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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111화 (111/138)

110회

chapter4정상적인 논리로 생각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아침이다. 울었다 웃었다 뭐라도 감정 표현이라도 할 수 있는 성격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 자신이 조금 아쉽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들 해는 동쪽에서 뜨고, 기상 벨은 출근시간에 맞춰서 울린다.

아무 것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지난밤 내 생각과는 달리 몸은 충실히 움직여주고 있었다. 조금 졸린 것이야 항상 월요일마다 겪었던 일이다. 그리 특이한 일도 아니다.

조금 멍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운전을 하는 것도 그리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집중이 된 느낌이었다.

회사에 나가 업무를 하는데도 한 치의 문제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돼서 저번에 밥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던 동료에게 점심을 사주었다. 동료는 괜찮다고 했지만 약속을 깬 값이라고 권했더니 결국 알겠다고 했다. 동료는 열심히 내 옆에서 떠들었고 나는 그것을 받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한 명씩 친해지는 걸까.

오후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오기 전 헬스장에 가서 상체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했다. 요즘은 근력운동을 하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유산소운동이 머릿속을 비워져서 좋다면 근력운동은 뭔가 수치가 늘어나는 것이 눈에 보여서 좋았다. 게임을 클리어 하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해서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다. 현대인은 이렇듯 정해진 일상을 살아갔다. 나 역시 그런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모든 일상이 시계태엽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태엽위에 발을 올리면 알아서 째깍째깍 움직인다. 내 생각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덕분에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기상벨을 다 들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어제 새벽까지 고민을 했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아침에 일어나서 다정원 카톡 1:1 메시지를 확인했다. 핸드폰을 한참을 붙잡고 있다가 겨우 늦지 않게 출근할 수 있었다.

항상 먹던 아침밥은 걸렀다.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몰릴 때 구역질을 한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일반화 시킬 수 있었다. 운동을 통해 만들어 놓은 건강한 육체가 혹사를 시켜도 회사를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멍한 상태에서 운전을 실수하지 않으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집중을 했다. 집중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사고를 낼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를 몰고 갔던 것은 가족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아침 업무를 하는 동안 실수는 하지 않았다. 이 역시 주위에 이상한 징조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사는 위험했다. 모든 일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원이는 나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족에게도 너무 깊게 스며들어있는 존재였다. 균열을 내 손으로 막을 수 없는 사태가 되기 이전엔 알리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이 걱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내 행동에 대해 질책할까봐 그런 것이었다.

동료는 내 얼굴을 보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먼저 다가와서 나와 함께 식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식사비용을 내가 댄 것이었다. 동료는 한참 동안이나 자신이 이전 여자친구와 어떻게 헤어졌는지, 그리고 솔로의 자유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토로했다. 솔직히 귀찮은 사람이었지만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항상 오지랖이 넓은 사람에게 약했다. 그들의 호의가 대부분 선의에서 온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후 일과를 끝내고 바로 퇴근을 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평소부터 언제 퇴근을 하든 말리는 부서는 아니었지만, 나는 항상 한 시간 정도를 늦게 퇴근하곤 했다. 정원이가 있는 홍보부가 바쁘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총무과를 뒤집어놓은 것이 사실이었기에 그만큼 총무과에 더 헌신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겨를조차 없었다. 일과를 무사히 마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을 한 것이었다.

헬스장에 간 것 역시 루틴의 일부였다. 오늘 나는 내가 관리한 건강한 몸이 어디까지 나를 도울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낀 셈이었다. 그런 긍정적인 루틴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이런 루틴을 유지하는데 필사적이었다.

무엇 하나라도 평소에 하던 것을 하지 않는 순간 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이미 내 일과에 큰 빈자리가 생겨서 혼자 있게 된 시간이 늘어버린 참이었다. 무엇 하나라도 덜 할 순 없었다. 시간이 는다는 것은 결국 생각할 시간이 생긴다는 말이었으며 지금 생각하는 것은 무엇 하나 긍정적인 것이 없었다.

자괴감, 죄책감, 후회, 분노, 슬픔, 억울함, 질투심, 공황, 두려움, 괴로움, 서운함, 아쉬움, 절망감, 패배감, 미련, 짜증, 부끄러움, 애절함, 자기비하, 걱정, 피해망상 생각을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그런 감정들이 치밀어 올랐다.

운동은 그런 의미에서 좋았다. 몸을 학대하면 학대할수록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숨이 벅차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무거운 것을 들면 머릿속이 새햐얗게 된다. 세로토닌과 도파민은 부가적인 효과였다.

운동을 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즐거움, 우울함, 즐거움, 우울함, 즐거움, 우울함. 연속적으로 우울함만 느끼는 것보단 더욱 낫지 않겠는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감정의 수치 또한 한정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운동은 정신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건강한 몸이 건강한 정신을 깃들게 한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집에 돌아와서 바로 방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웠다. 불을 꺼놓고 지칠 때가지 몸을 혹사시킨 덕분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래, 이렇게 잠을 자자. 그런 와중에 이상할 정도로 정신이 또렷했다. 몸을 혹사시킨 보람이 없었다. 내일은 더 강한 운동을 해야 할까.

눈을 감으면 정원이가 마지막으로 지었던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그 때로 돌아가서 정원이와 대화를 나눴다. 그 자리로 돌아가 정원이를 달래도보고, 윽박도 질러보고, 혹은 정원이에게 무릎 꿇고 비는 것도 생각해본다. 그 모든 장면에서 정원이는 다른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나는 그 자리로 돌아와서 최후 판결을 받는 것이다.

‘됐어.’

‘이젠……됐어.’

모든 것을 포기한 눈빛. 시린 눈동자. 멀어져가는 프레지아 향. 다시는 느낄 수 없는 너의 온기. 생각해보면 이상하게도 너는 따뜻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체온이 높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너를 안을 때마다 그렇게 따뜻함이 전해져 왔겠는가. 그런 온기조차 내게서 멀어진다.

정신을 차리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나는 다른 변명을 한다. 다른 행동을 하고 다른 말을 한다. 그렇게 계속 돌아가지 못할 그 장면으로 돌아가 나는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억지로 납득시켜도 결국 정원이가 비명을 지르고 만다.

‘나를 어디까지 더 비참하게 만들려고 그래!’

비참하다. 비참하다. 나는 네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했는데, 무엇이든 참으려고 했는데 그 결과가 너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습지 않은가. 내가 하려는 것들은 이렇게나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네가 처음 나와 다툴 때도, 네가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할 때 해결해주겠다고 나댄 것도, 그 모든 것이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었다. 나는 이렇게나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실패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이었다.

이렇게 고민을 하다가 잠에 든다. 잠에 들었다고 하기보다 정신을 잃었다는 표현이 더 맞으리라. 기상벨에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아침에 일어나 회사를 간다.

그 모든 것이 반복됐다. 반복하고, 반복하고, 그 일상에 정원이는 없어서 오히려 시간은 남고, 시간이 남는만큼 생각을 하고, 반복하고, 일을 처리하고, 주위에서 한 번씩 걱정스런 얼굴로 내게 안부를 묻고,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고,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고 말하며 일을 처리하고, 일상을 반복하고, 그렇게 주말이 돌아왔다.

주말은 끔찍했다.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는 일도 없었고 운동을 극한까지 하다가 트레이너에게 혼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와서 무엇을 할까. 평소처럼 게임을 할 수도 영화를 볼 수도 무엇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 것을 켜놓는다고 해서 그것에 오롯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볼까? 누구를 본단 말인가. 성규를? 서진이를? 아니면 그 외에 다른 친구들을? 그들을 불러서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확실하게 판단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정원 그녀는.

그녀만큼은 부를 수가 없었다. 면목이 없었다. 그녀에게 책임감을 떠넘길 순 없었다. 그녀가 잘못한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그녀에게 어떠한 이득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됐다고 하여 내가 그녀에게 기댄다는 것은 벌레 이하의 행동이었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그래선 안 됐다. 그녀를 만나면 나는 무엇이라도 털어놓겠지. 처음엔 그녀를 안심시키다가도 그녀의 걱정스러운 얼굴에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될 것이다. 나조차도 정리하지 못한 감정을 토로하겠지. 그래선 안 됐다. 친절한 그녀에게만큼은 그렇게 해선 안 됐다.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해서 과연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맞을까? 해야 할 책임은 있으나 능력은 별개의 문제였다. 정원이와 다시 화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정원누나와 약속을 잡는 것부터 해야 할까. 아니, 그것보다 더 선행해야 할 문제가 있지 않은가.

나는 한 주 동안 정원이를 피해 다녔다. 출근은 평소보다 늦었고, 점심시간엔 정원이와 함께 갔던 음식점을 피했고, 카페에 가지 않고 바로 부서로 돌아왔다. 퇴근하는 시간만이 앞의 행동과는 일관성 없이 정원이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주차장에 앉아 시동을 건채로 항상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정원이가 평소에 퇴근하는 시간이었다. 정원이에게 말을 걸 용기는 없는 주제에 정원이가 말을 걸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정원이는 주차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나는 정원이와 우선 말을 나눠야 했다. 말을 나누고, 사과를 하고, 약속을 잡고, 화해를 해야 했다. 정원이와 싸운 것이 처음도 아니었다. 처음은 정원이가 화해를 요청했고, 두 번째엔 내가 화해를 요청했다. 그러니까, 내가 화해를 요청하는 것 역시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할 수 있을 터였다. 할 수 있을 터였는데.

핸드폰을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보통 토요일엔 정원이가 이연아를 만나고 있었으니까. 내가 전화하면 방해라고 여길 것 같아서. 내가 만나자고 하는 것을 거부하면 어떻게 하지. 아니면 전화조차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아니. 이연아를 나보다 우선시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오늘은 미루도록 하자. 내일, 내일 연락하도록 하자. 일요일은 원래 나와 정원이의 시간이었으니까. 적어도 지금까진 그래왔으니까.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토요일을 보냈다.

그러나 일요일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토요일에 했던 고민을 반복한다. 일요일이 나와 정원이의 시간이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싸우기 전 이야기였다. 정원이는 나와 싸워서 정신적으로 몰렸을 것이다. 이건 낙관적인 추론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가설이었다.

그렇다면 정원이가 기댈 곳은 어디에 있을까. 정하? 물론 정하라면 정원이가 기댈 수 있겠지. 그러나 정하가 들었다면 내게 연락조차 없을 리가 없었다. 내게도 자초지종을 물어보겠지.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정원이 역시 정하에게 아직 숨기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정원이가 기댈 사람은 이연아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편이 더 확실했다. 정원이 역시 정하에게 얼버무리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면 만날 사람은 이연아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연아는 상처받은 정원이를 얼마든지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연아가 유일하다고 해도 좋았다.

그렇다면 일요일 역시 이연아와 보낸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렇게까지 생각하니 더욱 이연아를 나보다 중요시하지 않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이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더욱 확고하게 벽을 높이고 있었다. 나는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꼴사납게도.

꼴사나운 것을 알면서도.

[작품후기]벽돌화. 예,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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