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55화 (55/138)

55회

chapter2오늘은 정시에 퇴근을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댔다. 실제로 오늘 하루 종일 숙취에 시달린 것도 사실이었다. 민경아 팀장님이나 재성선배가 아니더라도 팀원들 역시 내 상태에 대해 다들 눈치 채고 있었던 지라 내가 퇴근하는 것을 잡는 사람은 없었다.

퇴근을 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사실 숙취는 퇴근하기도 전에 깬 상태였다. 일을 하고자 하면 더 할 수도 있었으며, 오히려 오늘 업무진행 속도가 디뎠기에 남은 일을 처리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요령이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나의 문제를 대응할 때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작 정원이에 대한 감정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영부영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이번에도 결국은 정원이에 대한 문제였다. 당장 내일부터 회사 내에서 정원이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 태도를 정해야 했다. 이 역시 어영부영 정하지 못하고 있는 정원이에 대한 태도를 정하면 모든 것이 해결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하지 못했다. 정원이에게서 카톡이 온 것은 그때였다.

[다정원 : 야]

[나 : 왜]

분명히 말할 것이 있어 카톡을 쳤을 텐데 그러곤 답이 없었다. 내 메시지 옆에 있는 숫자 1이 사라진 것을 보니 네가 확인한 것은 분명했다. 잠깐 사이의 침묵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무게를 버틸 수 없어 통화버튼에 손을 올리려고 할 때 까똑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정원 : 오늘 대체 뭔데]

[다정원 : 회사에서 모른 척 하기로 안 했냐?]

정원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약속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닌 너와 내가 한 것이었으니까. 다만 그 질문에 바로 답할 수는 없었다. 이번엔 나로 인해 침묵이 이어졌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질문의 본질에서 도망치는 행위였다.

[나 : 안 그래도 오늘 과장님한테 한 소리 들었음.]

[다정원 : 뭐 다른 과랑 벌써 싸웠다고?]

나는 아니하고 하려다가 부정하는 순간 원래의 이유를 말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원이도 걱정했던 네 소문으로 인해 내게 피해가 올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그 사실을 네게 전해야했다. 나는 부정의 메시지를 지우고 그 자리에 긍정을 눌러 담았다.

[나 : ㅇㅇ]

[다정원 : 어이구 이 ㅂㅅ]

[다정원 : 그럴 줄 알았다. 벌써 나대니 그렇지.]

손가락이 허공을 맴돌았다. 몇 번의 메세지를 적었다가 다시 지웠다. 글자가, 단어가, 문장이 몇 번이고 만들어지고 다시 지워졌다. 고민을 그렇게 해서 만든 문장이 차라리 최선이라면 좋을 텐데. 오히려 해선 안 될 걸 알면서도 정원이에게 선택의 여지를 넘겨버리고야 말았다. 최악의 선택이었다.

[나 :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다정원 : 뭘 어떻게 생각해?]

[나 : 회사에서 아는 척 하는 게 나아보이냐? 아님 ㄴㄴ?]

[다정원 : 애시당초 모른 척 하기로 하지 않았냐? 과장님한테 혼났다며. 아는 척 하지 마 그럼.]

안심하는 내가 있다. 안심하는 나를 보며 혐오하는 내가 있다.

[나 : 그럼 넌 어쩌고.]

[다정원 : 내 문제지, 니 문제냐.]

내 안에서 양심이 나를 찌른다. 어찌 너만의 문제냐고,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모든 진상을 밝히라고 촉구하고 있다. 정원이에게까지 정보를 숨기면서, 그렇게 선택에 대한 책임도 떠넘길 것이냐고 묻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정작 해야 할 말은 못하고서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날리고 있었다.

[나 : 그 새끼 달라붙는 거 안 귀찮?]

[다정원 : 귀찮긴 한데 어쩌겠음. 어차피 같이 먹을 사람도 없고.]

[나 : 니네 인포 쪽 선배들은]

[다정원 : 사이 안 좋음]

[나 : 왜?]

달리던 메세지가 잠시 멈춘다. 한 호흡, 딱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메세지가 달린다.

[다정원 : 그걸 내가 어케 암;]

[나 : 무튼 ㅇㅇ. 일단 알겠음]

[다정원 : 담부턴 실수하지 말고 쌩까라~.]

[나 : ㅇㅇ]

마지막 메세지를 날리고 나는 한참을 핸드폰을 바라봤다. 정원이는 그 이후로 답이 없었다.

ㅇㅇ. 대화를 끝내는 말이었다. 당연히 그 이후의 대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네가 이 자리에 없어서, 우리가 나눈 대화가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대화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적어도 지금의 내 표정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까.

결국 모든 게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은 형태로 매듭지어져 있었다. 선택도 너의 몫, 책임도 너의 몫. 나는 겁쟁이로도 모자라 비겁하기까지 한 쓰레기로소이다.

오직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었다. 갈 곳 잃은 자기혐오가 들끓었다. 양심이라는 이름의 창이 나를 찔렀다. 나는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던졌다. 두 눈을 감고 눈두덩이 위에 오른 팔을 올렸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침이라기 보단 새벽이었다. 불도 켜져 있었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였다. 일어나서 옷을 벗으니 옷이 조금 구겨져 있었다. 어차피 정장을 꼭 입고 다녀야 하는 직장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가 입고 다녔을 뿐이었지. 물론 여벌의 정장은 있었고 그것을 입고 가면 되는 부분이었다. 다만 세탁소에 맡기긴 해야 하니 챙겨가긴 해야겠지.

핸드폰을 바라보니 다시 자기에도, 일어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불을 끄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알람은 맞춰놨으니 잠이 온다면 오는 대로, 오지 않는다면 오지 않는 대로 상관없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다.

한숨 자서 그런지 몸은 그럭저럭 회복된 상태였다. 그와는 반대로 기분은 최악이었다. 자기혐오와 후회가 뒤섞이고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잠을 청해보지만 무의미했다. 생각은 고민을 낳고 고민은 자학을 고취시키고 있었다.

정원이가 총무과 녀석과 점심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떠올렸다. 인포데스크에서 그 녀석과 시시덕거리는 장면을 떠올렸다. 둘이서 식사를 가서 그 녀석이 정원이에게 수작을 부리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결국 정원이가 그 녀석과 나란히 걷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정원이에겐 아직 남성으로써의 자아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정원이가 생리적으로 남성과 사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착각이라면? 정원이가 그 녀석이 상사이기에 거절하지 못하여 점점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면? 그래서 혹시라도 감정이 생기게 된다면?

나는 내 선택을 점점 후회하고 있었다. 정원이만이 지는 책임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을 정원이에게 이양한 순간, 선택을 회피한 것조차 내가 져야할 책임이 있었던 것이었다.

동시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 의아함을 품었다. 정원이가 누구와 사귄다고 하는 게 과연 문제일까? 정원이가 그 녀석과 사귄다는 것은 정원이가 여성으로써의 자아를 받아들이는 것과도 같았다. 겨우 그 정도로 정원이가 정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선택일 경우 내가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정원이의 선택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그것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정원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될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괴로워 할 일은 적어지리라. 정원이가 친한 친구라는 것은 그 녀석과 정원이가 사귀고 나서도 비슷하리라.

아니, 그렇지 않았다. 커플이 된 녀석들은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소원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래, 내가 거부감을 가지는 것도 내 둘도 없는 친구인 정원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단지 그 뿐이리라.

굿모닝, 따따따 따따

알람을 껐다. 동시에 내 안에서 피어오르던 개 같은 생각들도 강제로 셧다운시켰다. 눈을 부릅뜨고 출근준비를 했다. 어제와는 달리 차를 몰기에 한결 여유가 있었다. 운전을 하며 오는 길은 이상하리만치 신호가 잘 맞아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분은 최악이었다.

***

정정하겠다. 최악은 따로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그 사실을 깨달았다. 총무과 그 새끼는 보란 듯이 정원이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원이는 눈에 띄게 불편해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그 자리에 동석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그 쪽을 힐끔거리며 바라봤지만 그 이상의 행동을 할 순 없었다. 과장님의 충고와, 정원이의 실수하지 말라는 메세지가 내 머리를 뱅뱅 돌고 있었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야, 야, 야!”

“예? 예!”

“정신 어디다 두는 거야?”

“아, 죄송합니다.”

내가 사과를 하자 재성선배가 당황한 기색으로 손사래를 했다.

“아니, 뭐 점심시간이고 밥 먹고 있으니까 별 상관은 없는데. 영 정신을 못 차리는 거 같아서.”

“아, 예. 좀, 생각할 게 있었습니다.”

“뭐, 아 어제 그 일?”

재성선배가 테이블을 힐끔거리곤 말했다.

“뭐 어때. 나중에 기회나면 한방 더 먹여.”

“아, 예.”

재성선배는 내가 총무과 녀석에게 지랄하지 못하는 상황을 불만스러워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때 한 쪽에서 이상한 대화가 들려왔다.

“저거 봐, 신입이 벌써부터 줄 대고 있다니까?”

“그러니까 우릴 그렇게 무시하는 거겠지?”

“전번에 더 열심히 해보자고 그러던데 웃겨 진짜.”

“뭐 이미 주임님 자기 거라고 생각할 텐데.”

작은 소리였지만 충분히 주위에 들릴만한 소리였다. 조심히 들키지 않게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니 인포팀의 두 명이 자기네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정원이가 밥을 항상 혼자 먹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교대라는 이유 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저기에 끼어들어서 드잡이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 늦은 경향은 있었지만, 나는 정원이를 모른 체 해야 했으니까. 저런 말이 나올 것 역시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 그래서 총무과 녀석에게 언질도 줬던 것이었지만, 그게 오히려 녀석을 안달 나게 만들어서 이런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분에 겨운 관심이라는 것을 좀 알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쟤 혼자 열심히 하는 척은 다해.”

“그러면서 왜 우리말은 무시하는지 모르겠어.”

“언니, 쟤 저번에 혼날 때 봤어? 머리 숙이고 불쌍한 척은 다 하더라.”

“눈치가 없다니까 눈치가. 그런 여우 짓 하는 걸 누가 몰라?”

나는 조용히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귀를 기울였다. 오고가는 대화가 참으로 가관이었다. 정원이가 열심히 한다던 그 각오가 오히려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모양이었다. 자기들이 떠미는 동안 어떻게든 날개 짓을 하려한 참새는 무참히도 노력을 배신당하고 있었다. 인내와 노력이 꼭 최상의 결과를 낳지는 못하는 법이었다. 좋지 않은 방향으로 예상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너 진짜 괜찮은 거 맞냐?”

“아, 예.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없고. 너 표정 진짜 누구 하나 죽일 것 같던데. 음. 야. 너 저 애송이 만날 때 꼭 나 불러라.”

“예? 아, 예.”

재성선배가 내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재성선배의 얼굴에 살짝 긴장이 남아있어 나는 다시 미소를 입에 걸었다. 재성선배는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날이 금요일까지 반복됐다. 오히려 정원이에게서 한 발 떨어져 있는 동안 주위에 신경을 쓰고 있노라면 정원이에 대한 악의 어린 대화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진 않을 것이었으나, 총무과 주임이라는 놈이 정원이에게 치근거릴수록 소문 역시 비례해서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정원이에 대한 소문은 이미 추잡하고 원색적인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과장님께서 소문에서 멀어지도록 정원이에게서 멀어지라고 한 혜안이 근시일 만에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그런 상사를 둔 나는 정말 최고의 행운아가 아닌가.

“지랄하고 있네.”

“어, 뭐라고 했었냐. 강휘야?”

“아,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안 좋은 생각이 좀 나서 말이 헛 나왔습니다.”

“아 그래? 그래.”

결국 참지 못한 욕지거리가 입을 비집고 나왔다. 옆에 있던 재성선배가 듣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이토록 모든 상황이 나에게 웃어주고 있었다. 내게 해가 될 것은 알아서 잘 피하고 있었으며, 내가 쌓는 실적은 점점 커져만 갔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내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토요일. 다정원을 보는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야근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밤늦게 작업을 하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평소엔 업무 중에 카톡을 들여 보는 것을 조심하고 있었으나 오늘따라 이상하게 손이 갔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다정원 : 나 내일은 약속 있어. 내일 못 봐.]

그 메세지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총무과 주임. 그 자식이다. 한숨과 폭언과 알 수 없는 감정이 입을 비집고 나오려고 했다. 나는 그것을 겨우 눌러 담았다. 덕분에 입술사이에서는 한숨만이 흘러나올 수 있었다. 나는 잠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두 눈을 감았다.

떨어지는 무저갱엔 끝이 없었다.

[작품후기]오늘은 저도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가 글이 영 마음에 안 들게 나오네요. 항상 이럴 때마다 비축분을 만들어야 한다고는 생각하는데...

부족한 글 좋게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날려주시는 독자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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