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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42화 (42/138)

42회

chapter2다소 이른 시간에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찌뿌둥한 몸을 움직여 다소 억지로 잠을 깼다. 이렇게 아침에 알람소리를 맞춰 생활을 한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니 대학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는 한량처럼 여행이나 다녔고, 그리고 그 후엔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알람도 맞춰놓지 않고 대충 일어나서 독서실로 발 도장을 찍고 다녔으니 대학 때가 마지막이 맞을 것이었다.

샤워를 하며 몇 가지 다짐을 새롭게 새겼다. 오늘부터 운동하기. 빠릿빠릿하게 정신 차리고 움직이기. 선임 말에 웬만하면 토 달지 말기. 성질 죽이고 예스맨이 되기. 뭐 그 외에 몇 가지, 아, 정원이하고 회사에선 아는 척 하지 말기.

준비를 마치고 며칠 전에 새로 맞춘 양복을 입었다. 복장이야 편하게 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첫 인상을 좋게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다소 어색하게 넥타이도 매고는 가방을 매고 나가려는데 아버지께서 부르셨다.

“강휘야.”

“네.”

“이번 주에 차 한 대 뽑자.”

“예?”

당황이 섞여 반문이 나왔지만 아버지께선 보시던 신문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씀을 이으셨다.

“너 장롱 면헌 거야 알고 있지만, 회사 다니면서 차 한 대 없어서야 되겠냐. 어차피 박을 생각하면 비싼 거야 못 사주겠지만, 하여간에 뭐라도 하나 사자.”

그러더니 혀를 몇 번 차셨다. 아직도 차를 몰고 다니지 않는 나에게 하는 것인지 뉴스에서 불편한 기사를 봐서 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쯧쯧, 그리고 여자친구도 있는데 남자가 차 한 대 없어서야 되겠냐?”

“아니, 걘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좋은 애다. 잘 잡아야지.”

“아니, 하.”

아침부터 각오를 새기던 게 우습게도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당분간 정원이는 집으로 부르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탔더니 조금 이른 시간에 나와서인지 생각보다 한적하여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다음 주부턴 어설프게 차를 몰고 다녀야 하니 더 이른 시간에 나와야하나 같은 생각을 하자니 피곤이 몰려와서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의외로 잠은 오지 않았다. 아닌 줄 알았는데 나도 나름대로 긴장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회사에 도착하니 나도 모르게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숨을 들이켰다가 다시 내쉬고 의식적으로 어깨를 폈다. 신입사원은 패기와 의지, 그리고 적당한 눈치. 그 말을 되뇌이며 회사에 들어갔다. 들어가니 인포가 바로 보였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오늘부터 이 회사에서 다니게 될 한강휘라고 합니다.”

“아, 한강휘씨. 잠시 기다리시죠.”

생각해보니 오늘 어디로 오라는 말조차 듣지 못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생각하다가 내 머리로 생각해봐야 정답도 나오지 않고 고민만 늘 것 같아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몇 분을 기다리고 있자니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다정원이었다. 꽤나 차려입은 행세였다.

나처럼 첫 인상을 신경 쓴 모양인지 제복으로 갈아입으니 적당히 입고와도 된다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신경을 쓴 모습이었다. 하얀색 와이셔츠에 라인을 살리면서도 단정함을 포인트로 잡은 검은색 치마가 무릎 위에 걸쳐 있었다. 검은색 작은 파우치는 그런 단정한 모습의 완성이었다. 미인은 뭘 입어도 그림이 된다고, 그런 말이 딱 들어맞는 듯했다. 본인은 긴장해서겠지만 살짝 굳은 얼굴도 그런 인상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차가운 도시 여자라는 이미지가 저렇게 구현될 수도 있구나. 앳된 얼굴을 해가지고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차에 정원이가 작게 손바닥을 접었다 피며 제 딴에는 표 나지 않게 눈웃음 지었다. 다음에 꼭 주의시키자. 저런 표정으로 다른 남자들한테 인사하지 말라고. 딱히 독점욕이라던가, 이상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물가에 서성이는 어린아이를 보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았다.

아마 어떤 남자든 저런 표정을 받으면 쟤가 날 좋아하나라고 착각하고 말 것이었다. 아닌가? 내가 단지 여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보지 못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그렇다면 적어도 모쏠들에겐 그렇게 여겨진다고 치자. 하여간에 끝나고 나선 한 마디 해줘야겠다.

정원이까지 도착하자 인포에서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연락을 하더니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일부러 서로를 의식하지 않으며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레베이터는 최상층에서 멈췄다. 사장실이었다.

“오, 왔나?”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신입사원으로 채용된 한강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포메이션으로 채용된 다정원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머리를 숙였다. 사장님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고개 들어, 딱히 인사 받으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

“예.”

고개를 들자 아버지께서도 언제 도착하셨는지 사장님 옆에 앉아계셨다. 사장님께서 아버지를 바라보시며 입을 열었다.

“자네 아들이라 그런지 더 괴롭혀주고 싶은데?”

“헛소리 하지 말게.”

두 분은 굉장히 친한 친구처럼 굴었다. 최근엔 뵙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에 몇 번 봤던 얼굴이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도 기억할 정도니 아마 자주 들리셨으리라.

“뭐, 오래 붙잡고 있을 생각 없어. 힘든 일 있으면 자네 아버지에게 알아서 해결해달라고 하고, 나는 부르지 말라고.”

“이 친구 참 농담도 개같이 하는구만.”

아버지께서 저렇게 거친 말을 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에 나에겐 그 모습이 퍽이나 생소하게 느껴졌다. 사장님께서는 아버지와 농담 따먹기를 나누시다가 고개를 돌리고 진중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자네가 부탁을 했다니, 나는 자네 뒤를 봐주던가 할 생각이 없어. 다정원 자네도 입 조심하고.”

“네.” “네.”

“아직까지 신입사원들은 항상 내가 처음에 보는 게 관례처럼 남아있으니 다른 직원들도 이정도로 이상하게 생각은 안할 것이고. 그래. 아무튼 수고해보게. 특히 한강휘 자네는 내가 기대가 커.”

“네, 알겠습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와 다정원이 앵무새처럼 딱딱하게 답하자 사장님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이거야 원, 혼내는 것도 아닌데 너무 굳어있군. 좋아, 금방 편하게 해주지. 이만 나가봐도 좋네.”

우리는 고개를 정중히 숙이고는 사장실을 나왔다. 정원이가 내 소매를 잡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와, 진짜 회사 중진들은 볼 때마다 떨려. 여단장이나 군단장 앞에 둔 기분이라고 해야 되냐.”

“어, 뭐, 그렇지.”

그러다 우리를 안내해준 직원이 다시 오자 우리는 언제 대화를 나눴냐는 듯이 서로를 모른척했다. 이러고 있자니 조금 웃기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저 사람이 정원이의 직속 상사일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엘레베이터를 다시 타고 3층에 도착하자 인포 직원이 말했다.

“한강휘씨는 여기서 내리면 되요. 곧 인사과에서 데려갈 거 에요.”

“네.”

“다정원씨는 나랑 같이 가면 되고.”

“예.”

엘레베이터에서 내리고 조금 기다리자 방금 설명한 것처럼 한 남자가 나와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은 경박해보이는 인상이었다. 내가 조금 고개를 숙이자 그쪽에서도 반응을 보였다.

“니가 한강휘니?”

“네.”

“오, 그래. 따라와. 니 직속선배가 될 김효웅이야. 이름 특이하지?”

“어, 예.”

“뭔 대답이 그렇게 늦어? 하하, 장난이야. 따라와.”

자칭 인사과 직속선배인 김효웅씨를 따라가자 인사과라고 적힌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사과엔 총 6명이 있었다. 나까지 합치면 7명이 되는 셈이었다. 도착하고 나서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자 머리가 몇 올 남지 않은 것이 특징인 남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인사과에 온 걸 환영한다. 나는 과장인 박상배라고 한다.”

“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한강휘라고 합니다.”

나는 바로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머리가 듬성듬성하게 있는 사내인 박상배씨가 바로 인사과의 머리였다. 내가 고개를 들자 박상배씨는 나를 데려온 김효웅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효웅아 너부터 돌아가면서 소개 시작.”

“네엣. 방금 소개했지? 네 바로 위 선배인 김효웅이야.”

그러자 시계방향대로 한 명씩 순서대로 이름을 대기 시작했다.

“나는 고성욱이라고 해.”

“나는 김유진이야, 잘 부탁해.”

“한재성이다.”

“민경아 팀장이에요.”

순서대로 쾌활해 보이는 사내, 편하게 웃고 있는 여자, 싸가지 없어 보이는 남자, 깐깐해보이는 여자라고 나는 속으로 이름과 이미지를 매치시켰다. 첫 인상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이름을 일단 외우는 것이었다. 상사이름도 못 외우는 신입이라니 농담거리도 못 될 터였다. 나는 모두의 소개를 듣고 고개를 숙이며 다시 인사했다.

“방금 인사드렸던 인사과에 오늘부로 입사한 한강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 다들 박수.”

짝짝짝

박상배 과장의 말에 맞춰 모두들 박수를 쳤다. 나는 박수가 끝날 때 까지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박수가 끝나자 머리를 다시 들었다. 사람들은 내게 보내는 기대와 걱정, 호기심과 귀찮음 등등 여러 가지 색채의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그런 시선을 통해 의지를 다잡았다. 그리고는 호기롭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저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어, 그래. 다들 일 시작하고, 효웅아. 니가 맡아서 설명해라.”

“예입.”

그리고는 효웅선배는 나를 자신의 옆의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선 말했다.

“일단 앉아서 인사과에서 무슨 일 하는지 살펴봐.”

“예. 알겠습니다.”

“에이,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고.”

“예.”

나는 그 말에 허리를 곧게 세우고 의자에 앉아 선배가 하는 일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러자 효웅선배가 살짝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나만 보라는 게 아니라, 아 부담되잖아.”

“잘 됐네. 적어도 효웅씨가 땡땡이치면 바로 알겠고.”

“큭큭.”

효웅선배 맞은편에 앉아있던 깐깐해보이던 남자의 말에 인사과 전체가 작게 키득거렸다. 효웅 선배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눈을 마주치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내게 작게 말했다.

“굳이 나를 보라는 게 아니라 인사과 전체적으로 바라보라고.”

“다른 할 일은 없습니까?”

“없어. 과장님도 그냥 그렇게 시키셨고. 자, 저쪽으로 가. 훠이훠이.”

효웅선배는 의자를 밀어서 나를 한쪽 구석에 놨다. 어쩔 도리가 없어 그 자리에 자세를 똑바르게 하고 하는 일을 바라봤다. 뭔가 열심히 서류작업을 하고 인원들이 바빠 보인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무슨 업무를 하는지, 혹은 내 업무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나를 신경써주려나 싶었는데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도 인사과 인원들은 각자 맡은 일에 열심이었다. 즉 아무도 나를 신경써주지 않고 있었다.

“자 점심시간이다. 밥 먹고 하자.”

박상배 과장의 말 한 마디에 효웅선배가 기지개를 펴다가 내 쪽으로 와서 말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예.”

그리고는 직원 식당으로 이동하니 각자 자신이 먹고 싶은 만큼 덜어내는 뷔페식이었다. 오늘의 반찬은 제육볶음이 주 메뉴에 나머지 자잘한 것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대충 담아서는 효웅선배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 말이 많던 효웅선배도 식사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대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겨우 4시간 동안 앉아있는 것으로 이 질문을 하기가 참 애매했다. 넌 생각이 없냐? 알아서 눈치껏 잘하란 말이야. 군대에서 몇 안 되게 배운 것 중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질문조차 속으로 꾸역꾸역 삼켰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리에 다시 앉았는데 오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사과에선 가끔 울리는 전화기를 받아 알 수 없는 소릴 했고, 어느 땐 먼저 전화기를 들어 무언가를 부탁하는 듯 했다. 그 와중에 서류작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으며, 확실한건 모두가 바빠 보인다는 점이었다. 나는 점점 이 시간이 의미 없이 느껴졌으나 다른 일을 할 지침 또한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지루하고 기나긴 시간은 퇴근시간이 되서야 끝이 났다. 과장이 가방을 들고 나서며 말했다.

“오늘은 회식이니까 퇴근합시다.”

“과장님 회식은 퇴근이 아닌데요.”

“헛소리 하지 말고.”

회식자리에서 딱히 술을 억지로 먹인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신입사원인 내 이름을 빌어 저녁을 때우는 수준의 회식이었다. 나에 대한 관심은 딱 건배사에 내 이름을 올리는 정도였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나에게 기계적으로 말을 걸기는 했으나 회사일에 대한 내용은 아니었다.

적어도 힘든 일은 없어?라며 물어볼 줄 알았는데 나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다는 게 이렇게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일까.

퇴근을 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나를 폭신하게 맞이해줬으나, 나는 오히려 점점 늪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결을 할 수도 없으며 해결이 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내일도 겨우 이게 끝일까?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정원이에게 전화를 할까말까 고민하다가 다시 핸드폰을 내려놨다. 아마 정원이도 정원이 나름대로 피로를 풀고 있으리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첫 날부터 톱니바퀴가 들어맞지 않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최악의 기분이었다.

“아, 운동 까먹었다.”

내일하자, 내일. 나는 푹 가라앉는 기분을 핑계 대며 그렇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버렸다.

[작품후기]쓰면서도 별로 재미없는 화네요. 뭐 모든 화가 사건이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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