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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 보고서 (1)화 (1/163)

01화

수지는 늪을 보고 있었다. 수렁처럼 검은 물에는 개구리밥 같은 초록빛 연한 잎들이 잔뜩 떠 있었다. 통통 소리를 내는 물방울은 그 위쪽, 부러진 것처럼 머리를 드리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수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팔뚝만 한 애벌레가 수지를 향해 몸을 틀고 있었다. 왠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수백 년은 살아왔을 심오한 동공과 마주하자 머릿속이 멍해졌다. 은빛과 파란빛으로 반짝거리는 주름진 몸통 또한 현실에 없을 듯이 신비로웠다.

넋을 잃고 애벌레를 쳐다보던 수지는 맑은 물소리가 나자 다시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애벌레의 몸 구멍에서 흘러나온 눅눅한 액체가 늪의 수면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수면은 꾸역거리며 너울을 만들었다. 먹을 수 없는 물. 먹을 생각조차 들지 않는 그 물에 연명하는 생명체가 있었다. 노란 장구벌레 같은 것들이 너울을 타고 구물거리며 모여들자 수지는 더 쳐다보지 못하고 뒷걸음치고 말았다.

쿵.

잘못 넘어진 탓인지 엉덩이는 물론 발목까지 욱신거려 온다. 수지는 창백하게 질린 채로 아픈 부위를 되짚었다. 발목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으나 엉덩이는 등걸에 제대로 부딪친 모양인지 쑤시는 정도가 심했다. 수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옆 나무를 잡은 채로 엉거주춤 일어났다. 어느새 시야엔 애벌레가 사라지고 없었다. 무슨 일이지. 호기심보단 두려움이 앞설 때, 애벌레가 앉아 있었던 나뭇가지가 움직였다.

획!

나뭇가지는, 아니 나뭇가지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살아 움직였다. 움직여서 수지의 팔목을 붙들었다. 수지는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이제 보니 아까 자신을 보던 애벌레는 반쯤 늪에 잠긴 상태였다. 꽉 조인 나뭇가지 때문에 살이 터져 온몸의 액체란 액체는 다 쏟아져 있었다. 이상하게 달콤한 향내가 나는 가운데 축 늘어진 애벌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수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지는 자신을 쥐어짜고 있는 나뭇가지를 뜯었다. 손톱으로도 뜯고 이빨로도 물었다. 그러나 나뭇가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지는 점점 늪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절망하던 수지는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가 생각났다. 삼촌이 아버지의 것이라고 챙겨 준 것이다. 수지는 주머니를 뒤졌다. 철제의 감촉이 느껴지자마자 뚜껑을 젖혀 스파크를 냈다. 나뭇가지는 그 불꽃에 깜짝 놀란 것처럼 움찔하더니 화르르 불길이 일자 수지의 팔목을 놓고 순식간에 늪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하아, 하아.”

수지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늪이 코앞이었다. 이 늪에 빠졌으면 결코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신비로운 애벌레는 어느새 늪으로 꾸역꾸역 가라앉고 있었다. 노란 장구벌레들이 그런 애벌레의 몸을 감쌌다.

시체를 먹으려는 걸까. 수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멀찍이 물러났다. 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고개를 내리자 아까의 격렬한 저항의 흔적을 보여 주듯 진흙을 잔뜩 머금은 자신의 흰 운동화가 보인다. 발 앞쪽을 세워 밑창에 묻은 진흙을 털어 내던 수지의 이마에 어느새 땀방울이 맺혔다.

“대체.”

여긴 어디지. 수지는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낯선 장소에 불시착한 동물처럼 황망해져 있었다. 어딜 봐도 빽빽한 숲. 알 수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 눈을 뜬 지 벌써 30분이 지났다. 아니 지났을 것이다. 수지는 허탈하게 생각했다. 핸드폰을 삼촌 댁에 두고 나온 게 큰 실수였다. 오래전 살았던 곳이라고 감상에 젖고 만 걸까.

‘하지만 혼자 있고 싶었는걸.’

수지는 변명처럼 이유를 생각해 냈다.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최종 합격 후 이 지역을 찾은 건 단순히 삼촌 댁을 방문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충격에 빠뜨린 기억을 마주하러 왔었다. 너른 둑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늪지대에서, 그곳에서 사라진 한 소년에 대해서.

‘절대 이런 걸 예상하며 온 건 아닌데.’

수지는 입술을 말아 물며 고개를 들었다. 어딜 봐도 울창한 숲. 자신이 있던 곳에 이렇게 햇빛조차 통과되지 않는 열대 우림이 존재하던가? 주위를 둘러봐도 익숙한 나무가 없었다. 그녀가 아는 나무라곤 한국인이 모두 알만한 소나무나 벚꽃 나무, 버드나무 같은 것들뿐이었다. 이렇게 시야를 빼곡하게 채운 참나무나 전나무, 서나무나 가시나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방금 전 그녀를 공격했던 괴물 나무에 대해서도.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수지는 욱신거리는 엉덩이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꿈이라면 이해가 간다. 이 모든 건 진짜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건 모든 건 머릿속의 상상이다. 진짜 자신은 삼촌 집 대청마루에서 낮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늪에 가지 않은 채 깜빡 잠이 들어…….

“……읏.”

그러나 꿈이라고 치부하긴 통증이 너무 아팠다. 고통은 그녀를 현실로 끌어냈다. 수지는 낙관적인 생각을 멈추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곧 갈대가 우거진 얕은 물가가 나타났다.

저 너머에 뭐가 있을까. 수지는 발끝을 들었다. 근방에 높은 곳이라곤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나무들만 울창하게 있을 뿐이다. 나무에 올라 주변을 살필 자신이 없었던 수지는 조금이라도 높은 지대로 향하자고 마음먹었다. 갈대숲 왼편이 그나마 둔덕처럼 솟아 고지대로 보였다.

건너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수지는 갈대숲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첨벙, 하는 물소리가 나고 그 주변으로 너울이 번진다. 주위는 평온해 보였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빨 달린 물고기만 아니었다면.

휙.

수지는 몸을 피했지만 날카로운 지느러미에 뺨을 긁히고 말았다. 아릿한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또 다른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이번엔 하얀 이빨이 정면에서 보일 정도로 주둥이를 쫙 벌린 녀석이었다. 수지는 짧은 신음을 내며 옆으로 몸을 굴렸고 그 탓에 갈대숲에 있던 새들이 우르르 일제히 날아올랐다.

“!”

새들은 그녀가 알던 백로나 해오라기 같은 게 아니었다. 박쥐 같은 날개에 빨간 눈을 가진 머리가 두 개인 새였다. 수지는 그 모습에 놀라 넘어지고 말았다. 물고기들은 여전히 수지를 향해 뛰어들고 있었다. 피하지 못한 수지를 향해 달려들던 물고기들을 머리 두 개인 새가 낚아챘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이내 셀 수도 없이 많은 새가 내려와 물고기를 발톱으로 찍어 갔다. 수지는 주춤거리며 움직였다.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머리 두 마리 새의 먹이가 될 것만 같았다.

“아야.”

얼마나 걸었을까. 수지는 다리에 닿는 따끔한 가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새 발아래에는 못 보던 덩굴 식물들이 가득했다. 개중엔 갈퀴가 있어서 옷에 달라붙는 것도 있었고 뾰쪽한 가시가 있어서 살을 찌르는 것도 있었다. 수지는 가시를 피해서 걸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커다란 나무뿌리로 올라선 수지는 꼼짝도 못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어떻게 알려야 할까. 수지의 손에 잡히는 건 세월의 흔적이 스친 철제 라이터뿐이다. 이사 오면서 예전 집에 두고 왔던 것을 삼촌이 챙겨 주었다. 돌아가신 양반의 물건이라고 차마 버릴 수 없었다면서 집을 나서는 수지의 손에 쥐여 준 것이다.

‘아빠가 담배 피는 게 싫어서 안 좋아했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게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꽉 쥐고 만다. 수지는 바뀐 처지에 씁쓸하게 웃었다. 하늘을 보자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로 희미한 생명처럼 반짝이는 태양이 어른거린다. 분명 낮이었다. 삼촌 댁을 나선 때와 크게 시간이 다르진 않은 거 같은데…….

그런데 밤이 된다면?

수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밤이 된다면 이 원인 모를 공간은 더욱 위협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따라서 그 전에 벗어나야 했다. 수지는 결심한 듯 마른 나뭇가지와 잎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불을 내면 연기가 피어나겠지. 그러면 누군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사람들을 보낼 것이다. 어쩌면 삼촌이 돌아오지 않는 조카가 이상하다고 느껴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자신은 곧 사람들에게 발견될 것이다.

‘누군가 늪에 대해서 떠올릴지도 몰라. ’

10살 소년이 사라졌던 거대한 늪. 사람들은 며칠 밤낮으로 늪의 물을 퍼내 수색대를 내려보냈지만 소년의 시체를 찾지 못했다. 경찰은 한동안 그 주변에 울타리를 세우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둑길에 서서 소년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렸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포기하고 희망을 버렸다. 소년을 기다리던 소녀가 한 명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다시 늪을 조사하겠지?’

소녀, 아니 수지는 뺨을 훑으며 생각했다. 아까 긁혔기 때문인지 가려웠다. 손으로 몇 번 가볍게 긁은 수지는 어느 정도 수북하게 쌓인 나뭇가지와 나뭇잎에 라이터를 튕겼다. 그러자 불꽃이 붙으며 싸아아- 하고 공기를 잡아먹으며 타들어 간다. 허기진 탓인지 바삭바삭 소리가 맛있게 들려왔다.

수지는 그 불꽃 속에서 이지러지는 나뭇가지와 잎들을 바라보았다. 까맣게 뭉개져 가는 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허망했다.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연기가 피어오르자 금세 코가 막혔다. 수지는 콜록대며 나무 뒤로 몸을 피했다. 연기는 뭉게뭉게 피어나 위로 솟더니 곧 나뭇잎 사이로 사라졌다.

‘누군가.’

보아야 할 텐데. 수지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둘러 더 많은 나뭇가지와 잎들을 긁어모았다. 가시에 찔려 손가락이 아팠지만 모으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몇 분은 타오를 만큼 가득 모은 수지는 이상하게 몸이 가려워지는 걸 느꼈다. 생각 없이 팔을 긁던 수지는 싸늘한 공기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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