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회
chapter2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자리에 서 있다가 아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핸드폰을 들어 카톡을 눌렀다.
[나 :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서 보자.]
곧 1이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자리를 떴다. 인사과 톡방엔 오늘 점심은 사건 뒤처리를 해야 해서 같이 먹을 수 없으며, 점심시간이 끝난 후 자세한 얘기를 하겠다고 메세지를 남겼다. 차안으로 들어가자 내부가 살짝 더웠다. 바깥은 슬슬 서늘한데, 차만 타려고 하면 항상 이렇게 후끈하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등받이를 젖혀놓고 있다가 덥지는 않아져서 에어컨을 껐다.
그 자리에서 바로 정원이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정원이의 실 끊어진 인형 같은 반응이 계속 신경 쓰였다. 정원이는 녹음기를 틀었을 때부터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바로 정원이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99퍼센트와 100퍼센트는 전혀 다른 수치였다. 내가 그 자리에서 정원이에게 갔으면 그 자리에 남은 모든 이들이 입을 맞추어 이번 사건의 주인공이 정원이임을 알렸을 것이었다. 지금도 거의 대부분 짐작하고 있겠으나, 짐작과 확신은 달랐다. 나는 적어도 정원이가 진정된 이후에 사람들이 확신하기를 원했다. 정원이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몇 번이나 차량에 있는 에어컨을 껐다 켜도 정원이는 오지 않았다. 카톡을 보낼 때마다 분명 1은 사라지고 있었다. 정원이는 내 메세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넉넉하게 받은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정원이는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수신음이 바로 끊기고 자동 문자메세지가 날아왔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 메세지가 계속 눈에 걸렸다. 정원이는 내 전화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원이가 나를 피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한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내가 멋대로 진행시킨 오늘의 사태 때문이었다.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동안 시시각각 변해가던 정원이의 얼굴을 나는 계속 무시했다. 끝나면 모든 것이 잘 풀리리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얼굴을 쓸었다.
“하, 시발.”
머리에 피가 몰려있었음을 깨달았다. 차에서 대기하며, 그리고 지금 자기객관화를 해가며 머리를 식히자 내 행동의 의미가 하나하나 재해석되어갔다. 좀 더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좀 더 스마트하게 할 순 없었을까. 뒤늦은 후회가 걷잡을 수 없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니, 이것은 모두 내 의지였으며, 내 책임이었다. 선택하지 않은 사태에 대해서 아쉬워 할 시간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했다.
차에서 나와 인사과로 들어오자 예상한 바와는 달리 분위기가 어색했다. 무언가 나를 향한 조심스러운 공기가 느껴졌다. 숙연한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나만 모르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했다.
“재성아, 강휘 데려가서 얘기 좀 해주고 와라.”
“접니까…….”
“그럼 내가 하랴?”
“아닙니다. 야, 강휘야. 따라와라.”
“예? 예, 알겠습니다.”
인사과장님이 재성선배에게 말하자 재성선배가 나를 데리고 나갔다. 인사과를 나오자마자 재성선배가 내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옥상으로 갈래, 아니면 흡연실로 갈래.”
“옥상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가서 얘기하자.”
둘 모두 머리를 식힐 때 휴식을 위해 가는 곳이었다. 재성선배도 나도 흡연자가 아니었으니 옥상을 선택했다. 옥상에 도착하자 재성선배가 난감하다는 듯이 계속 한숨을 내쉬어댔다. 말하기 꺼림칙한 것을 말하는 태도였다. 재성선배는 결국 결심을 한듯이 한숨을 내쉬는 것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하얀 봉투엔 크게 한자가 적혀있었다.
辭表
사표. 퇴직서. 회사를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 내가 맡은 직책을 내려놓고 더 이상 회사에 속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서류.
글씨체가 익숙했다. 글씨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서류를 보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눈치 채고 있었다. 정원이가 낸 사표였다. 숨이 막혀왔다. 내가 한 행동은 이렇게나 정원이를 옥죄고 있었다. 내가 한 행동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재성선배가 봉투 속에서 문서를 꺼냈다. 역시 정원이의 것이었다.
“눈치 챘지? 인포팀 다정원씨의 사표야. 끝나고 얼마 안 되서 인사과로 올라와서 그 자리에서 인사과장님께 수리하더라. 사표 쓴 사람이야 많았는데 인사과에서 그렇게 쓰고 나간 사람은 처음 봤다.”
“그 혹시, 정원이는, 아니 다정원씨는 어디로 간지 아십니까?”
“알겠냐? 아무튼 간에 에휴. 아니, 하아. 내가 다 답답하네. 내가 뭐라고 해야겠냐? 뭐라고 해줄까?”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예상했지만 예상하고 싶지 않은 사태였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자 재성선배는 그런 나에게 비난을 쏟아 냈다.
“좀 더 신경 좀 쓰지 그랬냐. 거기서 굳이 다 말할 문제도 아니었잖아. 개인적으로 그 애송이새끼 불러서 조졌어도 되는 거 아니었냐? 하, 씨. 어차피 인사과장님이 나를 올린 것도 너 갈구라고 보낸 거겠지. 너도 상관없지?”
고개를 숙인채로 끄덕였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조급했다. 정원이가 그새 부서지지 않을까 조급했다. 조급한 마음에 해선 안 될 실수를 하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내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부끄러웠다.
나는 권력에 대해 혐오하면서도 권력에 취해 뭐라도 된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그 결과 목적을 상실하고 강지혁을 찍어 누르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재성선배의 말이 옳았다. 강지혁을 개인적으로 불러서 증거를 제시하였어도 결과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정원이도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었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래 뭐, 거기 팀장이야 그렇게 조졌어도 될 일인데. 어차피 다정원씨에 대한 소문이 안 좋았으니까 반전시키기엔 좋았겠지. 그래도 그 애송이랑 엮인 걸 굳이 공표했어야 했냐? 네 여친 아니야? 여친 맞지? 근데 여친하고 얘기도 안 해봤어?”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정원이와 대화를 나눴어야 했다. 적어도 녹음본을 키고 난 이후 정원이의 얼굴을 봤을 때라도 그만뒀어야 했다. 나 역시도 알고 있지 않았는가.
그 자리에 불려나온 순간 강지혁은 궁지에 몰려있는 것이었다. 안이슬을 떨어트리고, 총무과장이 강지혁을 포기하게 만든 시점에서 강지혁은 도망칠 수 없었다. 그 순간부터 내가 했던 행동은 강지혁을 죽인 것이 아닌 다정원을 죽인 것이었다.
내가 내 손으로 정원이를 끊어냈다. 그 사실이 나를 옥죄어왔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행동을 했는가. 다정원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당초의 목적은 그랬다.
도중부터 나는 무엇을 중요시 했는가. 아버지를 납득시키기 위해 계획을 견고히 하는데 집중했다. 사장님을 납득시키기 위해 계획이 회사에 이득이 되는 지에만 집중했다. 강지혁을 고꾸라트리기 위해 흠이 날 자료를 수집하는 데 집중했다.
“야. 강휘야. 강휘야. 그래, 네가 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됐다. 너 개인적으로야 평가가 높아지겠지. 사장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냈고, 회사에 있는 부정도 처리했겠다,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네 눈에 거슬리는 것도 치울 수 있다는 것도 다 알게 됐고. 이게 니가 원하던 거냐?”
“아닙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슬퍼서가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 때문에 분을 참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았다. 눈물을 참는 것은 익숙했다.
“아니, 그래. 내가 할 말도 아니지만. 아니다. 인사과장님께서 날 보낸 이유가 이거 아니겠냐. 그냥 다 말하지 뭐. 너 그냥 솔직하게 말해봐라, 야. 너 여자친구랑 싸웠냐? 그래서 이별도 할 겸 회사에서 승진도 할 겸 이 참에 같이 치우자, 그런 거냐?”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럼 대체, 어?”
재성선배가 말을 멈췄다. 재성선배가 말을 고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침묵은 무기가 된다. 사용할 때는 몰랐지만 당하는 입장이 되자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시간이 무엇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재성선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마음에 꽂혔다. 재성선배의 입장에서 내가 한 행동은 정원이를 원수로 여겨야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타인의 관점에서 그 정도의 행동을 한 것이었다.
정원이가 보고 싶었다. 정원이를 보기가 두려웠다. 정원이에게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싶었다. 정원이를 보자마자 도망가고 싶어졌다. 정원이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정원이에게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 주제넘게 느껴졌다. 정원이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정원이에게 무슨 말이라도 내뱉기가 부끄러웠다. 정원이를 위로하고 싶었다. 정원이에게 이해받고 싶었다.
정원이, 다정원, 다. 정. 원. 그 이름 석 자가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어, 그래. 일단은 네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라. 고개는 들지 말고.”
재성선배는 영리했다. 나를 교육하는 데 있어 본인이 혼내는 것보다, 인사과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내 자신이 잘못된 점을 찾게 만드는 게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내 잘못을 더 생생하게 일깨웠다. 나는 입을 열었다. 목이 잠겨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말했다. 말해야만 했다.
“우선 예. 재성선배 말이 맞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 취해있었습니다. 제가 뭐라도 되는 냥 들떠서 주제 모르고 나댔습니다.”
“다음.”
“결론적으로 제 사정으로 인해 여러분께 폐를 끼쳤습니다.”
“어, 그거 말고 니 여자친구분한테 잘못한 거나 말해봐라.”
재성선배의 목소리가 조금 변했다.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어째서 재성선배가 정원이에 대한 나의 의견을 듣고 싶은지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 생각을 그만뒀다. 오히려 내 쪽에서 털어놓고 싶은 얘기들이었다. 재성선배가 나를 신경 쓰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관점에서 고민했다. 정원이가 아닌 재성선배에게 먼저 털어놔도 되는 것인가. 정원이도 아닌 내가 먼저 편해져도 되는 것인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가 이 자리에서 재성선배에게 털어놓는다고 해도 마음의 짐이 덜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털어놓을 수 있었다.
“사실 저는 이번 일 모두 정원이라는 친구를 위해 했던 거였습니다. 하지만 도중부터 총무과 주임을 쓰러트리려는 데에만 신경을 쏟았습니다.”
“다음.”
“방법도 글러먹었습니다.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고려해야했습니다.”
“다음.”
“정원이를 위해서라고 해놓고 정작 정원이에겐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정원이를 위해서였다면 정원이에게 먼저 계획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또.”
“정원이가 힘들어 했을 때 그만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에게 취해서. 그 자리에 취해서 끝까지 정원이를 상처주고 말았습니다.”
“또.”
“그리고…….”
“또. 그게 다야?”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재촉하듯이 ‘또.’ 라는 말이 들렸다. 그러나 말을 잇지 못하자 오히려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성선배가 아니었다. 매우 익숙해서, 그래서 눈치 채지 못한 그런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정원이였다.
“어쭈. 고개 드냐? 선배 말이 말 같지 않나보다?”
“너!”
목이 멨다. 고개를 들자 정원이가 눈앞에 있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았다. 감히 내가 눈물을 흘려선 안 됐다. 정원이도 아닌 내가 눈물을 흘릴 순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고개를 다시 숙이고 눈물을 참았다. 머리 위에서 정원이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니 개냐? 니가 오라하면 가게? 어련히 시발 카톡 씹으면 그런가보다 할 것이지.”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난 후 보낸 카톡에 대한 얘기였다. 나는 정원이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오라고 했다.
“생각을 좀 해보려고 했어. 네 얼굴 안 보고. 근데 넌 아무렇지도 않게 그거 끝나자마자 나를 부르더라?”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어. 니가 걱정돼서!”
“걱정을 씨발 그딴 식으로 하는 새끼가 어디 있어? 하아, 그리고 입 닥쳐라. 내 말 아직 안 끝났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정원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노려보다가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엔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개 빡치더라? 그래서 인사과 올라가서 너 엿 먹으라고 사표 던지고 나왔어. 어차피 씨발 사표는 항상 품에 넣고 다녔거든?”
항상 사표를 안고 회사를 다니고 있었구나. 그리고 기폭제는 나였구나.
“그래도 난 이전보다 좀 더 성장했어. 언제냐고? 너랑 싸운 그 날! 너랑 싸운 그 날보다 난 좀 더 성장했다고. 처음엔 그냥 사표내고 너 안보고 대구로 내려갈까 싶었는데, 저번에 내가 배운 게 있잖아? 서로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정원이는 그 사건을 통해 서로 말하지 않으면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배우지 못했다.
“근데 내가 너무 빡쳐서 니 얼굴 보자마자 화가 날 거 같은 거야? 그래서 생각을 좀 해봤어. 굳이 말하면 너랑 만나면 할 말을 정리했어. 하아. 근데 여기까지 쫓아 올라 오냐? 너 내 스토커야?”
우연이 겹친 결과였다. 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중요한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시발 뭐?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내가 애야? 아니, 하아. 그래 그리고 나를 위했다면 그 자리에서 나한테 그렇게 쪽을 줬으면 안 됐어. 대단한 일도 아니었잖아. 꼭 그렇게 해야 할 일도 아니었잖아.”
“미안,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지 마.”
정원이가 싸늘하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사과는 너무 가벼웠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 나가버린, 그런 가벼운 것이었다. 정원이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다. 가장 긴 찰나의 시간이었다. 정원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무언가 메인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너만은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했을 때, 너는 내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잖아. 그런데 니가 말하지 않고 나보고 알아주길 원하면 어떡해.”
그 말이 내 심장을 두들겼다. 내가 한 말이 나를 박제하고 있었다. 과거의 내 자신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고개 들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정원이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풀려갔다. 너는 내 얼굴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화를 풀어가고 있었다. 내 얼굴을 보고,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너는 분노를 식히고 있었다.
그리고 너의 그런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왔다. 네가 차라리 화를 내고 있었다면, 나를 원망했다면, 나는 울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나를 용서한 너의 모습을 보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너, 하아.”
정원이는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멈칫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며 나만 들을 수 있는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회사 나갈 거야.”
그 말이 내게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나를 두고 네가 떠난다는 사실이 엄습했다. 네가 겨우 용기를 내서 이어주었던 우리의 관계가 내 실수로 끊겨져 나간다. 숨이 막혔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저절로 입이 열렸다. 내가 추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너를 붙잡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이 내 입을 열었다.
“가지 마.”
정원이가 눈을 치켜떴다. 그러나 곧 눈에 힘이 풀렸다. 정원이는 애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원이는 힘없이,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를 무겁게 내뱉었다.
“너는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네가 억지로 한 일이 모두 성공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모르겠다. 하아. 강휘야.”
“어, 뭐?”
“조금만 고개 좀 숙여봐.”
의미를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정원이는 내 뺨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흐려졌다. 바닥에 나자빠졌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턱을 맞은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정원이의 목소리가 머리위로 들렸다. 목소리가 울려 왱왱거렸지만 이상할 정도로 의미가 귀에 꽂혔다.
“이걸로 너를 용서할게.”
“내가 바보인 만큼 너도 바보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싸우면 네가 먼저 용서해줬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내가 더 양보할게.”
“그러니까 너도 날…….”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나는 악착같이 일어났다. 정원이가 더 이상 입을 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도 날 포기해라. 나는 떠나겠다.
그렇게 말하게 둘 수 없었다. 정원이를 이렇게 떠나보내기 싫었다. 스스로의 의지라면 괜찮았다. 하지만 상황에 떠밀려서 가게 할 수 없었다. 정원이가 이렇게 된 것은 내 행동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책임을 지는 것 역시 나여야 했다.
“내가 책임질게.”
“그래……. 어? 뭐?”
“내가 책임진다고! 니가 원하는 건 다 해줄 테니까!”
“너! 너너너너너너너너, 시발!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
정원이의 손 안에 있던 사표를 찢었다. 정원이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정원이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도 머리가 울렸다. 꼭 해야 할 말, 오직 그것 하나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떠나지만 마. 제발, 부탁이야.”
“너…….”
너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화를 내려다가, 그 분을 식혔다가. 안타까워하다가, 같이 울 것 같았다가, 표정을 잃었다가, 결국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울 것 같은 얼굴로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너의 표정이었고, 그 순간마다 너의 생각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너는 마침내 손수건을 들고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너는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너의 포기가 탄식이 되어 내게 닿았다. 나는 네가 떠나지 않는다는 그 사실만이 기뻐서, 그냥 기뻐서, 아 시발. 좆 됐다. 턱을 쳐맞고 날아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자 그곳은 회사 옥상이었다. 정원이가 나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있었고, 나는 울고 있었고, 그리고 재성선배는 그런 우리를 뻘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작품후기]2부 끝! 마지막 부분을 좀 많이 고쳤는데 그래도 영 마음에 안 드네요. 좀 더 한국 드라마처럼 만들고 싶었는데. (= 떠나지마! 에서 끝내고 싶었는데)
2부 후기는 2부 막간이 끝나고 나서 올리겠습니다. 2부 막간은 아마 2부 후일담과 다정원 side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한 화? 두 화? 써봐야 알겠네용...
참고로 2부 막간이 끝나고 3부 구상을 위해 3일정도?는 쉴 예정입니다... 이 역시 2부 막간이 끝나고 재차 공지 올리겠읍니다...
Hilde님 후원 재차 감사드립니다! :)
부족한 글 좋게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