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113화 (113/138)

112회

chapter4학교에서 친했던 친구가 언젠가부터 나보다 다른 친구와 더 친해져서 점점 데면데면해지고 어느새 반 친구1이 된 경험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혹은 항상 무리를 모아놓고 시끄럽게 떠드는 녀석을 저 녀석은 나와 친해지지 않는 부류라고 속단했다가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경험도 어느 누구에게는 있을 수 있었다. 이렇듯 관계라는 것은 굉장히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것이었다. 분명히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원이와 화해를 하고 나서도 일요일 날 보지 못한다는 건 꽤나 내게 있어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적어도 화해를 한 그 주 주말에 한 번은 정원이를 볼 수 있을 줄 알았지. 우리 사이에 얼굴 보는 게 어려웠던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러니 예상을 못한 것이었다. 그 동안 만나지 못해 안달이 나있었다고 해도 좋았다. 정작 앙금을 풀어내려 해도,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서야 그럴 방법이 없었다.

그런 부분에서 펜션에 놀러가자고 한 제안은 굉장히 반가운 것이었다. 적어도 펜션에 간다면 가있는 시간동안은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한다. 정원이를 더 볼 수 있는 시간이 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는다. 얼어붙은 관계를 녹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여하간 정원이 안에서 나의 우선순위가 그렇게나 떨어져 있다는 것은 굉장한 우울함과 탈력감을 불러일으켰다.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니다. 정원이와 화해를 하고 나서 요즘 잠을 설쳐서 육체적으로 한계가 온 것도 깨달았고, 그런 점에서 쉬는 것 역시 필요했으니까.

그렇게 침대에서 뒹굴 거리면서 내일 직접 보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언제부터 내가 이런 거로 고민을 했냐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정작 얼굴을 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말하지 못 할 수도 있었다. 정원이에게 카톡 메세지를 보냈다.

[나 : 언제 한 번 펜션 여행이라도 갈래?]

1은 한참을 지워지지 않았다. 얘 설마 아직도 나 차단했나? 그렇다면 그것도 내일 말해놔야겠다. 생각해 보니 이전에 보내놨던 메세지는 어느새 1이 줄어있었다. 아직까지 차단이 돼있진 않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핸드폰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 피곤이 눈두덩이에서 폴카댄스를 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굉장히 눈 뜨기가 힘들단 소리였다. 간신히 눈을 비비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답장이 와있었다.

[정원 : 웬 펜션?]

정원이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답변을 재촉하지 않은 점은 조금 불만이었지만 내 말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어디인가. 금요일 이후로 크게 변한 점도 없었는데 이 정도면 감지덕지였다.

[나 : 서진이가 빈 펜션이 있다고 같이 놀러가자 그러네.]

[정원 : 우리 둘이서? 아님 서진이랑 셋이서?]

이번엔 논타임으로 답장이 왔다. 아직도 시야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눈을 비비고 메세지를 쳤다.

[나 : 한 8명까진 갈 수 있다는데?]

[나 : 서진이 쪽에선 서진이랑 정원누나 간다고 했고.]

그러자 다시 답장이 끊겼다. 정원누나 얘긴 괜히 꺼냈나 싶으면서도 어차피 전해야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애써 불안감을 달랬다. 곧 메세지가 왔다.

[정원 : 연아가 같이 가도 되냐는데.]

[나 : 물론이지. 그래.]

비굴하게도. 그것 참. 생각도 거치지 않고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래. 정원이가 같이 가주겠다는데 뭐가 그리 큰 문제일까. 오히려 덕분에 승낙을 받은 것 같아서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오랜만에 정원이와 뭔가 같이 하는 것 같았다. 그 사실 자체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정원 : ㅇㅇ... 날짜는?]

[나 : 그건 정해야지. 새 톡방 팔까?]

[정원 : ㄴㄴ. 걍 정해지면 말해. 휴가 쓸게.]

[나 : 어차피 나도 휴가 써야 되니까. 알았어.]

[정원 : 가기 한 며칠 전엔 말해줘. 연아한테도 말해야 되니까.]

[나 : 그래.]

카톡을 마치고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봤다. 더 메세지가 나올 구석도, 실제로 메세지가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핸드폰을 들고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감정의 고저가 적응이 안 될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짧은 대화동안 나는 대체 몇 번이나 하늘을 날았다가 바닥에 패대기쳐진 것인가. 하늘에 닿았다가 땅으로 떨어졌다가. 아니, 떨어진 거로 치면 땅이 아니라 맨틀도 더 파고들었겠지.

그래, 나는 괜찮은 척을 하고 있었다. 정원이가 하는 말에 꼬박꼬박 대들지 않고, 승낙하고, 납득하고, 완전히 항복해서 비굴하게, 조신하게, 정원이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조심하고 눈치를 보았다.

그게 뭐 어쨌다고. 그걸 원한 게 아닌가. 내가 원한 결과가 이게 아닌가? 곧 죽어도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 모든 위신과 자존심을 꺾어낸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뭐 어때. 내 알량한 자존심 따위가 뭐가 중요하다고.

아, 정원이도 이런 기분이었던 건가? 나밖에 없었다고 했었나? 어디까지 비참하게 만들 거냐는 게 이런 뜻이었군. 이런 와중에 내가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았으니 비참해질 법 했다. 본의 아니게 정원이를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정원이가 내 일상에서 자리를 비웠을 때 나는 우울하고, 우울하고, 우울하고, 우울했다. 음, 그런 것 치곤 지금이 낫지 않을까? 지금은 적어도 우울하고 신나고 우울하고 신나고 우울하고 비참하고 신나고 비참하니까. 그러고 보니 비참은 참 좋은 단어였다. 내 지금의 감정을 한 단어로 정리하기에 이것보다 깔끔한 단어가 없었다.

차라리 아예 더 비굴하게 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모든 것을 던지고 정원이에게 달려가서 내 더러운 집착이라도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때는 늦었다. 아니, 때가 늦지 않아도 나는 평생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그것을 막는 얇은 벽이 있었다. 그것을 막연한 거부감이라고 표현해도 좋았고, 일선을 넘지 않는 도리라고 해도 좋았다. 자존심을 버리고도 아직도 지킬 것이 남아 있었다. 쥔 것이 많으니 버릴 것도 이만큼이나 많구나.

위장이 쓰려서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

회사원들이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주말을 낄 수밖에 없었다. 그에 포함해서 앞으로 하루, 혹은 뒤로 하루 정도를 연차를 내고 가는 여행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탈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물론 바로 다음 주에 계획이 잡히는 것은 예상한 바가 아니었다.

서진이의 행동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서진이는 내가 정원이의 허락을 받아오자마자 더 올 사람이 없는지를 체크했고, 최종적으로 정하와 성규까지 포함한 인원들을 모아 7명이라는 대인원의 일정을 하루 만에 모두 취합했다. 대단한 녀석이다.

소름이 끼치는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성규는 내가 부른 것이 아니라 서진이가 부른 것이었다. 네가 성규를 어떻게 아는데? 전국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다고 한다. 심지어 나보고는 어떻게 아냐고 물어봐서 혹시나 다른 성규인가 했더니 진짜로 내가 아는 성규였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몇 배는 더 불편할 뻔했다.

그러나 서진이도 성규도 오히려 내가 기겁하는 것을 보며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게 인싸와 아싸의 차이인걸까. 아마 서로의 가치관을 평생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서 어떻게 여행을 가는데? 다행히도 내 그런 생각을 전하자 8명 째를 구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연아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결과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 셈이지만 이연아의 입장에선 나와 정원이를 제외하고선 모두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모두 나와 친분이 있다는 점에서 이연아에겐 적진과도 같았다. 그런데도 함께 가겠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을 보면 그녀 역시 나와는 다른 인종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펜션은 강원도에 있었다. 강원도라고 하면 굉장히 멀어 보이지만 서울에서 가까운 쪽이라서 두 시간 반 정도만 가면 나온다고 한다. 먹을 건 사들고 올 것. 마지막에 정리는 하고 갈 것. 기물을 파손하진 말 것. 그 외엔 뭘 하든 상관없음. 기물은 대충 바베큐 물품 등이 있는 것 같았다. 물은 굳이 사들고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차는 두 대를 끌고 가기로 했다. 운전은 성규와 내가했다. 서진이는 면허가 없었고 여자들은 모두 면허가 있었지만 서울 밖을 나가본 적은 없다고 했다. 사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원이만큼은 맡기기가 무서웠다. 옛날에야 그럭저럭 몰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바뀌고 나서 정원이가 운전한 모습을 한 번이라도 봤어야 말이지.

여하간 이런 구체적인 여행계획이 하나하나 짜일 때마다 그에 비례하여 기대와 불안이 커져만 갔다. 정원이와 완전하게 화해할 계기가 되겠다며 행복회로를 돌리는 것이 기대의 근원이었다면, 많은 사람들과 부대껴서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불안의 골자였다. 나 역시 사람이 많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정원이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드는데 정원이의 기분을 풀어주려 가는 여행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역시 악재 중 하나였다.

물론 가장 큰 악재는 이연아가 따라온다는 점이었다. 눈앞에 안보일 때야 그러려니 넘어갔지만 과연 내가 이연아가 정원이와 친밀한 모습을 보여줄 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까.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

그렇게 대망의 토요일이 됐다. 아무래도 휴가를 해당 주 금요일에 쓰는 것 보단 다음 주 월요일에 쓰는 것이 다들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놓고 결국 토, 일 이틀로 일정이 잡히긴 했지만 사실 여행이라는 것이 마냥 쉬는 것은 아니라서 월요일에 휴가를 낸 것은 나쁘지 않긴 했다. 여행 전반이 거의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서진이와 정하가 성규 차에 타버리기 전까진.

내 차에 정원이가 당연한 것처럼 조수석에 앉았다. 그러자 이연아가 정원이 뒷좌석에 앉았다. 정원누나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성규네 차로 가려고 했지만, 먹을 것 등 짐이 성규네 차에 실려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진이에게 sos를 요청하려고 다가갔더니 그새 성규가 출발을 했다.

“야, 잠깐!”

서둘러 뛰어갔지만 이미 늦은 채였다. 덩그러니 서 있다가 차로 돌아오니 차 분위기가 굉장히 아찔했다. 정원이가 정원누나를 보며 어색해하고 있었고, 이연아는 정원이에게 뒤로 오라며 말을 건네고 있었고 정원누나는 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누나도 책 좋아하는 인도어 파였지.

나와는 말이 굉장히 잘 통했지만 그렇다고 정원누나가 서진이나 정하같은 부류는 아니었다. 어색한 기류가 차 안을 맴돌고 있었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말없이 엑셀을 밟았다.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이연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중에선 가장 사교적인 부류의 사람이었다.

“오랜만이네요.”

“아, 예.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어요?”

“하하, 예.”

“정원오빠 얘기 들어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오빠요?”

“아, 말실수를 했네요. 선배요.”

정원누나가 의아한 기색을 보이자 이연아는 가볍게 둘러대며 말을 고쳤다. 둘이 있을 땐 오빠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슬쩍 정원이를 봤더니 정원이가 가시방석에 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너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겠구나.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아무튼 어때요. 정원 선배랑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아, 그것 말입니다만. 조금 소개를 해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호칭 때문이라도.”

“아, 하정원이라고 합니다. 음, 강휘 친구에요.”

“친구…….”

정원이가 옆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연아씨 옆에 계신 누나도 이름이 정원이라서요.”

“음, 확실히 좀 헷갈리실 수 있겠네요.”

“예. 그렇죠.”

그에 대해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둘이 같이 있을 땐 다정원, 하정원 누나. 이런 식으로 성을 붙여서 부르죠.”

“그게 좋을 것 같아.”

정원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처음 술자리를 가질 때부터 자꾸 자기를 부르는 것 같다고 헷갈려하던 정원누나였다. 호칭정리에 대해 굉장히 반기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부르게.”

“다정원.”

“저 어, 언니는?”

“하정원 누나.”

“음, 그래. 알았어.”

정원이는 언니라는 호칭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오빠야 나와 장난치면서라도 불러봤지만 누군가를 언니라고 부를 일은 없었던 것 같긴 했다. 그래서 어색해하는 것이겠지. 정원이는 언니라는 단어를 거의 들리지 않을 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정원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하정원 언니.”

“예? 아니, 어, 어!”

정원누나는 갑작스럽게 불리자 당황했다가 정원이를 바라봤다. 정원이는 뒤를 돌아보지는 않은 채로 굉장히 어색해하며 말을 꺼냈다. 아마 이 정도가 정원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일 것이다.

“강휘가 제 얘기 많이 하던가요?”

“음, 그래. 응. 많이 했지.”

“어떤 얘기 했나요.”

“이런 저런 얘기?”

굉장히 좋지 않은 흐름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편하게 해도 힘들 판에 온 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폭탄을 가운데 놓고 심지에 누가 불을 붙일지 고민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정원이가 심지를 들고 불을 가까이 댔다.

“제 욕 많이 하던가요?”

“정원이랑 싸우고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많이 물어봤지. 아, 우리는 서로 정원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정원이라고 불러도 되지?”

“아, 그러게요. 그럼 저도 정원 언니라고 부를게요.”

정원누나는 능숙하게 그것을 받아쳤다. 정원누나에겐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내가 나서지 않았는데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전환시키고 있었다. 처음 본 둘을 보며 방금까지도 눈치보고, 어색해하고 당황하고 있었던 모습이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정원누나는 이 공간을 자신의 페이스대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하정원씨는 어쩌다 한강휘씨를 만나게 됐나요?”

“그쪽은 어.”

“이연아에요.”

“그래 연아씨. 아니 근데, 씨 꼭 붙여야해? 불편하지 않아?”

“불편하시다면 뺄게요. 하정원 언니? 음, 정원 선배 부르는 것 같아서 어색하긴 하지만요.”

“좋아. 아, 미안한데 뭐라고 했더라?”

“하정원 언니가 한강휘씨 만나게 된 계기요.”

겨우 풀어놓은 공기가 다시 얼어붙는 것 같았다. 춥지 않게 히터를 틀었는데도 막을 수 없는 한기였다. 정원누나는 지금까지의 여유는 사라지고 머뭇거리고 있었고 정원이는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아내고 내가 입을 열었다.

“소개팅 나갔다가 만났습니다.”

“오랜 인연이신가 봐요?”

“뭐, 알게 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지만 꽤 친해지긴 했습니다.”

“어머? 강휘씨 분명 정원 선배랑 사귀고 있지 않았나요?”

돌겠네, 시발. 대체 이연아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이연아는 내가 정원이와 연인이 아닌 연인 행세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었다. 저번에 정원이가 술에 취해 진심을 토로할 때 이연아에게 털어놨다는 것을 말했었으니까. 물론 나는 그것을 듣지 못한 상태여야 했으니 아는 체를 할 순 없었지만 이연아가 대체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무난하게 넘기려고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예. 뭐, 여차저차해서 정원이도 나가라고 했었고. 아닙니다. 그냥 제가 나쁜 놈이죠.”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요. 괜히 제가 미안해지네요.”

“하하.”

정원누나가 어색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정원이는 몸을 돌리고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이연아는 분위기를 박살내놓고 미안한 기색으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장이, 위장이 쓰리다. 성규야, 서진아, 정하야,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이 중에 한 명만 데려가주라. 제발 부탁이다. 여행 시작부터 구급약통을 열고 제산제를 들이키고 싶은 마음이 한껏 들었다.

[작품후기]4부 하이라이트 파트 진입이네요. 앞으로 4부는 10화안에 끝날 것 같고, 5부는 거의 대단원이라 20화 안에 마무리 될 것 같으니 이러나저러나 제로콜라는 한 달 안에 마감을 치지 싶습니다.(변동 가능하지만 대충 잡아보면요.)

하정원 눈나 엔딩이 본편 엔딩이 아니라면 외전으로라도 좋으니 써달라는 코멘트가 많았는데요. 어, 아직 본편 엔딩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외전은 본편 엔딩이 나고 나서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작가 개인적으로 완결까지 감정선을 좀 지키고 싶어서요. 외전이라도 엔딩을 내는 순간 뭔가 감정선이 끊길 것 같아요.

부족한 점이 많은 글 관심 가지고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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