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회
chapter4정원이에게 정원누나와 술자리를 가지게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바로 성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사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하는 나는 도리어 그 일을 얼버무리고 있었다.
정원이 역시 나와 보내는 시간을 늘리겠노라 말했지만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정원이는 여자를 대하는 법을 몰라서 여자에게 약했고, 이연아는 여자였다. 정원이가 내 눈치를 보며 핑계를 댈 때 마다 나 역시 정원이에게 할 말이 생기는 셈이었다.
그렇게 한 달 가량을 얼버무렸다. 초겨울이 어느새 지나고 정원이가 목도리를 두르고 다니게 될 만큼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정원이는 약속과 달리 점점 이연아를 만나는 시간이 늘었다. 요즘엔 주말에 한 번은 무조건 이연아를 만났고, 주말을 포함하여 일주일에 삼 일 정도는 이연아를 만났다. 그나마 사 일은 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그런 만큼 정원이 역시 내게 강하게 요구하지 못했다. 내가 이연아 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한 정원이 역시 요구할 자격이 없었다. 그래서 정원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은 눈치를 주는 것이었다. 은근히 나를 압박하는 수법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강휘야, 요즘은 술 안 마시니?”
“어.”
“왜?”
“저번에 너 감당 안 돼서.”
“그, 그래도 슬슬 한 번 술자리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뭐, 상황 봐서.”
“응, 그래.”
정원이답지 않은 돌려 말하기였다. 정원이가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간접화법일 것이다. 애당초 정원이는 이런 식의 화법을 즐겨 사용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하정원씨랑 술자리 언제 가지냐며 직설적으로 말했을 터였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만나는 시간을 줄였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연아와 만나는 시간을 줄이진 않으니 이쪽도 쉽게 양보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민감한 부분을 피해가는 동안 감정이 곪아가고 있었다.
한편 나는 정원누나에게도 말을 꺼내지 못한 상태였다.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원이에게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했으나 정원누나와 술자리는 매주 있었다. 정확히 정원이가 이연아를 만나는 주말, 나는 정원누나를 만났다. 다음 날에 정원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정원누나가 주로 술을 마시고 나는 적당히 마시곤 했다. 이에 대해 정원누나에게 원성은 들었지만 정원이 이유를 들어 원성을 잠재웠다.
정원누나와는 술자리에서만 만났다. 다른 공간에서 만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치 이 자리를 나서서 만나면 정원이 때문이 아니라, 하정원이라는 사람 그 자체에 신경을 써버리고 말 것 같았다. 정원누나와는 술자리를 통해 친해졌다. 친해져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정원누나에게 정원이와 동석한 술자리를 권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요즘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 역시 이 문제였다.
이 쯤 되니 정원이에게 그냥 만나지 않는 편이 어떻겠냐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정원누나와 두 번째 술자리를 가지고 나서 나는 정원이에게 조금 더 관대해졌다. 정원이가 이연아와 만나도 싫은 티를 내지 않았으며, 정원이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소처럼 지내려고 노력했다. 정원이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니 이전과 달리 이상할 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었다. 또한 관대해졌다는 것은 이연아의 수작에도 관대해졌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이연아가 정원이와 사귀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알고 있었다. 나와 만나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다 그런 수작의 연장선이겠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정원이가 더욱 말을 꺼내기 힘들게 하려고. 나에게 그 자리가 너무도 껄끄러워서. 교묘하게 침묵을 통해 정원이의 입을 막고 있는 셈이었다.
이러다가 정원이와 이연아가 사귀게 된다면 뒤늦게라도 다른 행동을 취하게 될까. 아니, 정원이가 정말로 행복해한다면 나는 친구로서 남겠다. 그 때 나는 그 정도의 다짐을 한 것이었다.
“너 바보니?”
“뭐?”
정원누나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술자리 얘기를 제외한 내 속마음을 털어놓은 바로 다음이었다. 정원누나는 어렵게 내 속마음을 말하자마자 굉장히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화를 억지로 눌러 담고 있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 너 게이지?”
“아니, 그게 뭔 소리야?”
“그렇지 않고서야 너랑 썸 타는 애를 남자도 아니고 다른 여자한테 순순히 넘겨준다는 게 말이 되니?”
내가 어안이 벙벙해져있었더니 정원누나는 답답한 듯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그러더니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강휘야, 내가 니한테 힘내라고 했던 건 어디까지나 있지? 정원이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질투가 나도 정원이의 성장을 위해 지켜봐주겠다는 하해와도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진 줄 알고 힘내라고 하는 거 였거든?”
“그거랑 뭐가 다른데?”
“다르지! 하늘부터 땅만큼이나 다르지!”
정원누나가 나를 모지리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점점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이 실시간으로 격하되는 기분이다.
“내가 너한테 힘내라고 한건 정원이의 세계를 넓히는 것을 참고 지켜보겠다는 태도에 응원을 해준 거야! 근데 지금 니가 하는 건 꼬리 말고 포기한 거야! 이 차이를 모르시겠어요?”
정원누나는 열정적으로 손짓을 하더니 소주를 제 잔에 따라서 다시 원 샷을 했다. 어지간히도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정원누나는 소주를 호쾌하게 넘기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물론 니가 그렇게 꼬리 말고 비 맞는 강아지처럼 낑낑거리고 있으면 나야 좋긴 한데.”
“뭔 소리야?”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정원누나의 눈빛이 실시간으로 온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분명히 가게 안에서 술까지 마시고 있는데 바깥보다 더 냉랭한 것 같았다.
“술친구 늘어서 좋다고, 왜? 불만 있니?”
“아뇨, 하늘같은 누님한테 불만이 있을 리가.”
“에휴, 됐다. 술이나 따라. 니 말 듣고 있으려니 내가 먼저 복장이 터지겠다.”
얌전히 술을 따라줬더니 정원누나는 바로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부족하다는 듯 술병을 다시 들었다. 그 모습이 걱정돼서 정원누나가 잡은 술병을 뺏으며 말했다.
“천천히 마셔. 속 버려. 안주라도 좀 먹던가.”
그렇게 말했더니 정원누나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화를 참는 신음소리를 내다가 이내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정원누나는 활짝 웃고 있었다. 웃음에 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정도로 시린 웃음이었다.
“강휘는 참 착해서 좋아. 좋은데, 이런 거 신경 쓸 겨를 있으면 조금만 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다시 생각해보자?”
“어? 어.”
긍정하는 답변을 내지 않았다간 몇 시간이고 혼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누나를 둔 동생들만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싸늘한 분위기였다. 어색하게 고개를 반복적으로 끄덕였더니 그제야 정원누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이런 점이 참 착하단 생각이 드는 거긴 하지만.”
“칭찬을 하는 거야, 혼내는 거야. 하나만 해.”
“혼내는 거야, 이 바보야.”
정원누나가 눈을 샐쭉하게 뜨며 이쪽을 바라봤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피하고 술잔을 비웠다. 긁어 부스럼이었다. 닥치고 있을 걸. 그나저나 오늘도 정원이 얘기를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언제는 그런 분위기였던가.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지금처럼 혼나면 혼나는 대로 정원이를 술자리에 데려와도 되냐는 이야기를 할 만한 분위기는 없었다. 그래서 답답했다.
***
“너 진짜 바보지.”
“뭐?”
기시감이 느껴진다. 정원이가 한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까지 완벽하게 어제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정원이가 이런 말을 꺼내게 된 건 다름 아니라 내가 도저히 정원누나에게 말을 못하겠다는 말을 한 것과 동시였다. 정원이는 내가 어렵게 사정을 말하자마자 굉장히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화를 억지로 눌러 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 역시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표정이었다.
“너 진짜 일부러 나 빡치게 하려는 거냐?”
“아니, 그게 뭔 소리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걸 이렇게 대놓고 말 해?”
정원이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를 스치던 기시감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감한 상황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정원이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휘야, 나도 바보도 아니고 니가 말 돌리고 있는 걸 모르겠냐.”
“그러면.”
“그래도 궁금한 거야. 나는.”
정원이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 앞에 놓여있던 레몬사와가 아닌 소주잔을 새로 들어 소주를 따르고는 마셨다. 말리려고 하자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무언의 거절을 했다. 정원이의 잔이 반 정도 비어있었다. 잔을 바라보자 정원이가 이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제정신으로 말하고 싶으니까.”
“……그래.”
정원이는 한숨을 내쉬고 내게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솔직한 마음으론 몰래 가서 보고 싶은데.”
“야.”
“그래, 그거 봐. 니가 화낼 거 뻔하니까 안 하는 거야.”
울컥한 감정이 조금씩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억울함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었다. 나는 그런 감정도 외면하려는 것처럼 고개를 돌리며 변명하듯 말했다.
“나도 너랑 이연아씨가 만나는 곳 안 가잖아.”
“그래서 나도 재촉 안 했던 거야. 그 정도는 나도 이해한다고.”
“그럼 뭐 어떻게 하라고. 계속 이렇게 얼버무려?”
“그게 아니라.”
“너처럼?”
정원이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 표정을 보자 들끓던 감정이 내려앉았다. 감정에 등 떠밀려 말실수를 한 것이었다. 아차 싶은 마음이 들어 머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미안.”
“왜? 더 얘기해보지.”
“아니야, 미안해. 말 헛 나왔어.”
“헛 나온 게 아니라 지금 말한 게 진심이겠지.”
정원이가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들면 나도 정원이에게 말을 쏘아댈 것 같았다. 정원이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내 잘못을 감추기 위해 정원이에게 화를 내고 싶진 않았다. 정원이 역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화를 참고 있는 것이었다.
“한 번만 가게 해줘. 그냥 니 친구 나한테 소개시켜주는 거야. 그게 그렇게 어려워?”
“하아. 넌 그럼 나 이연아씨한테 소개시켜줄 수 있어? 너 평소에 둘이서 하는 거 보여줄 수 있어?”
감정을 배제하려 힘쓴다. 사실을 전달하는데 힘쓴다. 화를 내지 않으려고, 쏘아붙이는 느낌이 나게 하지 않으려고 차분하고 담담하게 어조를 유지하며 물었다. 그러자 정원이 역시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최대한 감정을 참으려는 듯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켕기는 거 있어? 그런 건 왜 물어보는데.”
“내가 너한테 켕길 건 뭐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
“뭐? 너 하정원씨랑 사귀니?”
“아니라고.”
“근데 우리 사이 얘긴 왜 나오는데? 왜, 그쪽이랑도 연인행세하기로 했니?”
“너는 그럼 이연아씨랑 연인행세하기로 했냐?”
어느새 감정을 억누르려던 각자의 노력은 온 데 간 데 없이 감정만을 앞세워 말하고 있었다. 정원이는 내 말을 듣고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었다.
“대체, 대체 왜 그러는데. 하정원씨랑 사귀면, 사귀면 그냥 말 해주면 되잖아. 말 해주기로 했잖아.”
“그래! 말 해주기로 했잖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지금까지 참고 있던 감정이 일순간 분출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언성에 놀란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내가 소리를 높였다는 사실에 놀라 말을 멈추고 정원이를 바라봤다.
정원이는 하얗게 질린 채로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 위협을 통해 약해지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보니 감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숨을 천천히 고르고, 다시 목소리를 낮추고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말 안 했잖아. 그러니까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런데,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해.”
정원이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렸다. 정원이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그냥 끝까지 얼버무리라고. 내가 잊어버릴 때까지 얼버무리고 나중에 그냥 요즘엔 안 만난다고 그러면 되잖아.”
“어떻게 그래.”
“그럼 넌 어떻게 그래?”
“너도 이연아씨 안 만날 거 아니잖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가 그렇게 중요해?”
“그럼 안 중요해? 니 둘도 없는 친구잖아.”
“그럼 너한테도 하정원씨가 둘도 없는 친구야? 그래?”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정원이가 울분을 토해내듯 소리를 높였다. 필사적으로,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토해내듯이.
“너한텐 아직 나 말고도 친구가 남아 있잖아! 가끔 성규도 만날 거고! 서진이도 만날 거고! 그리고 다른 사람도 많이 만날 거잖아! 나는, 나는 너랑 연아밖에 없어. 둘밖에 없다고! 그게 너랑 같아?”
“아니, 정원아, 그런 게 아니라.”
“나를 어디까지 더 비참하게 만들려고 그래!”
그 말을 듣자 나는 입을 뗄 수 없었다. 그 순간 온 몸에 전류가 지나간 것 같았다. 내가 정원이를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그 사실이 내 심장을 찌르기 시작했다. 정원이의 행복을 기원했던 마음과 지금까지 쌓아온 감정이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다.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정원이는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 감정을 뱉어내고 있었다.
“내가, 내가 너한테 소홀해서 그래? 내가 너랑 만나는 게 일주일에 네 번이야! 내 인간관계의 시작은 너고, 끝도 너고, 이제 곁가지가 하나 생겼을 뿐이야. 그게 그렇게 너한테 힘들었니?”
“……그거랑 정원누나랑 만나는 게 무슨 상관인데.”
간신히 입을 떼서 내뱉은 말은 정원이를 달래는 말이 아니었다. 끔찍하고 더러운 자기변호였다. 그 말을 듣고 정원이는 표정이 점차 굳어져갔다. 조금씩 표정이 탈색되어 갔다. 한 꺼풀, 한 꺼풀, 그렇게 표정을 벗어간다. 마침내 모든 표정을 까내고 나서 정원이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모르는 네가 거기에 있잖아.”
마치 그것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거냐며, 정원이는 그렇게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나는 입을 몇 번이나 달싹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모르는 너도 이연아씨와 있지 않았느냐. 나 역시 인간관계가 너에게 한정되지 않았느냐. 내가 지금까지 네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아느냐. 그 모든 말이 정원이를 상처 입히는 말이었다. 그래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지금 너는 이미 너무도, 너무도 힘들어보여서, 상처 입은 것처럼 보여서. 정원이는 간신히 속에 있는 무언가를 토해내듯 드문드문 말을 이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넌 모르면서. 나도, 나도 확인해야 할 게, 있었는데.”
“……알았어. 그래. 알았다고. 약속 잡을게.”
“됐어.”
내가 마지못해 답하자 정원이는 지금까지 힘들게 뱉어내던 것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냥 단호하게 내 말을 끊어냈다. 이미 늦어도 너무 늦어버린 것이었다. 정원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지막 말을 뱉어냈다.
“이젠……, 이젠 됐어.”
그렇게 정원이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 움직임은 너무도 연약하고, 느렸지만, 나는 그런 정원이를 붙잡을 수 없어서, 쫓아갈 수 없어서, 멈춰 세울 수 없어서, 그래서 그냥, 아무것도 못하고 멍청하게 자리에 못 박혀 있을 뿐이었다.
[작품후기]이 장면 전에 뭐 이것저것 찜찜한 사건들이 있을 예정이었습니다만. 그냥 '한 달'로 퉁쳐버렸습니다. 사건 진행을 슬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 한 달 동안 있던 변화는 이 전에 묘사한 것과 흡사합니다. 강휘는 하정원과 다정원은 이연아와 좀 더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강휘나 정원이나 빙빙 돌려가면서 말하면서 서로 불만은 점점 쌓여 갔습니다.
오늘도 부족한 점이 많은 글 관심가지고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