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125화 (125/138)

124회

chapter5그 후로 정원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정원이의 답변을 기다렸다. 정원이가 궁금한 점을 질문하면 나는 그에 대해 답변했다. 둘 다 모르는 게 있을 땐 같이 고민해보았다. 그래도 모르겠는 것은 그냥 묻어두고 이후에 함께 대처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불빛이 사그라질 때까지 속삭였다. 기자는 고소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고소한다고 적어보고 그래도 사라지지 않으면 시간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자. 이후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국정원에 물어보자. 가족들에겐 모두 밝힐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옆에 있어 주겠다. 회사는 다닐지 안 다닐지 모르겠다. 일단은 버텨보려고 한다. 그러나 강휘 네게 안 좋은 소문이 심해진다면 퇴사하겠다. 정원이와 대화를 마치고 나서 잠긴 목을 풀려고 헛기침을 하고는 재차 물었다.

“그래도 괜찮겠어?”

“응, 그래도 돼.”

“홍보팀에서 꽤 재밌게 일했었잖아.”

“응. 재미있었어. 내가 잘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정원이는 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깍지를 꼈다. 그리곤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내 손을 가슴에 끌어서 껴안으며 속삭였다.

“이제 나한테 너보다 소중한 건 없어.”

무거운 말이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알고 있었고, 견딜 수 있으며, 기꺼이 환영하는 감정이었다. 말없이 정원이의 고개를 돌렸다. 정원이가 눈을 감았다. 정원이에게 입을 맞추었다. 천천히 내 마음을 정원이에게 전했다. 나도 그래.

***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아버지와 대면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대면을 요청하자 이사실에 나를 부르셨다. 들어가자 아버지께서 사람을 물리셨다. 나는 아버지를 마주하고 앉아 있다가 넌지시 물었다.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회사 내에 도는 소문이 뭔지도 모르는 경영자는 자격이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마디로 아버지께서 모든 사정을 짐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께선 이 순간에도 나를 가르치고 계셨다. 아버지께서도 분명히 복잡한 감정이실 텐데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 역시 감정을 내세우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나 누나도 알고 있습니까?”

“둘은 아직 모른다.”

“그렇습니까.”

이성적으로 대화가 오가는 것은 좋았지만 흐름이 부드럽게 흐르지만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께선 정원이에 대해 질문하시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고 계셨고, 나 역시 내 말만 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웠다. 일부러 아버지께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드리려고 입을 다물었다. 한순간 침묵이 돌았다. 아버지께서는 한숨을 내쉬더니 얼굴을 굳히고 내게 질문하셨다.

“네 입으로 밝힐 테냐?”

“이번 주말에 정원이랑 같이 밝히기로 했습니다.”

“흠, 그럼 시간을 비워야겠구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버지께 정원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 자리에선 물어볼 수 없었다. 정원이가 없는 자리에서 할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께선 더 이상 내게 질문할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있더라도 하지 않을 기색이셨다. 아마 방금 내 대답을 통해 주말에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정원이에게 물으시겠지.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봐라.”

“일단 그 기사 쓴 기자 좀 고소해주십시오.”

“그리고.”

“그걸 통해 저 역시 인터넷에서 떠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할 셈입니다.”

“경고라.”

“네. 대중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다치지 않는 선까지라고 생각합니다.”

“뭐, 좋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예.”

아버지께서도 흔쾌히 수락하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회사 내에 있는 소문을 잠재울 방법은 없겠습니까?”

그러자 아버지께서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셨다.

“없다.”

“……저번엔 되지 않았습니까?”

“저번엔 뚜렷한 피해자가 있었다. 그리고 명분도 있었다. 소문이 회사에 직접적인 이미지 손실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 언급하지 말라고 명령 할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명분, 음.”

내가 신음을 내자 아버지께서 다시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가 알아차린 것을 눈치 챈 것이었다.

“그래. 이번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된다던가, 그런 명분이 없지. 강제로 입을 다물게야 할 수 있지만 아마 반발이 있을 것 같구나. 요즘엔 특히나 이런 데 민감하고 말이야.”

“방법이 없겠습니까?”

“개인적으론 휴직을 추천하지만, 원하는 눈치는 아니구나.”

나는 얼굴을 굳혔다. 결국 정원이가 자리를 비우고 소문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 방법엔 문제가 있었다. 정원이가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돌아왔을 때 다시 소문이 퍼질 수도 있었다. 즉, 기약 없는 해고였다. 아버지께선 그런 나를 바라보시더니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시며 말씀하셨다.

“주말까지 그것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고.”

“예.”

“더 할 말은 있고?”

“없습니다.”

“그래. 그럼 이걸 좀 보자.”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옆 책상에 올려져 있던 서류뭉치를 넘겨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조금 당황했다가 허둥거리며 서류를 들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가 서류를 보며 천천히 넘겼다.

서류를 확인해 보니 계약서 같았다. 하청업체와의 계약서였다. 하청업체는 이름이 꽤 익숙했다. 기억을 되짚어봤다. 머릿속이 간질간질했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했다. 그러다 불현듯 떠올랐다. 인사과에서 인사과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회사였다. 천천히 서류를 넘겼다. 업체와 추가 계약, 계약 연장, 보수 요청. 서류를 다 읽고 책상에 내려놨다.

“이게 뭡니까?”

“흠. 아예 기억을 못 하는 모양이구나.”

아버지께서 눈살을 조금 찌푸리셨다. 내가 착수한 프로젝트조차 기억을 못 한다고 여기시고 실망하신 것 같았다. 조금 서둘러서 대답했다.

“업체는 기억이 납니다. 인사과 프로그램을 만든 곳인데……, 이걸 왜 저한테 넘기셨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구나.”

아버지의 인상이 다시 풀렸다. 그리고는 헛기침을 하시고는 말씀하셨다.

“원래 이런 업체와 계약을 맺는 일은 내가 주로 하는 일이다만, 너도 슬슬 할 줄 알아야지. 마침 네게 익숙한 업체고, 가서 도장만 찍고 오면 될 일이다.”

즉 아버지께선 본인의 일을 내게 가르치려고 한 것이었다. 지금 내가 인사과와 총무과를 거쳐, 곧 다른 과로 옮기려는 이유 역시 모두 회사 일을 두루두루 배워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업무는 내가 수행해야 할 일이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마침 나에게 친숙한 업체였고, 내가 주도적으로 협상을 해야 할 필요도 없는 간단한 일이었다.

인정했다. 계약을 맺는 법 역시 배워야 할 일이었고, 이것은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시기가 영 좋지 않았다. 나는 조금 꺼리는 듯한 태도로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얼마나 걸립니까?”

“업체가 지방에 있으니 이틀 정도 출장을 다녀오면 되겠구나.”

“그, 꼭 지금 가야 합니까?”

다행히도 내가 주저하며 말을 꺼낸 것에 대해 아버지께서는 이해를 하시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정원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래. 너무도 좋은 기회가 아니냐.”

인정했다.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좋은 기회였다. 나 역시 그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고 싶은 것을 참고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혹시 출발은 언제 합니까?”

“내일 출발하면 되겠구나.”

“예.”

인사를 하고 이사실을 나왔다. 얻은 것이 무엇인가. 기자를 고소하고, 약속을 잡은 것, 그 두 개가 다였다. 사실 가장 원했던 것은 회사 내의 분위기를 잡는 것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명분이 마땅치 않은 모양이었다. 인터넷에 하는 것처럼 고소를 빌미로 은근한 협박을 하기에도 애매했다. 그런 억압적인 방법은 사원들의 반발을 사기 쉽기 때문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정원이가 버텨내거나 혹은 회사를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이곳에 정원이를 홀로 두고 출장을 다녀와야만 한다. 정원이가 아직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이 시기에 정원이의 곁을 떠나야 한다. 그것도 하필이면 내일 당장.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계약만 체결하고 오면 될 간단한 일이니까 일정이 이렇게 잡힌 거겠지. 문제는 그동안 정원이를 케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홍보팀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원이가 보였다. 업무 중에 지나가는 길인 것 같았다. 정원이에게 아는 체를 하려는 순간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졌다. 이쪽을 주시하는 것 같았다. 시선의 정체를 알고 나니 축축한 악의가 느껴졌다. 우리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 같은 눈빛.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어쩔 수 없이 이쪽을 발견한 정원이에게 가볍게 눈짓만 하고 지나쳤다. 굳이 장작을 던져줄 필요가 없었다. 정원이를 지나쳐 갈 때 정원이가 조금 풀이 죽은 것 같았다. 하지만 서로 자연스럽게 각자 가던 길로 갔다.

퇴근하고 주차장에서 기다리자 정원이가 곧 도착했다. 정원이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차에 탔다.

“어으, 피곤하다.”

“고생했어. 별일 없었고?”

“어, 별일은 없었는데.”

정원이가 말끝을 흐리다가 내게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들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조금 삐졌을지도.”

“엉?”

내가 듣자 정원이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보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좀, 아니야. 나도 알아.”

“아하.”

요컨대 내가 자기를 발견해 놓고도 말도 없이 지나간 게 마음에 걸린다는 소리였다. 왜 그런 지야 본인도 알고 있었고, 또한 납득도 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조금 감정이 상했다. 그 말이었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얘는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내가 일부러 눈을 맞추려고 몸을 돌리자 정원이도 내 눈빛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다시 내가 얼굴을 마주하려고 했더니 다시 고개를 돌린다. 왼쪽, 오른쪽, 오른쪽, 왼쪽. 위, 아래, 다시 위, 위. 오른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왼쪽. 눈이 마주쳤다. 정원이는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야, 누가 이렇게 귀여우래?”

“아니이, 그런 게 아니고오.”

내가 두 뺨을 잡고 능글맞게 웃자 정원이가 말을 질질 끌며 눈빛을 피했다. 필사적으로 차의 천장을 바라보는 것 같이 눈동자가 위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실실 웃으며 정원이의 뺨을 놓아주고 두 팔을 벌렸다. 정원이는 그런 내 눈을 피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와락 안겨들었다. 그런 정원이를 꼭 안아주자 정원이가 칭얼대며 말했다.

“나두 아는데에. 거기서 굳이 아는 척 안 하고 지나가는 게 좋은 건 아는데에. 그래도 막, 막, 어? 그때 니 표정이 말이야.”

“알아, 알아. 우쭈쭈. 어우, 우리 정원이 너무 귀엽다, 정말.”

“씨잉.”

정원이는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짜증을 내며 떨어졌다. 그러다가도 못내 아쉬웠는지 다시 분한 얼굴로 안겨들었다.

“너 짜증 나. 너 미워.”

“어휴, 그래쪄요? 정원이 삐져쪄요?”

“야악!”

“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정원이가 결국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지르며 몸을 꼬았다. 그러다가 웃으며 등을 토닥거려주자 정원이가 그제야 얌전하게 안겼다. 정원이가 안겨있는 채로 말했다.

“솔직히 알겠는데, 음. 나 하나만 부탁해도 돼?”

“어.”

“출근하고 잠시만 어디 안 보이는 데에서 이렇게 꼭 안아주면 안 돼? 그, 힘낼 수, 있을 거, 같은데에.”

“흠.”

장소가 마땅치는 않았다. 어디든 사람들의 시선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우리를 예리하게 주시할 것이었다. 씹어댈 것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그러나 나는 그 점을 알면서도 그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았어. 한 번씩 충전하고 일 시작하자.”

정원이는 나를 꼭 안고 있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그러더니 자기가 어리광을 부린 것이 무안했는지 뺨을 긁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실실 웃다가 멈칫했다. 정원이와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정원이는 그런 내 얼굴을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왜? 뭔 일 있어?”

“으음, 어. 나 약속 못 지키겠다.”

“어?”

정원이가 당황한 듯 눈이 동그래졌다. 혹시라도 정원이가 오해할까 봐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나 내일 지방으로 출장을 좀 내려가야 해서.”

“어? 어? 아, 아아.”

점점 굳어가던 표정이 다시 풀렸다. 그리곤 안도한 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눈꼬리를 흘기며 말했다.

“뭐야? 그럼 당장 내일부터 없어지면서 매일 껴안아 준다고 약속한 거야? 어?”

“그, 그렇지.”

“입만 열면 아주! 어? 요요요요, 나쁜 녀석아.”

“미안해.”

“미안하면 다냐? 어?”

정원이가 손가락질하며 내 볼을 콕콕 찔렀다. 그런 태도가 오히려 반가웠다. 차라리 이렇게 나를 탓하는 것이 편했다. 그런 장난스러운 태도에 오히려 안도하고 있던 차에 점점 정원이가 찌르는 힘이 약해졌다. 정원이도 그에 대응하듯 천천히 풀이 죽어갔다. 마침내 손가락이 내려갔다. 어느새 고개도 숙인 채였다.

우려했던 모습이었다. 정원이가 힘없이 두 손으로 안전벨트를 찼다. 그리곤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출발하자.”

“어, 어.”

정원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엑셀을 밟고 출발했다. 운전하는 동안 정원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삐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냥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멍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정원이를 한 번씩 힐끗거리며 운전을 했다.

곧 정원이네 집에 도착했다. 정원이는 내가 도착했다고 말하자 천천히 차에서 나가 비적비적 걸어갔다. 그 기운 없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소리쳤다.

“야! 다정원!”

“어?”

나는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 정원이를 끌어안았다. 정원이는 반응이 없었다. 멍청하게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나는 그런 정원이를 마음을 담아 꼭 껴안으며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내일 분 충전.”

그러자 정원이는 내게 안긴 채로 가만히 서 있다가 내 팔에 손을 올렸다. 그리곤 약하게 힘을 주어 내 팔을 풀었다. 나는 그 정도 힘에도 저항하지 못했다.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순간 정원이가 뒤로 돌았다. 나를 마주한 정원이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린 모습. 그러나 곧 표정을 털어냈다. 다소 힘은 없었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 이번엔 정원이 쪽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못 됐어, 진짜.”

“미안해.”

“그런 점이 못 됐다구. 나만 나쁜 년 만들고. 에휴.”

정원이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조금은 정신을 차린 것 같이 목소리가 조금 커져 있었다.

“잘 다녀와. 몸조심하고.”

“어.”

“내려가서 딴 년 만나면 뒤져, 진짜.”

“물론이지.”

“올라올 때도 운전 조심하고.”

“그래.”

정원이가 팔에 힘을 주고 꽉 껴안더니 이내 품에서 멀어졌다. 불안함을 감추려는 표정. 애써 힘내는 표정. 많은 생각에 잠겨있는 그런 표정. 그러나 정원이는 미소로 그것들을 지워내며 주먹을 쥔 손으로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잘하고 와. 파이팅.”

“그래. 너도 힘내고.”

“내가 힘낼 게 뭐 있니.”

정원이는 그러곤 등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며 정원이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자리에 서 있었다. 정원이를 억지로라도 데려갈까. 아니면 휴가라도 쓰라고 할까. 내일 내려가는 척하고 정원이네 집에서 지냈다가 당일 날 내려갈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정원이를 데리고 나와 모텔이라도 데려갈까. 그렇게라도 심리적인 안정을 시켜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모든 생각을 한숨으로 내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차에 올라탔다. 내가 불안한 만큼 정원이도 불안하겠지.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원이를 믿는 것밖에 없었다. 믿자. 정원이가 잘 지낼 수 있기를 믿자. 내가 없는 동안 별일이 없기를 기원하자. 그리고, 그리고.

“하아, 시발. 내가 먼저 미치겠네.”

방금까지 껴안고 있었으면서, 대화를 나누었으면서, 정원이가 앉아있던 조수석 빈자리가 사무치게 시리게 느껴졌다. 벌써부터 정원이를 만나지 못할 이틀이 이가 갈리도록 원망스러웠다. 정원이가 보고 싶다. 정원이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아, 정원이 보고 싶다.

[작품후기]조금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야기는 뭐, 원했던 대로 차근차근 스텝을 밟고 있네요. 네.

오늘도 부족한 점이 많은 글 관심 가져 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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