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126화 (126/138)

125회

chapter5출장이라고 해봐야 별로 챙길 것은 없었다. 정장 한 벌과 계약 관련 서류를 챙겼다. 사실 과에 늦게라도 얼굴만 비추고 출발하면 됐는데,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났다. 어제 자기 직전에 계획한 일이 있었다. 출장 준비를 마치고 정원이네 집으로 갔다.

차에 앉아서 졸면서 기다렸더니 곧 정원이가 졸린 눈으로 나왔다. 눈치를 못 채고 지나가면 붙잡으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의아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다. 정원이는 눈을 비비더니 주춤거리며 차로 다가와 몇 번이고 힐끔거리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기가 울렸다. 흠흠, 목을 가다듬고 졸린 듯한 목소리를 냈다.

“으으음, 어. 왜?”

[아, 아니. 혹시 자구 있었어?]

“어. 내일 계약 건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 준비하다가 좀 늦게 잤네.”

[아, 아니야. 응, 어. 미안. 다시 자.]

“아니야, 끄응. 일어나지 뭐. 근데 왜? 뭔 일 있어?”

[아, 아니야. 그, 어, 조심히 다녀오라구! 걱정돼서 전화하려고 했어!]

“아하.”

그리곤 천천히 창문을 내려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정원이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런 모습을 즐기며 손을 흔들었다.

“하이.”

“너, 너. 으. 야악!”

“하하하.”

정원이가 달려들어 차 문을 열려고 하기에 바로 창문을 닫아버리고 배를 잡고 웃었다. 문은 이미 잠겨있었고 정원이가 한참을 딸깍거리다가 씩씩거리며 등을 돌렸다. 그때 문을 열고 나가서 정원이를 안았다.

“약속해놓고 첫날부터 깰 순 없잖아.”

“힝, 바보야.”

방금까지 내던 화는 어디로 녹아버리고 사라졌는지, 정원이가 뱅글 뒤를 돌더니 껴안으며 울먹거렸다.

“너, 진짜, 바보 멍충아. 완전 사랑해, 사랑해. 진짜 사랑해. 히잉.”

정원이가 애교를 부리며 몇 번이고 내 볼에 뽀뽀했다. 정원이가 까치발을 들 때부터 고개를 숙여 뽀뽀를 받아주다가 정원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늦겠다. 차 막히면 곤란하니까 차 타고.”

“웅. 아, 맞다.”

“왜?”

정원이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자신의 입술을 톡톡 치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깜빡 잊으신 게 있는 거 같은데요.”

“그래? 난 뭔지 모르겠는데?”

내가 능글맞게 받아치자 정원이가 한숨을 폭 내쉬더니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오빠야, 정원이 요기, 요기, 뽀뽀 받구 싶어요.”

“으하학!”

그러면 나는 웃으며 정원이에게 입 맞출 수밖에 없다. 내가 입을 맞추자 정원이가 필사적으로 내게 달라붙었다. 나 역시 오늘, 내일 정원이를 볼 수 있는 것은 지금이 마지막이니 정원이를 꼭 끌어안으며 혀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애처롭게 달라붙는 정원이를…….

“아침부터 아주 지랄을 한다, 지랄을.”

“햐악!” “흠, 흠.”

옆에서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가 들렸다. 정원이와 후다닥 입을 떼고 고개를 돌렸더니 정하가 방금 목소리만큼이나 차갑게 식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게 그 짜게 식은 눈인가. 두 연놈들을 소금에 절여버리고 싶다는 게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눈빛이었다. 정하가 비아냥거리듯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남아돌면 나도 좀 데려다주지, 그래?”

“어, 회사 방향이?”

“완전 반대 방향인데. 어차피 상관없잖아. 여기서 그렇게 물고 빨고 할 시간 있으면.”

“흠흠. 정원아 갈까?”

“으, 응! 늦겠다, 강휘야!”

“쯧. 바쁘지만 않았어도.”

정하가 혀를 차고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우리는 후다닥 차에 타서 정하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마주 보고 피식 웃었다. 정원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진짜 늦겠다, 가자.”

“그래.”

그렇게 정원이를 데려다주고 총무과에 얼굴을 비추었다. 출장을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니 이미 보고받았다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예약한 기차가 있어 차를 다시 집으로 몰아 세워두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다시 한 번 계약서를 확인하며 내가 실수할 것이 혹시라도 없나 확인했다. 아버지께선 고개나 끄덕이다가 사인만 하고 오면 된다고 했지만, 겨우 그것을 바라신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워오라는 소리겠지.

그러고 있던 와중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인사과 투톱인 민경아 팀장님이었다. 인사과에 들를 때마다 한 번씩 인사하기에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민경아 팀장님이 다가오시기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민경아 팀장님께선 아직도 내게 경칭을 쓰셨다. 나뿐만 아니라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인사과 신입에게도 경칭을 쓰시는 걸 보면 나와 비슷하게 반말을 하는 것을 꺼리는 부류이리라. 나는 인사를 마치고 물었다.

“웬 일이십니까?”

“강휘씨 서브로 왔어요.”

“아. 혹시 원래 관련 업무 하시던 게 팀장님이십니까?”

“예. 보통 제가 이거저거 처리하면 이사님께서 마지막으로 계약을 마치시는 식으로 진행돼요.”

“아, 그렇군요.”

아버지 역할을 하러 나온 것은 나였지만 이 건에 대한 실무자는 민경아 팀장님이란 소리였다. 나 역시 실무자가 있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민경아 팀장님께 확인해야 할 사항에 대해 배우며 계약서를 확인했다.

기차에선 입을 열기가 애매한 분위기였기에, 자리에 앉아 계약서를 확인했다. 그러나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인지 점점 눈이 침침해지고 그만 졸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꾸벅꾸벅 졸다가 정신을 차린 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것도 민경아 팀장님께서 깨워서 일어날 수 있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셈이었다. 이에 대해 사과드리자 신경 쓰지 않으신다며 웃으셨다. 오히려 기차에서는 한숨 자는 편이 낫다며 나를 위로해주셨다.

이후 역에서 내려 기다리고 있노라니 관련 업체에서 찾아왔다. 그쪽에서도 이번 계약 갱신을 위해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쪽 회사로 이동해서 관련된 것을 설명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정보도 있었고, 모르는 정보도 있었다. 대충 수첩에 정리하며 적었다.

그렇게 한차례 듣고 나서 계약은 약속했던 대로 내일 하기로 했다. 업체 역시 우호적이었고, 따로 협상을 원하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이미 얘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업체에서 내게 이러저러한 정보를 알린 것도 아버지께서 준비한 것의 일환일지도 몰랐다.

한차례 일을 마치고 민경아 팀장님과 식사를 하고 난 이후에 바로 모텔에 들어갔다. 당연히 방은 따로 잡았다. 민경아 팀장님께서 방을 잡으며 손을 까딱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혹시 한잔하실래요?”

“음, 제안은 정말 반가운데, 여자 친구가 좀 빡세서요.”

“아, 이런. 미안한 짓을 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오히려 보기 좋네요.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그렇게 민경아 팀장님께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옷을 갈아입었다. 양복이 썩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넥타이를 풀자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숨을 들이쉬니 그제야 내가 꽤 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름대로 회사를 대표하여 나온 것이고, 처음 해본 일이라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담아 들어갔다. 모텔에서나 할 수 있는 사치였고, 나 역시 이런 것을 즐겼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점점 몽롱해졌다.

어느새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물이 식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춥진 않았지만 으슬으슬할 정도론 한기가 느껴졌다. 서둘러 물을 빼고 다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나왔다. 샤워를 끝마치고 나와서도 정신이 몽롱했다. 결국, 바로 침대에 몸을 처박고 잠이 들었다.

우웅

우우웅

우우우웅

“……으음.”

잠깐 잠이 깼다. 뭔가 계속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었다. 눈을 억지로 뜨니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곧 핸드폰이 다시 꺼졌다. 잠깐 일어나 핸드폰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오늘 처음으로 핸드폰을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핸드폰을 켜니 부재중 전화가 스무 통이나 와있었다. 모두 정원이가 한 통화였다. 서둘러서 카톡을 바라보니 카톡 메시지는 더 많이 쌓여있었다. 아침에 헤어지고 난 순간부터 주기적으로 와 있었다.

[정원 : 강휘야 잘 도착했어?]

[정원 : 대답이 없니.]

[정원 : 전화 확인 못 할 정도로 바쁘니?]

[정원 : 아직 도착 안 하지 않았어?]

[정원 : (대충 우는 이모티콘)]

[정원 : 점심시간이다! 혹시 점심은 잘 챙겨 먹었어?]

[정원 : 강휘야 전화 좀 받아줘. (대충 우는 이모티콘)]

[정원 : 목소리 듣고 싶다.]

[정원 : 오후 업무 힘내~.]

[정원 : 많이 바쁜가부다.]

[정원 : 정원이 많이 힘드러용.]

[정원 : 벌써 보구 싶다.]

[정원 : 평소에도 회사에선 못 만났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 보고 싶지?]

[정원 : 힝, 외로워, 외로워, 외로워, 외로워.]

[정원 : 퇴근했다. 혹시 아직두 일하니?]

[정원 : 끝나면 전화해줘!]

[정원 : 언제 전화해 줄 거야, 이 나쁜 놈아!]

[정원 : 혹시 무슨 일 있어?]

[정원 : 강휘야? 강휘야?]

[정원 : 제발 보면 답 좀 해줘.]

[정원 : 전화 받아.]

[정원 : 강휘야.]

[정원 : 강휘야. 제발.]

[정원 : 제발, 제발 전화 받아.]

[정원 : 강휘야!]

그 후로도 정원이는 나를 한참을 부르고 있었다. 정원이의 카톡을 확인하며 뒷목이 서늘했다. 그리고 내가 확인해서 메시지 옆에 있던 1이 사라지는 순간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곤 전화를 받았다. 받자마자 정원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혹시 다쳤어? 큰 사고야? 잘 들어갔어?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지금 출발하려고 했는데 괜찮아? 지금 어디야? 흑, 강휘야. 다친 거 아니지? 왜 전화를 안 받아. 얼마나 걱정했는데. 내가 얼마나 걱정, 흐윽, 했는데.]

“미안, 내가 미안해.”

[몸은 괜찮아? 아픈 데 없어? 나 안 가도 돼?]

“어, 어? 어. 괜찮아. 몸 아픈 데 없고. 안 와도 돼. 지금 몇 시야?”

핸드폰에서 얼굴을 좀 떼서 시간을 보니 11시였다. 서둘러서 말을 이었다.

“오지 마! 여자애가 무슨 이 시간에 위험하게 혼자 밖에 나왔어. 지금 어디야?”

[흑, 미, 미안해. 난 그냥 니가 걱정 돼서어.]

“아, 아니야. 울지 말고. 뚝. 내가 미안해. 정원아 혹시 지금 멀리 나왔어?”

[아니, 집 앞이야.]

“그럼 일단 다시 집 들어가고, 응? 들어가서 다시 통화하자.”

정원이가 이 늦은 시간에 혼자 집을 나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아주 조금 남아있는 잠기운도 완전히 달아났다. 계속 걱정이 됐다. 정원이는 훌쩍이면서 계속 말을 했다.

[웅, 지금 들어가고 있어.]

“어. 그래. 주위 잘 살펴보고.”

[흑, 으응. 너두 전화 끊지 마.]

“당연하지.”

잠깐 정원이가 훌쩍이는 소리만 들리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안심이 좀 됐다. 집에 들어가서 정하의 눈치를 보는 건지 다시 들려오는 정원이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져있었다.

[강휘야, 그, 혹시.]

“응?”

[여, 여자 만난 건, 으, 아니지?]

정원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원이가 느끼고 있는 불안함이 고개를 빼꼼 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당연히 여자는 만나지 않았지만, 정원이가 이런 의심을 하는 것 자체가 조금 불쾌했다. 그렇게까지 애정표현을 하고, 내 감정을 전달했는데도 나를 믿지 못한단 말인가. 애써 고개를 저으며 털어냈다.

“절대 아니야. 오후에 일했고, 모텔로 돌아와서 돌아오자마자 잤어.”

[그래도 그 같이 가신 분 있는데.]

“팀장님? 팀장님이야 일 때문에 같이 온 거지. 나 도와주시려고 오신 거야.”

[그래도, 그.]

정원이가 불안한 듯 계속 말꼬리를 끌었다. 정원이는 딱히 나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원이 역시 민경아 팀장님이 나를 보조하기 위해 지원된 것을 알고 있으리라. 머리론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정원이도 마음 한편에서 혹시나 하는 불안이 싹트고 있는 것이겠지. 나 역시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불편함이 맺히고 있었다.

“일 때문이라고.”

[흑, 미, 미안해, 아니, 훌쩍, 잘, 못, 훌쩍, 했어요. 흑.]

“왜 니가 사과하는데?”

[그, 그치만, 너 목소리, 흑,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던 모양이었다. 마음속에 있었던 감정이 표출된 것이었다. 정원이에게 짜증 내려고 한 것은 절대 아니었는데. 감정을 다시 갈무리했다. 이해했다. 정원이를 이해했다. 나 역시 정원이와 다른 남자가 출장을 나갔다면 일하러 가는 건지 알면서도 불안할 것이 아닌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목소리를 최대한 신경 쓰며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해. 자다 깨서 신경이 조금 날카로웠나 봐. 진짜 괜찮아. 미안해.”

[흑, 흐윽. 훌쩍.]

“진짜 오늘 팀장님이랑 일 끝나자마자 바로 헤어졌어. 전화 못 받은 것도 미안해. 일이 좀 늦어져서 너무 피곤해서 오자마자 바로 잤어.”

[응, 으응! 훌쩍. 내가 더 미안해. 훌쩍.]

정원이와 그렇게 한참을 서로 미안하다고 하다가 정원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달래줬다. 정원이는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대며 마치 전화기를 놓으면 죽을 것같이 내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고, 내게 오늘 있었던 일을 들으며, 보고 싶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나는 그런 정원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몇 번이고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결국 전화가 끊긴 건 정하의 피곤한 목소리가 들린 후였다. 시간을 바라보니 열두 시가 이미 지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굉장히 피곤했다. 자다 깨서 허겁지겁 정원이를 달래느라 신경을 너무 쓴 탓도 있겠지만, 아마 오늘 내가 이미 지쳐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정원이에게 짜증을 낸 것일까. 겨우 그런 게 이유라면 나 자신에게 조금 실망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정원이의 집착 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안심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천천히 얼굴을 쓸어낸다. 눈을 감고 있자니 이전에 이연아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랐다.

‘그거 아시나요? 제가 보기에 정원 선배는 지금 정신적으로 병들어있어요. 하나 예를 들어볼까요? 지금 당장 강휘씨가 해외로 출장을 나가게 되면 정원 선배는 어떻게 될까요?’

나는 그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연아가 대신 말했다. 정원이가 망가지게 될 것이라고. 아마 지금이라면 나는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연아씨 당신의 말이 옳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나 또한 망가질 것이다. 얼굴을 천천히 쓸어낸다. 눈이 감겼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정원이가 천천히 망가지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단지 나와 떨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원이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짓누르는 누군가가 속삭였다. 나 역시 정원이와 같다. 피로의 원인이 무엇일 것 같은가. 과연 정원이와 떨어진 탓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머릿속이 정원이로 가득 찼다. 그렇게 눈을 감고 정원이를 그리며 밤을 지새웠다. 정원이의 울음소리가, 정원이의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울렸다. 나는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작품후기]글이 좀 질질 끌리긴 하는데, 아마 내일부턴 스토리가 굉장히 빠르게 달려 나갈 것 같습니다. 음. 대충 일주일 안에는 끝나겠네요.

오늘도 부족한 점이 많은 글 관심 가져 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항상 감사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