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64화 (64/138)

64회

chapter2“강지혁은 총무과 주임으로 총무과의 특성상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나, 여기서 집중해서 봐야할 것은 인포팀 관리를 하는 직책이라는 점입니다.”

나는 천천히 구슬 서 말을 실에 꿰어나갔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이미 궁지에 몰린 쥐였다. 괜히 서두르다가 놓칠 필요도 물릴 필요도 없었다.

“물론 인포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부정을 일으켰을 수도 있으나, 현실성이 낮으며, 전 방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저 역시 연관관계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강지혁 역시 안이슬과 마찬가지로 인포팀 내 시프트를 조정하는데 가담했다는 점을 포착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시프트 최종 확인 본에 강지혁의 싸인이 있었으며, 그 외에도 인포팀에 대한 관리 및 추가 조치에 부실한 점이 있었습니다. 강지혁씨. 인포팀 내에 불화가 존재한다는 점, 또한 안이슬이 인포 팀의 자금을 횡령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습니까?”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쥐가 치즈를 물었다. 내가 왜 안이슬에게는 한 번도 발언의 기회를 주지 않았으면서 강지혁 네게는 발언할 기회를 줬겠는가. 그나마도 강지혁은 감정적으로 대응을 해버리고야 말았다. 이성으로 무장해도 이미 범에게 물린 상황이었다. 상황을 판단할 정신도 모자랐던 모양이었다. 나는 미소를 담고 비서실장님께 싸인을 줬다. 그러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변조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임님도 ---씨한테 신경을 많이 썼죠. 근데 눈에 좀 뻔히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일부러 자기한테 밖에 못 기대게 만들어 놓고 ---씨가 자기한테 부탁해야 겨우 들어주는? 누가 봐도 수작질이었어요. 그리고 팀장님도 ---씨에 대해 말할 때 주임님한테 혼나도 괜찮다고 했어요. 어차피 주임님이 지시내린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된다고.]

“아닙니다! 음해입니다!”

“강지혁씨.”

“무언가 착오가 있었을 겁니다. 인포팀 팀장이 자기가 걸릴 수도 있으니 제 이름을 판…….”

“강지혁!”

나는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큰 소리를 냈다. 좌중에 찬 물을 끼얹은 듯이 싸늘한 공기가 흘렀다. 강지혁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내가 큰 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그대로 강지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분명히 처음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할 때 질문이나 이의신청은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받겠다고 설명 드렸습니다. 사장님 앞입니다. 추태를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부러 ‘불화를 인지하였는가, 횡령 사실을 알고 있는가.’를 묶어서 질문하여 부정을 하게 만든다. 곧바로 불화를 인지하였다는 증거를 제시하여 발언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추가적으로 언성을 높여 이후 프레젠테이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한다. 모든 것이 계획된 대로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직원들을 바라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계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해나갔다.

“다음으로 총무과장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인포 데스크에서 인포팀 인원 중 한 명과 강지혁간의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만, 어째서 사건에 대한 보고가 없었는지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 목요일에 정원이는 강지혁의 성희롱을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이 사건은 총무과 선에서 조용히 정리됐다. 물론 이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부 사정을 고려하여 과내에서 서로간의 합의 하 숨기는 것이야 비일비재한 일이었고, 들키더라도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단순한 다툼이었다면.

하지만 이것은 조금 민감한 문제였다. 첫 번째로 부하 직원이 상사에 대한 항명이었으며, 두 번째로 요즘 사회에서도 가장 예민한 문제인 성에 대한 문제였다. 전자가 과내에서 묻을 수 있는 수준의 문제였다면, 후자는 보고를 해야 할 수준의 문제였다. 총무과장은 얼굴을 찡그리다가 마이크가 넘어가자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인포팀 관련 업무를 주임에게 일임해서 보고받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몰랐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역시 예상한 사태였다. 총무과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다만 그것을 알고도 묵과했다는 것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처벌의 수위가 천지차이였다. 이미 총무과장은 책임질 사안이 많았다. 더 이상의 문제를 떠안았다간 본인의 자리조차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강지혁을 제 팔 안에 감싸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칸타타의 마지막 동아줄마저도 잘라낸 것이었다.

“해당 사안은 민감한 사안이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으나, 꼭 보고 되어야 할 사안이었다는 것만을 밝혀두겠습니다. 또한 총무과장님께서 보고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강지혁 선에서 권한을 넘어선 행위를 했다고 판단하겠습니다.”

모든 책임을 안고 홀로 침몰하라. 총무과장은 강지혁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순간 강지혁은 얼이 빠진 게 눈에 띄게 드러났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다음으로 강지혁은 회사 바깥의 공간에서 부조리를 저지른 혐의가 있었습니다. 부하 직원에 대한 사생활 침해를 개인 정보 열람을 통해 저질렀고, 그 정보를 통해 스토킹하였으며, 협박을 하여 사적인 만남을 강제하였습니다. 관련 자료입니다.”

[혹시 자리 불편하세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물론 즐겁죠. 하.하.]

[하하, 영 그렇게 보이지 않네요. 오늘 놀러 나온 거 에요. 긴장 푸세요.]

[네에.]

[---씨가 괜찮다면 그런 거겠죠.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자꾸 주임님이라고 부르시네요. 제 이름 불러달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여기는 회사 밖이잖아요.]

[그, 죄송하지만.]

[나는 ---씨에게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요. 저는 ---씨랑 더 친밀한 관계가 되고 싶어요. 안 되나요?]

[저는 주임님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럼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생각해주세요.]

[저는! ……저에 대한 감정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주임님을 그렇게 생각할 수 없어요.]

[제 감정에 조금이라도 좋은 감정이 있다면 그렇게 잘라내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생각해줘요.]

[아니요. 싫어요.]

[혹시 지금 남자친구 있어요?]

[아직 사귀는 거 아니면 나한테도 기회 좀 줘. 내가 더 잘할 수도 있잖아. 아, 혹시 그런 사이까진 안 갔어?]

[무, 무슨!]

[안 갔구나? ---씨,---씨. 내가 왠지는 모르겠는데 요즘 그 애송이랑 잘 풀리고 있는 걸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아, 혹시 소문 신경 쓰고 있어?]

[그러게,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왜 이리 화를 내고 그래요. 캄다운, 캄다운.]

[아, 그 애송이랑 만나는 거 회사 사람들이 알면 앞길이 창창한 녀석한테 방해될까봐? 지고지순하네.]

[그런 거!]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내가 다 말해버릴지도 모르겠네?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뭔가요.]

[아 별 건 아니고. 그 녀석 대신 나랑 사귀자. 그럼 원만하게 해결 아니야?]

[저는, 저, 저는.]

[아, 너무 그러지마.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아, 그래. ---씨도 ---씨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그래, 충분히 시간 줄게요. 다음 주 금요일까지 정리하고 회의실에서 보고하도록 해요.]

적나라한 대화였다. 누구나 목적을 상기할 수 있는 대화였다. 목소리가 변조되고 부분 부분을 넘겼지만 그 안에서 기분 나쁘게 기어오르는 치근거림과 그에 따른 절망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피부를 훑고 있었다. 대상을 바라봤다. 강지혁은 하얗게 질린 것을 넘어 노랗게 얼굴이 떠있었다. 정원이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내가 하는 행위가 모두 너를 상처 주는 행위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 자리에서 가장 아픈 것은 안이슬도, 강지혁도 아닌 바로 너였다. 시야가 좁아졌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롯이 네 표정만이 궁금했다. 천천히 발을 뗀다. 너에게로 다가가기 위해.

그때였다. 마이크에서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드득

알싸한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강단을 내려가려고 하고 있었다. 입술을 타고 뜨거운 것이 흘렀다.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에 느껴지던 고통은 내가 이를 너무 세게 물어서 입안이 터진 것이었다. 비서 중 한 명이 빠르게 올라와서 구호 상자를 열었다. 나는 팔로 제지하고 손짓했다. 손수건이나 하나 주십시오. 비서는 주저하다가 손수건을 넘겼다.

“끝나고 드리겠습니다.”

“예. 고생하세요.”

비서가 내려가고 나서 나는 내 입술을 타고 흐르는 것을 닦아냈다. 하얀 손수건 위에 빨간 꽃이 피어있었다. 목이 아프다. 생수 뚜껑을 열어 물을 한 모금 마셨더니 터진 부분이 쓰렸다. 일단은 입을 열어 소리를 내봤다.

“아, 아. 가나다라마바사. 아이우에오.”

다행히 발음을 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그러고 나서야 아차 싶어 주위를 돌아봤다. 예상 외의 사태였다. 좌중이 압도되어 있었다. 내 눈짓 하나에 긴장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부터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간에 과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미간을 누르다가 얼굴을 몇 대 쳤다. 그제야 표정이 풀렸다. 좋아. 다시 진행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이크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원활한 진행이 되지 못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나는 손수건에 피를 뱉고는 강단위에 있는 상에 내려놨다. 오늘 벌써 두 번의 실수를 했으며, 두 번 모두 행운의 여신이 내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더 이상 실수를 할 순 없었다. 시선이 집중된 것을 인지하며 다시 천천히 운을 뗐다.

“방금 재생된 자료는 인포팀 인원 한 명을 강지혁이 개인적으로 불러 고백을 하고 협박을 한 내용입니다. 또한 다음 페이지 자료를 보시면 강지혁의 ip로 인포팀 인원에 대한 개인 정보를 확인한 것이 발견됐습니다. 이를 통해 해당 직원의 집 근처까지 간 것은 이 후 조사를 통해 알아볼 예정입니다. 이러한 문제 역시 추후 보안팀과 협력하여 해결하겠습니다.”

이젠 더 이상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강지혁을 노려보며 나는 벼린 화살을 녀석의 심장에 겨눴다.

“이 외에도 인포팀에 대한 보고서 누락 등이 비일비재하게 있었습니다. 관련 자료 역시 다음 페이지부터 세 페이지 간 적혀있습니다.”

“나, 나는!”

강지혁이 입을 열었다. 최후의 순간을 본인도 느꼈음이라. 개의치 않고 입을 연다.

선고한다.

목을 끊는다.

벼린 화살을 쏘아낸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강지혁은 직장 내 성희롱, 직권 남용, 개인 정보 열람 등으로 인해 회사 이미지를 실추하였고, 또한 이후 있을 사태의 선례로 삼기 위해 해고 조치를 하겠으며.”

“나는 하지 않았어!”

“추가적으로 회사 차원에서 변호사를 고용하여 해당 인원과의 협력을 통해 고소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이후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선 강력 조치하겠다는 회사의 의지를 보이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너!”

강지혁이 강단을 뛰어올라왔다. 그리고 내 멱살을 잡았다.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생명이 스러져가는 순간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추한 발악이다. 그 눈동자 속에서 추한 내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너, 너가 뭔데! 너 뭐하는 새끼야! 어! 내가 누군지 알아? 어!”

경호원들과 비서들이 올라와 강지혁을 떼어낸다. 강지혁은 끝까지 내 멱살을 잡다가 결국 떼어졌다. 그 과정에서 내 와이셔츠의 단추가 뜯겨져나갔다. 흐트러진 넥타이가 목을 졸라 거칠게 풀어냈다.

나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강지혁에게 다가갔다. 강지혁을 잡고 있던 인원들이 나를 말렸다. 나는 그들에게 난처하게 웃으며 끝내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이사 아들이다. 뭐. 이 버러지 새끼야.”

강지혁의 발버둥이 멈췄다. 그리고는 나를 멍청하게 바라보더니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아마 본인 안에선 내가 권력을 쥐고 자신을 핍박한 부르주아지라도 되어 있겠지. 비련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삼아도 상관없었다.

차라리 정원이에게 돌릴 원한이 한 톨이라도 남아있다면 그걸 모두 내가 짊어지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악의를 한 스푼 더 녀석에게 올려주기로 했다.

“아. 단추는 선물로 줄게. 꼭 쥐고 있는 거 보니 소중해 보여서 말이야. 거지새끼.”

“이 개새끼가아아아!”

녀석은 발버둥을 쳤지만 다수의 억압엔 이길 수 없었다. 녀석은 곧 끌려 나갔다. 이 후엔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으나 회사와 싸워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개인이길 기원하겠다. 나도 지배자의 횡포는 신물이 날 정도로 싫었으니까.

녀석이 나가고 나서 나는 사장님께 고개를 숙이고 마이크를 넘겼다. 이 자리를 마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장님은 나를 보면서 흡족하다는 듯이 웃으며 어깨를 툭 쳐줬다. 사장님은 강단에 오르자 진지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툭툭 건드려보고는 입을 여셨다.

“회사 내 여러 불미스러운 일은 있었으나, 확실하게 조치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인사과는 프로젝트 훌륭히 수행하느라 고생했습니다. 이상. 오늘 점심시간은 2시간 줄 테니 이후에 각자 업무로 복귀하도록 합시다.”

사장님의 말은 짧았다. 기나긴 프레젠테이션에 지친 직원들을 위한 센스이리라. 하지만 기나긴 시련을 끝내기에는 충분한 말이었다. 사장님이 퇴장하자 직원들도 하나하나 퇴장을 했다. 웅성거림이 커져갔다. 오늘 수많은 소문이 생기고, 그로 인해 기존의 소문은 힘을 잃어갈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인사과와 비서과에서 내게 다가왔다. 인사과에선 내게 여러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비서과에선 내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우선 비서실장님께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는 비서과에도 고개를 숙였다. 인사과 인원들에겐 인사과에 올라가서 천천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알겠다며 인사과로 올라갔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었다.

아직 가장 중요한 일이 끝나지 않은 채였다. 정원이는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인형 같은 낯을 하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원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작품후기]연참을 하려고 했던 분량입니다. 하이라이트가 끊기면 재미없잖아요.

한두루님 후원 감사합니다. :)

29일 00시 07분엔 당연히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 때 다시 뵙도록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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