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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49화 (49/138)

49회

chapter2정원이가 나를 떠밀듯이 집으로 보냈다. 자신도 오늘은 감정이 잘 정리가 되지 않을 것 같고, 나 역시 숙취 때문에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으니 일단 돌아가서 쉬라는 것이었다. 정하도 우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그 말에 찬성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네가 떠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 표정이 자꾸 생각나서 나를 떠밀고 있었다. 감정과 생각이 침잠했다가 다시 부유하기를 반복하며 나를 뒤흔들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어떻게든 참고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우웨에에엑.”

구역질을 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내는 듯 했다. 실제로 나오는 것은 위액뿐이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위장은 이미 텅 비어있는데 구역질은 멈추지 않았다. 게워낸다면 그것은 정신적인 것이었다. 네 표정을 내 안에서 지우려고, 너에게 물으려던 질문들을 잊으려고, 내 속을 메스껍게 하는 모든 것을 지우려고 나는 구역질을 했다.

“헉, 헉, 흐웁. 웨엑.”

나는 이 순간에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모른 척하기 위해 구역질에 몰두했다. 이렇게 모두 비워내면 이제 네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볼 수 있을까봐. 그렇게 내 감정과 생각을 게워냈다. 하지만 게워내도, 게워내도 깊숙이 박혀있는 말뚝이 뽑히지 않았다. 더 이상 위액조차 나오지 않을 쯤 나는 양변기를 앉고 달뜬 숨을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헉, 헉. 후우.”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두 팔로 지탱하여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거울을 바라봤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마주보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있는 사내가 거울 속에 있었다. 기시감이 떠오른다. 네 얼굴이 다시 떠오르는 표정이었다. 나는 애써 고개를 저어 기시감을 다시 가라앉혔다. 고개를 숙여 한 손으로 이마를 누르다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유진선배 진짜 더럽게 세네.”

나는 숙취를 제물로 삼아 그렇게 내 속을 진정시켰다. 내가 게워내는 것은 모두 술 탓. 다른 이유는 없었다. 기왕 얼굴을 씻은 김에 샤워나 하자는 생각이 들어 방에서 팬티를 하나 들고 와서 샤워를 했다. 찬물이 쏟아졌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물은 차가웠지만 오히려 좋았다. 나는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쓰며 뒤집힌 속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있었다. 가장 좋은 건 제정신이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정신이 들기 시작하자 이성적인 사고 역시 돌아왔다. 몸 상태가 안 좋았는데도 무리해서 정원이를 보러 갔던 이유는 물어볼 것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정작 부스럼만 하나 더 만들어 온 격이었다. 이렇게 멍청할 수가. 차라리 가지나 말 것을.

정원이에게 내가 회식을 가기 직전에 인포데스크에서 봤던 그 장면에 대해서 물어야했고, 자신에 대한 악의어린 소문을 인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어야했다. 어느 쪽도 묻기에 거북한 주제였지만 터트릴 수 없을 정도로 큰 고름이 되기 전에 짜내야했다.

그런데 이 꼴이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결국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의문거리만 하나 더 만들어오고야 말았다. 그 때 네가 지었던 그 표정은 무슨 의미란 말인가. 네가 중얼거리던 그 언어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뭐라고 물어봐도 답변도 들을 수도 없으며 심지어 질문 그 자체도 쉽사리 언어로 매듭지을 수 없었다.

“에휴.”

한숨이 나왔다. 땅이 꺼질 것 같은 깊은 한숨이었다. 어리석은 언사와 경솔한 행동에 대해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천천히 생각이 정리 되고 있었다. 내가 나오자 누나가 나를 불렀다.

“강휘야.”

“어?”

“너 얼굴이 너무 안 좋은데?”

“아, 속이 좀 안 좋아서.”

“적당히 마셔야지.”

“오늘은 안 마셨는데?”

“그럼 어제 얼마나 마신거니.”

누나는 항상 명분을 가지고 꾸지람을 하곤 했다. 즉 반론할 수 없이 닥치고 들어야하는 훈육을 시행하곤 했다.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하여간에 속 너무 안 좋은데 들어가서 쉬어도 돼?”

“에휴. 그래.”

누나는 내 상태를 감안하여 훈육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다정원이라고 적힌 카톡 방에 무슨 메세지를 쳐야하는지 갈 곳 잃은 손가락이 애꿎은 허공만 휘젓고 있었다. 멍하니 기계적인 행동을 반복하다가 결국 핸드폰을 내려놨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기가 찼다.

“아니, 시발. 무슨 첫사랑 하는 것도 아니고 개 시발?”

오늘 정원이의 계집애 같은 반응 때문이다. 뭘 잘못했냐고? 여자애 취급 하지 말라고 할 땐 언제고. 마법에 걸리는 날이라더니 정말로 정신까지 여자가 되는 마법이라도 걸린 걸까. 홧김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정작 수신음이 울리자 고양이 목에 달린 종이라도 건드린 것처럼 화들짝 놀라 전화기를 내려놨다. 긴 수신음이 지나는 동안 다행히 정원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다시 전화기를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신음이 울리고 또 다시 정원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삐 소리가 나면……. 나는 다시 통화종료를 누르고 신경질적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마침내 수신음이 끊겼다.

[어.]

“뭔데 전화를 안 받냐?”

[아니, 그게.]

“너 진짜 삐졌냐?”

[아니라니까……. 그, 아. 샤워. 샤워했어.]

한숨을 내쉬었다. 비겁한 변명이었다. 변명인지 아닌지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비겁했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순간 내가 질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진짠데.]

“누가 뭐래냐?”

[방금 한숨 내쉬었잖아.]

스피커를 가리고 내쉰 한숨소리가 어떻게 전해진 모양이었다. 정원이도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였다. 다시 나오려는 한숨을 속으로 꾹 눌러 담았다. 용건만 빠르게 전하자.

“내일 보자.”

[어?]

“내일 할 일 있냐?”

[어, 레이드?]

“그럼 같이 돌아.”

[어, 어.]

“내일 차 끌고 갈 테니까 뭐 먹을지 생각해 놔라.”

[어, 어.]

정원이는 병신같이 대꾸만 하고 있었다. 할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전화기를 끊었다. 이상할 정도로 화가 났다. 무엇에 화가 난지는 알 수 없었다. 평소에 항상 하던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는 사색도 불가능했다. 오히려 풀어선 안 되는 상자를 맞닥뜨린 것 같았다.

일부러 생각을 멈추고 방을 나와서 라면을 끓였다. 배가 고파 신경질적으로 변한 것이겠지. 텅 빈 위장에 라면을 때려 넣고 나서야 나는 내 선택을 후회했지만 그 땐 이미 너무 늦어버린 이후였다. 나는 한심한 것을 바라보는 누나의 눈빛을 피해 방으로 들어와 끙끙거리며 간신히 잠에 들었다.

***

좆 됐다.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내 속이 아주 좆이 됐다. 폭음, 구토, 빈속에 맵고 짠 음식을 때려 부은 결과 내 위장은 파업을 선언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속이 울렁거려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이대로 정신을 잃었다간 어제의 재림이 일어날 것이었다. 내 전화기에 다정원 이름이 석 자 세 번 박힌 것을 바라보며 구역질이나 해대겠지.

사람이 봐줄 수 있는 것은 단 한 번. 두 번째부턴 의미가 변색되는 법이었다. 나는 카톡을 켜서 최대한 간단하게 전해야 할 말만을 메세지를 남겼다.

[미안. 뒤질 듯. 약속 취소.]

끝. 까무러치듯이 정신을 잃었다.

***

이마가 시원해서 기분이 좋다. 찬 물로 적신 수건이었다. 누나나 엄마가 올렸을 것 같았다. 점점 정신이 들었다. 눈을 잘 떠지지 않았지만 주위가 어두웠다. 밤이 됐나? 정신을 차릴수록 속이 울렁거렸다. 이럴 거면 다시 자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나 다시 자기엔 이미 속이 너무 울렁거려 한 번 게워내고 싶었다. 나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누나, 불 좀 켜줘.”

그러자 불이 켜졌다. 갑작스레 켜진 불 때문에 눈이 부셔서 눈을 뜨지 못했다. 끄으응. 신음소리를 내다가 눈을 비비고 간신히 눈을 떴다.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누나치고는 좀 작은데.

“너어는 이게 문제야. 저번에도 그러더니 어떻게 사람이 발전이 없냐?”

“므어엉?”

“뭐래 병신이.”

정원이가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정원이를 가리켰다. 쇳소리가 파르르 떨리며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너,너,너,너,너 너가 왜 여깄어!”

“뭐? 니가 뒤질 것 같다고 카톡 보내서 놀래서 왔다. 왜?”

나는 다정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정원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왜. 형님이 와주니까 감동했냐.”

나는 정원이를 무시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화장실까지 참을 수 있었다. 자존심과 인권을 지키고 싶은 의지의 환상적인 콜라보였다. 그리고는 하늘 아래 가장 공손한 자세로 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웨에에에엑.”

“에휴, 급하면 말을 하지.”

어느새 정원이가 따라 들어와서 내 등을 두들기고 있었다. 나는 허우적거리면서 정원이를 때내려다가 포기하고 다시 본능적인 행위에 집중했다.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순간이 아니었다. 이 순간 가장 많이 게워낸 것이 자존심이었다.

한참을 게워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정원이는 차분하게 내 등을 두들기고 있었다. 토악질을 하며 눈물이 맺힌 상태로 정원이를 째려봤더니 정원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니 술 쳐 먹고 토악질 하는 거야 옛날에도 많이 봤는데 왜 그래?”

그 말이 맞았다. 가장 많이 함께 술을 마신 것이 정원이였다. 심지어 녀석은 예전에는 잘 마시는 편이었고 또한 무리하게 마시는 편이었다. 어깨동무를 하며 이놈아 저놈아 떠돌다가 함께 게워낸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깨진 자존심이 조금 붙는 것 같았다.

정원이는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오히려 진정이 됐다. 나는 정원이의 부축을 받아 세면대에 대가리를 박고 입을 헹궜다. 양치를 하기 시작하자 정원이가 슬그머니 화장실에서 나갔다. 거울에 보이는 몰골이 정상이 아니었다. 부스스하고 초췌한 남정네가 서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씻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에휴, 시발.”

양치를 끝내고 나가자 정원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그래? 부축 안 해줘도 돼?”

“그것도 괜찮아.”

간신히 혼자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방으로 겨우 들어와서 침대에 앉자 정원이가 문 뒤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며 물어봤다.

“죽은 먹을 수 있겠어?”

“어, 글쎄?”

“그냥 쳐 먹어. 차라리 먹고 뒤지는 게 나아.”

정원이가 잠시 사라졌다가 방문을 활짝 열고 계란죽을 들고 왔다. 내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자 정원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야, 시발. 내가 한 거 아니거든? 니네 어머님이 해주신 거야. 아 뭐. 혹시 먹여달라고?”

정원이가 숟가락에 죽을 퍼서 내 입에 댔다. 숟가락에 담긴 죽의 열기가 내 입가에 느껴졌다. 이 새끼 지금 뭐하는 거야? 내가 얼굴을 굳히고 있자 정원이가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아니 시발, 왜? 아 뭐 뜨거워서?”

정원이는 후후하고 죽을 식히고는 다시 내 입에 들이댔다. 나는 이 새끼가 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인지의 영역에서 벗어난 행위였다. 정원이는 억지로 내 입에 죽을 넣으려다가 내가 입을 벌리지 않자 입을 벌렸다.

“야. 아앙. 아앙. 몰라? 아니 시발. 진짜 병신인가. 왜 그래?”

나는 정원이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정원이를 내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수 억 광년 먼 곳에 있던 정신이 마침내 돌아왔다. 나는 툭하고 말을 던졌다.

“미쳤냐?”

“뭐? 이게 미쳤…….”

정원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드디어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정원이는 와중에 죽을 얌전히 내려놓고 으아악하고 비명을 지르며 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가 한동안 소란을 부리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얼굴이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저 녀석의 저런 모습을 보니 오히려 이쪽이 담담해졌다. 정말로 주접을 떠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내가 진정이 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다.

정원이는 밖에서 누나와 엄마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방 밖으로도 못나가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환자인 게 확실해서인지 엄마와 누나가 날 죽이러 찾아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죽사발을 들었다. 익숙한 맛이 났다. 어머니께서 내가 속이 안 좋을 때마다 해주시던 그 맛이었다.

“미쳤어, 미쳤어! 시발. 내가 미쳤어! 시발!”

정원이가 멘붕을 한 모습이 특별한 조미료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낄낄거리며 숟가락을 움직였다. 간신히 넘길 만 했다. 정원이가 정신을 차릴 때쯤 나는 숟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야, 아앙?”

“으아아아앙, 이 씹새끼야!”

정원이가 울먹거리며 결국 방을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속이 시원했다. 어느새 그릇이 비워졌다. 따뜻한 기운이 내 속을 진정시켰다. 덕분에 없던 여유가 생겼다. 정원이가 진정하고 찾아오기까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머릿속에서 차분하게 질문의 형태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작품후기]강하게 느껴지는 목 막혀 뒤질 것 같은 공기... 그래서 꿀물 한 잔 들고 왔읍니다...사실은 없던 장면이긴 했는데 넣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추가했습니다. 다음화부턴 다시 스토리 진행하겠습니다~.

추가로 십이사자님 후원 매 번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항상 부족한 작품 좋게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달아주시는 독자 분들 감사합니다!

+ 부럼 => 부스럼 /터칠 => 터트릴 수정했습니다. 저번에도 그러고 의도하지 않은 방언을 사용하게 되네요.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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