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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 보고서 (25)화 (25/163)

25화

구더기 사냥은 두 번이나 더 이어졌다. 렉스는 수지가 눈치챌 수 없는 무언가를 감지하면 멈춰 서서 미끼를 던졌다. 그러면 코가 올라왔고 구더기가 나타났다. 익숙하게 사냥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수지는 렉스가 이곳에 와 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 늪지의 모든 곳을 가 봤을까?’

자신이 찾고 싶은 장소까지. 수지는 이곳을 나가는 출구를 떠올려 보고는 렉스가 노려보는 하늘을 응시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란 새가 넓게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경계하는 렉스와 다르게 수지는 새의 자유로운 비행을 부러워했다.

새라면, 날개가 있는 저 새라면 언제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발에 밟히는 감각이 딱딱하다고 느끼자 어느새 둔덕 위였다. 돌로 이루어진 정상은 늪지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했다.

수지는 감탄하면서 자신이 머무르는 거처를 먼저 확인했다. 그쪽은 주변에 물웅덩이가 많았고 갈대와 숲이 우거졌다. 안개까지 짙게 깔리면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둠이 깊어지는 장소였던 것이다.

“저쪽엔 뭐가 있죠?”

수지는 쭉 둘러보다가 강물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켰다.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렉스는 거길 보더니 수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와 같은 사람들이 있지.”

“무슨 의미예요? 여자가 있다고요?”

“너와 나 같은 사람들. 왕국에 살다 도망친 수배자들이 이 습지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고 수백 년간 생존해 오고 있다고 들었다. 그들 나름대로 이 생태계에 적응해서 말이야.”

자신과 그녀를 번갈아 가리키는 손가락에 수지의 눈동자가 둥글게 커졌다. 그 커진 눈에는 기대감이 들어차 있었다. 만나 보고 싶다는 감정이 진하게 느껴지자 렉스는 조금 미간을 찡그렸다. 수지를 다른 인간들과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섬일지라도 결국 왕국의 인간들이니까. 수지가 낯선 세계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좋은 반응을 보일 리가 없었다.

“갈 수 없는 건가요?”

마땅찮다는 눈빛을 읽자 수지의 목소리가 우울해졌다. 렉스는 곤란하다는 듯이 눈매를 가늘게 떴다. 다른 인간들을 만나 봐야 좋은 게 뭐가 있을까. 하지만 알려 주었는데 못 가게 하는 것도 괜한 충동을 부추길 수 있었다.

“좋아, 데려가 주지.”

차라리 가야 한다면 함께 가는 것이 최선이다. 여차하면 그 늪지 인간들 전체를 다 죽여서 후환을 없애면 될 테니까. 렉스는 간단명료하게 결론을 내리고는 수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수지는 뛸 듯이 기뻐하며 강물 너머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렉스 같은 사람들. 저번 원주민 같지 않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얼마나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을까. 탁 트인 광경에 수지의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졌을 때였다. 렉스가 갑자기 언덕 옆 숲을 보더니 수지를 껴안는 게 아닌가. 난데없이 단단한 가슴에 안긴 수지는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윽고 쾅- 하는 굉음이 이어졌고 수지는 저도 모르게 렉스를 바짝 끌어안고 있었다.

“뭐, 뭐예요?”

수지는 가늘게 떨며 물었다. 렉스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언덕 옆의 숲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더니 제 가슴에 달라붙은 수지를 떼어 내고, 여기 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저도 가면 안 돼요?”

이곳에 혼자 남기 무서운데. 수지는 겁에 질려서 렉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렉스는 안 된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예상치 못한 휘파람을 불었다.

휙- 그 소리는 날카로운 바람이 대기를 찌르는 것 같았다. 곧 그 소리를 듣고 무언가가 활강하며 내려왔다. 아까 하늘에서 보았던 파란 새로, 가까이서 보니 독수리만큼 크고 공작새처럼 어여뻤다. 풍성한 가슴 털에서 익숙한 색감을 느꼈을 때, 렉스가 새를 보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새는 이쪽으로 올까 말까 하는 몸짓을 했다. 렉스가 무섭다는 듯이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다가오지 않는 새를 향해 렉스는 낮은 목소리를 읊조렸다.

“그 부리와 발톱이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거다.”

오만한 말이었다. 네 일을 눈치껏 하란 경고에 새가 불만스럽게 짹짹거렸으나 렉스는 못 들은 척 수지를 바라보았다.

“금방 오지.”

짧지만 확고한 말. 알아듣지 못해도 렉스의 단단한 눈빛에 왠지 안심이 된다. 수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렉스는 금세 언덕 아래로 달려갔다. 바람처럼 안개 속으로 사라진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새가 어느새 수지 곁으로 와서 부리를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알아봐 달라는 동작에 수지는 눈을 크게 떴다.

“응?”

바다가 생각나는 푸른 빛. 아름다운 깃털 색은 햇빛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빛깔에 수지는 새를 보면서 감탄하고 말았다.

“정말 예쁜 깃털이구나. 눈이 부셔.”

수지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새가 배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풍성한 가슴 털이 바람을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수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멋져.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멋진 깃털 하나가 있는데.”

무심코 말하자 새의 파란 눈동자가 그윽하게 변했다. 수지는 익숙함을 느꼈다. 어디선가 새를 만나 본 거 같다고 할까?

“혹시 우리…….”

만난 적 있니? 라고 물을 찰나, 새가 높이 뛰어 땅을 콕 부리로 쪼았다. 그러자 무언가 축 늘어졌다. 얇고 긴 뱀이었다. 그 뒤로 수십 마리가 더 몰려오자 수지는 기겁하여 렉스가 만든 막대기를 손에 쥐었다. 잠시 후 여인과 새 한 마리는 뱀을 잡느라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쪽인가?’

렉스는 굉음의 근원지를 찾아서 숲을 뛰었다. 침입자의 기척을 느꼈으나 그것도 곧 안개의 방해로 불가능해졌다. 렉스는 숲의 안개가 짙어지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늪지가 침입자에 반응해 더 많은 안개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소란을 피우는 자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반응하는 늪을 보면서 렉스는 굉장히 생물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세 명인가.’

십여 분쯤 달렸을까. 울창한 가시나무 사이로 검은 갑옷을 입은 자들이 보인다. 목까지 검은 투구를 깊게 눌러 쓴 왕국의 기사들이었다. 가슴에 찍힌 왕국의 인장이 아니라면 음지의 암살자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내뿜는 기운이 차가웠다. 투구의 작은 눈구멍으로 뿜어내는 눈빛도 죽은 자들의 그것처럼 축축해 렉스는 단번에 그들이 개량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로리엔이 말한 그 특별한 기사단인가 뭔가인가.’

왕국은 렉스라는 무기를 두고서도 끝없이 마나 인간을 개발하려 했다. 렉스와 같은 인간을 대량으로 만들어낸다면 세계 정복도 어렵지 않을 거라는 망상에 부풀어서. 그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무기 개발에 꿈을 버리지 못했다는 증거가 바로 저들이었다. 렉스는 일부러 기척을 크게 해서 걸었다. 그러자 그들의 팔이 금세 렉스 쪽으로 뻗어졌다.

쾅-!

아까와 같은 커다란 소음이 울려 퍼졌다. 마나로 방어한 육체에도 따끔한 충격이 느껴질 정도로 그들이 쏜 화기는 강렬했다. 가시나무는 산산이 조각이 났고 괴물은 거죽이 타들어 갔으며 벌레는 날기 전에 터져 버렸다. 근방에 살아남은 건 렉스뿐이었다. 렉스가 몬스터인 줄 알고 공격했던 그들은 곧 단정한 얼굴이 보이자 멈칫 굳었다.

“사령관님.”

가운데 자가 묵직한 눈꺼풀을 깜박였다.

“뿜어지는 마나로 보면 알도스 무어 렉스 사령관님이시군요. 식별 번호를 불러 주시겠습니까?”

재차 확인하는 물음에 렉스는 여섯 자리 번호를 불렀다. 그러자 그가 기계적으로 입가를 올렸다. 외운 것 같은 메시지가 전달됐다.

“로리엔 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버드를 보냈으나 이후 연락이 없는 관계로 사령관님을 직접 찾아 귀환 요청을 하라 하셨습니다.”

“너희 셋만 왔나?”

대답 대신 렉스가 물었다. 가운데 자가 대답했다.

“네.”

“그러면 정찰병이란 거군.”

“아닙니다. 저희 셋이 추적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 늪지로 보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람이 많이 가서 찾는 것보다 빠르게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하시면서요.”

정찰이 아니라 임무를 위해 온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렉스는 조소를 머금었다.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지?”

“5시간 됐습니다.”

“기구를 타고 왔나.”

“그렇습니다.”

어쩐지. 빨리 중심부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며 렉스는 그들을 살폈다.

추적 능력이 뛰어난 자들치고 이들은 렉스의 기운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방금도 그들이 아닌 자신이 그들을 찾아낸 거였다. 렉스는 그들이 괴물을 상대했던 모양을 살폈다. 렉스가 있는 쪽이 아닌 정반대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 괴물들을 폭사시키며 마구잡이로 죽인 행태가 몹시도 어리석다. 추적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요란한 흔적을 보면서 렉스는 입술을 삐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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