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좋아.”
다행히 그는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지는 씩씩하게 앞장섰다. 그가 기억을 되찾으면 지금보다는 한결 안정될 것이다. 그렇게 평안을 찾는 수지를 보면서 렉스는 조용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인다. 이 순간 무사히 유혹을 넘겼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귀엽군. 아쉽게도.’
시간은 내 편이야. 렉스는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부분인지.
남의 시간을 빼앗는 데 탁월하게 설계된 인간인 저는 빠질 때와 칠 때를 정확히 파악한다. 지금은 수지의 편안함을 위해서 물러나야 하는 시간이라면 저녁에는 가혹하게 그녀를 쳐서 육체를 가질 것이다. 그녀는 거부도 못하고 저를 받아들일 것이다. 맥없이 아래에 깔려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게 되겠지.
‘정말 짜릿해.’
상상만으로 온 몸이 뜨거워진다. 음탕하게 흐려질 그녀의 눈빛을 떠올리며 렉스는 벌써 전율이 온 것처럼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안 와요?”
“아니. 어서 가지.”
먼저 가던 수지가 의아해져 돌아보자 렉스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입가에 걸린 묘한 미소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오싹해졌다. 그날 밤. 그녀가 그의 아래에서 한동안 신음해야 한다는 건 어찌 보면 그 순간 예고된 것이었다.
* * *
“아……!”
“잘하고 있어, 한데.”
환한 달밤, 으스름한 푸른 빛이 숲에 난 작은 도로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로 옆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터에서 나무를 붙잡은 채로 수지는 엎드려서 신음을 쏟아 내야 했다.
“다리에 힘을 줘.”
렉스는 무너지려는 그녀의 허리를 바라보며 은근히 독촉했다.
“그래야 얼른 들어가니까.”
“흐, 흐읏, 모, 못, 으, 하겠어…….”
“무슨 말을. 이미 반을 삼켰다고.”
렉스는 분홍빛 살점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거대한 음경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 그곳에는 움찔할 때마다 투명한 애액이 꿀렁꿀렁 흘러내렸다.
렉스는 일부러 짓궂게 그 살들을 손가락을 눌렀다. 그러자 수지가 아, 탄식하며 고개를 젖혀 왔다. 그럴수록 더 아래를 강하게 조여서 음경을 자극했고, 음경이 자극당하면 내벽을 더 콱 누르면서 커지고 다시 수지가 반응했다. 허리를 떨며 다리를 후들거리면 또 렉스가 다리에 힘을 주라고 음순을 누르고……. 이렇게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었다.
수지가 결국 더 못하겠다고 고개를 젓자 렉스는 잘하고 있다고, 다정하게 독려 같은 독촉을 이어 갔다.
“봐 봐, 조금만 힘내면 다 들어가잖아. 내 걸 뿌리 끝까지 먹을 수 있어.”
“흐, 읏.”
“달이 넘어가기 전에 해 보자. 이게 다 들어가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
수지는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정말 기분이 좋을까. 너무 커져서 저게 다 들어가면 배 속이 찢어질지도 모르겠는데. 울음이 와락 쏟아졌다. 좋아서인지 황망해서인지 모르겠다. 키가 높은 풀들이 다리를 찌르는 것을 느끼면서 수지는 흐려진 머릿속으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나무 기둥을 바라보아야 했다.
설마 했지만 이런 곳에서 관계를 할 줄이야. 야영을 하기 위해 숲 중간에서 멈췄을 때만 해도 이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밥을 먹은 뒤 씻고 왔더니 자연스레 그가 옆에 붙는 게 아닌가. 목과 어깨를 마사지하듯 어루만지던 그의 손이 가슴을 배회하더니 어느 순간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 손길에 몽롱해진 수지는 그가 잡으란 대로 나무를 붙잡았고, 한껏 치켜 올라간 원피스를 느낀 순간, 불 같은 무언가가 엉덩이 아래를 파고들어 왔다.
바로 그의 혀. 미끈거리는 긴 감각 기관이 애무를 시작하자 모든 생각이 날아갔다. 수지는 나무를 부둥켜안은 채로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누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누가 보기라도 하면……!
하지만 그의 혀가 멍울을 빨아들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지르고 말았다. 그렇게 애무 끝에 그의 발기된 성기가 급하게 들어왔고, 수지는 얼떨결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의 성기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된 채로 벌써 30분이 흘렀다. 성기는 여전히 중간에 멈춰 있었고 긴장으로 다리에선 힘이 풀려 가고 있었다.
“저, 더, 더는……”
수지는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서 있을 수 있는 힘이 없어…….”
결국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땅에 엉덩이가 닿기 전에 그녀의 골반을 잡아 올린 렉스는 미끈거리는 음순 주위에 다시 성기를 끼워 넣었다. 아직 이완이 덜 된 입구는 음경을 아까처럼 반까지만 물었다. 렉스는 숨을 헉 내쉬는 수지를 보면서 음험하게 귓가에 속삭였다.
“가엾군. 어쩔 수 없으니 내가 좀 도와줄게.”
그녀가 헐떡거리며 제 성기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말만 하고 지켜볼 셈이었는데.
‘아직 혼자서 무리였나 보군.’
정사에 더 익숙해져야 가능한가 생각하면서 렉스는 느긋하게 성기가 연결된 부위를 손으로 만져 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멍울에서 애액이 쏟아졌고 입구가 할딱거리듯이 움찔거렸다.
수지는 아찔하고 노곤하고 짜릿한 감각에 범벅이 되어 허리를 비틀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허리는 금세 땀으로 흥건해졌다. 렉스는 그 골반을 꽉 쥔 채로 성기를 슬슬 밀어 넣었다. 그러나 좁은 입구가 아까완 달리 크게 움찔하면서 받아먹는 게 느껴졌다.
“아, 아……!”
더 콱콱 들어가는 성기에 수지의 비음도 커졌다. 워낙 조용한 숲속이라서 수지의 울음소리는 민망할 정도로 크게 울렸고 심지어 메아리까지 쳐 왔다. 수지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벌겋게 물들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훌쩍이면서 입을 열었다.
“누가 지나가면 어떡해요……! 흣!”
“누가 지나가면 내가 모를 리 없지.”
렉스도 흥분한 목소리였다. 아닌 게 아니라 덜 풀린 수지의 입구는 그야말로 천상의 요물 샘이었다. 어찌나 갈증 나게 좁고 달콤한지 허리를 밀어 넣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다. 렉스는 하체를 바짝 수지 쪽으로 밀어붙이면서 그녀의 엉덩이 살을 쥐었다. 그럼 허리에서는 완벽한 쾌감이, 손바닥에선 짜릿한 감촉이 전해져 와 렉스의 신경을 완전히 행복감으로 절게 했다.
‘어째 갈수록 더 유혹적인 몸이 되는 거 같단 말이야.’
제가 그렇게 애무해 놓은 건 생각 안 하고, 역시 만만치 않은 여자라고 생각해 버리는 렉스였다. 렉스는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수지를 보면서 그녀의 귓바퀴를 빨았다. 수지는 아! 하면서 절규하듯이 몸을 흔들었다.
“진정해, 이 시간에 여길 지나는 멍청이들은 없을 테니까. 캄캄한 밤에 숲을 지나는 녀석들은 어딘가 뒤가 구린 놈들 뿐이야. 정상적인 여행자들은 우리처럼 밤에 쉴 테니까.”
“아, 아흣……!”
“설사 있더라도 걱정 마. 근처로 다가오기 전에 모두 없앨 테니까.”
“으으흣……!”
그의 성기가 안쪽을 깊이 찔러 온다. 수지는 눈이 커져서 신음을 질렀다. 렉스는 그런 수지를 뒤에서부터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전율까지, 솜털 반응 하나까지 모두 제 것이라고 말하듯이.
“우릴 방해할 자는 아무도 없어.”
“……아!”
수지는 탄성을 내질렀다. 누가 방해했으면 차라리 좋지 않을까 하고서. 그러나 그의 열정적인 삽입은 딴 생각을 하기 힘들게 했다. 수지는 나무를 부둥켜안은 채로 모든 신경을 그와 교합하는 데에만 써야 했다.
“좀 쉬었다가 갑시다.”
한편 로리엔과 로도스 백작은 빠르게 말을 몰아 달리고 있었다. 볼리탄에서 지친 말을 새 말로 바꿔 탄 그들은 먼저 간 사령관을 따라잡기 위해서, 여관에서도 잠만 자고 바로 출발했다. 식사도 목욕도 맘껏 하지 못한 고위 귀족 로도스는 당연히 불만스러웠다. 어디까지나 사령관을 잡으면 좋은 거지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꾸만 달려 나가려는 로리엔을 부르면서 쉬자고 거듭 말했다. 그 탓에 어쩔 수 없이 고삐를 잡아당긴 로리엔은 딱딱한 어조로 응답했다.
“사령관을 혼자 귀환하게 두면 안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혹시 같이 갔다는 여종 때문입니까.”
불만이 있기 때문인지 말이 직설적으로 나왔다. 로리엔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작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얼굴을 보면서 로도스는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저렇게 상처 입은 표정이라니. 아직 그녀는 정치계에 뛰어들기엔 순진한 면이 많았다. 백작은 달래듯이 말했다.
“사령관 정도면 여자가, 신분 낮은 계집들이 외모만 보고 따를 수 있어요. 고위 귀족들도 반했다고 은근히 연정을 전하는 판인데, 하물며 신분을 동경하는 계급들이야 더하지 않겠습니까. 사령관이 성정이 있으니 다들 처음에 좋아해도 나중엔 두려워할 겁니다. 사령관은 여자라고 봐주는 성격이 아니니까요.”
그건 로리엔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으나 백작은 굳이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로리엔은 곧 침착함을 덧댄 냉기 서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여종 때문이 아니에요.”
사실 머릿속에 온통 그 여자 생각뿐이다. 렉스가 직접 데려갔다니. 죽이려고 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설마 영주의 상상처럼 불길한 짓을 하려고 데려간 건 아니겠지? 내 렉스가? 감히? 그런 여자 따위랑?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속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로리엔은 사무적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마나 때문이죠. 사령관은 마나를 보충해야 해요. 많이 소실되기 전에 미리 해 둬야 안전하게 다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마나요? 이번 임무에서 별로 마나를 안 쓴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의아하다는 듯이 백작이 물었으나 로리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나의 양과 상관없이 마나를 보충해야 한다는 건 맞는 이야기였다. 눈을 뜨고 나서 첫 임무였기 때문에 더 세심하게 몸을 돌봐야 했는데, 그걸 로도스 백작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사령관은 어디까지나 멀리 있다가 다시 수도로 온 걸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로리엔은 그 비밀을 지켜야 했다.
“마나는 중요해요. 많이 안 썼다고 하더라도 불시에 최상의 힘을 내려면 모두 꽉 차 있어야 하죠.”
“흠. 수석 연금술사니 그 부분에 대해선 잘 아시겠죠. 아무튼. 쉬었다가 갑시다. 밤중에 이 숲을 지나는 건 위험하단 말입니다.”
로도스 백작은 불안하다는 듯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두운 숲에는 정체 모를 괴물의 배 속에 들어온 것처럼 음험한 데가 있다. 어디선가 울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기에 백작은 긴장한 얼굴로 허리춤의 검 손잡이를 매만졌다. 로리엔은 그런 그가 안 보인다는 듯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