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회
chapter4본편은 노블편이 무삭제편입니다. 아래 제시된 글은 어느 정도 19금 씬을 최대한 비운 삭제판이기 때문에 성인분들은 그 쪽을 봐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노블판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정원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연아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들어오기 전 고개를 내밀어 다정원의 상태를 확인한 것이 그녀가 갖춘 최대한의 예의였다. 그녀는 다정원이 자고 있지 않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천천히 문을 닫고 들어왔다. 이연아는 의자를 끌고 와 다정원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놓고 앉았다. 다정원이 몸을 일으키려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누워 계세요. 괜찮으니까.”
“으, 응.”
다정원은 자신을 방어하듯이 베개를 끌어안은 채로 엉거주춤하게 이연아쪽으로 돌아누웠다. 다정원은 이연아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다정원에게 있어 연인행세라는 것은 누구와도 연인관계라는 것을 긍정할 수 없는 자신에게 변명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연인관계라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을 옭아매는 말이었다. 그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러므로 다정원은 한강휘에게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연아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홧김에 긍정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꼬이지 않았을 텐데. 다정원은 그런 후회를 하고 있었다.
이연아는 가만히 그렇게 다정원을 내려다봤다. 다정원은 처음에 눈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베개에 파묻고 이연아의 눈을 피했다. 마주 바라볼 수 없는 감정의 부채가 있었다. 자신은 이연아에게 떳떳하지 못했다. 이연아는 그렇게 한참을 다정원을 바라보다가 다정원에게 나지막하게, 그러나 확신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강휘씨랑 키스하셨죠?”
다정원의 온몸이 곤두섰다. 지금까지도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던 다정원은 그 한마디에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떳떳하지 못할 비밀을 들키고 말았다. 언제? 어떻게? 그러나 이연아는 다정원을 상냥하게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하나씩 하나씩 다정원을 탓하기 시작했다.
“보고 있었어요. 그 순간을. 정원오빠가 먼저 입 맞춘 순간도 봤어요.”
다정원이 고개를 돌리면서 하정원을 찾았듯 이연아도 자신을 찾은 것이었다. 분명히 안 보였었는데, 하정원에게 너무 신경이 쏠렸기 때문이었을까.
“왜요? 이제 완전히 여자가 되기로 했나요? 정원오빠가 그러고 싶다면, 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아, 아니야.”
다정원은 어중간하게 목소리를 떨면서 애처롭게 부정했다. 내뱉은 자신조차 믿지 못할 만큼 작고 연약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최악의 응대였다. 이연아는 다정원의 힘없는 대꾸에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분노라고 해도 좋았다. 그도 아니면 집착이라고 해도 좋았다. 감정의 이름이야 뭐든 좋았다. 무언가 들끓는 감정이 자신을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이연아는 의자에서 내려와 천천히 다정원을 올라탔다. 그리고 그 상태로 허리를 숙여 다정원에게 밀착하며 다정원의 귓가에 속삭였다.
“왜요? 어차피 이렇게 될 걸 원한 게 아니었나요? 어때요? 저한텐 성욕이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그냥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으시나요?”
다정원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연아의 말을 듣지 않을 순 없었다. 눈을 감은 것이 귀를 막은 것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었다.
“대답 안하시나요? 아니면 못하시는 건가요? 뭐 어느 쪽이든 좋겠네요. 그냥 그렇게 계세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정원오빠는 항상 그런 식이었죠. 남이 해주기만, 남이 정해주기만 기다렸잖아요? 아.”
이연아가 분위기에 맞지 않게 유쾌하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다정원은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감정이 자신의 안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이연아가 언급한 욕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정원이 느낀 것은, 무욕도, 성욕도 아닌 단 하나, 공포였다. 자신이 이연아에게 깔려서 무력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이 현실이 두려웠다.
그러나 제일 두려운 대상은 이연아가 아니었다. 바로 다정원, 자신이었다. 한낱 여자에게 깔려서 무력과 공포를 느끼는 자신이 제일 두려웠다. 자신의 안에 무언가가 조금씩 깨져가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나를 없애지 말아줘.’
다정원은 두려움에 떨며 필사적으로 그 감정을 외면했다. 외면하는데 급급했다. 그러나 이연아는 그런 다정원의 감정을 모두 이해한 듯 다정원에 귓가에 상냥하게, 그러나 잔인하게 속삭였다.
“그게 편하시죠? 다정원 언니?”
“읏!”
다정원이 눈을 떴다.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다정원은 울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줬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남성으로써 인식하던 사람이 자신을 언니라고 칭한 순간 다정원 안에 있던 남성성은 비로소 잔인하게 거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허상을 다정원은 필사적으로 부여잡으며 그 감정을 분노로 표출했다.
“나는! 나는 여자가 아니야!”
“그럼 남자인가요? 후후, 그럼 강휘씨에겐 왜 키스하셨죠?”
“그건, 그건!”
다정원은 대답할 수 없었다. 남성인 자신이 한강휘에게 자발적으로 키스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그 장면은 거울을 통해 익숙해진 조그마한 여자애가 수줍은 얼굴로 달빛아래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입술을 맞대는 모습이었다. 그곳에 남성인 다정원은 더 이상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원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성의 논리가 아니었다. 감성조차 이미 작은 여성 한 명을 한 폭의 사진에 담고 있었다. 그래, 그건. 그것은 그저 애처로운 본능일 뿐이었다. 이연아는 그런 다정원에게 독사와도 같이 속삭였다.
“그럼 왜요? 저랑 그거 해보실래요?”
남성으로써 자신을 마지막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노라. 그것도 자신을 통해서. 그렇게 이연아는 붉은 과실을 다정원에게 내밀고 있었다. 한 입만 베어 물어. 그럼 너도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야. 금단의 과실을 건네며 독사는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다정원은 그 말을 듣고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다정원이 선택한 것은 또 한 번의 회피였다. 다정원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 눈을 다시 감고 고개를 돌렸다. 이연아는 그런 다정원을 보며 혀를 찼다.
“칫. 선배는 지금도 그런 식이네요. 정말, 편하시겠어요.”
그 말은 다정원을 끝까지 몰아세워 상처 입혔다. 꽉 닫힌 다정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연아는 자신의 갈 곳 잃은 분노를 표출하기로 했다. 그녀는 여기서 다정원을 내버려두고 방을 나가면 다정원이 자신과 평생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 챘다. 여자로써의 직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녀는 결단했다. 이대로 끝낼 순 없었다. 그녀는 다정원에게 이번엔 다정하게, 그리고 유혹하듯 속삭였다.
“그러면 적어도,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도 전부 그냥 받아들이세요. 전 먼저 오빠랑 키스할 거에요. 그 다음엔 섹스를 하겠죠. 오빠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모두 다 무시하세요. 고개를 돌리고 질질 짜면서 남자가 아닌 여자랑 육체적인 관계를 나눴다는 데 위안을 삼으세요. 그렇게 오빠를 유지하세요.”
그녀는 오빠라는 언어를 통해 다정원을 속박했다. 입을 벌리지 않는 다정원에게 억지로 붉은 과실을 넘기기 위해 그녀는 비겁하게 굴기로 했다. 그러나 이연아의 말대로, 다정원은 그럼에도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다정원은 그 순간에도 남성으로써의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마지막 한 가닥을 필사적으로 쥐고 있었다. 그러기에 급급했다. 그런 점에서 이연아의 선언은 차라리 칸타타의 줄과 같았다. 다정원은 자신을 붙잡으려는 여러 생각들을 걷어차며 그 줄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이연아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순간 다정원은 반사적으로 손을 올렸다. 자신의 입을 가렸다. 이연아가 얼굴을 찡그렸다.
“키스할 거에요. 손 내리세요.”
그러나 다정원은 고개를 저었다. 한강휘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느껴진 감정을 다정원은 정리할 수 없었다. 따뜻함, 죄책감, 책임감, 독점욕, 어떤 단어로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손을 올리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이연아에 대해 거부감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손을 내리지 않았다. 이연아는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직도 내세울 자존심이 있었던가. 다정원을 노려본다. 다정원은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머뭇댄 잠시, 인기척이 느껴졌다.
똑똑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연아도 다정원도 둘 모두 그랬다. 이연아와 달리 인기척을 낸 상대는 문을 열지 않았다. 다만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정원아. 나야, 강휘. 혹시 자니?”
한강휘였다. 술에 조금 취한 목소리였다. 다정원도 이연아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움직임 하나 없었다. 한강휘의 행동에, 말 하나에 모든 신경이 집중됐다. 멈춰버린 시간이 방안에 드리워졌다. 한숨소리가 들렸다.
퉁
무거운 소리였다. 방문에 머리를 박은 것 같았다. 그러나 문이 열리진 않았다. 곧 온갖 감정이 섞인 나지막한 목소리가 방안에 흘러 퍼졌다.
“후우. 정원아. 그래. 자고 있어도 좋고, 깨있어도 좋아. 그냥,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 나, 솔직히 니가 그렇게 행동하는 거 힘들어.”
퉁
“싫은 게 아니라, 그냥 힘들어. 싫지 않아서 더 힘들어. 니가 친구로 있어달라고 했잖아.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나, 오해해버린다고. 널 친구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다고.”
퉁
“그러니까, 그러니까 오늘 있었던 일, 다시 확실하게 말해줘. 니가 모른다는 말을 해도, 나는 더 몰라. 난 바보라서, 그래서, 니가 해달라는 것 밖에 못해준다고. 저번처럼 실수해 버릴까봐, 그래서.”
가까스로 내뱉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그리고는 한참을 침묵이 감싼다. 마침내 울음을 참는 듯한 쥐어짜는 소리가 들린다.
“후우, 그만, 갈게. 자는데 미안.”
한강휘의 무거운 말에, 분위기를 흩트리는 그 파문에, 다정원은 천천히 눈을 뜬다. 고개를 돌린다. 고개를 돌린 그곳엔 화장대에 놓인 거울이 있었다. 거울을 통해 다정원은 자신과 마주쳤다. 눈물을 흘리며, 여자에게 깔려 저항조차 두려워하는 자신이 있었다.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로 연약하게 깔려있는 자신과 숨을 몰아쉬며 자신에게 입 맞추려는 여성이 있었다.
이것이 남성으로써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란 말인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이것은 그저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덮치는 장면이었다. 이 방에 남성 다정원은 없었다. 그 사실이 시리게 다정원을 비추고 있었다.
인기척이 사라지고, 이연아가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다시 분위기를 잡으려고, 다정원을 무력하게 만드려는 몸짓이었다. 그러나 이연아의 입이 맞대기 직전 다정원은 다시 이연아의 입술을 손으로 막았다. 이연아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런 얼굴을 마주하며 다정원은 진지한 얼굴로 조용히 속삭였다.
“확인해야 할 게 생겼어. 지금은 안 돼.”
숨결조차 느껴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곳에서 다정원은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이연아는 그런 다정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정원이 천천히 말을 더했다.
“지금 날 덮치고 싶다면 덮쳐도 좋아.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너를 다신 보지 않을 거야. 내 몸을 가질 거라면, 대신 나를 버려. 나보다 니가 먼저 정원오빠를 버려. 그럴 수 있다면……. 그래. 그렇다면 덮쳐도 좋아.”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 있던 다정원의 손이 천천히 내려간다. 이연아는 다정원을 지긋이 바라봤다. 다정원은 그런 이연아를 마주봤다.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았으나, 많은 의미를 눈으로 주고받고 있었다. 마침내, 이연아가 서서히 멀어진다. 이연아가 침대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마주치지 않은 상태에서 다정원만 들을 수 있게 읊조린다.
“강휘씨에게 갈 거라면 말하세요.”
“결론이 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비겁하시긴.”
“응. 비겁하네.”
다정원이 스러지듯 미소를 지었다. 이연아는 무표정했다. 서로는 서로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천천히 이연아는 방을 걸어 나갔다. 다정원은 이연아가 완전히 나갈 때까지 그렇게 침대에 앉아 있다가, 마침내 혼자가 되자 이불을 제 몸에 감싸고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두려움과 공포가 다정원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다정원은 홀로 소리를 죽이며 몸을 떨었다. 그 날 이불엔 다정원이 흘린 눈물이 젖어있었고, 다행히도 방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
여행이 끝나는 동안 데면데면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다정원도 한강휘도 이연아도 하정원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머지 세 명은 눈치를 보다가 결국 미리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곧 집에 도착하고 다정원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동생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정하야. 미안한데, 오늘 하루만 집 비워주면 안될까?”
“……왜?”
다정하는 눈을 찡그리며 자신의 형제를 바라봤다. 다정원은 어색하게 웃었다. 얼버무리고 있었다. 다정하는 그런 다정원을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카드.”
“응?”
“카드 달라고. 동생 집에서 내쫓아 놓고 오늘 뭐 길바닥에서 자라고?”
“아, 아니야. 응. 그래.”
다정원은 허둥지둥하며 다정하에게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다. 다정하는 카드를 받고 많은 말을 삼킨 한숨을 내쉬고 나서 자신의 형제를 끌어안았다.
“다 끝나고 들을 거야.”
“응, 꼭 다 말해줄게.”
“……엄한 생각하지 말고.”
“그런 생각 안 해!”
한참을 서로 안고 있다가 마침내 다정하가 떨어졌다. 얼굴을 마주하니 다정하는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다정원 역시 억지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래. 난 오늘 절대 집 안 들어올 거야. 언니 카드 완전 뿌시러 간다!”
“응, 그래. 고마워.”
“지 돈 쓴다는데 고맙다고 그러고 있어.”
다정하는 그러곤 집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다정원은 굳은 얼굴로 컴퓨터를 켰다. 일찍이 다정원은 자신의 몸을 주관적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몸이었다. 키는 작지만 허리가 얇고 골반이 넓었다.
사실 키도 남성의 기준에서 작은 것이지 여성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렇게까지 작은 키도 아니었다. 항상 한강휘와 다니면서 그렇게 느꼈지만 이연아와 다닐 땐 자신의 키가 특출나게 작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하정원보다도 조금은 더 컸다.
브래지어를 차면 b컵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온몸엔 털이 적었다. 머리카락은 윤기가 있었고 피부가 무엇보다 깨끗했다. 다정하가 매일 관리를 하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피부를 보며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키에 비해 다리가 길어 비율이 좋아 무슨 옷을 입든 예뻤다. 이런 사실을 다정원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느끼기에도 여성적인 매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구석이 전혀 없었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원은 자신을 상대로 욕정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엔 그것이 자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욕정을 품을 순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뿐만은 아니었다.
다정원은 여성의 몸이 되고 나서 단 한 번도 해피타임을 가진 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두려웠다. 그것을 하는 순간 느낄 쾌락이 두려웠다.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가 깨질 것만 같았다. 그것이 두려웠다. 이는 이연아가 자신에게 언니라고 불렀을 때 느꼈던 공포와도 궤를 같이했다. 그런 공포였다.
다정원은 천천히 침을 삼키고 마치 사춘기 때 처음으로 야한 것을 접했을 때처럼 조심스럽게 자신이 이전에 다운받았던 야동을 켰다. 홀로 있는 집안에 남녀가 서로 껴안고 에로틱한 신음을 내뱉는 영상이 틀어졌다. 사람을 야한 기분이 들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청물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다정원은 점점 자신의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귓불을 만지작거린다. 다정원은 서툴렀다. 서투른 만큼 조급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마침내 다정원은 비밀스러운 곳에 손을 올렸다. 옷 위로 손가락이 스친다. 아래위로 반복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인다. 너무 세게 하면 아파서,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손가락을 굴린다.
[읏, 응! 하아, 하아. 흐읏, 흐응.]
“하아, 하아.”
동영상에 있는 배우의 신음소리와 자신의 숨소리가 뒤섞인다. 본능적으로 원을 그리듯 손가락을 굴린다. 그 순간,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만지고 싶다. 건드리고 싶다. 건드려선 안 돼. 돌이킬 수 없어. 아니야, 알아야 해. 정답을 내야해. 침을 삼킨다.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조심스러운 손가락. 닿을 듯 말 듯, 꼼지락거리다, 망설이다가, 마침내 그 간질간질한 것을 쓰다듬는 순간.
눈앞이 새하얘졌다.
“흐앗!”
놀라울 정도의 쾌락. 자신이 느껴본 적 없는 형태의 쾌락이 자신을 덮쳤다. 신음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허리가 살짝 휘었다 제자리를 찾는다. 온 몸이 뜨거웠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만진 그것은 손대면 타버릴 것 같이 뜨거웠다.
“흐읏, 흣. 핫. 읏. 으읏.”
다정원은 그 생소한 감각 속에서 실이 끊긴 듯 고개를 숙였다. 필사적으로 움직이던 손가락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저 다정원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아앙!]
다정원이 멈춰있는 동안 동영상은 클라이막스를 향하고, 상스럽고 달콤한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연기일지도 몰라. 하지만, 행복해 보여. 다정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떨었다. 자신은 지금 누구를 바라보며 절정에 달했는가. 누구에게 이입하여 절정에 달했는가. 고민해볼 필요도 없었다. 답은 이미 처음부터 정해져있었다.
“흐. 흑. 흐흐. 흐하, 하하. 그런, 그런 거였어. 크흣. 그런 거였어. 하, 하하. 아하하하!”
울음이 섞인 웃음소리가 방안에 가득했다. 그건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았다. 다정원은 미친 듯이 울었다. 미친 듯이 웃었다. 느껴버린 자신이, 야동에서 상스러운 신음을 뱉는 여성을 대입하던 자신이, 그리고 이 순간 두근거리던 자신이 그 모든 자신이 이미 정답을 내리고 있었다.
여자였다.
다정원은,
여자였다.
가차 없이 현실이 선고한다. 주저 없이 자신이 답을 내린다. 저항할 수 없는 사실을 자아에 때려 박는다. 폭력적으로, 반항을 용납하지 않으며, 무시할 수도 없이, 더는 외면할 수도 없이, 이성이, 감정이, 감각이, 본능이 그 모든 다정원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깨닫는다. 다정원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래, 나는 여자가 됐구나.”
갈라진 목소리.
“다정원은, 여자가 됐구나.”
나는 다정원이다. 다정원이다. 외치던 그 자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은 다정원이었다. 다만 다정원은 여자였다. 그뿐인 이야기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다정원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으로 카톡을 쳤다. 전화를 할 자신은 없었다. 그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한 글자, 한 글자를 기입한다.
[다정원 : 지금 우리 집으로 와줘. 부탁이야.]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다정원은 천천히 자신을 재정립한다. 정립하며 한강휘에 대한 감정을 정리한다. 이해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막던 이유가 사라져간다. 관계를 헤아린다. 애매했다고 느꼈던 감정, 모호하게 표현하던 말, 친구라는 족쇄로 애써 버티던 관계.
마지막까지 나를 마주보던 너, 마지막 순간에도 내 곁에 있던 너, 나를 용서한 너, 나에게 용서를 구한 너, 나에게 집착하던 너, 내가 집착하던 너. 상처 입은 너에게 다가오던 그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며 질투하던 자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 순간 칸타타는 스스로 끈을 놓았다.
“그렇구나. 나는.”
강휘를 좋아하는구나.
컴퓨터에 홀로 재생되던 영상이 끝을 맞이했다.
[작품후기]이 정도는 청소년들도 성교육 시간에 배운다고.
게다가 직접적인 표현은 다 지웠으니 괜찮을거야 ...그렇죠?
아니 근데 이게 문제가 되면 뭐... 쩔수없죠. 그 땐 문제가 되는 부분 다 치우고 스토리 설명만 간략하게 올리겠습니다.
어, 다음화가 더 걱정이네요... 다음 화는 내일이나 모레 수정해보겠습니다... 안 될 가능성도 높구요 ㅇ...
오늘도 부족한 점이 많은 글 관심 있게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