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75화 (75/138)

74회

2부 막간“헉!”

강휘였다. 나는 한쪽으로 몸을 숨겼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본능적으로 숨어버린 것이었다. 귀만 기울여서 무슨 말을 하는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인사과에 있었던 한 명이 강휘를 혼내는 모양새였다.

“눈치 챘지? 인포팀 다정원씨의 사표야. 끝나고 얼마 안 되서 인사과로 올라와서 그 자리에서 인사과장님께 수리하더라. 사표 쓴 사람이야 많았는데 인사과에서 그렇게 쓰고 나간 사람은 처음 봤다.”

“그 혹시, 정원이는, 아니 다정원씨는 어디로 간지 아십니까?”

“알겠냐? 아무튼 간에 에휴. 아니, 하아. 내가 다 답답하네. 내가 뭐라고 해야겠냐? 뭐라고 해줄까?”

“좀 더 신경 좀 쓰지 그랬냐. 거기서 굳이 다 말할 문제도 아니었잖아. 개인적으로 그 애송이새끼 불러서 조졌어도 되는 거 아니었냐? 하, 씨. 어차피 인사과장님이 나를 올린 것도 너 갈구라고 보낸 거겠지. 너도 상관없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공감하고 있었다. 거 누군 진 몰라도 말 참 잘하네. 그래, 거기서 다 말할 문제들도 아니었잖아.

“그래 뭐, 거기 팀장이야 그렇게 조졌어도 될 일인데. 어차피 다정원씨에 대한 소문이 안 좋았으니까 반전시키기엔 좋았겠지. 그래도 그 애송이랑 엮인 걸 굳이 공표했어야 했냐? 네 여친 아니야? 여친 맞지? 근데 여친하고 얘기도 안 해봤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여친? 여친? 여어어어친? 강휘랑은 그런 거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외치려다가 겨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내가 필사적으로 나가지 않은 것은 저 선배의 말이 내 공감을 격심하게 불러일으키고 있었으며, 또한 그것에 대한 강휘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였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내 말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방법이었다.

“야. 강휘야. 강휘야. 그래, 네가 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됐다. 너 개인적으로야 평가가 높아지겠지. 사장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냈고, 회사에 있는 부정도 처리했겠다,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네 눈에 거슬리는 것도 치울 수 있다는 것도 다 알게 됐고. 이게 니가 원하던 거냐?”

“아닙니다.”

강휘의 목소리가 떨렸다. 후회가 서려있는 목소리였다.

“아니, 그래. 내가 할 말도 아니지만. 아니다. 인사과장님께서 날 보낸 이유가 이거 아니겠냐. 그냥 다 말하지 뭐. 너 그냥 솔직하게 말해봐라, 야. 너 여자친구랑 싸웠냐? 그래서 이별도 할 겸 회사에서 승진도 할 겸 이 참에 같이 치우자, 그런 거냐?”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안도하고 있었다. 저런 이유로 강휘가 나를 도구로 사용했다면, 아마 나는 강휘를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말과는 조금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빼꼼 몸을 내밀었다가 강휘에게만 들키지 않게 살금살금 그 자리로 걸어갔다.

“그럼 대체, 어?”

나는 검지를 입술위에 올려 고개를 작게 젓는다. 선배씨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헛기침을 몇 번 하다가 강휘에게 말한다. 센스 넘치는 선배를 두고 있구나, 강휘야. 선배 덕분에 조금 기분 풀렸으니까 나중에 꼭 선배한테 고맙다고 해. 아주 쪼오오오오금 이지만.

“어, 그래. 일단은 네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라. 고개는 들지 말고.”

“우선 예. 재성선배 말이 맞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 취해있었습니다. 제가 뭐라도 되는 냥 들떠서 주제 모르고 나댔습니다.”

그랬구나. 너도 알고 있었구나. 조금 늦었지만 말이야.

“다음.”

“결론적으로 제 사정으로 인해 여러분께 폐를 끼쳤습니다.”

“어, 그거 말고 니 여자친구분한테 잘못한 거나 말해봐라.”

둔탱이. 내 눈매가 사나워지자 선배씨가 강휘를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게 보였다. 내가 샐쭉하게 바라보자 선배씨는 난처한 듯이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사실 저는 이번 일 모두 정원이라는 친구를 위해 했던 거였습니다. 하지만 도중부터 총무과 주임을 쓰러트리려는 데에만 신경을 쏟았습니다.”

나도 네가 나를 위해 한 행동이란 건 알고 있었어. 근데 너는 도중에 목적이 조금 바뀌었던 거구나. 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납득은 못할 것 같아.

“다음.”

“방법도 글러먹었습니다.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고려해야했습니다.”

그래. 글러먹었어. 민감했어. 너무 아팠는걸. 어쩔 수 없잖아. 그 자리에 만약에 네가 있었다면 너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다음.”

“정원이를 위해서라고 해놓고 정작 정원이에겐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정원이를 위해서였다면 정원이에게 먼저 계획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알았, 잖아. 너도, 알, 수, 있었, 잖아. 나는 선배씨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내가 나서겠다는 표현이었다. 선배씨도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나는 작게 입을 열었다.

“또.”

“정원이가 힘들어 했을 때 그만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에게 취해서. 그 자리에 취해서 끝까지 정원이를 상처주고 말았습니다.”

그래, 너무 취했어. 저번에도 그랬지만 너 너무 분위기를 잘 타. 분위기를 너무 잘 타서 잘 나가다 넘어져버려. 근데 이번엔 나를 깔고 넘어졌잖아. 잘못했지? 그치?

“또.”

“그리고…….”

강휘가 말을 잇지 못한다. 목이 멘 것 같았다. 나는 가볍게, 그렇지만 진지하게 말을 더한다.

“또. 그게 다야?”

강휘가 얼굴을 든다. 내 목소리인 줄 이제 알았나보다. 알아채지 못해서 조금은 서운하고, 그만큼 자괴감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조금 불쌍하고, 그래도 그런 감정을 내세우기엔 아직 내 박살나버린 자존심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조금 쌜죽한 얼굴로 쏘아붙인다.

“어쭈. 고개 드냐? 선배 말이 말 같지 않나보다?”

“너!”

강휘의 눈에 눈물이 차고 있었다. 마음이 약해진다. 강휘가 울려고 하는 건 처음 봤으니까. 나한테도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래서 오히려 더 표독스럽게 말로 내친다.

“내가 니 개냐? 니가 오라하면 가게? 어련히 시발 카톡 씹으면 그런가보다 할 것이지.”

전화를 몇 통이나 더 하더라? 그거도 씹었으면 알아서 눈치 좀 채라, 제발.

“생각을 좀 해보려고 했어. 네 얼굴 안 보고. 근데 넌 아무렇지도 않게 그거 끝나자마자 나를 부르더라?”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어. 니가 걱정돼서!”

“걱정을 씨발 그딴 식으로 하는 새끼가 어디 있어? 하아, 그리고 입 닥쳐라. 내 말 아직 안 끝났다.”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시 내 자신을 진정시킨다. 화를 내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가 쉽다. 그렇게 생각하며 감정을 최대한 다시 가라앉히고는 사실만을 전달한다.

“처음엔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개 빡치더라? 그래서 인사과 올라가서 너 엿 먹으라고 사표 던지고 나왔어. 어차피 씨발 사표는 항상 품에 넣고 다녔거든?”

그래, 나 너 엿 먹으라고 그렇게 사표 던지고 온 거야.

“그래도 난 이전보다 좀 더 성장했어. 언제냐고? 너랑 싸운 그 날! 너랑 싸운 그 날보다 난 좀 더 성장했다고. 처음엔 그냥 사표내고 너 안보고 대구로 내려갈까 싶었는데, 저번에 내가 배운 게 있잖아? 서로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그래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어.

“근데 내가 너무 빡쳐서 니 얼굴 보자마자 화가 날 거 같은 거야? 그래서 생각을 좀 해봤어. 굳이 말하면 너랑 만나면 할 말을 정리했어. 하아. 근데 여기까지 쫓아 올라 오냐? 너 내 스토커야?”

그런데 그 때 네가 올라와서 나도 너무 당황했어.

“게다가 시발 뭐?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내가 애야? 아니, 하아. 그래 그리고 나를 위했다면 그 자리에서 나한테 그렇게 쪽을 줬으면 안 됐어. 대단한 일도 아니었잖아. 꼭 그렇게 해야 할 일도 아니었잖아.”

“미안,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지 마.”

싸늘하게 말한다. 너를 용서해 버릴까봐. 이렇게 쉽게 용서하고 싶지 않아서. 아직은 내가 너무 아파서, 내가 너무 상처입어서. 그리고 네게 너무 쉽게 기대버릴 것 같아서.

“너만은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했을 때, 너는 내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잖아. 그런데 니가 말하지 않고 나보고 알아주길 원하면 어떡해.”

그런 마음을 담아 전달한다. 하나하나.

“……고개 들어.”

강휘가 울고 있었다. 후회로,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자신에 대한 혐오로, 자괴감으로, 그러면서도 내가 미안하다고 하지 말라는 말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그렇게 모순에 갇혀, 울고 있었다.

“너, 하아.”

화를 낼 기운조차 빠지고야 만다. 바보. 한 번도 운적 없으면서. 고개를 괜히 들라고 했다. 강휘는 내가 울 때마다 내 말을 어떻게든 들어주려고 했다. 그 심정을 이해할 것만 같다. 강휘가 그랬듯, 나도 강휘의 눈물엔 약한 모양이었다. 감정이 일렁인다. 좋지 않아. 끝까지 필요한 사실만 전달해야지. 오해하는 건 이제 싫으니까. 최대한 무감정하게 선언한다.

“나 회사 나갈 거야.”

그리고는 돌아선다. 미련을 남길까봐. 그래도 이렇게 회사를 나가면 강휘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너도 사과 했으니까.

“가지 마.”

걸음이 멈췄다. 강휘가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던 강휘가, 나를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노력하던 강휘가, 그런 강휘가 내게 애원을 하고 있었다.

이전의 강휘의 모습을 떠올린다. 지금의 강휘는 내가 사과했을 때와도 같았다. 제 멋대로 힘내고, 제 멋대로 노력해서, 제 멋대로 넘어지고, 제 멋대로 오해하고, 나를 상처 입히고.

복잡하다. 복잡한 심경이다. 강휘를 용서하고 남으려는 내가 있다. 강휘를 용서하지 못해 떠나려는 내가 있다. 어느 쪽도 강휘와 완전히 관계를 끊고 싶어 하진 않았다. 채 맺지 못한 감정이 입을 통해 배회한다.

“너는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네가 억지로 한 일이 모두 성공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모르겠다. 하아. 강휘야.”

“어, 뭐?”

“조금만 고개 좀 숙여봐.”

울분을 가득 담아 강휘의 뺨을 주먹으로 때렸다. 강휘가 엎어졌다. 순간적으로 놀라서 강휘에게 가려다가 겨우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그리고 한 마디 한 마디 끊어내어 강휘에게 전달한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저렇게 약한 강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내 분노를 표출한 것이었다. 어때? 아파? 하지만 내가 몇 배는 더 아팠어. 이건 내가 아팠던 거에 먼지 한 톨만큼도 안 돼.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 네 우는 얼굴을 보니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 나는 이걸로,

“이걸로 너를 용서할게.”

“내가 바보인 만큼 너도 바보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싸우면 네가 먼저 용서해줬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내가 더 양보할게.”

“그러니까 너도 날…….”

왜냐하면 네가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 지가 네 눈물을 통해 다 드러나니까. 그래서 나를 끊어내려고, 내가 네 곁에 있으면 너에게 방해가 될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회사를 나가겠다고 다시 한 번 더 말하려고 했다.

“내가 책임질게.”

“그래……. 어? 뭐?”

“내가 책임진다고! 니가 원하는 건 다 해줄 테니까!”

“너! 너너너너너너너너, 시발!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

내가 무엇을 말할지에 대해서만 생각해서였을까? 강휘의 말에 제대로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강휘가 내 손을 잡았다. 흠칫 떨고 있자 강휘는 내 손에 있던 사표를 뺏어가서 시원하게 찢어버렸다. 그리고 쳐 맞아서 제대로 정신도 못 차리는 상태로 계속 지껄였다.

“떠나지만 마. 제발, 부탁이야.”

“너…….”

나는 말을 내뱉으려다가 다시 주워 담는다. 네가 너무 필사적이라서.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가 느껴져서. 그리고 네 행동을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보여서. 내가 떠나는 것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그게, 보여서. 나는 결국 꺼내려던 말 대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너는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내가 미소 짓자 너도 멍청하게 따라서 미소 짓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내가 웃으니까 그게 좋다고. 강아지 같이. 조금은 귀여울지도. 나는 그래서 너를 떠나는 것을 포기했다. 포기해버렸다. 그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작품후기]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있는데 반성하고 있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서 반성을 해야 한다고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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