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62화 (62/138)

62회

chapter2“아니 긴장하지 말라고 좀.”

기껏 좋은 곳에 데려와 줬더니 정원이는 고장 나버린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처음엔 이런 곳은 처음 와본다며 신기해하다가 가격을 묻기에 대답해줬더니 그 때부터 이 꼬라지였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점심 좀 먹으라고 데려왔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울분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정원이는 울상을 지으며 칭얼거렸다.

“그치만.”

“그치만이고 자시고 내가 돈 내지 니가 돈 내냐?”

“그치만.”

“그치만 한 번만 더하면 니 카드로 긁는다.”

“킹치만.”

“후.”

“으악! 미안해! 안할게! 안할 테니까 지갑 뺏어가지마! 항복! 항복!”

정원이는 내가 본인의 지갑을 열어 카드를 들자 기겁하며 백기를 들었다. 나는 정원이를 째려보다가 카드만 내 주머니에 넣고 지갑을 돌려주었다. 정원이는 사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농담이지? 진짜로 긁을 거 아니지?”

“너 하는 거 봐서.”

“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냥 맛있게 쳐 먹어라 제발 좀. 처음부터 말했잖아.”

“네엥.”

농담 따먹기를 해서인지 그나마 어깨의 힘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접시에 놓인 초밥을 가리키며 말했다.

“차례차례 나올 건데, 너 배불러서 못 먹을 수도 있으니까 호불호 갈리는 거는 미리 말해줄게. 와사비 양이 너무 많으면 쉐프한테 요청하면 되고, 기본적으로 그냥 먹어도 되는데…….”

“풉.”

버릇처럼 내가 설명을 시작하자 정원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 때문에 웃은 지 이해가 되지 않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정원이가 입을 막고 웃음을 참다가 진정이 되었는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넌 뭐 먹을 때만 되면 엄마가 되더라. 여기서도 그러니까 그게 웃겨서.”

“아니 맛있는 거 먹는데 제대로 먹으면 좋잖아.”

“누가 그게 나쁘데? 그냥 뭐 좋다고.”

“뭐?”

그러자 정원이가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보는 사람의 기분도 좋아질 만큼 환한 미소였다.

“니가 나 챙겨준다는 게 확 느껴져서 좋다고. 요새 하도 들들 볶이기만 해서 그런가. 생각해보니 옛날에도 좀 맛있는 거 먹겠다 싶을 땐 원래 잔소리 좀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그 때 생각도 나고 좋아서.”

“그러냐.”

“그럼.”

정원이의 분위기가 포근해졌다. 처음에 긴장했던 모습은 어디가고 정원이는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굳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설명한다고 초치는 것도 뻘쭘해서 나도 식사를 시작했다. 나 역시 한 번도 온 적이 없었고, 인터넷을 통해 괜찮아 보이는 곳을 골랐는데 맛이 괜찮았다. 비싼 돈을 낸다고 해서 꼭 음식 역시 맛있으리란 법은 없었기에 기분이 좋았다.

정원이를 바라보니 가끔씩 머리를 부여잡는 것이 와사비에는 옛날보다 적응을 하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바로 셰프에게 말했다.

“이쪽에는 와사비 양 좀 줄여서 주세요.”

“네!”

셰프는 기세 좋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음 초밥을 입에 넣는데 정원이가 내 팔을 쿡쿡 찔렀다. 고개를 돌리니 정원이가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런 점이 엄마 같다고.”

“……칭찬이지?”

“방금 좋다고 안 하드나?”

“왜 갑자기 사투리야?”

“엄마 옆에 있음 원래 사투리 나와. 맞제, 엄마야?”

“아이고야. 다 큰 딸이 생긴네.”

내가 어색하게 사투리를 따라하자 정원이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말투를 몇 번이고 고쳐주려 했다. 어투가 틀렸네, 거기선 이렇게 소리를 내야하네, 그런 말을 하다가 결국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큰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식사였다고 생각했다. 네가 기분 좋게 웃고 있었으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회사에 돌아왔다. 오마카세집에서 후식까지 완벽하게 나왔기도 했고, 가게 특성상 식사 시간 자체가 길었기에 다른 곳에 들릴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가려는데 정원이가 내 팔을 붙잡았다.

“왜?”

“잠깐만 얘기 좀 해.”

“뭔 얘기.”

정원이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주저하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뭐 꾸미고 있지?”

딱히 이젠 말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애당초 오늘 내가 나서기 시작한 것도 정원이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어제 정원이가 안고 있던 감정을 토로했을 때, 나는 모든 계획을 설명할 의향이 생겼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얘기가 좀 길어질 거라서 이따 저녁에 할래? 오늘부터 집에 태워다 줄게.”

“그래?”

정원이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며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그럼 일단 한 가지만 답해줘.”

“어.”

“너 지금 꾸미는 거 설마 나 때문이야?”

정원이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나는 그런 정원이를 마찬가지로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말했다.

“뭔 소릴 하나 했더니. 이번에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마쳤겠다, 아버지 자리 물려받을 준비하는 거야.”

“정말 나 때문 아닌 거 맞아?”

“야. 너 저번에도 그러더니 그 정도면 병이야, 병. 다 나를 위해 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정원이는 어째서인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행색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정원이를 머뭇거리게 하는지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오늘 저녁이 되면 계획의 일말을 전달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원이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나를 마주봤다. 그새 무엇인가를 다짐했는지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그래. 알았어. 그럼 하나만 약속해.”

“뭐?”

“이제 회사에서 나 아는 척 하지 마.”

“왜?”

“너 앞으로 해야 할 일 생각하면 나 모른 척 하는 게 맞아. 너도 알다시피 나한테 그, 이상한 소문 많이 붙었잖아. 내가 어떻게든 말해 볼 테니까 앞으로 그냥 모른 척 해.”

정원이는 왼 팔로 오른 팔을 안으며 고개를 숙였다. 눈동자 안엔 불안함이 서려있었다. 제 팔을 잡고 있는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센 척을 할 거면 먼저 자신이라도 확실하게 속였어야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럼 그 총무과 새끼는 어쩔 거고?”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뭘?”

나는 정원이에게 허리를 굽혀 고개를 들이밀고 물었다. 정원이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정원이는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바라보다가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도 답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나는 다시 허리를 떼서 멀어지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어투로 말을 뱉었다.

“그리고 니가 말해봐야 누가 들어준다고. 말마따나 너 회사에서 같이 말할 사람도 없잖아.”

“……그렇지.”

“아니, 그렇게 비 맞은 멍멍이 같은 얼굴 하지 말고. 너 놀리려고 한 말 아니니까.”

정원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 전에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나도 다 생각이 있고, 너 알잖아. 나 다른 친구들도 힘들 때 가만히 못 두는 거. 니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너 하나 돕는다고 내가 아버지 자리 물려받는데 걸림돌이 되겠냐.”

나는 정원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헝클었다는 표현에 더 가까운 행위였다. 정원이는 그런 내 손을 잡고 떨쳐내려고 했다.

“하지 마! 머리 망가져!”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야.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이 형님은 다 계획이 있다.”

“……정말 나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지?”

“씁! 끈질기네, 진짜! 그래, 알았다, 알았어. 너 때문에 아니야. 나르시스트 말기 환자야. 됐냐? 이제?”

“그래.”

정원이는 입으로는 긍정했으나 완벽하게 납득하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으나 정원이는 재차 수긍했다.

“그래, 알았어.”

그리고는 정원이는 차문을 열고 나갔다. 나도 차에서 내려 정원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서 올라갔다. 정원이는 1층에서 내렸다. 나는 5층에서 내려야 했기에 정원이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하여간에 오늘부터 태워 줄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 못 다한 얘기도 해야지.”

“그래, 알았어.”

정원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비서실 층에 도착했다. 비서실에 도착하자 비서실장님이 계셨다. 왠지 기다리게 한 것 같아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미리 보고도 하셨고, 오늘은 한강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일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역시나 몇 번을 들어도 존대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점이 나를 더욱 머쓱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업무로 신경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usb를 넘기며 말했다.

“준비한 자료입니다. 사장님께는 보고 드렸습니다. 비서실장님께서는 자료의 신빙성을 더 높여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것을 하면 되겠습니까?”

“자금 흐름, 음, 정확히는 인포팀장이 사용한 금액에 대해서 조사해주시고, 총무과 주임이 휴가 관리한 기록만 좀 찾아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사실 지난 주말에 뒤져보며 거의 확신한 자료였으나 신빙성을 더욱 높여서 나쁠 것은 없었다. 비서실장님께서는 구체적인 근거를 더 확보해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부탁을 하게 된 시점에서 더 이상 내가 준비할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그리고 더 준비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조사 끝나면 관련 자료 정리해서 제게 넘기시면 됩니다. 전 이만 인사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비서실장님께선 마지막까지 나를 정중하게 보내주셨다. 머쓱함이 흘러 넘쳐 메슥거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평생을 익숙해지지 못할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가 그것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인사과로 도착하자마자 인사과장님께서 나를 개인적으로 부르셨다. 인사과 인원들에게 채 인사를 마치기도 전이었다. 인사과장님께 다가가자 인사과장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잠시 담배 좀 피고오자고.”

“예, 알겠습니다.”

얘기 좀 하자는 말이었다. 인사과장님께서는 흡연실로 들어가 담배를 피우고 나오셨다. 표면적 이유였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목적이었다. 인사과장님은 흡연실에 들어가서 꽤나 장고를 하는 듯 했다, 평소와는 달리 흡연실에서 나오는 시간이 길었다. 그렇게까지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기다린다고 인지할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 인사과장님께서 나오자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 대만 피운 건 아니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과장님께서 말없이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갔다. 나 역시 말없이 따라갔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쯤에 인사과장님께서 뒤를 도셨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 할지 이미 알지?”

“짐작 가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만, 혹시 프로젝트 끝나고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겁니까?”

“보고를 좀 하지 그랬나.”

“죄송합니다.”

“뭐, 사장님께서 시키신 일이니 어쩔 수 없겠지. 그 뿐만은 아니기도 하고.”

인사과장님께서는 한 템포 말을 멈추셨다. 말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으셨다.

“강휘 너랑 관련해서 많은 얘기가 돌고 있는 것도 알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그 모든 의미에 대해서 나는 수긍했다. 무슨 소문이 돌고 있을지 알 법 했다.

“분명히 내 조언에 대해서 납득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과장님께서 해주신 충고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한 결과였습니다.”

“그렇군. 혹시 돌고 있는 소문이 사실인가?”

“대부분은 사실일겁니다.”

“골치 아프군.”

인사과장님께서 인상을 쓰셨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고 내 어깨를 툭 치고 말을 이으셨다.

“그래, 네가 선택한 것이니 상관없겠지. 대부분이 사실이라면 딱히 걱정도 없을 것이고.”

“저라고 해도 걱정은 됩니다만.”

“농담도.”

인사과장님께서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것이 조금 내 마음속에서 무게를 더했다. 아버지께 내가 당신의 아들임을 은근히 퍼트려달라고 부탁을 드린 것이 일주일 전이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뜨리기에 좋은 시간이었고, 충분히 회사엔 내 의도가 물밑으로 퍼져있었다. 인사과장님께서 알고 계신 것을 보니 한 주 정도 지나면 모두가 알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적기는 다다음주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결전의 시간은 이미 내가 당긴 상태였다. 사실 다음주도 나쁘진 않았다.

퇴근시간이 되서 데스크에 가자 정원이가 보였다. 마지막 퇴근 시간까지 정원이가 대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손짓을 하자 정원이는 일부러 나를 무시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기에 나도 그냥 가만히 서서 퇴근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정원이가 잠시 사라졌다가 옷을 갈아입고 곁으로 왔다. 내가 아는 체를 했더니 아무 말 없이 내 허리를 찌르며 나를 엘리베이터로 밀었다. 그렇게 주차장에 도착하고 차에 다소 서둘러서 타자 그제야 정원이는 입을 열었다.

“진짜 데려다 주는 구나.”

“그럼 진짜지 가짜겠냐?”

정원이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고 창밖을 바라봤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운전을 하다 보니 먼저 말을 걸기도 애매하여 말없이 운전을 하다가 긴 신호가 걸리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의식하며 최대한 가벼운 어투로 운을 띄웠다.

“어, 그러고 보니 내가 뭘 하고 다니는 지 궁금하다고 했지? 어디서부터 말해야 되나.”

“됐어, 강휘 니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래? 뭐 싫어도 월요일 되면 알게 될 테니까.”

“음, 그래.”

정원이는 창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이 많아 생각이 내게로까지 흘러오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지금 나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점심때 내 대답에 문제가 있었나 생각이 들어, 조금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를 헝크러트린게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생각해보니 정원이가 마법에 걸린 지 이틀째였다. 그새 갈굼을 당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고, 감정이 들쭉날쭉 할 법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정원이를 집에 얌전히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원이는 집에 돌아가서야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이상하게 돌아선 그 모습이 묘하게 눈에 밟혔다. 하지만 확실하지도 않은 태도를 꼬집기엔 정원이도 너무 지쳤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 너무 바빴다.

주말동안 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주장을 떨지 않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 긴장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항상 주말엔 정원이를 보곤 했으나, 인사과에서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기에 이번 주 주말은 보지 말자고 하였다. 정원이도 소식을 들어서인지 열심히 하라는 카톡을 보내왔다. 카톡에서조차 말을 씹진 않는구나 싶어서 조금 안심이 됐다.

일요일이 되자 비서실장님께서 ‘근거’를 보내주셨다. 달리기 경주를 하다가 날개가 달린 기분이었다. 물론 자신감이야 있었고, 사장님께서도 납득한 시점에서 내 주장은 신빙성을 높인 채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느껴지던 불안감이 스푼으로 세 큰 술 정도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며, 그 주사위는 모두 6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해선 안 된다는 중압감과 압박감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6이 그려져 있는 주사위를 던졌는데 갑자기 기차가 지나가서 그 주사위를 부서트리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걱정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 출근해서 인사과에 도착하자 이미 모두가 출근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세미나가 인사과 주도인 데다가, 그 자리를 준비해야 하는 것 역시 일부는 인사과 업무였기에 당연히 바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준비를 했다. 세미나는 성공적이었다. 우리 과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것은 재성선배와 팀장님이셨고, 프로젝트의 중추였던 둘은 직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을 마쳤다. 반응 역시 나쁘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두 분이 내려오시고 나서 나는 그 자리에 올라섰다. 직원들의 의아한 시선이 내게 박혔다. 프로젝트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장님께서는 제지하지 않고 있으셨다. 그렇기에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이번 프로젝트를 참여했었던 인사과의 한강휘라고 합니다. 오늘은 썩 좋지 않은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제부턴 내가 준비한 것을 뱉어낼 시간이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놓을 시간이었다.

[작품후기]자꾸 늘어지는 것 같아서 오늘은 그냥 장면 전까지 있을 법한 얘기들을 빠르게 넘겼습니다. 다음 화부터가 결론 부분이겠네요. 사건들을 몰아 넣다보니 글이 다소 딱딱해져서 아쉽네요.

Hilde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  빨리 엔딩내고 보러가야 하는데...

그리고 물거나해쳐요 님 매 화 정성스러운 코멘트에 서평까지 남겨주시고, 과분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종일 과연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고민이 생겼을 정도로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문득 제 글이 이 정도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해봤습니다. 결론은 나온 것이 없지만 최대한 성원에 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글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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