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저, 저건…….”
멍하니 연기 아래를 보고 있던 수하는 곧 무언가를 발견했다. 로리엔이 반색을 하며 내려가게 만들 사람이었다.
“차, 찾았잖아?”
그는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고는 기구에 탄 연금술사들에게 특수 합금으로 된 족쇄를 준비하라고 외쳤다. 그렇게 위에서 사령관을 붙들 준비에 여념이 없는 동안 로리엔은 구두에 달라붙는 진흙의 물컹함을 느끼면서 도착한 장소를 둘러보았다.
‘정말 기분 나쁜 땅이군.’
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끈적거림과 음산함이 덮쳐 온다. 이방인을 반기지 않는다는 듯이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안개는 유령의 몸짓처럼 섬뜩하기만 했고 어떤 괴물이 내는 것인지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연신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로리엔은 움츠러드는 몸을 억지로 피면서 암기를 쥔 손에 악력을 가했다.
렉스만 아니었다면 이런 불길하고 불경한 늪지에 발을 디디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야.’
다시 말하면 렉스이기 때문에 이런 곳도 올 수 있는 것이다. 서둘러 그를 구해 나가자고 마음먹으면서 로리엔은 뒤쪽의 기사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아까 망원경으로 내려다본 장소였다.
‘오고 있구나.’
한편 수지는 그 근처에 몸을 숨긴 채로 로리엔과 기사들이 접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들킬까 자세를 낮춘 채 긴 수풀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그녀는 가슴이 세차게 뛰는 걸 느꼈다. 여태 렉스를 찾아 마나 폭발을 일으키고 무시무시한 자객을 보내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 저들인가. 그런 생각을 하니 그들이 무서웠고 두려웠다. 렉스가 과연 안전할 수 있을까 새삼 걱정이 되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대안 말고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렉스는 죽어 가고 있었다. 강 상류로 운 좋게 몸을 피하더라도 렉스를 일어나게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에겐 마나가 필요했고 마나를 공급해 줄 수 있는 이들은 저들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니, 이건 항복한 게 아니야.’
수지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왠지 모를 서러움과 슬픔이 올라와 그녀의 눈가를 뜨겁게 했지만 그녀는 아직 울 때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숨을 죽인 채 그들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지켜보았다.
다행히 렉스를 발견하자마자 그들은 무기가 아닌 손을 뻗어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기며 좋아하는 이는 늘씬한 체격의 여인이었다. 연한 붉은 빛의 가지런한 머리칼을 뽐내는 여인은 그들 사이에서도 가장 직책이 높은지 일일이 렉스를 어떻게 옮길 것인지를 지시하고 있었다.
수지는 재빨리 렉스를 들어서 옮기려는 그들을 보면서 손에 힘을 꽉 쥐었다. 마음 같아선 그를 따라가고 싶었다. 그들이 렉스를 데려가려는 곳까지 함께 가 그가 치료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나가면 어떻게 될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저를 살려 줄까? 수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살려 줄 리가 없어.
저들은 자신을 죽이겠다고 애초에 렉스를 이 늪지로 보낸 장본인들이다. 그러니 저를 발견하자마자 죽이려고 할 것이다. 수지는 렉스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섭고 떨리고 두려움이 엄습해 왔지만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살려야, 우선 그를 구해야…….’
수지는 기사들에게 들려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이 올라왔다. 이 늪지에서 온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외로웠다. 수지는 그 북받쳐 오르는 감정의 홍수 속에서 제 마음을 붙들 수가 없었다. 그냥 슬펐고 그와 헤어지기 싫었다.
‘위험하더라도 일단 나가 볼까?’
그런 생각마저 들 때였다. 갑자기 피부가 가려워지는 게 아닌가. 수지는 볼을 긁으면서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전조였다.
아니나 다를까. 곧 이방인의 침입을 느꼈다는 듯이 거대한 두꺼비가 나타났다. 기사들은 놀라서 검을 빼 들었다. 마나가 쏟아지고 펑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꺼비는 마나 공격에 성이 났는지 밧줄 같은 혀를 뻗어 냈다. 기사 하나가 그 혀에 붙잡혀 거대한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지직. 뼈가 부서지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로리엔이 날카롭게 외쳤다. 뒤쪽에 괴물이 몰려온다는 소리였다. 괴물이 늘어나자 렉스를 옮기던 자들까지 검을 빼 들고 전투에 합세했다.
괴물을 마주한 로리엔은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손에 쥔 암기를 꼭 쥐었다.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실험실에서 주로 근무하는 여인답게 그녀는 이런 전투가 낯설었다. 인간이 아닌 괴물과의 싸움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암기를 쥔 채 전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녀는 뒤쪽에 누워 있는 렉스를 힐끗 보고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기사들의 비명과 마나의 폭발이 이어지고 있었다.
철퍽!
“……!”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로리엔은 너무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어느새 괴물이 접근해서 렉스의 다리를 잡고 끌고 가려는 것이 아닌가. 로리엔이 돌아보자 두꺼비는 커다란 눈을 험상궂게 굴렸다.
로리엔은 굳어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두꺼비의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체액이 끔찍했고 계속되는 질척거리는 소리가 비위를 상하게 했다. 그녀는 정신을 차려 암기를 휘둘렀지만 두꺼비는 킁킁거리며 비웃듯이 머리를 휘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더 성큼 렉스를 제 입가로 끌고 갔다.
“안 돼-!”
로리엔이 비명을 질렀다.
화르르.
그때, 불이 치솟았다. 로리엔은 눈을 크게 떴다. 웬 여인이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키에 조금 더 여린 인상을 지닌 여인이. 그녀는 로리엔만큼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창백하게 변한 얼굴로도 그녀는 누군가를 위해서 손에 든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두꺼비가 고민된다는 듯이 렉스와 그것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나뭇가지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수지는 멀리 가라는 듯이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힘껏 덤불로 던졌다. 일순 불은 크게 치솟았다. 두꺼비를 유혹하듯이.
‘……렉스.’
타고 남은 거처에서 라이터를 찾아 위기를 모면한 수지는 두꺼비가 사라지자 서둘러 그를 살폈다. 다행히 다리가 두꺼비 체액에 흠뻑 젖은 것만 빼면 다친 곳 없이 무사했다.
수지는 안도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로리엔이 서 있었다. 그녀는 암기를 쥔 채로 무섭게 굳어진 얼굴로 수지를 쏘아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건 수지도 마찬가지. 서로를 보며 굳어 있던 두 사람 중 수지가 먼저 입술을 열었을 때였다.
“로리엔 님-!”
곧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에 놀라서 달려온 기사들이었다. 로리엔을 찾고 있는 그들을 보며 수지는 화들짝 근처 수풀로 뛰어 들어갔다. 로리엔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기사들이 다가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
“로리엔 님! 어디 다치신 건-.”
“난 괜찮아.”
로리엔은 그제야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금세 수풀에 머물렀다. 그 태도가 어딘가 황당한 일을 당한 것처럼 이상해 보였다. 하지만 로리엔은 말을 아꼈다. 그런 그녀에게 기사들이 불안해 보이는 얼굴로 급히 말했다. 그들의 수는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괴물이 더 몰려옵니다. 한 마리는 운 좋게 해치웠지만 지체했다가는 위험할 겁니다.”
“그래.”
로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수풀에서 눈을 떼어 렉스를 바라보았다. 귀하디귀한 사람. 자신의 발명품이자 나라의 보물. 그만 무사하면 된다. 다른 건 어떤 것도 신경 쓸 필요 없다. 로리엔은 냉정한 얼굴이 되어 그를 옮기라고 말했다. 그러자 세 명의 기사가 달라붙어서 그를 들었다. 그들은 서둘러 밧줄로 향했다.
“데려오셨군요! 정말 잘하셨습니다!”
연금술사 수하는 기뻐하며 서둘러 준비해 놓은 족쇄를 렉스의 목과 손발에 채우기 시작했다. 특수 합금으로 된 단단한 족쇄가 그의 목에 걸리는 걸 지켜보는 로리엔은 어쩐지 말이 없었다. 그녀는 방금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렉스가 위험에 처한 순간 수풀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자. 그녀는 자신을 보며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그를 꼭 살려 줘요.’
라고.
로리엔은 그녀가 말한 것이 왕국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라는 것에 첫 번째로 놀랐으며 괴물에게서 안전하지 않은 것은 똑같을 텐데 제 목숨이 아닌 그를 살려 달라는 내용에 두 번째로 경악했다.
렉스를 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왕국의 보물이자 연금술의 역작. 누구도 자신만큼 렉스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한데 갑자기 나타난 늪지의 여자 따위가 어째서 렉스를 살려 달라고 했을까. 그녀는 렉스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일까. 혹시 제국의 첩자일까.
‘아니야. 절대 첩자일 리가 없어.’
진흙이 가득 묻은 몸, 편하고 조잡해 보이는 옷. 그나마 단아한 외양과 선해 보이는 눈빛이 다일 뿐인 여자다. 그녀는 늪지의 원주민일 가능성이 컸다. 이 늪지의 괴물들처럼 아무렇게나 진흙에 뒹굴어 살아간다는 무지하고 냄새나는 야만스러운 인간들.
따라서 렉스가 누구고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모르고 그저 선망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로리엔은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렉스가 악용된 것이 아니라면 됐다. 그녀가 렉스를 위해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마웠으나 그동안 렉스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던 걸로 충분히 이번 빚을 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 깊이 생각하면 갑자기 늪지에서 연기가 올라와 렉스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 덕분이었지만 로리엔은 굳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그녀가 아니었어도 결국 자신은 렉스를 찾아냈을 것이고 그를 멀쩡하게 만들었을 테니까. 로리엔은 굳어 있는 렉스를 바라봤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이 곧 렉스의 창백한 얼굴을 훑었다. 이 잘생기고 완벽한 완성품에 흠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는 그렇게 이 늪지를 쏘다닌 걸까. 정말 까다로운 남자였다.
‘어?’
곧 그의 얼굴을 지나 목과 가슴을 매만지던 로리엔은 그의 가슴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밝은 곳에 눕히니 그 안에 박힌 파편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괴물에 당한 상처가 아니었다. 분명히 문명의 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