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124화 (124/138)

123회

chapter5대체 국정원에서 숨기고 있던 사실이 한낱 인터넷 커뮤니티에 오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경위를 알아보니 이러했다. 이전 이연아가 내게 보여줬던 것처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성별이 바뀌는 속칭 ts에 대한 글들이 올라왔다가 사라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했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면 기자는 그것을 조사한다. 한 찌라시 기자가 결국 해냈다. 국정원의 정보를 알아낸 것이었다. 방법은 모르겠다. 여하간 기사화가 된 것이 중요했다. 이후 국정원의 조치였는지, 혹은 관련인의 신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사는 내려갔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기사의 캡처본이 다시 커뮤니티에 떠돌기 시작했고, 걷잡을 수 없게 퍼졌다는 점이었다.

신상이라고 해봐야 많은 것이 적힌 것은 아니었다. 사진, 이름, 그리고 현재 근황 정도. 그러나 그 근황이 적혀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쳤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한눈에 보기에도 끔찍한 사건들도 많았고, 그에 대한 조리돌림도 많았다.

처음 들었을 땐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곧 정신을 다잡았다.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 정신을 차려야 했다. 어떤 조치를 먼저 취해야 할까. 기자에 대한 고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조리돌림을 하고 있는 사람과 그 게시글을 올린 사람들을 무작정 고소한다고 엄포해야 하나? 아니면 회사에 도는 소문부터 잠재워야 하나? 아버지께서 저번에 흐린 말엔 이런 의미가 포함된 것이었나? 그렇다면 가족에게 먼저 밝혀야 하나? 아니면 국정원에 따져? 아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얽혀있던 머릿속이 풀렸다. 저번에도 이미 한 번 실패해놓고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뻔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혼자 끙끙대며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원이와 얘기하자. 해결책을 강구하든 무슨 대책을 짜든 어떻게 대처를 하든 정원이와 먼저 이야기를 나누자. 정원이에게 이런 더러운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정원이와 이야기를 나누자. 이건 정원이의 일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내가 혼자 폭주해서 달리다가 정원이를 상처 주고 싶지 않으니까.

이런 생각에 가득 차 오후 업무는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총무과장님께도 한 소리 들으며 머리를 숙이고 어떻게든 업무를 마쳤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정원이에 대한 문제로 가득했다. 퇴근 시간이 되고 내일은 꼭 제대로 하겠다고 과장님께 다시 사과를 드리고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정원이를 기다렸다.

요즘 정원이는 나와 함께 칼퇴근을 하곤 했다. 그래서 곧 정원이가 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정원이는 금방 오지 않았다. 카톡으로 오늘 혹시 야근을 하느냐고 물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초조했다. 하필이면 왜 오늘. 핸들을 신경질적으로 툭툭 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문을 여는 순간 멀리서 정원이가 보였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서둘러 달려가서 정원이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어, 음. 으응. 있었어.”

정원이가 애매한 태도로 말했다. 말꼬리가 기어들어 가는 것이 언급하기를 꺼리는 것 같았다. 캐물을까 고민하다가 지금 정원이에게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이를 껴안았다. 정원이의 얼굴이 차가웠다. 정원이는 체온이 조금 높았다. 내가 만질 때마다 따뜻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따뜻한 애가 이렇게 될 때까지 참고 있었다. 그 사실이 화가 났다.

“가, 갑자기 왜. 아니, 으.”

정원이는 내가 껴안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당황하다가 약한 소리를 내며 나를 마주 안았다. 그리고 내게 완전히 안겨서 얼굴을 파묻었다. 정원이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내 손길을 떼어내지도 않았다.

정원이는 내게 안겨 한참을 그렇게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러다 정원이는 얼굴을 파묻은 채로 정말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휘야.”

“응?”

“날 버리지 마. 제발, 제발. 버리지 마. 부탁이야. 너만은, 제발, 버리지 말아줘.”

정원이는 그렇게 한참을 젖어있는 목소리로 반복했다. 버리지 마. 버리지 마. 날 버리지 마. 나는 그것을 들으며 계속 정원이의 등을 쓸었다. 정원이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단정적으로 말을 꺼냈다.

“절대로 버리지 않아.”

“……응.”

정원이는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그 말을 반복하다가 내가 버리지 않겠다고 말하자 그제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천천히 몸을 떼더니 어느새 미소를 지으며 차에 탔다. 재빠른 몸짓이었고, 오버스러운 행동이었다. 내 눈엔 그것이 억지로 꾸며낸 것 같았다. 그러나 정원이의 의도를 알아채고 나도 차에 올라탔다. 말없이 시동을 걸자 정원이가 배고프다느니 오늘도 힘냈다느니 재잘거리다가 살짝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 물어봐?”

“어. 니가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으, 잠시, 만. 잠시만.”

정원이가 두 손을 입에 모으고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방향을 틀어서 카페를 향했다. 카페에 도착해서 얼른 나가서 조수석의 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정원이는 내 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을 올렸다. 차갑게 식은 손을 꽉 잡고 에스코트했다. 주문은 핫초코와 아메리카노.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나서 정원이에게 핫초코를 넘겼다. 정원이는 마시지 않고 컵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한 입을 마시고 입을 열었다.

“같은 팀원이, 뭘 보여 주면서 혹시 이거 사실이냐고, 나한테 보여줬는데.”

“설마 이거?”

“아.”

내가 핸드폰으로 해당 사이트를 보여주자 정원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이 나왔다. 그러자 정원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했어! 아니라고 했는데!”

“아, 아니야. 너한테 한숨 쉰 거 아니야. 괜찮아. 진짜 괜찮으니까 진정하고.”

“아닌데, 그게 아니라.”

정원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참아내고 있었다. 내가 손을 잡아주자 정원이는 내 손이 동아줄이라도 된 양 내 손을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마주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마 정원이는 부정했을 것이다. 아니라고 말했겠지. 그러나 지금 태도를 보면 내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이구나. 아마 회사엔 더 소문이 퍼지겠지. 보이지 않던 수군거림이 구체적인 악의가 되어 꽂힐 것이다. 정원이 역시 그것을 직감한 것 같았다.

나는 내 손을 부여잡고 있는 정원이의 손 위에 왼손을 올려 감쌌다. 그러자 정원이는 그렇게 움켜쥔 손 위에 이마를 대고 몸을 떨었다. 마주 잡은 손에 힘이 간헐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울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기다려주었다. 뭘 할까, 어떻게 할까. 그런 건 지금 정원이를 달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원이가 내게 기대는 만큼, 나는 버텨야 했다.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적어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됐다.

정원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정원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 아버님도 아시겠지?”

“……아마도.”

“흐윽, 어떡해. 혹시라도, 혹시라도 우리, 흑.”

“괜찮아.”

결국 정원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감싸던 손을 떼고 손수건을 꺼내 정원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잘 설명하면 될 거야. 괜찮아.”

“그래도, 그래도.”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면 내가 집 나오지 뭐. 뭐 독립할 때 됐으니까 괜찮아.”

“안 돼! 그러지 마. 그러지, 마.”

정원이가 떨리는 눈으로 애처롭게 외쳤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나를 걱정하는구나. 나는 정원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속삭였다.

“그래, 안 그럴게. 끝까지 설득해 볼게.”

“응, 응.”

“그러니까 너도 그만 울어. 음, 아니다. 실컷 울어라. 편할 때까지 울어.”

“으윽, 흑. 너, 진짜. 흑.”

결국 정원이가 내게 안겼다. 내 품 안에서 정원이는 한참을 울었다. 지금까지 참았던 만큼 쉽사리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제가 지칠 만큼 정원이는 실컷 울었다. 주위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지만 나는 그런 시선으로부터 정원이를 감쌌다.

다른 사람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정원이뿐이었다. 오직 우리가 세워 놓은 울타리 안이 중요했다. 나는 그렇게 정원이를 감싸며 정원이의 감정을 받아냈다. 정원이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정원이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까지, 그리고 내가 버텨낼 수 있을 때까지. 계속.

***

카페에서 한참을 울다가 정원이가 지쳐서 울음을 그치자마자 바로 도망 나왔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은 회사에서 만으로도 족했다. 정원이 역시 울 때야 눈치를 못 챘지만 다 울고 나서는 내게 폭 안겨서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 그냥 음료 들고 차로 바로 들어올걸. 그나마 자주 가던 카페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아무튼 한바탕 울고 나서인지 정원이는 꽤 침착했다. 풀이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감정이 좀 가라앉은 것은 확실했다. 대화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정원이네 집 앞에 도착해서 정원이에게 할 말이 있으니 잠시만 앉아있으라고 했더니, 정원이가 차 뒷좌석을 가리켰다.

“왜?”

“안아줘. 스킨십이 필요해.”

“그럼 저번처럼 이리로 오면 되잖아.”

“지금 핫초코 마시잖아.”

“아. 흘릴까 봐?”

“어.”

안아달라는 말을 저렇게 담백하게 할 수 있다니. 이것도 다 익숙해진 탓이었다. 아니면 그냥 기분이 다운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둘 다 차에서 나왔다가 다시 뒷좌석에 앉았다. 정원이는 선언했던 대로 내 다리 사이에 들어와 앉았다. 그리곤 이젠 다 식어버린 핫초코를 홀짝댔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까. 천천히 생각하다가 서두를 꺼냈다.

“앞으로 어떻게 할래?”

“정확히 뭐를.”

“뭐, 음. 여러 가지 있는데. 그래. 일단 우리 가족한테 밝힐래?”

정원이는 대답 없이 핫초코를 마셨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어?”

“괜찮지 않아. 그래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해. 니 말 들어보면 아버님은 이미 알고 계신 것 같구.”

“알았어. 그럼 주말에 자리 한 번 잡자.”

“웅.”

정원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화제를 꺼냈다. 일부러 사실만을 전하기 위해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감정은 온기로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회사는 어떻게 할래.”

“그건……, 진짜로 모르겠어. 넌 어떻게 생각해?”

“니가 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자 정원이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정원이의 배를 껴안았다. 정원이는 한 손으로 내 손을 쥐고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계속 다니면 너, 너한테도 안 좋은 소문이 날까?”

“영향이 없진 않겠지.”

그러자 정원이는 컵을 내려놓고 쥐고 있던 내 손을 들어 이마를 올렸다. 몸이 간헐적으로 떨리기 시작한다. 눈물을 참고 있는 것이었다. 턱을 정원이의 어깨에 올려, 달래듯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괜찮아. 저번에도 별 일 없었잖아. 아버지한테 잘 부탁해서 소문 흩트리면 돼. 괜찮아.”

“그래, 도, 그래도, 작은 일도 흠집이 되잖아. 너한텐. 흑.”

손등에 뜨거운 감촉이 느껴졌다. 결국 정원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까 카페에서도 그랬지만 자기를 걱정할 땐 울음을 참더니, 정작 나를 걱정하며 울고 있다. 이 사실을 기뻐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걱정해야 하는 걸까. 미묘한 기분을 담아 손수건을 꺼내 정원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차가워진 손을 꼭 잡아준다. 정원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딸꾹질을 하면서도 말했다.

“나는, 흑, 괜찮아. 흐끅. 다른 사람들이 다, 흑, 나를 경멸해도 괜찮아. 그런데, 그런데 니가 나 때문에 그런, 흐끅, 취급받는 건. 으, 싫어. 싫다구.”

감정이 내 마음을 두드린다. 나에게 기대는 정원이의 아픔이 나를 두드린다. 나를 흔든다. 정원이가 나를 이렇게까지 걱정하고 있다는 게, 저 자신보다 먼저 내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나를 취하게 했다. 정원이가 울고 있는데,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는데 나는 그걸 보며 환희에 차고 있었다. 그 사실이 못내 불편했다.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낸다. 감정을 숨기며 애써 다른 소리를 했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니가 괜찮은 것처럼, 나도 괜찮아.”

“흐윽, 바보야아.”

정원이가 운다. 나는 정원이를 달랜다. 정원이를 위로한다. 정원이가 우는 모습을 보며 위로받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고 있었다. 자신보다 서로에게 더 취해 감정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것은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정원이를 받쳐줬다. 정원이 역시 자신이 버티기 위해 내게 기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실조차 감미로워서, 내가 사라지는 순간 네가 쓰러지는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깨진 독에 감정을 부었다. 그렇게 네게 위안을 받았다.

[작품후기]이게 참 어렵네요. 내용을 진행하고 싶은데 너무 빨리하면 또 급전개같고 감정 풀자니 뭔 내용이 없고. 하여간에 플롯이야 정해졌으니 잘 풀어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부족한 점이 많은 글 관심 가져 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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