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아, 아!”
성기가 질구를 드나드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 체액이 튀는 소리가 귓속으로 적나라하게 들려올 때마다 수지의 목청도 더욱 가열되었다.
강렬한 쾌감이 주는 만족은 단순히 육체적인 쾌락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수지에겐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섹스였고, 그 섹스에서 오가는 만족을 그와 함께 느끼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따라서 수지는 쾌감이 관통한 눈동자로 렉스를 바라보았다.
그 감정이 일렁이는 눈동자를 응시한 렉스는 잠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수지의 감정 농도를 읽자 일순간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왜 내게 호감을 느꼈지?’
육체적으로 반했기 때문일까? 자신의 남성성에 반한 거라고? 보통 자신에게 접근한 자들은 자신의 외양보다 분위기에 기겁했다. 호감보다는 공포란 감정이 그들을 압도했다. 무기로 만들어진 렉스에겐 그들의 반응이 낯선 게 아니었다. 본능은 늘 위험한 물건이나 상대를 피해 가도록 해 준다. 그게 인간이 이 땅에서 오래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이유였다. 한데 수지는.
‘어째서 두려움을 느꼈는데도 내 곁에 머문 거지?’
그것이야말로 이상하고 기이한 일이었다. 수지는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곁에 남았고 그를 쫓아다녔다. 이 극악한 환경에선 어찌 보면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제한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서 도망가거나 피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가 늪지의 괴물이라 생각해 멀리멀리 떠날 수도 있었고 자신을 죽이기 전에 해치려고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지는 그러지 않았다.
그를 따라다니며 살아남았고 그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했다. 그와 눈을 맞춰서 그의 감정을 읽으려고 했으며 공포를 느껴서도 숨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시키려 했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라는 듯이.
‘역시 다른 세계의 존재라 특이한 걸까.’
렉스는 수지의 감정이 점철된 눈동자를 보았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쾌락만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렉스는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비볐다. 좁고 습한 동굴에서 촉촉한 혀를 꺼내 비비고 타액을 넘겨주자 아래가 더욱 좁혀들며 자신의 남성을 자극해 왔다.
렉스는 치열한 신음을 삼키면서 수지의 더 깊은 속살을 느끼려 파고들었다. 위와 아래 모두. 파헤치지 않고선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녀가 나를 떠날 수 없다면 나쁠 게 없지.’
렉스는 군인답게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따라서 승리한 자의 미소를 띤 채로 수지에게 더욱더 매달렸다. 수지가 주는 달콤한 쾌락들에 취해서 한동안 렉스의 허리는 멈출 줄 몰랐다.
“왜 그래요?”
부끄러운 한낮의 정사도 끝날 때가 있다. 수지는 렉스가 일어나는 모습을 붉어진 눈가로 바라보았다. 자신은 아직도 정사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해 몽롱하기만 한데 렉스는 기민하게 일어나 바지를 챙겨 입고 있었다.
“근방에서 기척이 느껴져.”
렉스의 시선이 밖을 향하고 있었다. 날카롭게 좁아진 눈매를 보면서 수지는 주춤 몸을 일으켰다.
“두 명, 아니 적어도 셋 이상.”
렉스는 수지에게 침대 옆에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수지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렉스가 홱 나가고 나자 수지는 떨리는 손으로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괴물의 습격인가?’
수지는 두려움에 휩싸여 렉스가 만들어 준 막대기를 꼭 쥔 채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정적 속에서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렉스가 아니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자였다. 이런 늪지에서 들리는 여자 목소리라니. 수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며시 문밖으로 나온 수지는 주위를 살펴보고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안개를 뚫고 걷기 시작했다.
소리의 근원지는 멀지 않았다. 덤불이 무성한 숲 안쪽이었다. 수지는 막대기로 조용하게 앞길을 찰싹거려 가며 길이 안전한지를 확인했다. 덤불을 지나자 안개가 흩어지면서 시야가 명확해졌다.
‘어?’
소리 지른 이는 분명히 여자였다. 나뭇잎 사이로 얼굴은 가려져 있었지만 몸의 형태가 자신과 비슷했다. 젊어 보이는 여인은 이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멈추곤 무언가를 낑낑거리며 땅에서 빼내려고 하고 있었다. 수지는 그런 그녀의 뒤로 징그러운 가재 괴물이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수지는 저도 모르게 나뭇잎을 뚫고 나와서 소리쳤다.
“조심해요!”
“뭐?”
수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괴물 가재가 집게발을 여자에게 내리쳤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간발의 차이로 피한 여자는 너무 놀라서 주저앉은 채로 공격한 괴물을 멍하니 쳐다보았다가 이내 수지를 바라보았다.
“어?”
“루지?”
강 상류 마을에서 만났던 여인이었다. 반가워하며 수지가 입을 열려는 찰나 가재가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수지는 루지에게 피하라고 외치면서 재빨리 막대기를 휘둘렀다. 넓은 면이 찰싹하면서 가재의 옆구리를 때리자 가재가 아픈 듯 머리를 바닥에 쿵쿵 박았다. 수지는 그 틈을 타서 얼른 쓰러진 루지의 손을 잡아 주었다.
“괜찮아요?”
“저, 저 외에도 저기, 바밀도 구해야 해요!”
수지는 그녀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땅속에 목까지 박혀 있는 사내가 있었다. 가재에게 당한 것인지 목과 어깨 부근이 피로 점철되어 있었다. 수지는 루지를 자신의 뒤로 오게 하며 막대기로 가재의 집게를 집중 공격했다. 제일 위협이 되는 것을 부숴야겠다는 생각에 그런 것인데 오히려 가재의 분노를 샀는지 집게로 막대기를 되잡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꺄!”
수지가 끌려가자 뒤에 있던 루지도 함께 끌려갔다. 수지는 당황해서 뒤로 몸을 빼려고 했으나 가재의 힘은 만만치 않았다. 철판을 긁는 듯한 기괴한 울음을 내며 수지를 잡아먹으려고 촉수처럼 튀어나온 입을 딱딱거렸다. 수지는 가시가 돋친 입 안을 보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벗어나려고 했는데 힘이 부족하다. 루지도 그녀의 허리를 껴안은 채 돕고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어떡해.’
수지는 가까워지는 집게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막대기를 놓았다. 그러자 힘의 반동으로 수지와 루지는 뒤로 넘어지고 가재는 막대기를 잡고 휘청거렸다. 곧 정신을 차린 가재는 막대기를 힘으로 분질러 버리고는 수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침대 옆에 숨어 있으라고 했을 텐데.”
언제 나타났는지 렉스는 가재를 퍽 걷어차며 말했다. 축구공처럼 날아간 가재는 곧장 나무로 퍽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갑각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직도 건재하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렉스는 어깨에 들쳐 메고 있던 인간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큰 보폭으로 걸어가 가재를 다시 걷어찼다. 그리고 군홧발로 콱콱 밟기 시작했다.
‘……!’
화가 난 것처럼 밟아 대는 통에 가재의 몸은 산산이 분절됐다. 가장 커다란 조각이 완전히 곤죽이 되어 움직이지 않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싸늘한 시선에 정신을 차린 것처럼 루지가 쓰러진 인영을 살폈다.
“파루!”
익숙한 이름이었다. 수지는 그게 마을에서 보았던 전사의 이름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쪽을 보고 있으려니 곧 긴 그림자가 졌다. 렉스였다. 렉스는 수지의 헝클어진 머리와 놀란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고는 인상을 썼다.
“잘 모르는 인간을 위해 목숨을 걸지 마.”
조금만 늦었으면 네가 다칠 뻔했잖아. 굳은 얼굴로 렉스는 수지를 쏘아보았다. 수지는 알아듣지 못했으나 분위기를 보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왜 저리 화가 났을까. 그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일까? 침대 옆에 있으라고 했는데. 수지는 힐끗힐끗 그를 바라보다가 파루를 껴안은 루지에게 시선을 주었다.
‘설마 죽은 건가?’
수지는 신음을 삼키며 루지에게 뛰어갔다. 그 탓에 수지의 얼굴을 쥐고 무사함을 살피려던 렉스의 손이 공중을 헤매야 했다.
“…….”
렉스의 눈길이 짙어졌을 때, 루지의 외침이 커졌다.
“파루, 눈 떠 봐!”
애처로운 목소리에 전사의 눈꺼풀이 조금씩 떨렸다. 이윽고 힘겹게 눈이 떠지자 루지가 감격해서 외쳤다.
“정말 다행이야, 파루!”
와락 그를 껴안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애잔해 보였다. 수지는 옆에 서서 잠자코 그들이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렸다.
“다친 데는 없나.”
하지만 그녀와 다르게 곁으로 다가온 렉스는 수지의 안부부터 확인했다. 겉으로 전해지는 기색은 멀쩡했으나 또 모를 일이었다. 괴물들 가운데에선 독을 쓰는 것들도 있었기 때문에 재차 확인을 위해 물은 것인데 수지 대신 루지가 렉스를 향해 반응했다.
“당신, 당신이 이랬어요?!”
파루의 옷은 피로 젖어 있었다. 배 중앙에 생긴 상처를 보며 루지는 매서운 눈으로 렉스를 쏘아보았다. 렉스는 반면 무심하게 전사를 살폈다. 일반인이었으면 죽었을 만한 상처인데. 꽤 맷집이 있는 자였다. 렉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루지는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훌쩍거릴 것처럼 어깨를 들썩였고 곧 코를 훌쩍거렸다. 금세라도 둑이 터질 듯이 울 듯한 그녀를 보면서 다행히 파루란 자가 입술을 떼었다.
“저, 저자가 그런 게 아닙니다. 이상한 개구리 괴물에게 당한 것이죠. 오히려 저자가…….”
파루는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렉스를 바라보았다.
“저를 구해 주었습니다. 물웅덩이로 끌려가기 직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