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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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원 : 지금 우리 집으로 와줘. 부탁이야.]
카톡을 보고 마른 침을 삼켰다. 지난 밤 정원이에게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자 그보다 더 강렬한 기억이 뒤따라와 제가 먼저 연상된다. 아찔한 프레지아 향기가 아직도 입술에 닿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고개를 흔들어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네 안에서 그 날의 입맞춤의 의미는, 우리의 관계에 대한 것은 모두 정리가 된 걸까.
다시금 내가 지난 밤 정원이에게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입맞춤에 대한 의미가 정리되면 나에게 말해줘. 네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할게. 정원이가 그 때 깨있었던 모양이었다. 만일 그 때 정원이가 자고 있었다면 나는 오히려 그 날의 일을 가슴에 묻고 정원이를 친구처럼 대했을 것이었다.
그런 어중간한 태도에 스스로도 구역질이 나왔다. 정원이가 들었다면 정원이에게 선택을 보류하고 정원이가 듣지 못했다면 묻으려고 하는가. 나는 어디까지 더 추해지려고 하는가. 그러나 지나온 한 달간 나는 비루한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정원이가 사라진 일상은 그만큼이나 나에게 가혹했다.
정원이의 메시지를 보아 정원이는 그 날, 내 말을 들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답변을 전하려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빨랐다. 적어도 하루는 고민을 할 줄 알았는데. 덕분에 내 태도를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원이는 결정했다. 미적거릴 순 없었다. 서둘러 다시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나가니?”
“네.”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어머니도 이제 주말 행선지를 묻지 않으셨다. 그만큼이나 내게 있어 정원이는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주차장을 내려가려다가 말고 택시를 불렀다. 운전을 하면 사고를 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딱 그 정도의 생각을 할 만큼의 정신머리가 가까스로 잡혀있었다.
정원이네 집에 도착하고 벨을 눌렀다. 안은 한산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정원이나 정하도 그랬다. 그러나 집안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다시 한 번 벨을 누르려는 순간 집 안에서 정원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았다.
“안 잠겨 있어. 들어와.”
그 말을 듣고 문을 열어보니 정원이가 침대에 걸터앉아있었다. 그건 이상할 게 없었다. 이상한 것은 방금 들었던 목소리만큼이나 정원이의 눈이 가라앉아있었으며, 또한 정원이가 상의와 팬티만을 입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당황한 채로 바로 고개를 돌렸다.
“니, 니가 들어오라며! 왜 바지는 안 입고 그래!”
“어? 아, 하하. 미안. 그러네. 그렇구나.”
방금 본 정원이의 새하얀 다리가 머릿속에 자꾸 연상이 됐다. 새하얀 다리에 끝에 있던 하얀 레이스 속옷. 속옷이라 함은 그저 은밀한 곳을 가리는 용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도 미용적인 역할을 했다. 예뻤다는, 이게 아니고.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어 그 장면을 잊으려 했다. 정원이가 다시 말을 꺼냈다.
“강휘야. 여행은 잘 다녀왔어?”
“그거야, 오늘 너도 알다시피, 아니 씨팔! 왜 옷을 안 입냐고!”
말을 할 준비가 돼서 부른 줄 알고 고개를 돌렸지만 정원이는 그 상태 그대로였다. 오히려 다리를 꼰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의도한 것이 분명했다. 잘 입고 있던 옷마저 흐트러진 채였다. 나를 놀리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니, 장난치지 말고, 제발. 나 진짜 눈 둘 곳이 없어.”
“왜?”
정원이가 툭 던지듯이 물었다. 그러나 절대 가볍지 않은 질문이었다. 정원이의 감정이 얽혀있는 뭉치가 내게 던져졌다. 그것을 받자 감정이 가라앉았다. 진정할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린 채로 시선을 방구석에 고정시키고 말했다.
“다 큰 여자애가 아래에 팬티만 입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빤히 보냐.”
“하지만 너 처음에 분명히 나보고 안 꼴린다고 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그게 뭐고, 이건 뭔데. 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
침대시트가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원이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저벅저벅. 맨발이라 들릴 리 없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원이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 와중에도 고개를 돌리고 정원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정원이가 내 눈을 맞추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나를 마주보려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질끈 감는 것뿐이었다. 정원이는 힘없이 웃었다.
“하하.”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그랬다. 처음부터 정원이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그것을 떠올리자 당황이 덥힌 머리에 다시금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 들었다. 정원이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는 이유가 뭘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정원이에게 멋대로 짊어지게 한 짐 때문이었다. 정원이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번엔 몸은 돌릴 필요 없겠네. 응, 강휘야. 무릎 꿇어 볼래?”
저번과 같은 자세였다. 그러나 저번과는 달리 나는 정원이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원이가 조금 토라진 목소리로 보챘다.
“왜? 저번에 하나만 들어준다고 해서? 에이, 쪼잔하게. 남자가 그런 것도 못 들어 주냐?”
“그렇지만, 너.”
그 순간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배에 느껴졌다. 정원이였다. 화들짝 놀라며 눈을 뜨자 정원이가 까치발을 들며 입을 들이밀고 있었다. 정원이를 밀어내자 정원이가 밀려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모습에 놀라서 다가가려다가 정원이가 아직 입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소리쳤다.
“뭐, 뭐, 뭐, 뭐, 뭐하는데!”
“아야야, 까치발을 들어도 무리네. 너 키 너무 커. 180 넘으니까 어떻게 해도 닿질 않네.”
“아니, 뭐하냐고!”
“뭐하긴.”
정원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키스하려고 그러지.”
되려 정원이는 당당했다. 내가 할 말이 없어 질 정도로 시원한 태도였다.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정원이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웃으며 물었다.
“뭐라고 하면 키스할래? 음, 그래. 저번에 잘 모르겠다고 했었나? 너랑 한 번 더 키스하면 알 것 같아. 그럼 키스해줄래?”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정원이에게 대답을 미뤘다. 정원이는 해답을 내기 위해 다시 한 번의 키스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었다. 내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자 정원이가 다시 침대에 가서 앉아서 웃었다.
“장난이야. 사실 이미 알았거든.”
“그, 그러냐.”
정원이는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탕탕 때렸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란 소리였다. 문득 차라리 옆에 앉으면 마주볼 일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앉아 정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정원이가 그런 나를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쿡쿡, 긴장한 거 봐. 자세는 또 왜 정자세야? 생활관 처음 들어온 이병이니?”
“아니, 하, 씨.”
“강휘야 나 너 좋아해.”
“……뭐?”
나도 모르게 정원이를 바라봤다. 모든 흐름이 멈췄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 가운데 정원이의 목소리만이 나지막하게 울렸다.
“너, 나한테 그랬잖아. 왜 키스했냐고. 응, 그래. 이유가 이거야. 나 너 좋아해, 강휘야.”
정원이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마주보고 끝까지 말을 이었다. 말을 마치고 나서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자 귓불까지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진심이었다.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애가 아니었다.
온갖 감정이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 대답을 하기위해 서둘러 감정을 정리했다. 그렇게 정리해도 정리되지 않는 감정이 있었다. 우정이라는 이름의 제약이었다.
눈이 파르르 떨렸다. 정원이도 몸을 떨고 있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며 가만히 떨고 있었다. 그렇지만 너, 분명히 친구로 남아달라고 했잖아. 저번에 자고 있는 나한테도 모르겠다고 말했잖아.
“그렇지만, 너.”
“왜? 난 그런 대상으로 안 보여?”
씁쓸한 듯 목 메인 목소리. 울음을 참고 있는 네 목소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단어를 골라야했다. 아니, 그 전에 생각을 골라야했다. 입이 쉽사리 열리지 않고 단어를 머금는다. 생각을 더듬는다. 정원이가 중얼거렸다.
“나조차 이젠 포기했는데, 너만이 아직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구나.”
정원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표정이 탈색되어 있었다. 하얗게 질린 너는 그렇게 색 바랜 미소를 지었다. 흐드러지듯 너의 미소가, 너의 말이 내 숨을 막히게 한다.
“강휘야, 나 연아랑 섹스 할 뻔 했어.”
“……뭐?”
정원이를 바라본다. 진실.
“그게 무슨 소리야.”
“연아가 이곳저곳 만졌는데. 후후.”
이것 역시 진실.
“이연아가 너 덮쳤어? 강간했어? 그래?”
“아니야. 음, 비슷한데. 아니야.”
정원이는 그렇게 거짓 하나 없이 진실만을 내뱉었다.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밝히듯이, 그렇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 이렇게 하자.”
정원이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내 목을 끌어안아 당겼다. 아찔한 너의 향기, 이제는 익숙해진 프레지아 향기. 익숙해졌지만, 나는 아직도 당황하며, 네 얼굴이 눈앞에 드리워서, 정원이는 아무렇지 않게 계속 말을 잇는다.
“하자, 강휘야.”
정원이가 옷을 풀어헤친다. 새하얀 속옷 두 장이 남아 정원이의 뽀얀 살결이 눈에 가득 찬다. 살내음이 코를 찌른다.
“야, 일단 진정하고.”
“왜, 이러고도 못 안겠어?”
당황하며 내가 옷을 입히려 하자 정원이가 나를 비웃었다.
“안하면 나 이대로, 너 다시는 안 볼 거야.”
진실.
“그리고 연아한테 가서 안길거야.”
진실.
그 순간 머리를 어지럽히던 생각이 멎는다. 귀가 먹먹하다. 눈앞이 어두워졌다. 오직 네 입이 움직이는 모양만이 천천히 읽힌다. 연아, 한테, 가서, 안길, 거야. 감정이 한 점으로 치닫는다. 질투, 분노, 고양, 괴로움, 이 모든 것을 모으는 너에 대한 집착. 그 집착이 내 마지막 감정의 끝마디를 끊어버린다.
방금 나보고 사랑한다고 했잖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너를 아꼈는지 너는 모르면서.
내가 얼마나 네게 손대지 않으려고 참았는지 너는 모르면서.
내가 너를 탐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내 감정에 대해 외면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분노가 나를 지배했다. 눈앞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정원이를 거칠게 희롱한다. 이 순간 우리의 사이에 남아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우정도 아니었다. 그저 집착과 서로에게 고통과 흔적을 남기는 행위뿐이었다. 나는 정원이에게 천박한 말을 하며 정원이를 상처 입힌다.
“으윽. 아, 아파. 조금만 살살, 살살해줘.”
“입 닥쳐. 내가 지금 너랑 사랑한답시고 이지랄 하는 거 같냐?”
정원이가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도, 눈물 맺힌 눈으로 숨을 몰아쉬어도 나는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분노를 표출한다.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내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네게도 그것을 지워지지 않을 때까지 표출한다.
“처, 천천히. 제발.”
“방금도 말했지. 입 닥쳐. 어차피 내가 아니면 이연아한테 벌리려고 한 거 아니야?”
“아니,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흐윽!”
거친 폭력과 상처만이 남은 공간, 이곳에서 정원이는 내게 대항할 수 없었다. 나는 화를 냈고 정원이는 애처롭게 받아냈다. 정원이가 고통에 눈물을 흘리며 숨조차 쉬지 못할 지경이 돼서야 정원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정원이는 괴로운 듯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찡그렸다. 숨을 몰아쉬며 새하얀 배가 오르내리는 것조차 사랑스러웠다. 정원이가 고통을 느끼는 것이 괴로웠다. 걱정이 됐다.
고개를 흔들었다. 연민과 같은 쓸데없는 감정을 털어낸다. 나는 지금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나 아끼고 내가 그렇게나 사랑했던 네가 나와 이연아를 저울질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분노를 토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괴로운 숨을 뱉어내던 정원이가 나를 끌어안았다. 고통을 견디려는 듯 내 등을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그래, 너도 차라리 나를 상처 입혀. 내가 지금 너를 상처 입히는 것처럼. 서로의 고통을 나누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씨발, 씨발, 씨발!”
자괴감과 자기혐오가 섞여 욕이 나왔다. 신음소리를 내던 정원이의 입을 거칠게 틀어막는다. 이전에 그렇게 달콤하던 입맞춤이 변질되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톡톡, 입을 맞대고 입술에 모든 신경을 쓰던 때와는 다르게 입술을 강제로 벌려간다. 천천히 닫혔던 입술이 열렸다. 그 사이에 혀를 넣는다. 정원이의 입안을 훑는다. 처음엔 움찔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던 정원이의 혀도 점점 내 혀에 얽혀든다.
얽혀들기를 잠시 정원이의 신음소리가 변했다. 고통보다도 더 다급한, 그런 소리. 정원이의 두 팔이 내 가슴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런 신호를 무시하며 혀를 얽어매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정원이의 손이 더욱 다급해진다.
툭,
툭툭,
툭툭툭툭!
“흡, 응, 흐읍, 으으읍!”
“윽!”
정원이가 내 혀를 깨물었다. 잘릴 정도로 강하게 문 것은 아니었지만 혀에서 철분 맛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상처가 난 것 같았다. 혀가 쓰렸다. 정원이는 헐떡거리면서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원이는 한참을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헉, 허억, 숨을, 허억, 쉴 수가, 흑, 없잖아, 허억.”
말을 마치고도 정원이는 숨을 몰아쉬었다. 피가 섞인 침이 길게 이어져있었다. 쉬게 하고 싶지 않았다. 키스를 하느라 멈추고 있었던 행위를 다시 시작한다.
그러기를 한참. 마침내 이 고통스러운 동반에도 끝이 찾아왔다. 배 아래가 당기는 느낌을 받았다. 집착이라는 감정을 나누는 와중에도 육체는 솔직했다. 본능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것을 느낀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감정이 잦아들었다. 날아가 있던 이성이 제자리를 찾았다.
내가 너를 상처 입힐 수 있는 가장 쓰레기 같은 행위. 내가 너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것.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면 정원이도 내 질척한 감정을 눈치 챘을 것이다. 나에게서 떠나 이연아에게로 가도 좋다. 그러나 나는 너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를 알아챘을 것이다. 그것으로 족했다. 그렇게 행위를 끝내려는 순간이었다.
정원이의 양다리가 나를 얽어맸다. 등을 상처 입히던 두 팔이 나를 껴안았다. 나는 당혹해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야! 너, 시발!”
“괜찮아.”
정원이는 방금 전까지 고통스러워하며 무력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강하게 나를 얽어매고 있었다. 그리고는 달래듯이 내 귓가에 속삭인다.
“괜찮아, 괜찮아.”
“윽!”
다정한 말이 뇌리에 박힌다. 순간적으로 참고 있던 힘이 풀린다. 나는 당혹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왜. 정원이는 무슨 의도로. 참지 못하고 욕망을 쏟는다. 욕망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여운. 정원이가 지금껏 상처 입히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너, 대체.”
“응, 이걸로 됐어.”
정원이가 부드럽게 귓가에 속삭였다. 부드럽지만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 그런 필사적인 목소리였다.
“아프긴 했지만, 응. 나, 정말로 너를 좋아하니까.”
“근데 너는 나를 아직 친구로밖에 안보니까.”
“싫을 수도 있어. 알고 있어. 그래도 니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게.”
“니가 원한다면 연아랑 다신 안 만날게. 그러니까 정원언니한테 가지마.”
“그러니까 제발, 흑, 나를 버리지 마. 흐윽, 나를 사랑해줘.”
정원이가 울음을 참지 못하며 끝끝내 말을 이었다.
“제발 나를 사랑해줘, 흑, 흐어어엉.”
불안에 떨고 있는 아이가 울고 있었다. 상처 입은 아이가 울고 있었다. 자기를 믿지 못해서, 제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내세우고 나서도 온 몸을 떨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정원이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톡, 톡. 부드러운 입맞춤. 너를 안심시키기 위해. 정원이가 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꺼내야 할 말을 입안에서 굴린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더 효과적인 말을 찾는다. 마침내 정리한다. 말을 꺼낸다.
“그래, 아무데도 가지 않을게.”
눈물이 맺힌 정원이를 달래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질척거리는 감정이 너를 감싼다. 이어진 감정에 만족하며 부드럽게 웃는다. 나도 너를 원하니까. 네가 나만의 다정원이 되어준다면 나 역시 너만의 한강휘가 되겠다.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러니까 너도.
“너도 내 곁을 떠나지마.”
“……응!”
정원이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나는 눈물을 참으며 웃었다. 네 눈물을 핥자 너는 몸서리를 치며 나를 쥐어박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너는 내게 얼마나 아팠는지 아냐며 투덜거렸다.
그 모습조차 사랑스러워서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만다. 미안하다는 말을 주워 담으며, 다시 네게 입 맞춘다. 혀와 혀가 조심스럽게 마주친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서로의 감촉을 즐기며, 서로를 배려하며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얽매여, 서로에게만 신경 쓰며 톡, 톡.
[작품후기]뭐... 직접적인 묘사도 없고 저번화도 그랬지만 이 정도면 전 연령인게 아닌가 싶네요? 순문학에서 행위묘사 없는 성애신이 없는 것도 아니고.(심지어 19금도 아니고)
음... 조아라에서 뭐라고 하면 더 자르죠, 뭐.
아무튼 4부는 117편으로 끝. 4부 외전이 하나 더 나올 것이고, 외전은 아마 한 편에서 두 편정도, 4부 마지막 장면 이후 각자의 후일담 정도가 되겠네요.
외전 끝나고도 말씀드리겠지만 4부를 마치고 항상 그렇듯 3일을 쉴 예정입니다. 5부는 감정이 격동하는 기승전결의 결부분이기도 하고, 사건이 없는 것도 아니라(오히려 감정이 더 날뛸 예정이죠) 확실히 준비하고 뵙겠습니다. 일단은 내일 뵐게요!
물거나해쳐요님 크, 크신 후원 몸둘바를 어, 윽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십이사자님 연이은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있어요! ;)
LazyManX님 첫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
오늘도 부족한 작품에 대해 관심 가져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