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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60화 (60/138)

60회

chapter2한참을 달래고 나서야 정원이는 진정했다. 어느 정도로 진정했는가하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우리에게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둘 다 눈치 챌 정도로 진정했다. 나 역시도 정원이를 달래는데 사력을 다하느라 눈치 채지 못한 것이었다.

원래도 우느라 얼굴이 붉어졌던 정원이는 가을 노을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봤다. 이 자리를 피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이는 울음을 멎고 딸꾹질을 하면서도 용케 속삭였다.

“빨리 히끅, 나가자.”

“동감.”

“내, 얼굴, 히끅, 어떠냐?”

“완전 엉망인데.”

정원이는 내 팔을 안고 얼굴을 내 품속으로 숨겼다. 방금 전까지도 정원이를 안고 있었지만, 그 때와 달리 나 역시 좀 더 이성적이 되어있었다. 즉, 이런 짓을 하는 것이 굉장히 부끄러웠다. 나는 정원이를 조금씩 밀어내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야! 뭐하는데?”

“아 제발. 히끅. 남 보기 쪽팔리잖아! 히끅!”

“이건 괜찮고?”

“나는 흐끅 안 볼란다.”

“아오, 시발.”

사람들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길을 혼자서 걸어가란 소리였다. 나는 짜증을 내려다가 말았다. 일단은 벨을 눌러 점원을 불렀다. 이 순간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타인의 안주거리였다. 그 사실이 정원이가 내게 이 상황을 떠넘기려는 괘씸함보다 더 불쾌했다. 점원이 오자 나는 카드를 넘기며 말했다.

“계산 이 카드로 다 하시고 카드 가져와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영수증은 필요 없으니까 조금만 서둘러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점원은 내가 무슨 의도로 말을 하는지 알아챘는지 종종걸음으로 서둘러서 움직였다. 곧 깔려있던 노래가 조금 더 커졌다. 나는 눈치 빠른 점원에게 작은 고마움을 느꼈다. 정원이는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 아직도 딸국질이 잦아들지 않은 상태였다.

“좋아, 난 준비됐어. 히끅. 준비 됐어? 히끅.”

“너나 잘하세요. 에휴 시발.”

방금 전까지 날 껄끄러워하며 눈치를 보던 정원이는 어디로 가고, 어느새 뻔뻔한 12년 지기 친구가 돌아와서 나를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점원에게 카드를 받자마자 나는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조금 숙였다가 팔에 꼭 붙은 정원이를 데리고 술집을 뛰쳐나왔다. 시선이 우리를 훑으며 쫓고 있었다.

적어도 몇 달간은 이곳은 못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정 붙인 곳이었는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우리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술집에서 멀어졌다. 정원이는 쫓아오기가 힘들었을 텐데도 용케 내 손을 잡고 쫓아왔다. 오히려 내가 걸음을 늦추면 내 허리를 찰싹 때릴 정도였다. 술집이 시야에서 사라질 쯤 되자 우리는 숨을 돌렸다.

“하아, 하아. 후우. 흐끅! 아, 쪽팔려!”

“하아. 쪽팔린 줄은 아냐?”

내 말에 정원이는 거친 숨만 쌕쌕거리며 나를 노려봤다. 할 말은 많지만 굳이 여기서 하진 않겠다.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정원이의 눈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눈싸움을 했다. 정원이는 심통이 났는지 잡고 있던 내 손을 세게 떨쳐냈다. 그리고는 휘청거렸다.

“흐억!”

“야!”

내가 서둘러서 잡아주자 정원이가 균형을 잃고 내게 폭 안겼다. 체중이 실릴 정도로 안겨오는 순간 날 리가 없는 화사한 프레지아 향이 났다. 왜 항상 이 녀석에게선 좋은 향기가 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애써 평정심을 찾으려고 얼굴을 굳혔다. 술을 마신 덕분에 얼굴이 빨개진 것으로는 들키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일부러 감정을 숨기기 위해 정원이를 혼내듯이 말했다.

“위험하잖아.”

“앗, 네.”

정원이는 얼빠진 얼굴로 답지 않게 존댓말을 했다. 12년 동안 친하게 지내면서도 처음 본 반응이었다. 생소한 반응에 나도 어찌 대응을 해야 할지 재고 있는 와중에 정원이가 멍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딸꾹질 멈췄다.”

그러더니 정원이는 자리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정원이의 허리를 잡고 받쳐줬다. 정원이는 버텨보려고 힘을 내다가 결국 포기하고 내게 기댔다.

“어, 강휘야. 미안한데.”

“어.”

“나 다리 힘 풀려서 더 이상은 못 걷겠다야.”

“뭠마?”

정원이가 울상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계속 보던 그 표정이었다. 이해할만 했다. 오히려 지금까지 빠르게 걸어온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정원이는 이미 많이 취했고, 우느라고 진을 뺀 상태였다. 방금 전까진 필사적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한숨을 내쉬고 정원이를 부축해서 높이가 조금 있는 시멘트 턱에 앉혀 놨다. 옷이 좀 더러워지겠지만 계속 정원이를 안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원이는 그 곳에 앉아서 투덜거렸다.

“아니 힘이 안 드는 걸 나보고 어쩌라구.”

“아니, 뭐라는 거 아니야. 못 걷겠냐? 업어줄까?”

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자 정원이는 주저하다가 말했다.

“나, 아까도 말했지만 그 날이라서……. 그, 업히기는, 좀.”

“아, 미안.”

확실하게 내 배려가 부족한 부분이었다. 어떻게 이 녀석을 옮겨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나는 정원이쪽으로 몸을 향했다. 왠지 정원이를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어 고개를 돌리고 간신히 말했다.

“어, 일단은 택시 부를 테니까, 그 때까지도 못 걷겠으면 그, 뭐시냐, 안길래?”

“뭐?”

나는 정원이의 대답도 듣지 않고 일단 핸드폰을 켜서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정원이는 모기가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

나는 일부러 정원이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 택시가 왔다. 나는 정원이를 공주님 안듯이 안아서 뒷좌석에 앉히고는 앞에 앉았다. 택시기사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난처한 얼굴만 했다. 나도 정원이도 오늘 너무 많은 감정을 소모한 후였다.

택시가 정원이네 집으로 도착했다. 뒷좌석을 보니 정원이가 어느새 자고 있었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잠시 대기해달라고 하고는 뒷문을 열어 정원이를 안아 올렸다.

나에게 무게를 모두 실은 묵직함이 현실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을 안고 걷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다. 요즘 운동을 소홀히 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하자.

벨이 울리자 정하가 나왔다. 정하는 인사를 하려다 자고 있는 정원이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정원이를 침대에 눕히고 한숨을 돌리자 정하가 손짓을 했다. 밖으로 나오라는 소리였다. 나 역시 택시를 대기시켜놔서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기에 바로 밖으로 나왔다. 정하는 문을 닫고 기댔다. 그리고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언니 울었어?”

“어.”

“그래? 다행이네.”

“뭐?”

정하의 반응에 살짝 놀래자 정하는 새삼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요즘 힘들어 보이더라고. 오빠한테 털어놨으면 차라리 다행이지 뭐.”

“음.”

나는 신음소리를 흘렸다. 정원이는 정하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모양이었다. 손윗사람으로써 동생에게는 차마 털어놓을 수 없었던 걸까.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정하는 그런 나를 보며 숨을 내뱉듯이 짧게 웃었다. 그러더니 바깥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대로 내 등을 밀었다.

“택시 대기시켜놓은 지 몰랐네. 오늘은 오빠도 피곤할 테니까, 빨리 가 봐. 어서.”

“어, 그래.”

나는 정하의 배웅을 받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본 정하의 얼굴은 쓴웃음이 걸려있었다. 누구를 향한 웃음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을 대상으로 할 수도 나를 대상으로 할 수도 그 누구도 대상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걸 판별해내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이었고, 또한 미안하지만 오늘의 나는 더 이상 감정놀음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택시에 타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다시 정원이가 오늘 털어놓았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술집에서 빠져나오면서 서로 모른 척했지만 결국 우리 모두 그 순간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 있었던 해프닝으로 인해 잠시 외면할 수 있었지만, 나도 정원이도 한숨을 돌리면 다시 그 때로 끌려가고 말 것이었다. 정원이에겐 오늘이 너무도 길고 길었다. 많은 생각과 여러 감정이 내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아버지를 마주했다. 아버지께서는 물을 마시다가 고개를 돌리고 나를 보셨다.

“아버지. 내일 사장님 좀 봬야겠습니다.”

“오냐.”

“그리고 계획도 좀 당기겠습니다.”

“그래라.”

아버지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 역시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오롯이 나의 의지였고 아버지는 그것을 존중하셨다. 그게 다였다. 아버지께서는 구체적인 것을 물어보지 않으셨다. 나도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강한 일체감이 들었다.

방으로 돌아와 날뛰는 감정과 생각을 가라 앉혔다.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이성적인 사고를 불러일으켰다. 감정은 다정원 그 자체를 향했으되 이성은 다정원 그 자체를 위해 사고했다.

***

대한민국 사회에 속한 사람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통해 관료제라는 관습에 길들여진다. 대부분의 남성은 더욱 관료제에 익숙하다. 군대라는 관료제의 괴물에 강제로 속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엔 찬성과 반대를 위시한 여러 관점의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중요한건 이 주장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내가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을 껄끄러워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장님은 아침부터 에너지가 넘쳤다. 막 입사할 때는 어렴풋하게 느꼈던 지위라는 벽이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압박감에 눌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다면 오늘 자리를 마련해준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야 말 것이었다. 내 계획 역시 물거품이 되겠지.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다. 정원이를 떠올린다. 다짐을 한다. 나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의 가면을 쓴다. 우선 맨 처음은 인사. 고개를 숙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좋은 아침이군. 그래, 내게 할 말이 있다고?”

사장님은 저번과는 달리 쓸데없는 허례허식을 지우고 바로 본론을 찌르고 들어왔다. 나 역시 이 흐름이 차라리 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예. 저번에 얼마든지 말하라던 도움을 받으러 왔습니다.”

“뭐? 하하.”

사장님은 눈이 동그래져서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러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말을 이으셨다.

“그래, 들어보지. 무슨 도움을 원하나?”

“말하기 전에 이 자료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사장님은 내가 넘긴 자료를 훑어보셨다. 사장님은 눈으로 빠르게 문서를 훑어나갔다. 처음에 느리게 넘어가던 종이가 점점 가속도를 붙이며 빠르게 넘어갔다. 겨우 두 세 호흡. 어느새 내가 준비한 자료를 모두 훑어보신 사장님께선 어느새 미소를 지우고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셨다. 위압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내게 물으셨다.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별 거 아닙니다. 단지 회사에 필요 없는 잉여자원이 존재하고, 전 이번 기회에 그걸 잘라내고 싶습니다.”

“환부를 도려내자. 그래, 그럴 수 있지.”

사장님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셨다. 노려보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손익을 계산하는 눈이었다. 숨이 옥죄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보고 뭘 도와달라는 거지? 뭐 이대로 다 해고시키면 되나? 이유가 좀 모자라긴 하군. 과한 처분이야. 귀찮은 일이고.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나는 침을 조금 삼켰다. 억지로 말을 끄집어낸다.

“이번 인사과 프로젝트를 전 직원에게 설명하기 위한 세미나가 있는 걸로 압니다.”

“그래, 대규모의 개편이니 전 인원을 모으기로 했지,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제게 시간을 조금만 주시기 바랍니다.”

“허어.”

사장님께선 짧게 탄식을 했다가 의문을 표하셨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제가 사장님께 보고 드린 건 어디까지나 손익의 영역입니다. 그 자리에선 손이 없는 이익만 창출해내겠습니다. 확실한 근거를 통해서.”

“허.”

사장님께서 헛웃음을 내뱉으셨다. 그리고는 나를 다시 마주보며 입을 여셨다.

“좋아. 자리를 마련해주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재밌군. 좋아. 확실한 무기는 있고?”

“다음 자료도 읽어보시겠습니까?”

사장님께서 다시 미소를 띠었다. 동시에 압박감이 사라졌다. 어느새 분위기가 전환되어 있었다.

“아, 정말이지. 자네 아들도 자네를 꼭 닮았구만. 아주 성질이 더러워!”

“무슨 소릴 하는 건가. 내 아들이 날 닮긴 했지만 성질이 더러운 게 아니라 확실한 거겠지.”

“하이고 나 참. 알았네, 알았어. 자네가 다 확인했겠지? 좋아. 진행시켜.”

나는 고개를 숙였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발가락 끝에 있는 자신감까지 끌어 모아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결전의 날은 월요일. 활대는 기름을 충분히 먹었고, 시위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나는 언제든지 활시위를 당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다가올 그 순간을 기다리며.

[작품후기]이상하게 늘어졌네요. 오늘 아마 해결 씬까지 가지 싶었는데. 얘들이 이상하게 주위 눈치를 신경 써서 지들끼리 엎어지고 놀고 음...

아무튼 오늘도 제 글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날려주시는 독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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