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아, 아…….”
공을 들인 보람이 있는지 질구가 움찔거렸다. 허리 아래가 따끔거렸다. 성기가 그 야한 모습에 제대로 자극당했는지 아까부터 묵직하게 부풀어서 그의 허리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렉스는 바지를 내렸다. 불쑥한 것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자 음경 윗부분을 잡아, 질구에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수지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천천히 할게.”
렉스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달랬다. 고양된 감각은 그녀를 정신없이 찌르고 탐하라고 하지만, 렉스는 이성의 줄기를 가다듬어 그녀를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렉스는 허리를 숙인 채로 다시 한 번 떨고 있는 그녀의 귓가에 말했다.
“천천히 부드럽게. 기분 좋게 할 테니까 긴장하지 마.”
렉스는 그녀가 가장 안심이 되는 말을 해 주었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마음이 놓이는지. 뻣뻣했던 육체가 다정한 어조에 누그러지듯이 풀어졌다. 이윽고 이물질이 낀 것처럼 뻑뻑했던 질구 사이를 단단한 게 밀치며 들어왔다.
과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했고 온순했다. 수지는 몸이 풀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몸이 마음을 따라가듯 다리가 벌어지자 렉스는 그대로 수지의 내벽을 꽉 채우며 고환 아래까지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아-.”
수지의 달콤한 신음이 큰 한숨처럼 빠져나왔다. 성기의 삽입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해 가는 수지의 얼굴은 그 어떤 자연의 풍경보다 황홀했다. 렉스는 황홀하다는 감상을 모르는 자였지만 표정의 다채로움에 감격할 수 있는 자였다. 렉스는 목 안에서 큿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지?”
“뭐, 뭐가, 읏……! 아!”
“내가 있어서 좋다는 표정 말이야.”
내가 그런 표정인가. 수지는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왠지 부끄러웠다. 몸으로 느낀 쾌락이 얼굴 바깥으로도 드러난 걸까. 사실 그와 몸을 부딪치는 게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아서 허락했고 그래서 마음껏 반응했다. 하지만 그게 너무 솔직한 반응이었나 생각이 들었다.
수지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렉스는 쯧 하며 혀를 찼다. 그의 눈썹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좋은 걸 왜 감추려 드는 거야? 마음껏 찡그리고 신음해 줘. 솔직한 네 얼굴이 더 꼴리게 만드니까.”
거짓이 아니다. 수지가 쾌락에 겨워 콧소리를 내며 눈가를 찌푸릴 때면 더욱 팽창해 버린 자신의 성기를 느끼니까. 렉스의 말에 허를 찔린 듯이 멍하게 있던 수지는 곧 렉스의 추삽질에 연신 뜨거운 탄성을 터트려야 했다.
“아, 아…….”
그 뒤는 말이 없었다. 렉스는 수지의 안을 느끼느라 정신이 없었다. 너무 육체에 파고들면 정신이 날아가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수지의 육체에 집중했다. 과실 같은 수지의 몸은 먹으면 먹을수록 단물이 빠져나오는 것만 같았다. 신기했고 또 기가 막혔다. 좋아서 몰입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달으면서 렉스는 수지의 몸에 자신의 성기를 맞춰 넣었다.
“으, 음…….”
정사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주는 여운은 서로의 몸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터라 더욱 길게 이어지는 것 같았다. 수지는 렉스의 알몸에 안긴 채로 열기가 사라지지 않는 얼굴을 흔들었다. 왠지 열이 떨어지지 않는 게 조금 민망했다. 너무 좋다고 신음을 질렀기 때문인가. 민망해하는 수지를 보며 렉스가 물었다.
“왜 그러지? 어디가 아프나?”
정사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아서요. 라고 대답할 수 없어 수지는 말을 돌렸다.
“그, 그게 의아해져서요. 갑자기 왜 이런 상태가 됐는지.”
“하고 싶으니까.”
렉스의 대답은 단순했다. 수지는 그래서 움찔 굳었다. 그냥 충동적이었다는 대답 같았다.
“그 이유 말고 다른 말이 필요한가? 나는 널 보고 있으면 흥분해. 아래로 열이 쏠리고 머리로는 야한 생각이 가득해지지. 너라는 존재를 탐닉하지 않고는 미칠 것처럼.”
“저, 절 보면요?”
렉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숙여 눈을 맞춰 온 그는 매우 진지해 보였다.
“실망스러운 대답인가?”
그는 수지의 표정 어딘가에 있는 아쉬움을 읽었다. 수지는 정곡을 찔린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사실 그가 자신과 같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설렘이 차고 넘쳐서 당신을 안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렉스는 자신이 아니었다. 렉스에 대한 감정은 수지란 사람의 것이지 그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수지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몰라서요.”
렉스의 시선이 빤히 수지에게 닿는다. 수지는 왠지 긴장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러니까 함께 있고 도움을 받지만 그게 전부인가 싶어서…….”
네가 좋다는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유치하지만 그게 수지가 바라는 거였다.
“넌 내 적이 아니야.”
하지만 렉스는 다른 말을 했다. 수지를 안심시키려 한 말인데 도리어 수지의 표정은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변했다.
“저, 적이요?”
렉스는 당황하는 수지를 무겁게 쳐다보았다.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라는 인간을. 자신이라는 존재를. 렉스는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아군이냐, 적이냐. 그게 내가 상대를 판별하는 기준이지.”
렉스의 설명에서 수지는 무겁고 답답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알게 해 주는 말. 수지는 쿵쿵 뛰는 심박을 느끼면서 물었다.
“렉스, 직업이 뭔지 물어도 돼요?”
“…….”
“그, 그러니까 여기 원주민 같지는 않아서요.”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가 만난 원주민들은 렉스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들이었으니. 수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알려 주기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가 아니다. 알려 주고 난 뒤의 수지의 반응이 두려웠다.
‘두려워? 뭣 때문에?’
렉스는 저조차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수지는 그 반응에 당황해서 말했다.
“곤란하다면 안 알려 줘도 돼요. 아니, 나중에 알려 줘도….”
말을 바꾼 것이 조금 부끄러워지고만 수지였다. 하지만 마음은 솔직하게 그가 하는 일을 궁금해했고 수지는 그런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그와 마음과 몸을 나누려면 오히려 더 솔직해져야 사이가 좋아질 거라 생각하면서 수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 렉스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서요. 그래서 더 잘 알고 싶은데…….”
“무섭지 않나? 잘 알게 됐을 때의 결과가.”
렉스의 느닷없는 질문에 수지는 멈칫했다. 그를 보자 왠지 긴장한 것처럼 눈빛이 딱딱해져 있다. 알려 주기 어려운 이유. 그건 상대가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수지는 그의 침묵한 눈동자를 보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그래도 알고 싶어요.”
“…….”
“렉스가 누구인지.”
수지는 이 말을 오래 기다려 온 사람처럼 읊조렸다. 그를 만나고 나서 늘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렉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추리도 해 보고 상상도 해 보았지만 역시 본인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면 알 수 없었다. 수지는 남이 알아서 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답을 찾아 스스로 움직이는 여자였다. 따라서 그녀는 말이 통하면 물어보리라 마음먹었고 실제로 그를 이행하고 있었다.
신념이 분명한 눈동자를 보면서, 렉스가 마침내 졌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군인이야. 왕국의 종이지.”
“왕국? 공주가 있고 왕자가 있는, 그러니까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는 곳이요?”
“…….”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민망해지고 마는 수지였다. 수지는 자신이 너무 유치하게 대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동화책 아니고는 왕국이란 단어를 써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수지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왕이 없거든요. 사람들은 투표를 해서 대표를 뽑아요. 왕이나 이런 사람들은 모두 옛날에 사라졌고 신분은 평등해졌죠.”
“여긴 아니야.”
렉스는 딱 잘라 말했다.
“이곳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 있지. 그 뒤를 이을 왕자도 있어. 화려한 무도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그나마 공주는 없군. 렉스는 덧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지는 그 탓에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야 했다. 왠지 모를 딱딱함이 느껴졌다. 렉스는 일어서서 기계적으로 설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계급은 명확해. 신분은 주어져 있지. 신분에 따라서 할 일도 정해져 있고. 나는 약간 다른 경우지만.”
“다른 경우?”
렉스는 옷을 입은 뒤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런 이야기가 모두 생소하다는 그녀는, 어떻게 보면 조난자였다. 외딴 세계에 떨어져 자신이라는 재난을 만나 버린.
“난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인간이거든. 누군가의 품에서 온기를 갖고 태어난 게 아니라 용도에 맞게 실험실에서 주조됐다.”
따라서 그녀에겐 설명을 자세히 해 줄 필요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모든 걸 모른 척하고 있었던 일말의 죄책감으로. 렉스는 냉정하게 자신을 정의했다.
“나는 알도스 무어 렉스. 왕국의 전쟁을 도맡기 위해 태어난 실험실의 인간이다.”
수지는 왠지 가슴이 시려 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뻣뻣하게 굳어 있자 렉스는 문가에 선 채로 그녀를 바라봤다. 수지가 납득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여유가 없었다. 렉스가 문을 바라보고 수지를 바라보자 무언가를 눈치챈 수지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그에게 수지가 물었다.
“아까 나를 찾는 수식이 발동됐어.”
“수식이요?”
수지는 생소한 개념에 되묻고 말았다. 렉스가 대답했다.
“마나를 찾기 위한 수식. 내 몸의 구성 성분을 찾으려고 시현된 거야. 내가 왕성으로 돌아오지 않으니까.”
수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멍해졌다. 모든 게 새로웠으나 특히 마지막 말이 가슴에 들어왔다.
“왜 돌아가지 않았는데요?”
수지의 질문에 렉스의 시선이 문 너머에서 수지에게로 옮겨 왔다.
“너를 만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