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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 보고서 (100)화 (100/163)

100화

“아…….”

하얀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쾌감. 그녀의 몸이 잘게 떨린다는 것은 제 정액이 안쪽에 골고루 퍼진다는 의미다. 렉스는 그 소리 없는 정복에 완벽한 쾌감을 느끼면서 수지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

그녀는 힘겨운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그 모습조차 꼴린다고 생각하면서 렉스는 달래듯이 살살 말했다.

“힘들지? 이젠 누워서 하자.”

“아…….”

“한 번만 더 하는 거야.”

“…….”

왠지 타협이란 없는 것 같다. 수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뒤로 눕혀지는 건 순간이었다. 침대의 폭신함을 느끼자마자 여전히 죽지 않은 성기가 그녀의 안을 파고들어 왔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각도로.

“흣……!”

퍼억 찌를 때마다 머릿속이 떡처럼 뭉쳐지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했을까. 교합하는 소리에 마치 타락이라도 한 것 같았다. 정액과 애액으로 거품이 일어 수지의 허벅지 아래로 끝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마냥 신나는 모양이었다.

“이 배를 봐, 내 걸 먹을 때마다 움찔거려.”

“읏, 흐읏……, 그, 그 상태로 만지면…….”

“왜? 너도 미친 듯이 꼴려?”

“아흐읏…….”

아찔함이 몸을 꼬이게 한다. 수지의 눈꼬리마저 가늘어졌다. 긍정이라는 표현에 렉스는 이렇게 솔직하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면서 성기를 뒤로 뺐다가 더 강하게 박아 넣었다.

“아……!”

수지의 목과 어깨가 들썩거린다. 아랫배는 바르르 떨린다. 두 다리가 와들와들 벌어졌다가 늘어지는 것을 보면서 렉스는 벌게진 눈으로 요구했다.

“표현을 잘하는 몸이야. 아주 기특해. 이런 몸은 매일매일 보고 싶으니까 절제할 생각 따윈 하지 마.”

“흐읏.”

“듣고 있지?”

수지는 아득해져서 그를 바라보았다. 차갑고 무정했던 눈빛은 이젠 숫제 돌아 버린 것만 같았다. 분명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눈이었는데. 이젠 모든 게 너무 강렬하게 느껴져서 문제다. 수지는 과연 제가 그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순간 두려워지고 말았다. 렉스는 겁 먹은 수지를 놓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약속한 건 꼭 지켜.”

렉스가 수지의 가슴에 얼굴을 내렸다. 출렁이는 유방 사이로 살결을 파고들 듯이 들어간 사내는 그곳에서만 삶의 의미를 느끼는 것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완전히 녹초가 된 수지의 귀로 여관 주인의 상냥한 음성이 가물거리며 들려왔다.

“식사 가져왔습니다.”

렉스가 방으로 음식을 주문한 모양이었다. 수지는 당연하게 문 쪽으로 다가가는 사내를 고개만 들어 응시했다. 여관 주인은 투구를 벗은 손님의 단정한 얼굴에 흠칫 놀라더니 곧 노련한 미소를 지어 왔다.

“잠자리는 편안하셨는지요?”

“나쁘지 않아.”

“그러셨나요?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부족한 게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이 방은 모든 게 최고급으로 준비된 우리 여관의 상징입니다. 손님께서 쉬시는 데 부족함이 일절 없도록 심혈의 노력을 기울여……”

휙, 탁.

장황한 설명을 끊으며 그녀의 손에서 쟁반을 낚아챘다. 그런 뒤 문을 닫아 버리자 여관 주인이 당황했는지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는 게 느껴졌다.

곧 제 위치를 깨달은 중년 여인은 계단에서 소리 없이 내려갔다. 고급 방에 머무는 여행자들 중에는 신분을 밝히지 않는 고위 귀족도 많았다. 훤칠하니 잘생긴 렉스도 그런 자들 중 하나라고 으레 생각한 그녀는 잘 모시자고 생각할 뿐이었다. 렉스가 무례한 남자든 말든 금화를 일시에 내는 손님은 늘 최고의 손님이니까.

여관 주인이 어떻게 받아들였든 간에 마나의 인간은 깨어난 이래로 가장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탁자에 쟁반을 내려놓은 그는 접시에 놓인 빨간 사과 하나를 쥐어 들고 저를 멍하게 쳐다보는 수지에게 물었다.

“먹을래?”

눈만 끔벅끔벅. 수지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씹을 힘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리 이어진 5시간 정사에 온 기운을 빼앗긴 그녀는 갈증이 난 눈으로만 사과를 볼 뿐이었다. 곧 무슨 생각을 했는지 렉스가 과실 한 입을 크게 깨물었다.

아삭아삭.

즙이 터지며 입술을 적신다. 수지는 왠지 부끄러워하며 바라보았다. 저런 것도 참 관능적으로 보이는 남자다. 사람 자체가 섹시하다는 게 저런 걸까 싶을 때, 다짜고짜 렉스가 허리를 숙여 입술을 부딪쳐 왔다.

“읍-.”

달콤하고 새콤한 향이 확 퍼진다. 수지는 목까지 빨개지고 말았다. 이래도 되나 싶던 그때, 입 안에 잘게 부순 과실들이 긴 혀를 타고 밀려왔다. 수지는 그의 타액과 함께 넘치게 그것들을 웁웁 하며 받아 먹었다.

“어때, 달콤하지?”

수지는 뜨거워진 얼굴로 고개를 까닥였다. 입 안에 아직도 그의 혀가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수지는 그의 타액과 과실들을 모두 목으로 넘기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에도 이랬었는데.”

“누가?”

“렉스가요. 첫 만남에서도 이렇게 먹여 줬었거든요.”

그 자식이 별짓을 다 했네. 렉스는 입술을 씰룩였다. 그가 과거의 저를 질투하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로 수지는 민망하게 말을 이었다.

“그때는 렉스가 절 괴롭히나 했었어요. 제 목숨을 구해 줬다는 걸 모르고요.”

“…….”

“지금은 분명히 알지만요.”

이제는 다른 마음이 있다는 걸 알 정도로 가까워졌다. 낯부끄러울 정도로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는 걸 좋아해야 할지 곤란하게 느껴야 할지. 수지는 제 몸 곳곳에 남은 그의 흔적들을 발견하곤 서둘러 침대의 천을 끌어당겼다. 몸을 가릴 게 필요했다. 입고 있던 시종 옷은 거슬린다면서 그가 정사를 시작하며 찢어 버렸으니까. 우물쭈물하는 수지를 보더니 렉스가 눈치 빠르게 말해 왔다.

“네 옷이 필요하다고 말해 놨어. 곧 사람이 올 거야.”

“사람이요?”

“재단사. 치수를 잴 필요가 있으니까.”

물론 여자로 요청했다. 만에 하나라도 나쁜 짓을 하면 안 되니 내내 감시할 생각도 하면서.

‘비, 비쌀 거 같은데.’

한편 수지는 다른 게 걱정이었다. 이 호화로운 방에 머무는 것도 부담이었는데 재단사까지 편하게 부르다니. 늪지에서 돈 한 푼 없이 생존하다시피 했던 탓인지 저도 모르게 걱정이 앞서고 만다.

“왜 그래?”

눈치를 살피자 질문이 따라온다. 수지는 망설였다가 말했다.

“아뇨, 비용이 많이 들 텐데 같이 감당하는 게…….”

그러자 그가 피식 웃었다. 그런 말을 할 줄이야. 그녀는 누군가에게 의존해 편히 살아온 사람만은 아닌 모양이다. 태어나자마자 전장에 나서야 했던 저처럼, 그녀도 적대적인 세상을 홀로 마주해야 했을까. 문득 그녀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렉스는 태평하게 남은 사과를 깨물었다.

“사령관인 나와 노예로 있던 네가 비용 부담을 같이 진다고? 그건 공평하지 않아. 돈은 앞으로도 내가 걱정할 부분이야. 넌 신경 쓰지 마. 불안할까 봐 말해 주는데 난 무보수로 일하지 않아. 적당히 쓸 금화와 보석이 항상 안주머니에 들어 있지. 임무를 위해서도 돈은 필요하니까.”

사실 이전까진 그런 것에 쥐뿔도 관심 없었다. 전쟁 사령관인 자신은 사람만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형식적으로 금화와 보상이 주어졌을 뿐, 그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이제 그런 걸 적당히 쟁여 둘 필요가 있겠군.’

수지가 안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렉스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넌 그냥 나를 따라오면 돼. 수도까진 금방이니까.”

수지는 반가워하며 물었다.

“얼마나 가면 돼요?”

“큰길을 따라서 3일. 중간에 다른 도시를 거치지 않고 무작정 달리면 더 짧게 걸리겠지. 그건 가면서 결정하도록 하자.”

무리해서 가고 싶지 않다. 이왕 수지와 함께 가는 것, 즐겁게, 야영하며 섹스하며 올라가고 싶다.

‘이건 우리의 여행이니까.’

정확히 말하면 임무 수행 후 복귀하는 길이었지만 렉스는 수지와 다닐 것만 생각했다.

한편, 그가 이렇게 희희낙락하는 동안 수지는 수도가 어떤 곳일지 상상해 보고 있었다. 왕과 왕자가 있는 왕국의 심장. 거대한 깃발과 위엄찬 궁성이 멀리서도 가슴을 설레게 할까? 아니면 두려움과 이질감을 줄까.

‘아마 둘 다겠지?’

렉스가 챙겨 주는 수프를 받아 먹으면서 생각했다. 제가 먹을 수 있는데 렉스가 굳이 주겠다는 것에 어쩔 수 없이 입만 뻐금뻐금 벌리는 중이었다. 거의 다 먹어 갈 때였을까. 배가 불러 올 즈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재단사였다.

“씨, 씻고 올게요!”

수지는 먹던 걸 멈추며 욕실로 달려갔다. 잠시 밖에서 대기한 재단사는 기다림에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갖고 온 비단을 펼쳤다. 수지에게 어떤 색이 어울릴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어떤 옷이 필요하실까요? 무도회 용 드레스일까요? 아니 가벼운 외출에 필요한 원피스?”

“아뇨, 이왕이면 긴 여행에 편한…….”

“아, 장기 외출 용이군요!”

알겠다며 수지와 색색의 비단을 번갈아 보던 그녀는 마침내 연옥색이 봄 하늘처럼 고운 비단을 골라냈다.

“어때요, 아주 멋진 색깔이죠? 외출용 원피스로 잘 어울릴 거예요!”

“어…….”

그러나 수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그 비단 뒤쪽에 바다의 파란 빛을 머금은 천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파란 빛. 늪지의 조력자, 희망의 새…….

‘어떡해.’

수지는 그야말로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잊고 있었다. 렉스를 만났다는 것에, 그리고 그와 함께 하던 일상에 여태 완전 정신이 나가서!

‘맙소사!’

정사에 눈이 멀어 기르던 새를 잊고 만 꼴이 아닌가! 수지는 미안함과 동시에 치밀어 오르는 낯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괴로워하자 렉스가 벽에 기대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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