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회
chapter2굿모닝 따따따 따따 따따따따 따따 따따따 따따 따따따따 굿모닝
“끄으응.”
손을 이리저리 휘적이다가 간신히 핸드폰을 집었다. 눈이 잘 떠지지 않아 알람을 끄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어제의 기억을 천천히 되짚어봤다. 성규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들었고, 대꾸할 말도 없어 연거푸 술만 들이켰었다. 그리고 으윽. 머리가 욱신거렸다.
간신히 눈을 떠서 핸드폰을 바라보자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번째 알람이 울리기 직전이었다. 다행히도 다시 잠들진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방구석에 쳐박혀있는 검은 비닐봉투를 열어보니 숙취해소제가 있었다. 하여간에 성규 이 센스 좋은 녀석 같으니라고. 나는 액체 숙취해소제를 뜯어서 억지로 목구멍에 넘기고 샤워를 했다. 나오고 나서 정장을 입고 차키를 잡으려다가 내려놨다. 아마 오늘 운전을 했다간 숨을 불자마자 면허정지가 뜰 것이었다.
대중교통으로 회사에 출근한 것도 꽤 오래된 기분이었다. 버스는 첫 차였다. 이전엔 그래도 첫 차를 타고 출근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신세가 더 처량해진 셈이었다. 차고지에서 꽤나 거리가 돼서 첫 차 시간이 늦은 편이지만 그래도 충분히 이른 시간이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려서 잠이 오진 않았다. 가까스로 토하기 직전에 회사에 도착했다. 나는 버스가 멈추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웨에에엑.”
토악질을 하자마자 가방에서 알약으로 된 숙취해소제를 물과 함께 삼켰다. 그리고는 양치와 세수를 다시 했다. 거울 속 몰골이 초췌했지만 그렇다고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사과에 출근하자 재성선배와 민경아 팀장님과 인사과장님이 계셨다. 프로젝트 팀원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 왔냐?”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이다.”
“예,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는 오늘 일일 업무를 빠르게 정리해갔다. 익숙해진 업무였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는 단순 업무라 다행이었다. 문제는 일일 업무를 끝낸 이후이리라.
업무를 진행하면서 사왔던 생수통을 다 비우고 다시 물을 따랐다. 숙취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탓. 그것으로 인해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사양이었다. 가장 먼저 내 상태를 눈치 챈 것은 민경아 팀장이었다.
“강휘씨 오늘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요.”
“어제 좀 달렸습니다. 업무엔 지장 안 가게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혼내려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말한 건 믿어볼게요.”
“예.”
민경아 팀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 나름의 격려 방법이었다. 나는 감사를 표하기 위해 작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돌아가서 생수통을 입에 물었다.
출근 시간이 되자 성욱선배와 효웅선배와 유진씨가 출근했다. 아, 유진씨는 저번 술자리부터 자신을 선배라고 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선배란 말은 늙어 보여서 싫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그녀의 뜻을 존중했다. 물론 예의는 잊지 않도록 더욱 신경 썼다. 효웅선배는 오늘도 아슬아슬한 시간에 출근을 했다.
“효웅아!”
“아이고, 과장님. 저 지각은 안했습니다!”
“일찍 일찍 좀 다녀라, 이놈아!”
과장님의 불호령은 덤이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모를까 요즘은 그 의견에 동감하는 바였다. 왜냐하면 시스템이 거의 완성되기 직전이라 지금이 가장 바쁜 때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효웅선배는 이번 프로젝트에 착수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다른 업무량은 줄여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선 효웅선배가 조금 얄밉기도 했다.
“어우. 강휘 벌써부터 죽상인데?”
“어제 좀 달려서 그렇습니다.”
“아. 누구랑 그렇게 마셨어?”
“군대 동기랑 좀.”
“달릴 만 했네.”
그래도 이렇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니 밉지는 않았다. 효웅선배 나름의 생존전략일지도 몰랐다. 그것까지 포함해도 밉지 않다는 게 효웅선배의 대단한 점이리라.
예상했던 대로 프로젝트업무를 시작했더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반복적인 확인 작업도 수정 사항을 찾아야 했기에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시스템에 대한 것은 스스로 머리를 굴려야 하는 영역이었기에 더욱 집중해야했다. 당연히 숙취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점심시간이 평소보다 세 배는 더 반가웠다. 숙취로 시달린 머리를 쉬게 할 수 있고, 일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는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으며, 쓰린 속에 뜨끈한 국물이라고 채워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야, 대체 얼마나 어제 마신 거냐?”
“평소 안마시던 걸 마셔서 주량보다 더 마신 것 같습니다.”
“뭘 마셨길래?”
“과일소주를 좀.”
“얼씨구. 안 어울리긴 하네.”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재성선배와 함께 사내식당에 갔다. 도착하자마자 두통이 심해졌다.
총무과 녀석과 정원이가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지난 번 약속을 저렇게 쓰는 것은 아닐 테고, 아마 나 때문에 안달이라도 난 모양이었다.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다가 식판을 들고 음식을 받자마자 정원이 옆에 식판을 내려놨다. 그리고 정원이에게 고개를 작게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정원이도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표정관리를 했다. 표정관리가 되지 않은 건 오히려 총무과 녀석 쪽이었다. 녀석은 나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뭐하는 짓이야?”
“밥 먹으려고 앉았습니다.”
“야, 강휘야. 뭘 이리 멀리 가냐. 어, 뭐야. 애송이?”
“쯧.”
재성선배가 자리에 도착하고 아는 체를 하자 총무과 녀석이 고개를 돌리고 혀를 찼다. 재성선배가 애송이라고 부른 것을 감안해도 굉장히 무례한 행위였다. 재성선배도 눈꼬리를 움찔거렸다. 다소 예민한 구석이 있는 재성선배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타칭 애송이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 못한데. 요즘 총무과는 선임이고 후임이고 없나보지?”
“타 부서에 선후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화를 내고 싶지만 억지로 참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니 속으로 조금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호가호위하는구나. 평소 굉장히 혐오하는 행동이었으나 오늘은 이해가 될 법도 했다.
녀석은 재성선배와 정원이를 연달아 보다가 불편한 티를 냈다. 아마 평소부터 재성선배와 사이가 좋지 않은 듯 했다. 주위를 돌아보니 알게 모르게 이쪽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회사에도 알려질 정도로 견원지간이라. 인사과와 총무과의 관계를 한 눈에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결국 정원이나, 재성선배 어느 쪽으로도 튈 수 없는 불꽃이 내게 향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였다.
“눈치 없는 인사과 애송이 때문에 밥맛이 떨어지네.”
“너 지금 우리 인사과 엘리트 건드리냐?”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나한테 한 소리냐?”
재성선배가 특유의 표정으로 이죽거렸다. 대상이 내가 아니라서 망정이지 그 대상인 애송이는 퍽이나 거슬렸을 터였다. 평소에 둘이 어떻게 신경전을 하는지 알 법했다. 녀석이 재성선배 쪽으로 눈을 돌리자 재성선배가 이젠 대놓고 비웃으며 말했다.
“아서라. 너보다 진급이 빠르면 빨랐지 느릴 녀석이 아니야.”
“뭡니까? 이 녀석이 사장 아들이라도 됩니까?”
소가 뒷걸음치다 개구리를 밟은 셈이었다. 구체적인 사안은 조금 틀렸지만. 그 말에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표정관리를 했다. 다행히도 내 표정변화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듯 했다. 재성선배가 입을 열었다.
“야. 얘가 들어오자마자 프로젝트 착수한 건 아냐?”
“프로젝트라면, 설마 그?”
“그래 애송아. 문제 안 생기면 인사과장님 과장자리 집어치우고 진급하신다고 말하는 그 프로젝트다, 임마.”
녀석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노려봤다. 인사과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내 생각보다 회사 내 입지가 큰 모양이었다. 인사관리를 낡은 방식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시스템화하는 것이니 회사의 기틀을 다지는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영향에 대해까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쯧.”
그러자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정원이에게 눈치를 주려는 듯 했다. 나는 그것을 눈치 채자마자 정원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저런, 아직 식사도 다 끝내지 못하셨네요. 천천히 드세요. 어차피 저희도 이제 막 왔으니까.”
“아, 네, 네.”
정원이가 다소 얼빠지게 대답한 것도 이럴 땐 플러스 점수였다. 눈치가 없어서 끝까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으니까. 총무과 녀석 역시 그것을 눈치 챘는지 나를 째려봤다가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자리였으니 이 자리를 피하려는 것이었다. 그 때 내가 입을 열었다.
“아. 총무과 뭐시기씨.”
“뭐, 임마?”
녀석은 마치 내가 조금이라도 이빨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득달같이 으르렁거렸다. 어느 쪽으로도 풀 수 없는 화를 내가 드디어 받아줘서 얼핏 반가워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별로 두렵진 않았다. 애시당초 나도 시비를 걸려고 말을 걸었으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번에 소개할 때 이름도 제대로 말 안 해주시기에.”
“하. 재성씨. 인사과는 신입 교육도 똑바로 못 시킵니까?”
“아까 본인 입으로 타 부서에 선배고 후배고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큭.”
재성선배가 내 말을 듣고 웃음을 삼켰다. 자승자박이었다. 내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녀석은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도 이런 분위기에서 계속 말을 이어가봐야 자신만 손해를 본다는 것 정도는 아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좀 더 멍청한 녀석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덤볐을 테고, 그럼 다신 정원이에게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을 텐데. 나는 아쉬움을 담고 돌아가려는 녀석의 등 뒤로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번엔 이름 석 자는 들어보길 기대해보겠습니다.”
“큭, 푸하핫!”
재성선배가 결국 웃음보를 터트렸다. 주위에서도 작게 실소하는 소리가 조금 들렸다. 이 사건이 아마 내게 좋은 방향으로만은 다가오진 않을 것이었다. 저 녀석이 말했다고는 했지만 타 부서라고 해도 선후배 개념은 있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지. 그나마 본인이 홧김에 지껄인 말에 스스로 걸려 넘어진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생길 것이었고. 하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침부터 울렁거리던 속이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다 식어버린 미역국을 후룩하고 마셨다. 식어도 평소보다 더 값진 맛이 나는 것 같았다.
***
퇴근시간이 될 쯤에 마침내 인사과장님 귀에도 들어갔는지, 인사과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러냈다. 인사과장님은 흡연실을 들어가려다가 따라 들어가려는 나를 만류했다.
“담배 피나?”
“안 핍니다.”
“그럼 잠시 기다려.”
“예.”
인사과장님은 흡연실에서 담배냄새를 묻히고 나왔다. 순식간이었다. 항상 모자라기만 한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인사과장님께서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씀하신 것도 그러한 원인에 따른 결과였다.
“칭찬과 꾸지람 중에 뭐부터 들을 테냐.”
“고쳐야 할 부분이 더 많으니 칭찬부터 듣겠습니다.”
“좋아. 그럼 칭찬부터 하지.”
인사과장님이 삐뚜룸하게 웃었다. 왜 인사과는 저렇게 일그러진 방법으로 웃는지 잘 모르겠다. 일이 힘들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총무과 새끼 대가리 깬 건 잘했다. 다음에도 시비 걸면 똑같이 하면 된다.”
“예.”
혼나는 쪽이 그 쪽일 줄 알았던지라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일단 대답을 했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나에게 좋은 결과이긴 했다. 그러자 꾸지람 쪽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어리짐작하기에 오늘 하루 종일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혼내시려나하고 생각했다. 궁금함을 느낄 필요도 없이 인사과장님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혼날 시간이다.”
“새겨듣겠습니다.”
“후, 사실 혼내기보단 선배로써 충고하는 거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의아함을 담아 바라보자 인사과장님이 조금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인포 신입 아가씨랑은 친해지지 마라.”
“예?”
나도 모르게 평소에는 하지 않을 실수를 했다. 하지만 인사과장님은 내 무례를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 아가씨한테 이미 안 좋은 소문 돌고 있는 거 알지?”
“그, 예. 알고 있습니다.”
“붙어 다니면 너도 그 소문이 묻을 거다.”
나는 인사과장님을 바라봤다. 분석할 필요도 없었다. 인사과장님은 순수하게 나를 걱정해주시고 있었다. 나는 고민했다. 이대로 물러서도 됐다. 애당초 나와 정원이는 회사에서 서로 모른 척을 하기로 했었다. 서로 붙어 다니다간 둘 중 하나가 실수로 너무 친근하게 굴 수도 있고 그것이 서로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인사과장님이 바라보기에도 나와 정원이가 붙어있는 것은 썩 좋지 않은 행위였다. 이유는 조금 달랐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나에게 좋은 점이라곤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인사과장님은 내가 치기에 어려 쓸데없는 고생을 하지 않기를 바라시고 계셨다. 고마운 걱정이었다.
나는 한참을 입을 달싹거렸다. 예, 알겠습니다. 그 짧은 말을 뱉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정원이와 약속한 것도, 인사과장님의 우려도 그 한마디로 모두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뱉는 순간 왠지 내 영달을 위해 정원이를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쓸데없는 걱정인 것을 이성은 알고 있었다. 반면 양심은 나를 찌르고 있었다. 과장님은 그런 나를 보더니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했다.
“그래, 총무과 새끼한테 지는 꼬라지로 보일 수도 있긴 하겠지. 자존심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건 알아두고.”
“……예, 알겠습니다.”
나는 마지못해 그 말에 답했다. 과장님은 피식 웃으며 먼저 자리를 떴다. 나는 과장님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을 때쯤 의자에 주저앉았다. 내 안에서 여러 의견을 업은 이들이 각기 다른 주장을 내뱉고 있었다. 골치 아픈 일이었다.
“후우.”
갈 곳 없는 막막한 감정을 한숨에 실어 내뱉었다. 고민거리가 해결되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내 이후 행보라도 어떻게든 정하기 위해 하염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작품후기]오늘은 추천이 평소보다 많이, 굉장히 많이 들어와있네요. 이게 무슨 일이람.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쓰겠읍니다...
부족한 작품 좋게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