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마나 억제를 얼마나 하는데?”
“억제제랑 비슷하게요. 그의 마나에 닿으면 3분 정도 마나가 무력화됩니다.”
“흠. 그 정도면 나쁘지 않네. 좀 더 길면 좋았겠지만.”
“능력치를 올려 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의식이 망가져 버릴 겁니다.”
내키지 않는다는 눈빛에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거기까지 하고. 그 억제 능력은 정신까지 굳어 버리게 하는 게 맞지?”
“네. 하지만 마나 인간이 마나 억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인 만큼 억제 능력을 많이 쓰면 그의 신체에도 무리가 가게 됩니다. 하루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하지 그 이상을 쓰면 다시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
“변화? 어떻게?”
“모르겠어요. 끝까지 실험을 진행하지 않아서요. 몸이 변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고 기형적이었어요. 단순히 신체가 커지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근육과 피부가 뒤틀리면서 변화하는지라…….”
변화의 모습이 생각 난 로리엔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왈칵 구기고 말았다. 끔찍한 형태였다. 로퍼는 그 변화에 무서워 비명까지 질렀고 로리엔은 서둘러 실험을 중단하고 마나를 진정시켰다. 그녀는 신중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뭐가 됐든 변화를 끝까지 진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군. 알겠어. 노만에게 하루에 한 번만 특수 능력을 쓰라고 할게.”
왕자는 그건 큰 문제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가 곧 해야 할 일이 있어. 마나 기사가 되어 맡는 첫 임무인 셈일까.”
“어떤 임무인데요?”
로리엔이 물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건데 왕자는 의뭉스럽게 미소 지었다.
“제국의 무기 시설을 파괴하는 일이지.”
“저와 렉스의 지원이 필요한 건 아니고요?”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은 아니야.”
왕자는 진실을 숨겼다. 마나 인간의 정신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많아져 봤자 그걸 노리는 자들만 많아져 곤란할 것이기에. 따라서 이 일은 자신과 임무를 수행하는 노만만 알고 있는 게 좋았다. 왕자는 태연하게 설명을 위해 노만을 제 집무실로 보내라고 지시하고는 발을 돌렸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로리엔은 오후에 란드 공작으로부터 무도회 초대장을 받았다. 삼일 뒤에 공작이 소유한 유명한 장미 저택에서 수도의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취지는 그동안의 안부와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지만 멋지고 예쁜 젊은이들이 한껏 치장하고 올 것이라 안 봐도 청춘에 물오른 청년들의 사교장이 될 게 뻔했다. 평소라면 관심 없었겠지만 그녀는 늪지의 여자를 생각해서라도 이번엔 아주 아름답게 꾸미고 가겠노라 결심했다.
무도회 당일.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저택의 정문에서 서성였다. 머리 색과 비슷한 다홍빛 드레스가 바람에 화사하게 물결치는 모습이 제가 봐도 예쁘다고 자위하면서 두리번거렸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무도회가 끝나갈 무렵에서야 느릿느릿 거북목과 파충류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왜 이리 늦었어요?”
와서 기쁘다는 한편, 몹시 애탔다는 듯이 말하자 무심한 대꾸가 뒤따랐다.
“여자랑 놀다가.”
“……!”
안 그래도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입으라고 보냈던 제복은 반쯤 벌어져 있고 맨 위쪽 단추는 떨어져 나가 있다. 드러난 가슴 사이로 단단한 빗장뼈와 영근 근육이 보이는 것이 어딘가 난잡하게 보였다. 피부에 난 입술 자국은 누구 거냐고 물으면 무례한 걸까. 로리엔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여자하고 무슨 짓을 하고 왔는지 다 드러나는 차림.
‘더 기가 막힌 건.’
그럼에도 그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거다. 그런 건 자신만이 아닌지 오가는 귀족들과 하인, 심지어 가문 기사들까지 힐끔거리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로리엔은 창백한 듯 퍼레진 얼굴로 말했다.
“……뭐가 됐든. 이젠 제 곁에만 있어요.”
렉스는 눈썹을 꿈틀했지만 따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꽤 수더분하게 그녀를 뒤따랐다. 로리엔은 들어가자마자 모이는 시선에 어깨를 우쭐하며 적극적으로 저와 렉스의 신분을 밝혔다. 란드 공작의 딸이 렉스에게 관심 가지며 왔다가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는 듯이 눈이 커지는 게 보기 좋았다.
‘저 여자분이 수석 연금술사래. 옆의 남자는 그 유명한 특별 사령관이라며?’
속닥거리는 소리가 마치 저와 렉스를 한 쌍의 연인으로 인정해주는 나팔 소리 같다. 로리엔은 기분이 좋아서 렉스에게 춤을 추자고 손을 뻗었지만 렉스는 무심하게 눈을 돌릴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창문 밖에 머물러 있었다. 그곳에 서 있는 웬 마차에.
‘설마…….’
여자를 데리고 온 거야? 나와 함께 있어야 하는 시간에까지? 상쾌했던 기분은 그 생각에 와르르 무너져 진흙탕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역한 소용돌이가 가슴 속에서 휘몰아쳤다. 원인은 여자, 여자, 여자, 그 여자 때문!
‘늪지의 더러운 창녀 같으니라고!’
어느새 수지를 향한 악의는 더욱 우중충하게 뒤틀려 있었다. 로리엔은 무도회가 끝나자마자 사라져 버린 사령관을 찾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던 마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것이다.
“…….”
로리엔은 다홍빛 치맛자락을 피가 날 만큼 움켜쥔 채 왕성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라탔다. 공녀가 사령관을 소개해 달라고 은연히 부탁했지만 전혀 안 들리는 것처럼 입술을 꾹 다문 채로 앞만 보면서. 로리엔이 그렇게 활화산 같은 분노에 차 왕궁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렉스는 한적한 소로를 돌아 달리는 마차 안에서 길게 누워 누군가를 탐닉하고 있었다.
“어음, 렉스 너무 빨리 돌아온 거 아니에요?”
누군가, 아니 수지는 제 벗은 가슴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 남자를 보며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피부에 입맞춤 자국이 잘 남지 않는다고 불만스럽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통통한 가슴 살 바로 위로 울긋불긋한 자국이 봄의 진달래처럼 수북하게 피었건만. 뭐가 아니라는 건지. 수지는 빨개져 민망해진 얼굴로 또 제 속옷 사이로 파고드는 남자를 붙들었다.
“렉스-!”
그러자 검은 눈동자가 쏘아본다. 짙고 어두운 눈빛에는 왜 불렀냐는 야만적인 기백이 가득하다. 이 일이 바쁘다는 듯이. 수지는 되려 침을 꿀꺽 하고는 말을 더듬어 물었다.
“무, 무도회요, 이렇게 빨리 끝내고 와도 돼요?”
“어.”
렉스는 짤막하게 대답하며 다시금 얼굴을 내렸다. 젖살을 깨물자 포동포동하고 새순 같은 살덩이가 입 가득 들어온다. 머금을수록, 핥을수록, 빨수록 바지 아래가 팔딱거리는 게 재밌다. 이 요망한 살은 애무하는 거에 비해 흔적이 잘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끝내주게 맛있었다. 렉스는 가장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둔 유두를 깨물었다.
“괘차낭.”
“우읏. 무, 물고 말하지…….”
말아요. 수지는 부끄러움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타고 다니는 마차 안에서 누가 이런 짓을 한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어질어질한데 렉스의 진한 애무는 그걸 더 심화시키고 있었다.
“왜. 당콤한뎅.”
“아!”
누가 이 사람을 말려 줄 수 있을까. 이 무도한 전쟁 사령관을……!
수지는 눈앞이 또 흐려졌다. 오는 내내 이런 진한 애무를 당하면서 언제 온 건지도 모르게 장미 저택에 도착했는데, 가면서도 또 그렇게 하며 왕성에 갈 생각인가 보다. 수지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아래가 허전해진 게 어느새 느껴졌다. 손 빠른 렉스가 드레스 아래 속옷을 모두 벗겨 낸 것이다. 그녀가 아연해할 때, 유두를 빨던 렉스의 얼굴이 미끄러져 풍성한 치맛자락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흣……!”
수지의 허리가 목소리처럼 튀었다. 길고 뜨거운 혀가 추삽질을 할 때마다 음순과 멍울이 못 견딜 것처럼 흔들렸다. 혓바닥의 움직임이 예상할 수도 없이 난잡하고 과격해서 수지는 그의 어깨를 잡은 채로 벌에 쏘인 것처럼 벌벌 떨었다. 뒷골이 울리고 눈앞이 점멸한다.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그녀는 완전히 마비된 것처럼 사지를 벌리고 그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지독한 애무에 질구에서 애액이 꿀처럼 떨어졌고, 헤벌어진 입술에서 한 줄기 타액이 턱으로 떨어졌건만 남자는 멈출 줄 몰랐다. 신음이 농후하게 무르익고 마차 안의 공기가 격한 호흡으로 습해지고서야 겨우 얼굴을 들었다. 입술에 묻은 애액을 핥는 남자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너와 하는 행위가 아닌 건.”
“…….”
“다 싫어. 무도회 따윈 더 일찍 끝내도 무방했지.”
하지만 그 여자는 그렇게 생각 안 할걸요. 수지는 수치심에 벌게진 얼굴로 그의 연락책이라는 로리엔을 떠올렸다. 붉은 머리의 연금술사. 황소 떼 앞에서 마주친 그녀가 왕국의 수석 연금술사라니. 젊은데도 그런 자리에 앉았다면 그만큼 실력이 출중하다는 소리다. 젊고 예뻤던 그녀를 떠올리며 드는 감정은 그러나 두려움뿐이었다.
‘무서운 명령도 서슴없이 내릴 수 있는 여자.’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서도 올라가 파괴의 흰 빛을 던졌다. 냉정하고 단호한 결단이 그녀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수지는 그녀와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과연 맘처럼 될지. 그녀는 렉스와 지내다 보면 필수적으로 만나야 하는 신분 같은데 말이다. 착잡함에 빠져 있던 수지는 곧 다른 걱정거리에 그 생각을 잊어야 했다.
“아.”
바지춤에서 모습을 드러낸 성기. 허벅지에 비벼질 때부터 범상치 않다고 느꼈는데. 진짜 드러나니 포탄을 터트리기 직전의 대포 같다. 강직도가 큰 두꺼운 음경과 벌게져 커진 귀두. 그 끝에서 껄떡거리며 떨어지는 흰 정액은 음란함과 과격함, 난잡함을 상징하는 콜라보였다. 수지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얗게 질린 그녀를 보는 렉스의 얼굴은 천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봐, 얘도 그렇다잖아.”
“읏!”
“느껴지지? 입구에서부터.”
남자는 천연덕스럽게 단단한 줄기를 수지의 질구에 맞췄다. 초반부터 압박감이 대단했다. 목을 꺾은 수지는 등을 꿈틀거렸고 그 조임에 행복한 전율을 느끼면서 남자도 허리춤을 들썩거렸다.
“진짜 좋잖아. 이런 게. 큭.”
렉스는 고환 바로 아래까지 밀어 넣었다.
“이런 흥미로운 시간을 두고 귀찮은 짓거리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하, 하지만 약속이, 협조해야 할 게…… 흣, 우…!”
빠듯하게 들어간 음경. 샅과 샅이 맞물려 아랫배까지 조여 오는 것이 굉장하다. 수지는 그의 것으로 꽉 찬 하복부로 드레스가 불편하게 조여 온다고 느끼면서도 착실하게 항변을 이어 갔다. 남자는 수지의 말에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냈다.
“말했지만 내 기억을 그런 약속에 의존해 찾지 않을 거야. 애초에 찾을 수도 없을 테고. 연금술사란 권력자들만큼 믿을 게 못 되거든.”
“그런데 왜 그런 약속을, 읏 한 거예요? 흐읏, 거, 거짓인데…….”
수지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자궁 안쪽 예민한 정점을 렉스가 찔러 온 것이다. 비스듬히 깊게 막힌 성기에 온 몸이 짜릿하게 울리자 수지는 그만 굳어 버리고 말았다. 목에서 아, 아-! 절로 커다란 비음이 후폭풍처럼 높게 삐져나왔다.
“왜냐면.”
렉스는 자신의 아래에서 소리 지르는 수지가 귀엽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추삽질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내가 얌전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