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지 보고서 (16)화 (16/163)

16화

“머, 머드 팩은 갑자기 왜요?”

피부 촉촉하단 말이에요. 수지는 그만하라고 외치려다 진흙을 바르는 렉스의 표정이 피부 관리사처럼 진지한 걸 보고 거부하기가 애매해지고 말았다. 결국 옷을 제외하고 드러난 팔다리와 얼굴에 진흙을 묻힌 수지는 얼이 빠져서 그를 바라보았다. 렉스는 그녀에게 말하지 말라는 듯이 입가에 손을 올렸다.

몇 초 후. 윙-하는 소리를 들었다. 수지는 그게 공업용 환풍기 수십 대를 켜 놓은 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머지않아 거처가 흔들리자 수지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무언가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것은 딱정벌레 크기의 날벌레였다. 수지는 벽을 뚫고 들어온 날벌레 한 마리를 보며 움찔거렸다. 그렇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그러나 그 날벌레가 기어 다니는 애벌레에 꼬리 침을 찔러 넣자 흠칫하고 말았다. 애벌레가 액이 빨려 나간 것처럼 쭉정이가 된 것이다.

‘뭐야, 살인 모기잖아?’

수지가 창백해졌을 때였다. 날벌레는 까맣게 몰려들었다. 렉스는 불붙은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날아드는 모기들을 공중에서 태웠지만 수가 워낙 많아서 렉스의 상체며 팔다리에도 모기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어떡해.’

자신에게 진흙을 발라 주느라 본인은 칠하지도 못했다. 수지는 안색이 굳어져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끄떡없이 모기를 불태우는 데 집중했다. 그러다가 빗물이 들이닥쳐 나뭇가지에 붙은 불이 꺼지자 손으로 모기를 잡기 시작했다.

‘맙소사.’

그가 엄청난 속도로 잡고 있음에도 모기의 수가 엄청났다. 수지는 그가 곧 까맣게 모기에 뒤덮이자 들고 있던 라이터를 꺼냈다. 그러나 습한 탓인지 나뭇가지에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수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입고 있던 상의를 벗었다. 나뭇가지에 상의를 칭칭 감아 불을 붙이자 활활 타오른다. 수지는 그걸 휘둘렀다. 그러자 모기들이 엥- 거리며 불에 타 떨어졌고 그에게 붙었던 모기들도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수지는 그의 얼굴이 드러나자 그제야 안도하면서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피부 군데군데가 발갛게 부어 있었다. 많이 쏘인 것 같아 걱정되어 묻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니까 침대 옆에 숨어 있어.”

“제, 제가 도울게요!”

수지는 필요하다면 바지까지 벗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렉스는 그녀가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수지가 다치면 어차피 제 기분이 나쁠 것이 뻔했기에 그는 수지를 저만치 침대 곁으로 밀어 놓았다.

‘뭐야, 혼자서 하려고?’

수지가 당황했을 때, 렉스는 멀리에서 몰려드는 새로운 모기 군집을 발견했다. 살아남은 모기들이 도움을 요청한 것인지 더 많은 숫자가 오고 있었다. 마치 검은 구름처럼 우글거리는 모기떼를 보면서 렉스의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아야.”

수지는 자신의 어깨를 무는 모기를 보면서 얼른 손바닥을 내리쳤다. 진흙이 없는 피부를 모기가 물어 버린 것이다. 수지는 주위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모기까지 손으로 잡아 터트리면서 렉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문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검은 구름. 수지는 그것이 새로운 모기떼라는 것을 알고 경악했다. 그러나 따라 나가려고 할 때 그가 문을 닫아 버렸다.

“어?”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이 무언가에 걸린 것인지 꽉 막혀 있었다. 수지는 놀라서 나뭇잎 틈새로 밖을 쳐다보았다. 사내가 물웅덩이 위에 서 있었다. 울긋불긋해진 몸으로, 새로운 적을 앞두고 그는 그냥 서 있었다.

“뭘 하려고…….”

수지는 멈칫했다. 이내 그가 높이 뛰어올라 시야에서 사라지자 절로 고개를 위로 움직였다. 그는 어디에 있는 걸까. 틈새로 보기엔 그는 높이 뛰어올랐는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모기떼가 도착해 거처로 들어오려고 하는 순간 쿵- 하면서 바닥이 지진이 난 것처럼 울렸다.

수지는 ‘아-.’하며 입을 벌렸다. 남자가 내려앉는 순간 주변에 물과 진흙이 튀어 올랐다. 장관이었다. 마치 파도처럼 일어난 땅과 물에 비는 한순간 멎은 것처럼 보였다가 이내 우수수 아래로 쏟아졌다.

일시에 물과 진흙을 튕겨서 모기떼를 전멸시킨 남자는 그제야 터벅터벅 다시 문으로 걸어 들어왔다.

“…….”

수지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몸에 붙은 진흙을 떼어 내면서 수지를 살폈다. 괜찮냐, 묻는 눈에 수지는 고개를 끄덕였고 사내는 다행이라며 고개를 돌렸다. 모기떼가 사라지고 나자 다시 비가 거세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떡해. 씻고 싶어.”

모기가 사라지고 나자 지저분해진 몸이 거슬린다. 수지는 물린 어깨를 긁으면서 팔다리에 진흙을 털어 냈다. 그러나 손으로 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수지가 끙끙거리며 몸을 닦으려는 것을 보았는지 갑자기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이번엔 따라오란 듯이 문을 젖힌 채로.

‘어?’

쏟아지는 폭우에 흙이며 먼지가 씻겨 내려간다. 사내는 검은 머리가 흠뻑 젖은 채로 그렇게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둠 속에 존재하는 사신처럼. 수지는 홀린 듯이 그를 따라나섰다. 그러자 속옷이 바로 젖어 들며 굵은 물방울이 몸을 타고 흐른다. 진흙은 금세 씻겨 내려갔다. 수지는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그를 바라봤다.

참으로 황량한 시선. 어떤 일이 생겨도 저 눈만은 변함없이 무덤덤할 것 같다. 수지는 그게 왠지 위안이 되었다. 어떤 궂은일이 생겨도 변치 않을 남자라고. 어둠의 눈이든 사신의 눈이든 늘 같은 모습으로 곁에 있을 거라고. 마음이 편안해진 수지는 한결 부드럽게 그를 응시했다. 그도 그런 수지를 느꼈는지 묘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빗속에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은 상대의 영혼을 보는 것처럼 발가벗은 느낌을 준다. 찰나의 시간이 영겁의 시간처럼 길게 흐르고 그에게서 알 수 없는 동질감과 기시감을 느꼈을 때 수지는 그의 부어오른 볼을 발견했다.

“모기 물린 데는 침 바르면 낫는다고 하는데.”

알아듣지 못할 우스갯소리를 하자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수지는 조금 웃었다.

“아파 보여서요. 벌겋게 부어오른 게.”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 손을 올렸다. 렉스는 그 손을 피하지 않았다. 다소곳한 손길은 그녀처럼 따뜻했다. 물에 젖어서도 그녀에 대한 느낌은 그대로였다. 따뜻하고 생명력 넘치고……. 렉스는 자신에게 없는 감정을 선사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얼른 나았으면 좋겠어요. 더 고통스럽지 않게.”

그녀가 부드럽게 말을 끝냈을 때였다. 손을 거두려는 그녀를 렉스가 잡았다. 시선은 그녀의 눈동자에 못 박힌 상태였다. 렉스는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피아 식별이 분명한 군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있어 수지는 정체를 모르는 위협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가 있어서 기분 좋은가 자문하면 대답은 ‘그렇다’였고, 그녀가 다치면 기분 나쁜가라고 물으면 역시 그렇다고 답할 수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아니더라도 그녀가 만질 때면 알 수 없는 열기에 휩싸여 그녀를 정신없이 탐하고 싶어졌다. 뜨거운 피가 아래로 확장되면서.

‘그러니까.’

그녀를 살려 곁에 두는 것은 당연하다. 렉스는 확고하게 결론을 내리면서 입술을 벌렸다.

“……수지.”

이름을 부를 줄 몰랐던 그녀는 그의 부름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들었어도 반응이 없었기에. 못 들은 척 불러주지 않았기에. 하지만 더 놀랄 일은 그다음이었다.

“렉스.”

사내는 자신을 가리켰다. 수지가 자신을 가리켰던 것처럼.

“알도스 무어 렉스.”

“……!”

수지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그의 이름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그는 자신을 구해 주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그건 말이 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경계해서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유야 어쨌든 수지로서는 이름도 말해 주지 않는 그에게 내내 섭섭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반쯤은 포기했는데.’

이름을 듣게 될 줄이야. 수지는 벅찬 기분에 사로잡혔다. 지금은 이름이지만 나중엔 무얼 하는 사람인지까지 듣게 되지 않을까. 수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반짝이면서 생기가 넘치는 눈동자로.

“역시.”

렉스는 중얼거렸다.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주체할 수 없는 꼴림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주 내장 깊은 곳에서부터 전율처럼 혈관을 타고 흘러서 그의 전신을 자극했다. 가장 단단하고 흉한 부위를 달궜다. 렉스는 그 자극에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맛있는 건 함부로 먹어야 해.”

팔을 뻗어 그녀의 목을 감싸자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끌려온다. 렉스는 두 눈을 그녀에게 고정했다. 수지는 굳은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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