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100화 (100/138)

99회

chapter4식사를 마치고 카페를 갔다. 이전이라면 피시방에 바로 갔을 텐데 요즘 들어 정원이는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단 것을 찾곤 했다. 운동을 따로 하지는 않던 것 같던데 신기하게도 살이 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정원이와 대부분을 같이 식사하는 내 입장에서야 매일 운동을 해서 유지를 하는 중이라 조금 억울하다. 그에 대해 질문을 하면 정원이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했다.

“넌 살 안찌냐?”

“안 그래도 나도 잘 모르겠는 게, 나 매달 정기검사 하잖아. 거기에서.”

“어.”

“근데 체중 변화가 거의 없더라고. 아예 없으면 또 몸에 이상이라도 있나보다 할 텐데 정작 한 1키로 정도씩 줄었다 늘었다 하거든.”

“줄기도 하냐?”

“음, 전에 조금 고생할 때?”

정원이는 조금 흐린 얼굴로 말끝을 뭉갰다. 마음고생을 하던 그 때를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이미 지난 일이었으나 정원이에게 있어 이미 지난 일로 치부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일은 아니었다. 정원이의 상처는 아물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주제를 돌리려 가볍게 응수했다.

“그 땐 그래도 별로 안 먹었나보다?”

“나라고 항상 돼지같이 쳐 먹겠냐?”

“아니었어?”

“아니라고!”

정원이가 짜증을 내며 조각 케이크를 호쾌하게 떠먹었다. 사실 이렇게 놀리긴 해도 정원이가 먹는 양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아니 정원이 본인조차 자신이 먹는 양에 대해 익숙해지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니 몸무게가 유지되는 것도 썩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카페에서 노닥거리던 중에 정원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와 함께 정원이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정원이는 일어난 김에 화장실을 가려는 것인지 전화를 받고 화장실 쪽을 향했다. 별 달리 할 것도 없어 핸드폰으로 게임을 켜서 하다 보니 이내 정원이가 돌아왔다. 정원이가 미묘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아까 나 요즘 연아랑 만난다고 했잖아.”

“그랬지. 근데 왜?”

“아니 그게, 연아가 갑자기 내일 뭐 좀 도와달라고 해서.”

“그래?”

정원이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조금은 과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후에 하는 짓거린 더 가관이었다. 정원이는 그 상태로 애교가 섞인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래서 내일운 몬 만나 꼬 가타! 오빠 미아냉!”

“……별 상관은 없는데, 하아. 너 지금 뭐 하냐?”

“아니, 어, 어, 그렇게 이상해?”

나는 그 모자란 애교를 듣고서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과한 동작. 과한 애교. 미안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의도야 알겠는데 귀엽다기보단 안쓰러울 정도였다. 차라리 평소 의식하지 않고 눈물 참을 때처럼 코맹맹이 소리 정도나 내지. 그건 나름대로 귀여웠는데. 내 차갑게 식은 반응을 보고 나서야 정원이의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나는 한숨을 재차 내쉬며 말했다.

“하아. 어차피 주말에 만나는 거야 같이 놀라고 만나는 거고. 어차피 대단한 약속은 아니니까 나야 별 상관없는데.”

“아니 그래두, 원래는 만나는 거니까. 그래서 그냥 뭔가 미안해서.”

“미안할 거야 없고. 오히려 미안할 건 방금 전에…….”

“으아악! 잊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마침내 정원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팔을 붕붕 휘두르며 발광을 했다. 차라리 이게 더 귀여웠다. 나는 그 반응을 즐기며 정원이를 비웃으며 놀렸고, 정원이는 한참을 허둥지둥하다가 결국 폭팔해서 내게 신경질을 부렸다. 그제야 나는 정원이를 달래며 기분을 맞춰줬다.

“진짜, 너, 나중에 꼭 내가 후회하게 해준다. 진짜.”

“아 미안하다니까.”

애시당초 네가 먼저 되도 않은 애교를 부린 게 문제가 된 것이 아니냐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원이는 한참을 씩씩거렸고 나는 그런 정원이를 끝까지 달래주며 집으로 바래다줬다. 정원이는 헤어지기 전에 혀를 내밀고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나서 보란 듯이 문을 세게 닫았다. 나는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그런 정원이를 배웅하고 차에 탔다. 그리고 일련의 해프닝을 끝나고 나서 자리에 앉아 얼굴을 굳혔다.

별 것도 아닌 문제였다. 특별한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고 그저 주말에 만나는 것이 습관처럼 일상이 된 것 뿐이었다. 심지어 정원이는 그 작은 부분에 대해서도 사과를 했다. 그러니까 전혀 기분이 나쁠 필욘 없었다. 그게 맞았다.

그러나 그런 이성적인 판단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은근한 불쾌함이 스물스물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방인이 우리의 일상에 발자국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었다. 때 묻지 않던 달에 처음으로 인류의 발걸음이 닿았을 때 달은 이렇게 불쾌함을 느꼈을까.

이연아.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내가 얼마나 많은 말을 삼켰는지 모른다. 뭔 일을 도와달라고 했는데? 혹시 그 자리에 나도 같이 도우러 가줄까? 혹은 꼭 네가 필요하다고 했냐? 그냥 내일 같이 놀면 안 되겠냐? 그러나 그 무슨 말을 내뱉었다고 한들 내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정원이가 이상함을 느끼지 않게 물어볼 수 있었을까. 단연코 그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는 현상유지를 할 뿐이었다. 흔들리는 감정을 숨기려고 일부러 정원이를 놀렸다. 천천히 변해가는 상황에 내가 흔들리는 것을 숨겼다. 천천히 무너져가는 모래성을 바라보며 나는 그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언젠가 이 불편한 감정에 대해 토로할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것이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 그렇게 깊어지는 고민과 한숨을 정원이 몰래 하나하나 헤아렸다.

***

일요일이 돼서 내가 집안에 퍼질러져 있자 누나가 나를 끌고 나왔다. 오랜만에 집에 박혀있는 것이니 좀 쉬게 해달라고 투정을 부렸더니 누나는 말없이 내 방으로 들어와서 내 옷장을 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옷이 없긴 하네.”

“정확히는 겨울옷이 없는 거지. 너 정말 추리닝이나 입고 회사 다닐 생각이었니?”

“아니. 지금 입고 있는 양복에 코트나 걸치려고 했지.”

“그 코트는 있고?”

“있잖아.”

내가 옷장에 쳐박힌 검은색 떡볶이 코트를 가리키자 누나가 경악한 얼굴을 했다. 정녕 네가 고등학교 때부터 입어온 저 거적데기를 입을 것이냐는 의미였다. 누나의 반응을 보며 역시 옷을 사는 것이 옳을지 잠깐 동안 고민하고 있자 누나가 그 거적데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너 저거 입고 정원이랑 데이트 할 수 있니? 진심이야?”

내가 대답을 꺼리자 누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불안한 미소였다. 내게서 대답을 종용하는 표정이었다. 결국 나는 방금처럼 다시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옷 사러 가자, 그래.”

“잘 생각했어. 거기서 니가 고개를 끄덕였으면 정원이가 가여워서라도 너를 단단히 혼냈을 거란다.”

그것 참 다행이었다. 누나가 혼내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꾸중을 듣거나 혹은 있는 그대로의 의미로 샌드백 신세를 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심지어 누나의 꾸지람은 굉장히 집요했다. 옳은 선택지를 골랐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누나와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누나가 내가 입는 꼬라지를 보면 항상 못마땅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내버려뒀던 것은 내가 학생이었기 때문이며, 군대를 갔기 때문이며, 그 후엔 고시생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차려입을 만한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었으며,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동생이었다. 그런 누나에게 내 텅 빈 옷장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누나는 여기저기 옷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내게 옷을 대보더니 나보고 갈아입고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마음에 드는지를 물어봤는데, 나야 알 턱이 없으니 그냥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러나 누나는 내 반응과 상관없이 다시 오겠다며 다시 가게를 나왔다.

“아니, 어차피 안 살 거면 내 의견은 왜 물어보는데?”

“니가 싫으면 안 살 거니까. 니가 좋으면 그 때부터 내가 보기에 좋은지 고민하는 거지.”

“그럼 입혀보긴 왜 입혀봐?”

“얘. 옷을 입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고르니?”

누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말 자체는 맞지만 뭔가 납득하긴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눈엔 뭐가 더 좋은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다 고만고만하니 그냥 아무거나 사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건 누나가 나를 두 시간이나 끌고 다니면서 옷 한 벌도 사지 않자 더욱 간절해졌다.

“아니, 언제까지 보려고.”

“니 옷이지, 내 옷이니?”

“내 옷이니까 아무거나 대충 사가지고 가자.”

누나는 깔끔하게 내 말을 무시하고 다음 가게를 향했다. 가장 억울한 것은 결국 고른 것이 처음 들어갔던 가게에서 봤던 옷이었다는 점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 내가 억울한 눈으로 누나를 바라보자 누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게 제일 낫잖아.”

“그럼 처음부터 샀으면 됐잖아!”

“이게 제일 나은지 어떻게 알고 바로 사니.”

누나는 아까 나를 바라보던 시선 그대로 황당하다는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아까보다 더욱 억울했다. 내가 한숨을 내쉬는 것과 상관없이 누나는 탈의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지금 입고 있는 그 옷 같지도 않은 것 벗고 이거 입으렴. 다음 건 그 후에 보고.”

“아니, 더 보자고?”

“당연하지.”

“난 이제 무리야.”

내가 옆에 있는 의자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자 그제야 누나가 새삼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렇게 힘들어?”

“어.”

“그럼 잠시 쉴까?”

“잠시?”

“그럼 한 벌만 사고 돌아가게? 다음에 또 오려고?”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이 짓을 한 번 더 하자고? 내가 고개를 젓자 누나가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일단 옷 갈아입고, 카페라도 가서 좀 쉬자.”

“하아, 그래.”

옷을 갈아입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초코프라푸치노를 하나 시켰다. 몸이 피곤해서 단 게 땡겼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제 몫의 아메리카노를 천천히 마시면서 신기하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 평소에 원래 그런 거 마셨었니?”

“그런 거라니?”

“지금 마시고 있는 초코 프라푸치노. 너 그런 거 원래 안 마셨잖아.”

“딱히 싫어해서 안 마신 건 아니야. 지금은 피곤해서 단 게 좀 땡긴 거뿐이고.”

“어머, 그랬니?”

누나는 다시 아메리카노를 한 입 머금고 나서 말을 이었다.

“오늘은 정원이랑 안 만나네?”

“뭐 그렇지.”

“뭔 일 있었어?”

순간적으로 누나의 표정을 살폈다. 누나 역시 큰 의미를 가지고 물어본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없었어. 그냥 걔도 약속 있다길래 그러려니 하고 말았지.”

“남자는 아니지?”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누나를 바라보자 누나가 어색하게 눈을 돌리며 말했다.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나도 정원이를 못 믿는 건 아닌데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

“남자 아니라던데.”

“어머어머? 니가 먼저 물어봤니? 그래?”

누나는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반응에 나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 완전히 무시했다. 그러자 누나는 재미없다는 듯이 표정을 바꾸더니 먼저 화제를 돌려줬다. 어차피 내가 그 주제에 대해 필사적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요즘에 몸 관리해서 핏도 괜찮은데 왜 그렇게 입는 거에 신경을 안 쓰니.”

“원래 잘 안 쓰니까 그렇지 뭐.”

“정원이한테라도 좀 봐달라고 해. 데이트 핑계도 되겠다. 얼마나 좋니.”

누나의 말을 듣자 숨어있던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옷을 입으려고 할 때 마땅한 것이 없어 정원이와 옷을 사러 가려고 다짐했던 때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는 하정원씨와 만났던 때였다. 나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나중에.”

“왜? 어차피 니가 잘 보일 사람이 정원이밖에 더 있니? 그럼 걔 취향에 맞게 입는 게 좋지.”

“그건 맞는데. 아, 나도 그 생각했었어.”

“했는데?”

“그냥 오늘 옷 샀으니 더 살 필요 없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누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 내서 웃더니 미소를 지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너도 이제 꽤 능숙하게 타협할 줄 아는구나.”

“어? 뭔 소리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누나의 말에 내가 의문을 표하자 누나는 너스레를 떨며 응답했다.

“니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옷을 더 볼 수가 없잖니.”

“아, 그런가?”

“대신 정원이랑 약속잡고 옷 한 번 제대로 사는 거다?”

“어, 음. 알았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누나는 내 등을 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아까 봤던 거 세 벌만 더 보자.”

“아니, 방금 옷 더 안 본다며?”

“괜찮은 게 몇 개 더 있었는데, 딱 세 벌만 보는 거야. 혹시 겨울옷 네 벌로 보낼 생각이었어?”

“그럼?”

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길 수 없는 형태의 침묵이었다.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 항복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누나와 쇼핑을 마치고 나가려던 중 멀리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특별히 관리를 하지 않아도 찰랑거리는 단발과 세미롱 사이의 머리카락. 작은 키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오피스 룩 패션을 완벼하게 소화하는 녀석. 무엇보다 내 눈에 너무 익어서 보자마자 모를 수가 없는 친구. 정원이였다.

난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섰다가 황급히 옆에 있는 옷 가게에 바로 들어왔다. 혹시라도 정원이와 마주쳤을까. 아니, 정원이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옆에 있는 그녀도 마찬가지로 이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내가 갑작스럽게 옷가게에 들어오자 누나도 따라 들어오면서 물었다.

“왜? 옷 다 샀는데?”

“아니, 어, 그냥. 내가 마음에 드는 게 보여서.”

내가 아무 옷이나 가리키자 누나는 눈을 흘기며 센스가 대체 그게 뭐냐며 내 취향을 응징하듯 다시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누나의 주의를 돌리며 머릿속으론 딴 생각을 시작했다.

얼핏 봤던 정원이는 이연아로 추정되는 여자와 서로 옷을 봐주고 있었다. 뒷모습만 일순간 보였기에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분위기가 썩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부탁이라는 게 자신의 옷이나 골라달라는 것이었을까. 그렇기엔 정원이의 몸에도 옷을 대보던 것 같았는데. 그게 그렇게 숨길 일이었던가. 아니, 딱히 숨기진 않았었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어이가 없다.

사실 그 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다른 두 가지의 행동이었다. 첫 번째로 내가 누나에게 정원이와 이연아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가게에 들어왔다는 점. 두 번째로 정원이와 이연아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황급히 숨었다는 점.

전자의 이유야 누나에게 설명하기가 귀찮았으니까 라고 하더라도 후자의 이유는 좀 더 복잡했다. 아마 정원이와 얼굴을 마주친 순간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난 그 순간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겠지. 본능적으로 그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마 얼굴을 굳히고 아무런 말도 못했을 것이다. 이연아는 내 행동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고, 정원이는 헤아리지 못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당황하고 있었겠지.

그렇게 되는 것이 싫었다. 마치 내가 신경 쓰여서 그들을 미행한 것 같이 여겨지는 것이 싫었다. 그렇게 꼴사나운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런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을 텐데. 그런데도 이렇게 숨어든 것이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서. 왠지 모를 패배감에 잠겨 들어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그래서.

[작품후기]한동안은 조금 이렇게 강휘의 감정을 가라앉힐 예정입니다. 어, 한동안이라고 해봐야 제가 오래 못 버티면 한 두화 만에 사건이 진전될 수도 있겠지만요...

추천수가 3천이 됐네요. 성원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오늘도 부족한 점이 많은 글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항상 감사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