뱉었다.

“네, 알도스 무어 렉스, 왕국의 유일한 특별 사령관님이자 지휘관님이요. 그분께서 이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큭!”

위가 더 쑤셔 오는 왕자였다. 한때는 모든 전쟁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화통함의 상징이었는데 이제는 듣기만 해도 가슴 답답한 문젯거리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니! 도대체 원인이 뭘까. 어설픈 관리자도 문제겠지만 주요한 건 늪지와 그 여자 때문일 것이다. 진작에 없앴어야 하는 그것들 때문임이 분명했다. 기억을 없애려고 했던 제 탓은 절대 하지 않으면서 왕자는 거칠게 호흡을 삼켰다.

“피해가 얼마지?”

“생각보다 적습니다. 성의 반이 무너진 것에 비해서는요. 일꾼들은 대체로 다치지 않았으나 사령관님께 맞서던 제1 기사단과 제2 기사단은 전멸했고 나머지 기사단도 부상자가 속출…….”

“다른 건?”

“왕족께서 머무시는 별채는 다행히 피해가 없습니다. 폐하께서도 무사하시고요. 마에뜨 님과 복중 아기도…….”

“실험실은? 비싼 기계와 마나 장치들은 어떻게 됐지?”

그게 중요하다는 다그침에 기사가 우물쭈물 눈치를 살폈다.

“파괴되었습니다. 무너지는 반쪽에 모두 있었던 터라…….”

“하나도 구하지 못했어? 로리엔은 그 사이 대체 뭘 한 거야!”

“그, 그분은 공격용 기구를 타고 추락사하신 걸로 보입니다.”

“뭐?”

왕자는 곧바로 한숨을 토했다. 죽음에 대한 위로보다 피해에 대한 분노가 앞섰다.

“그렇게 곱게 죽다니! 왕성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어느 것 하나 책임지지 않고 가다니, 아주 운이 좋아! 물론 그녀의 가문은 그렇게 운이 좋을 수 없을 거야!”

왕자는 이번 피해 비용 일부를 그녀의 가문에서 배상 받겠다고 치졸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번 일에 조금이라도 가담한 자는 모두 책임을 지게 될 거야. 하물며 그를 놓친 기사들까지! 그 피해 비용 일부를 책임져야 하지!”

기사는 그 말에 침을 꼴깍 삼켰다. 목숨을 바쳐 왕성을 지켰는데. 그걸 알아 주기는커녕 피해액을 자신들에게 보상 받겠다고 하다니. 어떤 권력자가 이리 못돼 먹었단 말인가. 그를 왕으로 모시기 싫다는 생각이 어느 때보다 강렬했을 때였다.

“사령관은 어디 있지?”

왕자의 물음에 기사는 아까보다 훨씬 소극적인 태도로 말했다.

“어, 그게……, 쫓고 있습니다만 보내는 족족 들켜서요. 금세 죽이시는 터라, 뭐랄까. 안정적인 추적이 매우 어렵다고 할까요?”

“지금 일을 못하고 있다고 자랑하나?”

그러게 말하며 칼자루를 움켜쥐는 그였다. 평소의 여유와 인내심이 사라진 그는 그저 폭군 같았다. 화를 뒤집어쓰기 싫었던 기사는 황급히 변명했다.

“압니다! 분명히 남쪽으로 향하고 계세요!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 기회가 있었는데 굳이 그쪽으로 가시는 걸 보면요! 일부러 향한다는 거죠!”

“남쪽? 늪지 말이야?”

“그, 그것까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주 이동 속도가 아주 빠르다는 것밖에…….”

기사는 공포 가득한 얼굴로 왕자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그는 이제 완전히 사령관의 생각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일단 추적단을 더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슬그머니 말하고 뒤로 빠지려는 그에게 갑자기 왕자가 야만인 여자의 위치를 물었다. 기사는 바로 알아듣지 못해서 되물어야 했다.

“야만인 여자라니요? 그런 여자가 있었나요?”

갸웃거리는 그에게 왕자가 빽 소리를 질렀다.

“사령관의 연인 말이야!”

“아. 그분이요!”

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곧 멈칫했다. 어째서 그 사람이 야만인 여자일까. 왕궁의 연회장에서 경비로 섰던 날에 그녀를 실제로 보았던 기사는 왕자의 비하가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대답했다.

“그 분, 아니 그 여자는 늪지에 거의 다가선 걸로 압니다. 노만 경께 연락이 왔었거든요. 기구를 타고 그녀가 탄 배를 거의 따라잡았다고요. 방금 전에 온 것이었으니까 지금쯤은 두 분 다 섬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연락이 중간에 폭풍 때문인지 끊겨 버려서…….”

“노만에게 다시 연락해.”

“연락을 받으실지…….”

“그럼 전서구라도 보내!”

왕자는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사령관이 그리로 향하고 있으니 여자를 처리하는 대로 곧바로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 둘을 모두 처리해 놓는 게 좋을 거라고, 똑똑히 강조해.”

왕자의 눈이 제 알을 잡아먹고 있는 흉포한 뱀 같았다. 말실수라도 하면 저까지 꿀꺽 삼킬 기세라서 기사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수그린 채로 움츠러든 허리 인사를 하고 빠져나왔다.

왕자는 곧바로 다른 수하를 불렀다. 살아남은 기사들을 추리라고 한 그는 기사들을 모조리 끌고 가서 사령관의 시체를 수거해 올 생각이었다.

‘맘 같아서는 사지를 분절하고 그 목을 성문에 효수하고 싶지만!’

렉스는 일반 기사가 아니다. 아주아주 값비싼 마나 무기였다. 오랜 기간 사용해서 반드시 들어간 비용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한 이득을 창출해야 하는 도구! 따라서 왕자는 복수심 대신 야심을 키우자고 저를 다독였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출발 전까지 수하를 닦달하는 그였다.

그렇게 사령관의 시신을 수거하는 목적의 기구 출발 준비가 끝났을 때였다. 가문에서 강제 추출된 기사들이 상당한 수를 이루는 가운데, 왕자는 저를 만나러 온 고위 귀족 셋을 발견했다. 왕자는 인상을 찌푸린 채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말했다.

“지금은 바빠서 그대들 말을 청취할 시간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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