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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 보고서 (10)화 (10/163)

10화

“어쩔 수 없지. 잘 먹여서 살을 찌워 바칠 수밖에.”

그렇게 다른 이가 대꾸하는 동안 대장은 노랗고 몽글거리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대장은 손가락으로 집어 먹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우리 소금을 썼군.”

“하여간 외부인들이란 귀한 것을 마음대로 써 댄다니까! 이 결정을 얻으려면 얼마나 오래 강어귀를 헤매야 하는데!”

“외부인들은 늘 이런 식이야! 섬의 것이 당연하게 자기네 것이라 생각하지! 자기들이 세상을 소유했다고 생각하니까 말이야!”

부족민들은 분통을 터트리며 나무줄기를 압박했다. 그러자 수지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빠져나왔다. 그 가학적인 행동에서 수하들이 위안을 얻는 동안 대장은 불자리 옆에 놓인 작은 나무통들을 발견했다. 한 통을 들어 냄새를 맡자 익숙한 향이 올라왔다. 대장은 기뻐했다.

“이 향초가 남아 있을 줄이야! 어디 숨겨져 있던 걸 여자가 찾아낸 모양이군!”

“뭔데?”

매혹초라고 불리는 풀을 말려서 만든 향초였다. 잠자리에서 쓰면 욕정이 강해져 정력이 떨어진 이들이 특히 애용하는 물건이었다. 얼른 고개를 들이민 부족민이 매혹초를 확인하고 대장을 향해 걸쭉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걸 찾았네! 오늘 밤 그걸 쓰면 대장 아내가 엄청 좋아할 거야. 다섯째도 수월하게 얻게 되겠지!”

매혹초는 유혹초라고 불릴 만큼 남녀 모두에게 이롭게 사용되는 것이다.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얻게 되면 모두가 좋아하며 가지려 하는 약초. 대장은 귀한 것을 얻었다는 기쁨에 양쪽으로 입술이 올라갔다.

“이거 놔!”

그때 그의 기쁨을 무색하게 하는 외침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여인이 비틀거리면서도 몸을 흔드는 게 보인다. 그녀는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잡힌 손목과 발목이 아플 텐데도, 그리고 잠이 올 텐데도 끝까지 반항을 멈추지 않는 여자. 섬 바깥에 사는 여자치고는 제법 저항심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다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제 돌아갈 거지?”

부족민들이 여인을 커다란 나뭇가지에 묶으며 물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갈 수 없어.”

부족민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아보았다. 대장은 바깥을 살펴보고 오더니 말했다.

“한 명이 더 있어.”

“뭐? 누가?”

“저 여자 말고 여기 머무른 남자가.”

그는 노련하게도 사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바깥 흔적과 내부 흔적을 모두 확인한 그는 여자를 끌고 갈 둘을 제외한 다섯에게 머물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들이 수지를 묶은 커다란 나무를 어깨에 멘 채로 떠나자 대장이 입을 열었다.

“강한 녀석이야. 여자보다 몸집이 크지만 몸 림은 훨씬 가볍지. 발자국 크기를 봐. 큰데도 거의 파여 들어가지 않았어. 무엇보다 집 근처에 동물 가죽을 벗긴 흔적이 있더군. 하나 같이 목을 공격당했지. 강하고 빠르게 일시에 공격한 거야. 잔 상처가 거의 없는 걸 보면. 생명을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 아는 녀석인 게 분명해.”

대장은 모처럼 호적수를 만난 것에 들떠서 떠들었다. 부족민들은 미지의 적이 얼마나 강할지 두려웠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대장은 부족에서 이름난 추적꾼이었고 뛰어난 사냥꾼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를 잡으면 촌장님이 기뻐하겠군.”

“난 얼른 잡고서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어.”

“난 배 터지게 먹고 그 짓이나 하고 싶어.”

“그 짓이라! 또 난잡하게 밖에서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밖에서 해야 제대로 느낀다고! 아내가 내 길쭉한 걸 받고 얼마나 좋아하면서 힉힉 소리를 내는데?”

부족민들이 게걸스러운 수다를 떨 때였다. 부족민 하나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주변의 공기가 급격하게 차가워져서 안개가 견디지 못하고 얼음이 되어 떨어지고 마는 것 같은 그런 기이한 소리. 부족민은 눈을 끔벅였다. 그 소리가 동료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란 것은 뜨거운 피가 얼굴에 묻고 나서야 알았다.

“어?”

부족민이 얼굴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그는 휙 하고 다가오는 선 하나를 보았다. 그게 칼인가? 생각했을 때, 이미 그는 세상을 하직한 뒤였다. 다른 부족민들도 상태가 다르지 않았다. 렉스는 대상이 눈치채지 못하게 둘을 더 해치우고 다섯 번째 부족민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 대장을 향해 말했다.

“너.”

“!”

대장은 흠칫 몸을 떨었다. 재빨리 창을 들어 던졌으나 창은 의미 없는 허공만을 휘저으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렉스는 잡은 녀석을 인질로 쓰려던 것을 포기했다. 협상이 가능할 것 같았으면 창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판단을 끝낸 사내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잡고 있던 이의 목이 우드득 틀어지는 소리가 났다. 렉스는 목이 꺾인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지도록 가만히 두었다.

“너, 너는……!”

대장은 말을 더듬었다. 압도적인 힘과 빠르기. 같은 인간일 리가 없다. 그는 이 습지가 배설한 괴물일 것이다. 대장은 얼른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원주민으로 추정되는 자가 갑자기 엎드리자 사내는 멈칫했다.

“내 말을 알아들어서 엎드린 거야, 아니 죽기 싫어서 엎드린 거야?”

“오 위대하신 생명체여, 존재여. 부디 원하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소서. 말씀해 주소서.”

알아먹지 못한다. 원주민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이상한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품 안에서 나무통을 꺼내 바치며 살려 달라 비굴한 빛을 띠고 있었다. 렉스는 침묵한 채로 그의 주변을 살폈다. 요란하게 찍힌 발자국. 그중 작고 견고한 발자국은 더욱 깊게 진흙 사이로 파여 있었다. 저항했다는 의미였다.

‘근처에선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데.’

렉스는 집중했지만 수지를 찾을 수 없었다. 이 늪지의 습성을 떠올리면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왕국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불리는 이 늪지 섬은 때때로 이상한 안개가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기척과 기운을 어지럽히곤 했다. 마나로 이루어진 렉스는 다른 이의 기척을 느끼는 데 탁월하게 감이 발달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 늪지에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생태는 까다로웠다. 왜냐하면 늪지가 상대를 보아가며 반응해 오기 때문이었다. 강하게 기운을 표출하면 할수록 더 방어적으로 안개를 뿜어내는 통에 렉스는 이곳에 있는 동안 최대한 힘을 자제하려고 했다. 어차피 수지를 데리고 생존하는 데는 그리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게 문제였던 걸까.’

힘을 조금만 써도 잘 지낼 수 있다고 만만하게 생각한 것 말이다. 늪지에 거주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사람을 납치할 줄은 몰랐던 렉스는 짜증이 가득한 눈으로 엎드린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네, 네?”

어깨를 발로 차자 그가 손에 든 나무통을 놓치며 고개를 든다. 렉스는 바닥에 찍힌 수지의 발자국을 가리켰다. 그제야 렉스가 말하려는 바를 알아차렸는지 그가 창백하게 질려서 외쳤다.

“저쪽! 저쪽으로 갔습니다!”

렉스는 그가 가리킨 방향을 힐끗 보고는 턱짓을 했다. 앞장서라는 의미였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대장은 주저주저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지러워.’

한편 수지는 통돼지 바비큐처럼 대에 매여 운반되고 있었다. 원주민들이 물컹한 진흙 바닥을 걸을 때는 몸이 크게 흔들렸고 생각도 뒤죽박죽 얽혔다. 어떻게 도망쳐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생각이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흐릿했다.

‘그가 와 줄 수 있을까.’

이런 순간에 생각나는 건 역시 그였다. 수지는 어떻게든 그를 뒤쫓아가야 했었나 뒤늦게 후회했다. 혼자 있을 때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게 무서웠으나 또 달리 생각하면 그가 그 자리에 없어서 자신처럼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수지는 후자를 크게 보기로 했다.

‘어쨌든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수지는 잠들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아픔을 느끼면 느낄수록 시야는 더 희미해졌다. 가시의 독이 번지고 있는지 눈앞은 금세 뿌연 색으로 가득해졌다.

수지는 그 어릿어릿한 시야 속에서 그들이 덩굴 숲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무 사이로 주렁주렁 줄기가 늘어진 덩굴 식물들. 때때로 줄기 끝에 걸린 빨간 열매들이 얼굴에 스치는 것이 간지럽다고 생각하며 수지는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이거 큰일 났네. 언제 이렇게 여기가 무성해졌지?”

“한동안 이쪽 길을 안 다녀서 몰랐는데 말이야. 다음엔 이 길로 오면 안 되겠어. 까닥하다간 괴물을 깨우고 말 테니.”

그들은 이곳에 잠든 괴물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혹시라도 발에 나무뿌리가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덩굴 식물 숲을 빠져나오자 그들은 크게 기뻐하며 강가에 대어 놓은 배를 찾기 시작했다.

수지는 은빛 날개처럼 반짝이는 강물을 응시했다. 수풀이 드문드문 떠 있는 강물은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흘러 유유히 멀어지고 있었다.

‘이런 곳에도 강이 존재하는구나.’

새삼스레 놀라던 수지는 덜컹거리며 배에 실렸다. 원주민들이 노를 젓자 배는 둥실거리며 강물 한가운데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수지는 무거워진 시야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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