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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 보고서 (34)화 (34/163)

34화

“하아.”

얼마나 했을까. 수지는 눈앞이 어릿거렸다. 목표한 것을 집중 공격하는 렉스의 성향대로 아래는 완전히 점령당했다. 수지는 흥분해 물을 엄청나게 흘려 버린 자신이 민망하기만 했다. 축축하게 젖은 음부와 허벅지, 엉덩이가 느껴져 눈을 뜨기도 민망한데 렉스가 어느새 혀를 할짝거리며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렉스는 수지의 눈이 보고 싶었다. 감정이 면밀하게 드러난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지의 뺨을 혀로 길게 핥자 난감함과 곤란함, 민망함과 쾌락에 눈뜬 눈동자가 자신을 향했다. 렉스는 소리 없이 미소 짓고는 수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아-.”

탄성은 그의 목구멍으로 삼켜졌다. 커다랗게 부푼 성기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젖은 입구를 쑤셔 들어갔다. 내벽의 조임을 완벽하게 느끼면서 안쪽을 크게 뚫자 수지의 눈가가 붉게 일그러졌다. 그 변화가 야했으므로 렉스는 미소 띤 얼굴로 수지의 혀를 마구잡이로 빨아들였다. 타액과 타액이 요란하게 섞이고, 애액과 정액이 하모니를 이루었을 때 수지의 쾌락 곡선은 절정에 달했다.

수지는 눈물을 머금은 채 하나의 불덩이 같은 그의 몸을 껴안았고 그의 열기는 깊숙이 수지의 몸 안에 자리 잡았다.

그가 없어도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몸이 뜨거운 천에 들어갔다가 나온 거 같아.’

수지는 눈을 느릿하게 껌벅였다. 정사가 끝나고 난 여운에서 그녀는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렉스는 가물거리는 그녀의 눈을 보면서 자란 듯이 눈을 천천히 지그시 감는 시늉을 했다. 수지는 자고 싶었으나 정사를 끝낸 열기에서, 그리고 이 늪의 고유한 열기에서 느긋이 잠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씻는 시늉을 하자 렉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수지는 나갈 준비를 했다.

샘은 저녁에도 고요한 정취를 자랑했다. 지난날 렉스가 잡은 우두머리 뱀 때문인지 샘 주변에는 온순한 동물들이 모여 있었다. 물을 마시던 그들은 렉스가 다가가자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도망갔다. 수지는 눈치가 참 빠르구나, 생각했다.

‘아, 시원하다.’

샘의 물은 차가웠다. 정신이 들 만큼 달고 깨끗했다. 수지는 몇 번 손으로 목을 축이고서 나서야 몸을 담갔다. 렉스는 그사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근처에서 저녁거리를 잡거나 열매를 따고 있을 것이다.

수지는 걱정하지 않고 팔다리, 그리고 상체와 하체를 손으로 가볍게 훑었다. 열기가 걷히자 그제야 뜨거웠던 마음도 진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수지는 차분한 눈으로 물을 바라보았다. 맑은 샘에는 수지가 일으킨 파동으로 물결이 출렁였다.

‘그러고 보니.’

수지는 문득 간과하고 있던 점을 떠올렸다.

‘피임도 안 하고 했네.’

이 세계에 와서 정신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수지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무모했음을 깨달았다. 렉스는 어땠는지 몰라도 자신도 너무 대책 없이 몸을 섞었다. 이 늪에서 임신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그랬을까. 뒤늦게 찾아온 이성적인 후회에 수지는 인상을 왈칵 찡그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생리할 때가 되지 않았던가? 생리를 안 하는 이유가 혹시 그것 때문일까? 수지는 자신의 납작한 배를 두 손으로 훑으면서 걱정스레 시선을 떨구고 말았다.

“왜 그러지? 뭐를 삼켰나.”

렉스가 어느새 곁에 와 있었다. 그는 손에 든 푸른 열매를 던지면서 샘으로 첨벙 들어와 수지를 살폈다. 수지는 자신을 걱정하는 그가 고마우면서도 난처했다.

“배가 아픈가?”

수지가 두 손으로 배를 만지는 걸 보며 렉스가 재차 물었다. 수지는 멈칫했다가 입을 벌렸다.

“그게요. 우리…….”

우리 뭐라고 말하지? 어떻게 몸 상태를 설명하지? 수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래서 그를 당황한 눈으로 쳐다보자 렉스가 그녀를 위아래로 훑더니 천천히 말했다.

“다친 거 같진 않고. 뭘 삼켰나? 배가 아파?”

“어…….”

수지가 말을 못 하고 있자 렉스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보았는지 그녀를 번쩍 안았다.

“렉스!”

“이럴 땐 누워 있는 게 좋아.”

렉스는 그대로 거처로 달렸다. 수지는 순식간에 멀어지는 샘을 보았다. 렉스는 빠르게 이동했고 수지는 오래지 않아 거처의 허름한 나무 침대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누워서 렉스를 바라보고 있자 생각에 골몰한 듯 찌푸려진 미간이 보였다. 렉스는 손으로 수지의 몸을 천천히 점검했다.

“느껴지는 기척은 정상인데.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단 말인가?”

중얼거린 그는 주머니를 뒤져서 마법 가루를 가져왔다. 일단 급한 대로 배에 뿌리려는 움직임에 수지는 얼른 놀라서 그의 손을 붙잡았다.

“아뇨! 렉스 괜찮아요! 다친 거 아니에요!”

귀한 가루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진짜 필요할 때만 써야지. 수지의 거부에 렉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배가 아프지 않다는 의미인가? 근데 왜 배를 쓰다듬고 있지? 렉스는 수지의 표정을 살폈다.

수지의 얼굴엔 어딘가 초조함이 있었다. 배를 쓰다듬는 동작, 부끄러운 듯 걱정되는 시선. 그리고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에서 렉스는 그제야 수지가 뭘 염려하는지 알아냈다. 흔히 임신한 군인들이 배를 쓰다듬으며 했던 동작들과 비슷했던 것이다.

“임신, 그걸 걱정하고 있군.”

렉스는 손을 뻗었다. 수지는 갑자기 제 손 위에 렉스의 손이 얹어지자 당황하고 말았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건조한, 그러면서도 차가운 눈빛이 쏟아진다.

“염려하지 않아도 돼. 내 육체는 마나로 구성된 거라 일반 인간들과 달라. 아무리 해도 아기가 생기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뭐라는……. 렉스, 뜨거워요!”

렉스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갑자기 그의 손이 뜨거워지자 당황하고만 수지였다. 배를 지질 것처럼 붉어진 손을 보며 수지가 당황하자 렉스가 손을 거뒀다.

“알려 주려는 것뿐이야. 내 몸이 일반 사람들하고 다르다는 것을. 마나로 구성된 육체는 무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어도 임신에는 최악의 환경이라는 것을.”

…….”

“임신은 되지 않아. 마나가 방해하거든.”

그러나 렉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수지는 겁먹은 듯이 그에게서 물러났다. 렉스는 동요 없이 눈을 돌렸다. 수지가 무사하니 다행이다. 아프지 않다면 저녁도 먹을 수 있을 테고. 저녁거리를 구해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렉스는 발을 옮겼다. 어차피 수지를 바로 이해시킬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임신하지 않는 자신의 몸을 알게 될 테니까.

렉스가 나가고 나자 수지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왜 손을 빨갛게 만들었지?’

하필 배에다가. 수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걸까. 빨간 피부와 배, 임신의 상관관계를 떠올리며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자신이 배를 만지는 것을 보면서 렉스가 회의적인 눈빛을 했다는 것이다. 이 안에 무언가 생길 리가 없다는 듯이.

‘되지 않기 때문인지, 싫기 때문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수지는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몸을 사리자고 결심하던 그날, 샘에서 머리를 씻던 수지는 미용실에서 자른 머리카락이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딱 등의 높이까지 정해 주어 자른 터라서 길이가 변하면 모를 수가 없었다.

‘더워서 머리도 늦게 자라나?’

수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며 머리를 뒤로 넘기던 수지는 문득 눈썹에 시선이 머물렀다. 늘 빨리 자라서 다음날이면 다듬어 줘야 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 넘어왔던 날, 그대로의 단정한 눈썹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수지는 할 말을 잃고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라나지 않는 머리카락과 눈썹. 다치면 금방 제 모습을 찾는 피부. 이 두 가지 현상에서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세계에선 제 몸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거라고.

‘생채기가 빨리 나아서 조금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몸의 시계가 멈춰져 있는 거였나? 그럼 지금 내 상태는 뭐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닐까? 수지는 그만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기분이 역해졌다.

수지는 막막해져서 렉스를 바라봤다. 그는 짐승을 조리하고 있었다. 늘 군더더기 없이 정확한 동작으로 거죽을 벗기고 부위를 자른다. 불에 굽고 익히고 하는 모습들이 안정적이다. 그 흔들림 없는 굳건한 태도에 이상하게도 수지는 위안을 받았다. 자신이 어떤 존재라도 그에겐 상관없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는 모르겠지만…….’

수지는 불안해져서 그를 바라봤다. 그때 렉스가 그녀를 불렀다.

“와서 먹지.”

수지는 주춤거리며 그의 앞에 앉았다. 고기를 넘겨주는 것을 거절하고 직접 손으로 먹기로 했다. 뜨거운 고기를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씹으면서 수지는 생각했다. 여기서 자연스레 답이 나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몸이 일절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낀 수지는 자신의 몸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 답을 주겠지.’

수지는 렉스를 보았다.

‘그의 도움을 받아서 나가 보자.’

앞으로 할 일이 정해지자 답답함이 조금 가신다. 수지는 고기를 삼키면서 당장 오늘부터 나가는 길을 모색해 보기로 했다.

렉스는 수지의 변화를 느꼈다. 그녀는 더는 안에서 자신이 할 일을 찾지 않았다. 자꾸만 밖으로 나가 높은 곳을 살피려고 했다.

렉스는 그녀가 원한다면 반대하지 않고 데려다주면서 수지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확고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잠자코 수지의 행동을 살피던 렉스는 수지가 다음날 땅에 끄적거리는 것을 보고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것은 지도였다. 어설프긴 해도 수지는 곡선과 직선을 이용해 근방의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긴 강줄기를 중심으로 왼쪽 아래에 집 모양의 거처를 표시한다. 울창한 숲과 갈대숲을 뭉게구름처럼 그려 낸다. 강줄기 상류에 있던 마을과 강 건너편의 원주민 마을을 둥글게 표시한다.

찬찬히 그 지도를 보고 있던 렉스는 수지가 강 하류에 물음표를 해 놓은 것을 확인했다. 그 외에도 숲을 벗어났을 때, 언덕 너머를 지났을 때, 가 보지 않은 지역들은 모조리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었다. 렉스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살고 있는 지역을 궁금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궁금하다고 해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렉스는 개의치 않아 하며 여느 날처럼 아침에 먹을 고기를 다듬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오후에는 가공한 푸른 열매를 끓여서 말릴 참이었다. 그런 다음 마법의 가루랑 섞으면 통역을 하는 데 쓸 수 있겠지. 차분히 다음 일을 생각하며 손질하던 짐승을 뒤집는 렉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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