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115화 (115/138)

114회

chapter4“다 웃었냐?”

“어. 그래.”

한참을 웃다가 진정이 되고 나자 정원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정원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봤다. 표정을 보니 화가 난 얼굴은 아니었다. 조금 멍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뭘 그렇게 빤히 바라보나 고개를 돌리자 파란 바다가 있었다. 정원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번에 봤던 바다가 떠올랐다. 파란 하늘과 투명한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이 짠 내음이 나던 그 때가 생각났다. 그 때도 강원도였고, 정원이와 둘이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다른 점은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바다를 바라봤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정원이가 그런 모습이었다. 그 때를 떠올리며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같이 바다를 바라봤다.

“아무 말 안 해?”

“저번에도 말했었잖아. 난 풍경 볼 때 건드리는 거 안 좋아하거든.”

“아, 저번에 갔을 때?”

정원이의 눈이 아련해졌다. 이전에 갔던 그 때를 기억하는 것 같았다. 그 때를 기억하며 나는 장난스럽게 정원이에게 말했다.

“음, 그 때 좋았지. 다시 한 번 바다에 오자고 한 게 이렇게 풀렸네.”

“그때나 지금이나 들어가기엔 너무 춥지만 말이야.”

“나나 너나 바다 들어가는 건 싫어하지 않냐?”

“그건 그렇지.”

우리 사이의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정원이는 피식 웃으며 내 허리를 툭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춥다. 들어가자.”

“그래.”

펜션으로 돌아가자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다 널부러져 있었다. 정원이나 나나 현관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 정하가 말했다.

“추워. 얼른 문 닫고 들어와.”

“어.”

우리가 미묘한 눈으로 바라보자 성규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다들 직장인이고 어제까지 일했잖아. 그래서, 하하.”

“아니, 뭐. 이해는 하는데.”

나야 솔직히 한숨 푹 자다가 술이나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인싸들은 다르게 놀 줄 알았다. 정원이를 바라보니 정원이 역시 주춤거리며 펜션 한 구석에 앉았다. 나도 적당히 자리에 앉아있었더니 다리가 뜨끈해지고 점점 몸이 풀리며 자세가 흐트러졌다.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방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있었다.

“거 봐. 너도 그렇지?”

“으어어, 그러게.”

분명히 펜션 오기 전엔 노래를 부르느니, 술래잡기를 하느니, 바다를 본다느니, 마피아 게임을 하느니, 들고 온 보드게임을 하느니 신나게 떠들던 모습이 선명했다. 뭐, 그렇게 떠들던 녀석들도 모두 피곤에 찌든 직장인들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다가 정원누나가 일어나지도 않고 누운 채로 꾸물꾸물 기어왔다. 왠지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 같기도,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서 신기하게 바라보게 된다.

“술 마시고 싶다.”

“누나 진짜 알중이야?”

“술 마시고 싶다.”

“하긴 방바닥 뜨뜻하니 술 마시고 싶긴 하다.”

“나가기 싫고.”

“동감이야.”

집밖으로 나가기 싫은 녀석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원이도 그렇게 꾸물꾸물 기어왔다.

“아니, 대체 왜 기어오는데?”

“몸이 바닥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아서.”

“나도, 나도.”

나와 정원이가 떠드는데 정원누나가 한 마디를 보탰다. 정원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정원이가 미묘한 얼굴을 하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글러먹은 말을 내뱉었다.

“나가기 싫어.”

“쉬고 싶어.”

“움직이기 싫어.”

“술은 마시고 싶어.”

“밖은 추워.”

“이불 있으면.”

“딱이지.”

정원누나와 정원이가 서로 공명이라도 하듯이 중얼거리며 주고받았다. 글러먹은 사람들의 전형이다. 정원누나와 정원이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악수를 했다. 물론 몸은 일으키지 않고 누워있는 채였다. 두 사람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기묘한 풍경이었다. 그 후로 미묘하게 웃으며 떨어졌다는 것을 포함하면 더욱 그랬다.

정말 아무것도 안하나 했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안하고 뒹굴거리다가 저녁이 됐다. 나야 만족이었지만 성규나 서진이 같은 애들이 아무것도 안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그들도 인싸이기 이전에 지쳐버린 곧 계란 한 판 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내 신세도 처량해진다. 나이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하자.

저녁이 돼서 자거나 뒹굴거리던 녀석들을 깨워서 바비큐를 먹으러 나왔다. 준비는 낮에 끝내놨었고, 장비도 완벽했다. 지금까지 푹 쉬어서 바깥 공기를 쐬는 것도 꽤 좋았다. 숯 역시 문제없이 잘 타고 있었다. 배도 고팠다. 그러나 단 하나 문제가 있었다.

추웠다. 밤이 되니 더 추웠고, 바닷가라 더 추웠다. 살을 에는 추위가 느껴졌다. 근래 느꼈던 것 중에 가장 추웠다. 따뜻한 곳에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나만 그렇게 느끼나 하고 두리번거렸더니 너 나 할 것 없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패딩까지 입고 나온 정원누나가 부들부들 떨면서 다가왔다.

“바비큐를 먹는 것 보다 그냥 삼겹살만 사서 안에서 구워먹는 게 나았을까?”

“그럴지도.”

“술도 손 시려서 잘 못 잡겠어.”

“아, 캔은 좀 그렇겠네.”

맥주는 캔이랑 병으로 섞어서 샀는데 캔을 여기서 집는 건 자살행위처럼 느껴졌다. 종이컵을 꺼내서 따라줬더니 정원누나가 시원하게 들이키고 다시 몸을 떨었다.

“추워!”

“당연히 춥지. 맥주 엄청 차가운데.”

“그래도 강휘야 들어봐. 술을 먹는 건 지금 꽤 합리적인 판단이야.”

정원누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건지 들어나 봐야겠다.

“그게 뭔 소리야?”

“들어봐. 술을 마시면 체온이 올라가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추울 땐 술을 마시는 게 맞아.”

“그거 도리어 체온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던데.”

“어, 진짜?”

“어, 진짜.”

정원누나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면서도 술은 다시 따라서 마시는 걸 보니 합리적인 판단과는 꽤 멀어보였다. 나도 헛웃음을 지으며 누나에게 술을 따라줬는데 그러고 있자니 정원이가 옆으로 다가왔다. 이연아는 덤이었다. 나는 애써 이연아를 신경 쓰지 않으려 하며 정원이에게 물었다.

“왜?”

“뭐 꼭 일 있어야 오냐.”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고기 구울 땐 너랑 있는 게 편해서 왔어.”

“역시 그렇지?”

그러자 정원이가 내 쪽으로 몸을 붙이며 말했다. 요즘 들어 가장 살가운 태도였다. 예전 같은 태도에 몸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정원이가 늘어진 말투로 말했다.

“역시가 뭐냐. 역시가. 그냥 니가 평소에 구워주던 게 익숙해서 그래.”

“저쪽도 서진이가 굽긴 하는데 말이야.”

“뭐 어때. 난 니가 더 좋아.”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닌 걸 알면서도 몸이 그렇게 반응을 해버리고 만다. 달콤한 농담에 필사적으로 귀 기울이면서도 동시에 부정하며 현실을 직시하려는 내 자신이 있다. 그런 감정이 섞이면 결국 나오게 되는 것은 태연한 척 가장한 쓴웃음뿐이었다.

“뭐, 그래. 얼마든지 너 편한 대로 해.”

“그래. 아, 뭐 도와줄 거 있어?”

“평소 같았으면 없다고 할 텐데. 거 뭐냐, 고기랑 야채 좀 더 가져올래? 인원수도 늘었으니까.”

“그래.”

정원이가 재료를 주섬주섬 챙기자 이연아도 따라가서 정원이를 도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정원누나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뭐야, 둘이 사이좋은데? 싸운 거 아니었어?”

“음, 화해를 하긴 했었는데.”

“너도 납득이 안 된 소리 하지 말고.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정원누나가 종이컵에 맥주를 따라서 내게 넘겼다. 정원누나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보며 나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컵을 받았다. 아니, 받으려고 했다.

“자, 종이컵.”

“어? 아. 아, 누나. 이거 누나가 마시던 거네.”

“아, 그러네? 아하하, 미안해.”

정원누나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컵을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는 민망한 듯이 한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정원이는 내 컵에 맥주를 따라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왜, 아쉽냐?”

“아쉬울 게 뭐 있어?”

“아님 말구.”

정원이는 고개를 돌리며 컵을 내밀었다. 나는 그 잔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러다 조금 늦게 의도를 파악했다. 제 몫의 맥주도 따르라는 소리였다. 그 행동이 평소답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귀여웠다. 피식 웃으며 맥주를 따르려고 했더니 그 순간 이연아가 정원이에게 쥬스를 넘겼다.

“정원선배, 벌써 달리면 고기도 못 먹고 갈걸요?”

“응? 그런가? 아니, 근데 나 그 정도로 술 약하진 않아.”

“그렇게 술 마시고 싶으면 고기 먹을 때 마시면 되죠. 아직 안주도 없는데 술 마시면 빨라요.”

“으으, 그렇긴 한데.”

정원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자존심이 조금 상한 것 같았다. 나는 정원이에게 빈 컵을 넘겼다. 그리곤 맥주를 따라줬다.

“주스 마시고 맥주도 마셔. 주스도 달달하니 안주 아니야?”

“그, 그렇지?”

“강휘씨는 정원선배 주량 아시잖아요. 벌써 달리면 좀 위험해요.”

“오늘 위험할 게 뭐있습니까. 놀러오고 쉬러온 건데.”

“그래도!”

“정원아, 춥지?”

정원이의 눈이 빛났다. 내가 왜 물어보는지 이미 이해한 얼굴이었다. 정원이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응.”

“술 마시면 따뜻해지잖아. 마셔, 그냥.”

“오우. 그렇지?”

“아니, 그거 과학적으로는.”

이연아가 뭐라고 하기 전에 정원이가 맥주를 들이켰다. 시원하게 들이키는 것이 정원이도 꽤 술이 고팠던 것 같았다. 정원이가 원 샷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시원하지?”

“최고야.”

정원이도 나를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이연아가 옆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알아서 하세요.”

“응!”

정원이는 얼굴이 살짝 발개져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이가 기분 좋게 웃는 걸 보는 게 오랜만이라 이상하게 나도 신이 났다. 마침 고기가 잘 익고 있었다. 정원이에게 먼저 한 점 넘겨줬다. 정원이는 고기를 바로 입에 넣더니 뜨거웠는지 찬바람을 삼키며 고기를 씹었다.

“후, 하! 후, 하!”

“풉, 뭐하는데.”

“아이, 호히하 후, 와짜나!”

“천천히 드세요, 선배.”

이연아가 옆에서 물을 따라주자 정원이가 바로 들이켰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어떠냐. 잘 됐냐?”

“완전 맛있어!”

“그럼 잘 됐네. 정원누나도 먹어. 아, 이연아씨도 먹고.”

“어. 그래.” “그래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추워서 불 가까이에 옹기종기 붙어있던 그녀들도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고기를 먹으며 정원이에게 야채도 좀 먹으라고 내가 잔소리를 했다가, 그 말에 동조하는 이연아를 향해 못 들은 척 정원이는 술을 들었고, 정원누나는 그 종이컵에 건배를 하며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서로 웃는 얼굴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회사 얘기, 혹은 음식 얘기, 술 얘기 온갖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을 고기와 술을 먹다가 연기를 너무 마셔서 잠시 쉬겠다며 이연아에게 집게를 건네고 산책을 나왔다.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바람을 쐬고 있노라니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정원이었다.

“어? 왜 따라 왔어?”

“아, 나도 술을 너무 마셔서. 잠시 쉬려고.”

“아. 너 오늘 처음부터 좀 달리긴 했지.”

“니가 첫 잔 줬거든?”

“그렇게 한 잔 달라는 얼굴 해놓고서.”

“그래도 니가 할 말은 아니지.”

정원이가 짐짓 토라진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러나 진짜로 삐진 건 아니었는지 이내 씨익 웃고 다시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 바닷가는 그 나름의 맛이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걷던 와중에 정원이가 툭 하고 던지듯이 말을 꺼냈다.

“정원누나랑 잘 지내더라.”

“음, 어. 그렇지.”

“너무 그런 얼굴 하지 마. 이번엔 너 괴롭히려고 하는 말 아니니까.”

“저번엔 그랬던 거냐.”

“음, 노코멘트.”

정원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 바퀴를 뱅글 돌더니 바닷가를 바라봤다. 정원이의 얼굴은 그새 조금 굳어있었다. 그 표정을 바라보자마자 마음이 조금 무거워진다. 그 때의 말을 이어서 하려는 걸까. 그래서 나를 쫓아온 걸까. 정원이는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내게는 충분히 들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원누나 좋은 사람이더라.”

“응.”

“착한 사람이고.”

“응.”

“무엇보다 너랑 잘 맞지?”

“응.”

“그래, 나도 알아.”

파도소리가 들렸다. 철썩, 철썩. 정원이가 말을 거두자 그 빈 자리를 파도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나는 정원이가 바라보는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둠이 드린 바다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펜션으로부터 조금 멀어져서 그럴지도 몰랐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지. 그래서, 정원이의 표정도 잘 보이지 않았다. 정원이는 나지막하게 내 쪽을 바라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강휘야. 저번에 말이야. 니가 사과했을 때.”

“응.”

“너 내가 하는 말 하나는 무조건 들어준다고 했잖아.”

“그랬었지.”

“그럼, 여기서 잠깐만 눈 좀 감아볼래?”

“뭐?”

정원이는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며 스러지듯 웃었다. 바라보는 내가 스러질 것 같은 그런 위태로운 웃음이었다.

“왜, 싫어?”

“……그래.”

그런 웃음을 보며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순순히 눈을 감았다. 정원이가 이전에 내리지 못했던 벌을 내리려는 걸까. 뺨을 친다던가, 혹은 걷어찬다던가. 그런 형태의 벌을 말이다. 차라리 그걸로 정원이의 마음이 풀렸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정원이는 나를 때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응, 그 상태에서 몸 돌리고, 응. 그리고 무릎 꿇고.”

대체 뭘 시키려고 그러는가.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원이가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정원이는 그 이후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정원이의 숨결이 느껴졌다. 정원이가 가까이에 있다는 신호였다. 순간적으로 숨도 멈출 만큼 긴장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응. 그래. 역시 잘 모르겠어.”

속삭이듯 입가에 말이 드리운다. 잠시간 텀을 뒀던 숨결이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숨결과 숨결이 닿는다. 입술에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화한 프레지아 향이 입술에 드리운다. 어색하게 코가 부딪혔다가, 다시 조금 입술이 기울어진다.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그저 입술에 닿았을 뿐인데, 숨결이 닿았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눈을 뜨지 않았는데도, 정원이의 말을 어기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따뜻하다.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이 공간은 따뜻했다. 아니, 오히려 더웠다. 이 순간만큼은 겨울이 사라지고 봄이 드리워졌다. 사방에 새하얀 프레지아 꽃이 만발한다. 짜릿한 순간. 너와 내가 닿아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니, 이유 따윈 필요 없는 이 순간. 순간과 순간이 이어져 영원토록 느껴지는 이 순간.

천천히 숨결이 멀어진다. 그러나 프레지아 향만은 입술에 드리워져 떠나지 않는다. 그때까지도 눈을 뜨지 않았다. 아니 눈을 뜨지 못했다. 그렇게 천천히 정원이가 자리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눈도 뜨지 못하고, 그렇게, 그 자리에서, 멍하니,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렇게 입술에 닿았던 온기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작품후기]일단 늦어서 죄송합니다... 마지막까지 마지막 장면을 손댔는 데도 마음에 안들어서 그만 음, 죄송합니다. 사실 지금도 별로 마음에 들진 않습니다...

뭐야? 다정원 얘 갑자기 왜 이래? 작가가 미쳤나?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어... 다음 화에 정원이 시점으로 밝혀질 예정입니다. 예... 어, 그 때도 뭐야 작가 이 새끼 미쳤나? 라고 하시면... 어... 힘내겠습니다...

다음 화는 4부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런 만큼 한 화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되고, 연참은 해야겠는데 내일 안엔 못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어, 작가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해서 이러나 저러나 하루만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이렇게 끊어놓고 죄송한 말입니다만, 다음화는 모레 연참으로 연재가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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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부족한 점이 많은 글 관심 있게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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