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지 보고서 (108)화 (108/163)

108화

“아, 그래요.”

성큼 가 버리는 미카엘을 수지는 바짝 뒤쫓았다. 그의 말대로 성문 통과는 쉬웠다. 마나 기사 일행이라는 것만으로도 무사통과가 보장되어 있었다.

일반 기사들은 마나 기사에게 깍듯하게 경례하며 경외감 서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직 어린데도 마나 기사가 되었다는 게 대단하다는 듯이. 그 시선에는 인간적이지 않은 존재를 향한 거부감과 배척감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수지는 마나 기사라고 마냥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마나 기사가 되기 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던 거 같은데.’

렉스도 그러할까.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는 수지였다. 뭐가 됐든 소년 기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로난을 찾아야지. 그렇게 마음 먹으며 20걸음 정도 걸었을까. 완만한 둔덕을 넘자 오래지 않아 시야를 막고 있는 웅장한 먼지구름을 맞닥뜨렸다.

‘와.’

거칠고 성난 짐승들. 긴 털이 수북하게 덮은 몸체는 일반 황소보다 두 배는 커 보였다. 하늘을 찌를 것처럼 돋아난 뿔도 사나웠기 때문에 수지는 가슴에 얹은 손을 꽉 쥐고 말았다. 미카엘인 신중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상하게 흥분 상태라 무리 이동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인명 피해가 커지는지라 저희가 해결하러 나온 것이죠.”

“해결이라면….”

“전(全) 개체 소멸입니다.”

“!”

어조가 너무 단호해서 수지는 어깨를 움찔하고 말았다. 미카엘은 웃는 듯 마는 듯,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말했다.

“찾으시는 새는 저 황소 무리 뒤쪽에 있을 겁니다. 임무가 완료되는 대로 눈치를 봐서 이동하세요. 당당하게 이동하시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을 겁니다.”

“미카엘은…….”

“저는 일이 끝나는 대로 떠나야 합니다. 배정받은 임무가 또 있는 터라서요.”

원래 그 배정받은 임무를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나려는 찰나였다. 실험실에서 마나를 보충해 대기하고 있었는데 급하게 새 명령이 하달되어 여기로 차출되어 나온 거랄까. 따라서 이 일이 끝나는 대로 그녀와 헤어져야 했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겠지만.’

사령관님과 함께라면 별일 없겠지. 미카엘은 그런 생각으로 기계적인 미소를 지었다.

“제 뒤에서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면 문제 없으실 겁니다.”

하고 멀어지는데, 그런 그를 수지가 불러세웠다.

“네?”

“몸조심해요.”

“아.”

“본인이 강하다고 아픈 걸 참으면 안 돼요.”

이런 걱정은 처음이었다. 마나 기사가 되어서는 인간이 아닌 존재로 취급받은 터라 어딘가 다쳐 와도 아무도 측은해하지 않았는데. 팔이 부러져도 그 팔을 잡고 알아서 실험실로 가면 되는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어린 마나 기사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조금만 다쳐도 꼭 치료하러 가야 해요. 참지 말고요.”

“작은 상처는 보통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럼 아주 아프다고 해서 치료를 받아야죠.”

“지금 저보고 엄살을 피우란 겁니까.”

수지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군요.”

하하.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유쾌해졌다. 임무를 수행 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푸른 숲에서 불어온 산들바람이 굳은 가슴을 간질이는 기분에 미카엘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짓고는 입술을 열었다.

“다시,”

“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카엘은 준비된 장소로 걸어갔다. 동료들이 신호를 보내왔다. 힘을 집중하자 응축된 마나가 팔에 몰려든다. 팔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미카엘은 잠깐 고개를 돌려 수지를 바라보았다. 안전한 곳에 있었다.

‘다시 만나고 싶네요.’

말해서 무엇 할까. 임무를 잘 수행하면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며 미카엘은 일시에 힘을 쏟아 냈다.

* * *

“컥!”

용병은 제 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흐르는 피를 멈출 수가 없었다. 검도 꺼내 보지 못했는데. 뭐가 저를 그은 건지도 파악 못한 채로 쓰러져야 했다.

“너, 너……!”.

그 뒤로도 용병들은 차례차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져 갔다. 20명이나 되는 인원이었는데. 살아남은 자라곤 이제 용병 무리의 막내와 망토를 뒤집어쓴 연금술사뿐이다. 막내는 그야말로 공포에 질려서 가지고 있던 암기를 모두 던졌다. 그 틈에 도망가려고 한 것이지만 사내는 만만찮았다. 대다수의 암기는 몸을 젖혀 피하더니 그중 하나는 손으로 되잡아 그의 목덜미로 던져 보냈다.

“칵!”

제 소유의 암기가 목에 박힌 막내는 비틀거리다가 이내 나무에 부딪치고 말았다. 살아 있는지 팔다리가 여전히 꿈틀거렸다. 사내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그의 목에 박아 넣었다. 버둥거림이 잠시 후 완전히 사라졌다. 움직임이 멎은 것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보자 연금술사가 엉엉 울고 있었다. 오줌을 지렸는지 지린내가 풍겨 왔다. 사내는 멀뚱하게 말했다.

“이봐.”

“흐아아앙-!”

질겁해서 달아난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기는 동작이 형편없었다. 사내는 말없이 그에게 걸어가 발 하나를 들었다.

빠직!

“크아악!”

“내 말을 들어 보라니까.”

종아리 뼈를 박살 내자 울음과 비명이 커진다. 콧물까지 줄줄 흘리는 연금술사를 보면서 사내는 귀찮다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쪽도 부실까? 그래야 귀가 뚫릴 것 같아?”

“흡!”

아니란 듯이 황급하게 좌우로 머리를 젓는 청년이었다. 망토가 젖혀진 얼굴은 상당히 어려 보였다.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이런 자가 정말 의식 관련 신기술을 개발했을까 의구심이 생긴다. 렉스는 훌쩍거리는 연금술사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서둘러 돌아가야 해서 그래. 그러니까 집중해 달라고.”

“흐, 네, 흑, 훌쩍…….”

“잘 답해 주면 더 괴롭히지 않을게.”

“저, 정말요?”

“물론.”

제법 상냥하게 대꾸하는 렉스였다. 연금술사는 잘생긴 적군의 회유에 잠깐 멍해진 얼굴이었다. 아픔에 절어 있지만 않았다면 다정한 소리를 내뱉는 적군의 눈동자가 거짓말을 수백 번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인 만큼 무정하다는 걸 눈치챘겠지만 아쉽게도 연금술사에겐 그럴 여유와 눈치가 없었다.

“뭐, 뭐가 궁금하신 거죠?”

렉스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회유를 성공했다. 너무나 쉽게.

“저, 절 보내 주신다고 약속한다면 아는 걸 다 말할게요!”

30분 전. 그가 마나 보충을 위해 실험실에 도착했을 때였다. 연금술사가 대형 기구를 준비해 놓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노려보자 연금술사는 움찔하면서도 왕자 전하께 말을 들었다면서, 마나 보충은 가면서 하겠다고 더듬거렸다. 렉스를 임무로 보내기 위해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빌어먹을 왕자 새끼.’

렉스가 분통을 터트리지 않는 건 아직 연금술사들에게 알아낼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기구에 오르면서 조용한 분노를 키운 렉스는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어떻게 왕자를 골탕 먹일 수 있을까 내내 생각하던 중이었다.

“저, 저기.”

렉스가 말이 없자 눈치를 보던 연금술사가 불안하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눈앞의 사내는 무시무시했다. 하늘에서 별안간 떨어지더니 강해 보이는 용병들을 순식간에 전멸시켰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목쯤은 손가락 하나로도 부러뜨릴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의 자세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제국이 개발했다는 기술.”

“네?”

“정말 왕국을 상대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서 개발한 거야?”

“그, 그게.”

“아니, 동물 따위를 조종해서 전쟁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솔직히 가소롭잖아.”

비웃는 어조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사내였다.

“같은 편인 네가 봐도 우습지 않아?”

연금술사는 통증으로 잔뜩 얼굴을 구긴 채로, 조소를 머금은 남자를 살폈다. 그의 정체는 분명했다. 붉어진 몸만 보더라도 그는 왕국이 자랑하고 아끼는 무기가 확연했다. 제국의 가장 큰 위협이자 전쟁 승리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존재. 제국 내에서 속칭 ‘개 같은 발명품’이라고 일컬어지는 공포의 마나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거에 수만 금화를 들여 연구하고 말이야. 기껏해야 우리 손짓 한 번에 날아가고 말 무력한 짐승들을 선동해서 뭘 얻겠다는 건지. 윗선들이 진짜 어이없지 않아?”

“그, 그게…….”

개 같은 발명품, 그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개 같은 것인 렉스가 낄낄거렸다.

“덕분에 너 같은 소모 인력들만 죽어나는 거잖아. 이제 왕성으로 가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지하 감옥에서 발가벗겨져 산 송장이 될 때까지 고문 당하겠지. 아주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힉!”

“그래, 두려워하라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빌게 될 테니까. 이게 다 거지 같은 발명품 때문이란 걸 모르나? 넌 이제 죽는 것조차 맘대로 안 된다는 거야. 아무도 널 구하러 오지 않아. 감옥에서 썩어 가며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허무한 제국의 종 1인이 될 테니까.”

혀를 차며 바라보는 시선에 연금술사는 저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그, 그렇지 않아요! 허무한 일이 아니에요! 개발한 연금술은 동물 조종에 그치는 게 아니니까. 결국 인간! 당신 같은 마나 인간들을 조종하는데 쓰일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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