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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 보고서 (57)화 (57/163)

57화

“어떻게 됐죠?”

로리엔은 뒤를 힐끔 보고는 물었다. 그녀의 엄한 표정에는 초조, 불안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늪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눅눅해진 머리를 거칠게 뒤로 넘기면서 물었다. 그녀 앞에 선 연금술사는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는 손에 든 망원경을 만지작거렸다.

“그게, 괴물들이 더 늘어난 거 같습니다.”

“뭐라고요?”

황당해하며 로리엔이 망원경을 빼앗았다. 땅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에는 긴장감이 서렸다.

작은 유리에 비치는 안개 자욱한 지표. 곧 수십 개의 촉수가 무섭게 꿈틀거렸다가 사라졌다.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잠시 후 특별 기사들이 뭉쳐서 쏘아 낸 마나가 그들을 강타했으나 움직임이 경직된 것도 잠시, 더 많은 촉수가 뻗어 나왔다. 기사들은 살아남으려고 마나를 발산했다. 여기저기서 눈부신 열과 빛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지 않아 잦아들었다. 검은 촉수가 일격에 그들을 덮친 것이다. 로리엔은 천천히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그녀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연금술사가 조심스레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안개가 공격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마나를 뿜어낼수록 더 많은 괴물들이 나온다고 할까요? 참 신기합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반응하고 대응하는 것이…….”

“지금 감탄할 때가 아니에요.”

냉엄한 어조에 연금술사가 입을 다물었다. 연금술사다운 관찰력과 호기심이 반짝인 것이지만 그녀의 말대로 지금 그를 논할 때가 아니다. 수많은 기사들, 공들여 만든 발명품들이 아래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연금술사는 로리엔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일단 기사들을 불러들일까요?”

전부 죽는 일이 없도록. 연금술사가 삼킨 뒷말을 알아차리고 로리엔은 무거운 시선을 들어 올렸다. 고개를 돌리자 기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기사들이 보인다. 그들은 로리엔의 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갑옷을 입은 채 엄숙한 표정으로 일렬로 서서. 연금술사는 불안하게 덧붙였다.

“아니면 이들을 모두 내려보낼까요? 일시에 힘을 뭉쳐서 마나를 쏜다면 안개 괴물을 모두 해치울 수 있을 겁니다.”

“확신하나요?”

“그게…….”

로리엔의 질문에 연금술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싸움이나 전략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마나를 융합해 공격하는 것이 더 강력하니 괴물들을 일시에 해치울 수 있겠다 생각한 것뿐이다. 그 이후는 어찌 될지 전혀 몰랐다. 이 이상한 안개가 더한 괴물들을 불러내 기사들을 몽땅 죽일 수도 있고, 아니면 폭발의 여파가 커서 늪이 조각나 기구까지 흔들릴 수도 있다.

따라서 예측에 자신이 없는 연금술사가 시원스레 말을 못 하자 로리엔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착잡한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망설임은 짧았다.

“기구를 안개 없는 땅으로 이동시켜요.”

“네?”

“정말 못 들어서 묻는 거예요?”

연금술사는 서둘러 고개를 젓고는 기구 운전자에게로 달려갔다. 로리엔은 차분히 선창에서 내려왔다. 그녀가 다가가자 선두에 선 기사가 정자세를 했다.

“로리엔 님.”

“아더.”

금발의 사내는 고개를 까닥였다. 충직해 보였다. 커다란 덩치의 그를 바라보면서 로리엔은 생각한 바를 전했다.

“사령관을 찾아야 해요.”

“알고 있습니다.”

“그는 순순하게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에요. 가까이 다가가면 반드시 공격할 겁니다.”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억지로라도 끌고 와야죠. 이번 출정의 목표는 하나뿐이에요. 바로 사령관의 귀환. 다른 것은 염두에 두지 않죠.”

“사령관님을 모시는 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나도 괜찮습니까?”

아더의 질문은 핵심적이었다. 공격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묻는, 한계와 권한에 대한 것이었다. 로리엔은 그 질문을 곱씹으면서 아주 느릿하고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듯이.

“중상도 허용해요. 죽지만 않으면 돼요.”

그녀는 재차 강조했다.

“그를 죽이지만 않으면.”

“알겠습니다.”

아더가 명을 전달하겠다며 몸을 돌렸을 때였다. 늪을 다시금 응시하고 있던 로리엔이 그를 불렀다.

“아더.”

“네.”

“사령관을 꼭 데려와요.”

“알겠습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비장한 눈빛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아더는 그녀를 들여다볼 듯이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의 진정한 의미를 파헤치려 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것은 아군의 목숨은 물론이고 무고한 자의 죽음까지 허락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저렇게 버겁게 비장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겠지. 아더는 대꾸 없이 고개만을 숙였다.

그녀가 이번 작전을 편치 않아 한다는 것을 기구에 오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단지 사령관을 복귀시키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 늪에 와서 무자비하게 마나와 화력을 쏟아붓기를 원한 것이 아니다. 온건파라고 알려진 로리엔의 성향답게.

“다들 준비됐나? 이번 임무는 상당히 까다롭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지금으로선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 왕국의 가장 뛰어난 무기가 행방불명이 된 지금에는. 초조함과 불안으로 머릿속이 하얘졌겠지. 아더는 무심하게 대원들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죽은 듯한 눈동자의, 자신과 똑같은 기사들이었다.

“사령관님을 살려서 데려온다. 결코 죽여서는 안 된다. 목숨만 붙어 있다면 어떤 공격을 해도 무관하다.”

“팔다리가 잘려도 말입니까?”

누군가 물었다. 딱히 비하할 의도는 없는 듯했다. 그저 임무를 더 잘하기 위해 물었을 뿐. 아더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기계적인 미소였다.

“그래. 목만 붙어 있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마나 억제제도 모두 챙겼나? 마나가 부족하다지만 상대는 마나를 온몸으로 다루는 강력한 사람이니, 필수로 챙겨야 할 것이다.”

잠시 후, 기구에서 서너 개의 밧줄이 땅으로 떨어졌다. 기사들이 그 줄을 타고 내려와 늪에 발을 디디는 건 순간이었다.

“로리엔 님. 전하께서 연락하셨습니다.”

기사들이 무성한 늪지의 숲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는데 수하가 그녀를 불렀다. 로리엔은 서둘러 머리와 옷을 정돈하고는 회색 물 앞에 섰다.

[그래, 로리엔.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 중이지?]

“안개와 대치 중입니다. 나머지 기사들은 사령관을 찾아 직접 늪으로 내려갔고요.”

[안개와 대치 중이라. 역시 까다로운 땅이군. 듣기론 그 땅은 괴물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며? 모조리 없애기가 쉽지 않겠어.]

없애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군마저 살아남기가 어려운 게 문제였다. 벌써 죽은 기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미카엘을 구조해 기구로 태운 후로 멀쩡히 돌아온 자가 없었으니까. 옅은 죄책감에 말을 잇지 못하는 로리엔을 모르는 채로 왕자는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 땅으로 향했을 땐 손실을 각오하고 간 거니까. 그게 몇이 됐든 사령관보다 중요하진 않아. 로리엔이 잘 알고 있겠지만 모두가 죽더라도 사령관 한 사람이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 만약 지원이 더 필요하면 말해. 오늘 임무에 빠진 특별 기사들까지 다 찾아서 데려갈 테니까.]

“임무에 빠진 특별 기사들이요? 아.”

로리엔은 그가 누군가를 가리키는지 알아차렸다. 로리엔은 곤란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험 중에 부작용으로 정신이 온전치 않은 자들입니다. 덩달아 마나 사용도 불완전하고요. 임무 수행 중에 이상 행동을 많이 했기에 자택이나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알아. 하지만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잖아? 좀 망가진 무기이긴 하나 아직도 쓰면 쓸 수 있는 무기니까.]

“…….”

[어디까지나 힘들면 말하라는 거야. 사태가 나빠질 때까지 있지 말고.]

왠지 로리엔이 나약해질까 봐 걱정하는 어조였다. 로리엔이 그저 알겠습니다 하고 작게 대꾸하자 왕자가 다시 발랄하게 말했다.

[그래. 난 격려하려고 연락했어. 약혼식 축하 인사도 슬슬 지겨워질 참이었거든. 아무래도 나는 그런 일보다 이런 일이 더 좋은가 봐. 로리엔과 사령관이 언제 올까, 무슨 소식을 전해 줄까 종일 그것만 궁금한 걸 보면.]

“곧 함께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어. 무사히 꼭 돌아오라고!]

밝고 경망한 어조로 마지막 인사를 날리는 왕자였다. 로리엔은 진동을 멈춘 회색 물을 잠시 바라보았다. 왕자는 가벼운 듯 보여도 늘 이렇듯 꼼꼼하고 치밀하게 상황을 살핀다. 그가 왕의 뒤를 잇는 것은 그저 핏줄이라서가 아니라는 걸 알려 주듯이. 로리엔은 잠시 능글맞은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가 얼른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곧 그녀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까만 머릿결의 사내였다. 약간 날카로운 듯 반듯한 이마와 콧대를 지닌 남자. 검은 눈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지닌 사람 말이다.

로리엔은 그를 떠올리니 머릿속이 맑아짐과 동시에 반대로 마음은 불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렉스가 벌써 며칠째 그녀 곁을 떠나 있어서 그런 걸까. 로리엔은 그를 보면 왜 이제야 온 거냐고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렉스, 얼른 돌아와요.”

왕자 앞에 멋지게 제복을 입고 함께 왕성에 인사를 드리러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듬직하고 훤칠한 그를 자신의 보물처럼 내세우고. 로리엔은 불안하면서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늪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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