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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51화 (51/138)

51회

chapter2들뜬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온 것 치곤 몸이 피곤해서인지 바로 씻고 잠들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정원이에게서 메세지가 한 아름 도착해있었다.

[다정원 : 머먹?]

[다정원 : 아 내가 고르랬나?]

[다정원 : 정하도 사달래. ㄱㄴ?]

[다정원 : 야 자냐?]

[다정원 : 아니 ㅅㅂ]

[다정원 : 이 개새끼 맨날 지 할 말만 하고 쳐자죠?]

[다정원 : 일어나면 뒤졌다 ㅅㅂ]

가자마자 대가리 박아야겠군. 어째서 나는 밥을 사면서도 대가리를 박아야만 하는가. 모든 게 내 탓이었다. 사실 내 멋대로 할 말만 하고 읽씹을 한 거니까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를 켜서 깨웠다. 정신을 좀 차리고 나서 씻기 전에 카톡을 쳤다.

[나 : 죄송합니다... 형님...]

[나 : 이 아우가 대가리 박겠읍니다...]

[나 : 뭐든지 사겠읍니다...]

그러고는 씻고 나와서 확인해봤는데 1이 줄어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아직 8시도 되지 않았다. 하긴 요새 5시 반에 일어나서 조기 출근을 하고는 했으니 7시에 일어난 것도 다행인 수준이었다. 지금 출발하면 너무 이르게 도착할 것 같아 대충 아침을 챙겨먹었다. 아침을 챙겨 먹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겨우 일주일 만에 얻은 휴일이 왜 이리 생소한지 모르겠다.

아침까지 챙겨먹었는데도 9시가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출발하면 대충 일어나있지 않을까? 결국 그새를 못 참고 집을 나섰다. 요즘엔 내가 굳이 어디를 간다고 하지 않아도 아무도 내게 어디 가냐고 묻지를 않았다. 요즘에 너무 자주보긴 했나?

그러고 보니 요새 정원이말고 다른 친구들을 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성규만 해도 못 본지 한 달은 넘은 것 같았다. 나머지 친구래 봐야 손을 꼽을 정도였지만 괜히 성규한테 예전에 들은 말이 걸렸다. ‘강휘는 연락이 되지 않을수록 더 친한 것이다.’ 내일은 오랜만에 다른 친구들을 보러가야겠다. 일단은 성규부터.

차가 생긴 이후 가장 편한 건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정원이네 집으로 차를 타고 가면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점 역시 좋은 점 중에 하나였다. 도착하고 나서 벨을 눌렀는데 반응이 없었다. 안에 누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몇 번 다시 벨을 울리자 비적비적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오.”

문이 열렸다. 정원이였다. 정원이가 부스스한 행태로 나왔다. 과하게 무방비한 모습이었다.  전번에 같이 술 쳐 마시다 자고 일어났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누가 볼까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정원이는 하품을 하고 있었다.

“으하암. 먼데 일케 일찍 완나.”

“거의 10신데?”

“10시믄 아직 잘 시간이다 안 카나. 오늘 토요일이다아.”

정원이는 잠에서 덜 깼는지 사투리가 섞인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머쓱해져서 정원이의 등을 밀어서 다시 침대에 데려가서 눕혔다.

“자라 자. 난 괜찮으니까.”

“알아따…….”

정원이는 다시 잠이 들었다. 아마 방금 전에도 잠결에 대답했지 싶었다. 다소 조심성이 모자랐던 부분은 오늘은 넘어가기로 했다. 정원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보니 정하도 자고 있었다. 정말로 내가 과하게 일찍 일어난 걸까.

점심시간에 맞춰서 밥이나 해줄 생각이 들어 밥통을 확인해보니 밥은 남아있었지만 냉장고를 들춰보니 별 게 없었다. 사회인의 편린을 바라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남아있어 봐야 뭘 하기도 애매해서 열쇠를 챙겨서 조용히 나왔다.

된장찌개에 제육볶음정도면 한 끼 식사로 썩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재료를 사려는데 유부초밥용 유부가 1+1행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새 집어버렸으니 별 수가 없다. 메뉴 변경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플러스 점수였다. 미소까지는 살 필요 없겠지.

장을 보고 돌아왔는데도 두 녀석 다 아직 퍼질러 자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아무리 조심히 들어왔다고 해도 아직도 깨질 못하고 있네. 뭔가 분한 느낌이 든다.

고기와 파, 양파를 적당히 고추장 양념에 재워놓고, 한쪽에선 멸치 육수를 낸다. 밥은 그릇에 담아서 유부초밥 키트 안에 있었던 식초 비슷한 소스와 후리카게 비슷하게 생긴 것을 풀어 밥에 섞었다. 그걸 유부에 담기만 해도 된다는 간편한 점이 좋다.

유부초밥을 만드는 동안 물이 끓기에 멸치를 다시 빼서 버리고 대충 된장을 풀고 나머지 재료를 던져 넣어서 된장찌개를 끓였다. 끓기 시작한 찌개는 불을 낮춰서 내버려두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달궈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원이와 정하가 움직거렸다.

“머꼬. 엄마가?”

“나다, 이 십새끼야.”

그러자 정원이가 눈을 비비더니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나는 센 불에 제육볶음을 볶아내며 환풍기를 틀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더 이상은 자지 못하겠는지 둘도 모두 일어나서 비적비적 내 옆으로 왔다. 마침 거의 요리가 다 된 참이었다. 나는 집게로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씻고 나와.”

“언니 먼저?”

“아니 너 먼저.”

“그랭.”

정하가 화장실로 들어가고 정원이는 하품을 하며 식탁을 꺼냈다. 그리고는 나를 멍하게 바라보다가 내가 제육볶음을 접시에 담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너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마. 아우야.”

“성은이 망극하다, 형님아.”

곧 정하가 나와서 정원이를 부르자 정원이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정하가 탁자에 식기를 세팅하면서 말했다.

“근데 언제 왔어?”

“한 10시쯤 왔나?”

“와. 오빠는 무슨 잠이란 게 없니?”

정하가 이상한 것을 보듯이 쳐다봐서 나는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새 평균 출근시간이 5시 반이야. 죽겠다 진짜.”

“그래? 일이 많이 힘든가봐?”

“빡세지. 빡세서 죽을 것 같다…….”

정하는 그렇구나. 그 회사는 빡센가봐. 그런 소리를 하다가 돌연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일이 힘든 와중에도 언니는 보고 싶었나봐?”

“친구가 정원이밖에 없다고 말하는 꼴을 꼭 봐야 속이 시원했냐?”

“아니, 진짜야?”

정하가 나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미묘한 분위기를 피하려던 결과가 다른 미묘한 분위기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나는 씹어내듯이 말했다.

“……물론 아니지.”

“생각을 하고 말해야 된다는 점에서 이미 아웃이야, 오빠.”

“아니 진짜 아니거든? 야 봐라. 정원이, 성규, 해창이, 진우, 또, 또.”

“알았어, 됐어. 왜 이렇게 필사적이야?”

“끄응.”

그거야 정원이 외에 나머지 녀석들을 한참동안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교우관계도 웃긴 것이 친한 녀석들이 여러 부류에 속해있었고, 또한 내 입장에서 친한 녀석들끼리 서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일부러 약속을 겹치지 않게 잡는 것도 있었고, 내 주도로 서로를 모아서 소개해주는 걸 거북하게 여겨서 일지도 몰랐다. 예를 들면 성규나 정원이의 관계가 그랬다. 성규는 정원이가 남자였던 시절을 알지 못했다.

하여튼 내가 끙끙거리고 있을 때 정원이가 나왔다. 마침 정원이가 나온 것도 식사를 모두 세팅하고 슬슬 먹으려던 참이었던 타이밍이었다. 타이밍은 둘 째 치고 씻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정하 역시 뭔가 눈치를 챘는지 정원이를 꾸짖었다.

“언니 또 비누로 얼굴 대충 닦았지.”

“아니, 그게.”

“내가 폼클렌징으로 조심히 닦으라 했어 안했어. 그리고 왜 식탁부터 앉아! 에센스랑 수딩이랑…….”

“아, 알았어, 알았다고!”

정원이는 다시 일어서서 화장대로 향했다. 그리고는 몇 가지 나는 잘 모르겠는 것들을 화장솜에 발라 얼굴을 닦았다. 그 와중에 세수할 때 꼈으리라고 추정되는 머리띠가 앞머리를 까고 있어서 그 모습이 뭔가 유쾌했다. 정원이는 투덜거리며 상에 앉았다.

“그게 뭐 중요하다고 맨날.”

“중.요.하.다.고.”

“네엥…….”

정원이는 정하의 등쌀에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싸움이었다. 기가 죽은 모습을 보자니 나 역시 그 기분을 알기에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 밥이나 먹자 밥이나.”

“그래.” “넹.”

유부초밥과 된장찌개와 제육볶음이라는 알 수 없는 조합이었지만 그래도 셋 다 맛있는 것이었다. 맛있는 것에 맛있는 것에 맛있는 것을 만들었으니 실패하기가 더 어려웠다. 먹어보니 다들 간을 삼삼하게 한 게 정답이었다. 셋 다 간이 세면 먹기 좀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적중한 격이었다.

유부초밥의 달달하고 새콤한 맛, 된장국의 짭짤하고 구수한 맛, 제육볶음의 매콤하고 무엇보다 고기! 라는 점이 훌륭하게 조화되고 있었다. 셋 다 아무 말 없이 젓가락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걸 인지하는 순간 나는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놨다. 식탁위에 있는 것들도 다 사라질 무렵 정원이가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강휘야. 너 나한테 시집오지 않을래?”

“미친년이. 굳이 말하면 니가 신부 쪽 아니냐?”

“아니 신성한 부엌데기에 어찌 남자가 감히 설 수 있단 말이냐.”

“지랄을 해라 지랄을.”

“진짜 지랄을 해라 둘 다.”

정하가 뚱한 얼굴을 하며 끼어들어 우리를 타박했다.

“아침부터 내가 둘이서 꽁냥대는 걸 봐야 되니? 애인도 없어서 죽겠는데.”

“아니, 그런 거 아니라고.”

“그리고 지금 해가 중천에 떴다 정하야.”

“둘이 하여간에 쿵짝 잘 맞는다니까.”

정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야 네가 자꾸 이상한 말을 하니까 그런 게 아니겠냐, 정하야? 점심을 먹고 정하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정원이와 나는 앞으로 뭘 할 지에 대해 작당모의를 하고 있었다.

“던파 하구 싶다.”

“정하가 죽일 거야.”

“그건 그래.”

그러자 설거지를 하고 있던 정하가 그 작은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난 상관없는데? 둘이 놀아 그럼. 나도 오늘 그냥 집에서 쉬게.”

“정말로?” “오!”

우리는 밖에서 뛰어 놀아도 되는 것을 허락받은 강아지들 마냥 정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피시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참을 던파를 하면서 레이드를 돌렸고, 끝날 쯤 돼서 시간을 바라보니 6시 10분이었다. 나는 사용종료 버튼을 누르면서 정원이에게 물었다.

“아, 뭐 먹을래? 그래서.”

“어, 음. 글쎄? 고기밖에 생각 안 나는데.”

“너도 참.”

내가 한심한 듯이 쳐다보자 정원이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고기 맛있잖아, 고기!”

“그거야 맞긴 한데.”

이 녀석한테 물은 게 잘못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뭘 먹자고 할 때마다 정원이는 이것도 새롭다 저것도 새롭다하며 놀라던 친구였다. 과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긴 했지. 집도 잘살면서. 뭐 어차피 오늘은 정원이가 먹고 싶은 걸 사주는 날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래. 고기 먹으러 가자.”

“그치?”

항상 가는 익숙한 고기집으로 가서 고기를 굽고 있던 와중에 뒤늦게 정하가 생각나서 정원이에게 말했다.

“정하는 어쩐다냐?”

“아 맞다.”

정원이도 이제야 깨달았는지 서둘러서 정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몇 마디 나누는 듯  싶더니 전화를 끊었다.

“고기 먹는다니까 자긴 그냥 치킨 시켜먹겠다고 둘이서 먹으래.”

“삐지진 않았고?”

“전혀. 아무 신경 안 쓰던데.”

“그럼 됐네.”

삼겹살을 먹으니 술이 생각났지만 오늘은 차를 가져온 지라 술은 마실 수 없었다. 오히려 오늘은 평소랑 다르게 정원이가 맥주를 한 병 시켜서 마시고 있었다.

“원래 맥주 안 좋아하지 않았냐? 안 취한다고.”

“이젠 취하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그런가?”

“아니 근데 그것보다 뭔가 묘하게 소주가 써서 먹기 힘들어.”

“설마 이제 과일소주 먹고 그러냐, 너?”

“안 먹어 봤는데. 아니 근데 계집애들이나 먹는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젠 괜찮지 않을까?”

“그래, 다음에 한 번 술 집 가서 시켜나 보자.”

정원이는 이제 단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과일소주도 좋아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진 사고였다.

고기를 다 먹고 나서 카드를 긁고 나왔다. 정원이는 딱 기분 좋을 정도로 알딸딸한 상태인데다 내가 사준 고기를 먹고 굉장히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아, 역시 남이 사주는 고기가 최고야.”

“사실 남이 사주면 다 맛있긴 하지.”

“맞아 맞아.”

사실 나도 기분은 좋았다. 내 돈 쓰고 이 녀석들 밥해주랴, 밥사주랴 하긴 했지만 어차피 평일엔 돈 쓸 일도 없어서 이번에 받은 월급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던 차였다. 물론 요즘 하는 일은 나름대로 하면서도 성취감이 있었지만, 이렇게 정원이랑 놀고 있자면 쉬는 기분이 확실하게 들었다. 편하고 무엇보다 즐거웠다. 흥얼거리는 정원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조금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어, 이게 누구야. 정원씨 아니야?”

정원이에게 한 남자가 인사를 해왔다. 생소한 남자였으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라고 해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남자였다. 그만큼 첫 인상이 뇌리에 강하게 박힌 남자였다.

“아, 안녕하세요.”

지난 주 금요일 회식 자리에 가던 그 때. 인포데스크에서 정원이에게 포카리를 건네던 그 남자. 그 남자가 정원이에게 인사를 해오고 있었다. 행복이 저물어가는 얼굴로 인사를 해오고 있었다.

[작품후기]마지막 문장이 참 마음에 안들어서 몇 번이나 고쳐봤는데 음. 나중에 더 고민해봐야겠네요.

부족한 작품에 항상 선작 추천 코멘트 날려주시는 독자 분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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