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38화 (38/138)

38회

1부 막간고깃집을 도착해서 삽겹살을 2인분 시키고 제로콜라와 참이슬을 한 병 시켰다. 술을 대차게 마실 생각은 없었으나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반찬도 나오기 전 정원이는 허리를 숙여 반쯤 몸을 누이고 나를 불만스럽게 올려다봤다.

“2인분이라니.”

“야, 먹고 더 시키면 될 거 아니냐.”

“그래도 2인분이라니.”

“하아, 이모 여기 1인분 더 추가할게요.”

“3인분이라니.”

“적당히 해라.”

하여간에 먹을 것에 대해 욕심이 너무 많은 녀석이었다. 나는 말 안 듣는 어린아이를 다루듯이 정원이의 이마를 잡고 억지로 들어 올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거 먹고 달달한거 하나 먹으러가자.”

“달다구리?”

그제서야 정원이는 머리에 주던 힘을 풀고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른 자세로 고쳐 앉았다. 하여간에 정말로 어린애를 달래는 기분이었다.

곧 고기가 나왔다. 나는 여느 때처럼 집게를 집고 고기를 구우며 정원이에게 제로콜라를 따라줬다. 정원이는 참이슬을 들었다. 내가 말리려고 하자 정원이는 살짝 짜증을 냈다.

“너 따라줄라고 든 거야. 안 마셔, 이 새끼야.”

“아, 어, 음.”

나는 어색하게 소주잔을 들었다. 정원이는 내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고는 잔을 들었다. 그대로 잔을 가볍게 부딪히며 우리는 건배, 하고 작게 말했고 적당히 목을 축이며 동시에 크으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곧 고기가 노릇하게 잘 구워지자 나는 몇 개를 정원이의 앞 접시에 담아줬다. 정원이는 이런 행위가 익숙한 듯이 고기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확실히 이런 점은 편하단 말이지.”

“뭐가?”

“고기 구워주고 챙겨주는 엄마 같은 애가 있으면 참 편하단 말이야. 나 너 없을 때 고기 먹으러 가면 이제 슬슬 어색하더라.”

“이걸 칭찬으로 들어야 하냐, 아님 지랄로 들어야 하냐?”

“당연히 칭찬이지.”

정원이는 씨익 웃으며 고기를 한 점 더 입에 쑤셔 넣었다. 아직 채 씹고 있던 것도 삼키지 않은 채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정원이를 타박했다.

“입에 있는 건 삼키고 먹어라. 누가 쫓아 오냐?”

“아니, 이런 거까지 엄마를 닮진 않아도 되는데.”

“단 것만 삼키려고 하지 말고 이 자식아.”

“난 원래 쓴 거 보단 단 게 좋아. 요즘엔 더 그렇고.”

내가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자 정원이도 찔리는 게 있었는지 고개를 돌리고는 꿀꺽 하고 고기를 삼켰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헤헤거리며 웃었다.

“이제 됐지?”

“에휴, 병신.”

병신이라고 해도 헤헤거리는 녀석을 보면서 얼굴 굳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도 모르게 입가의 힘이 풀렸다. 그리고는 소주를 한 잔 더 들이키고는 고기를 먹었다.

중간중간 정원이의 접시가 빌 때 마다 다시 채워주며 고기를 먹었더니 3인분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정원이를 보자니 이미 충분히 배가 부른 것 같았다. 확실히 양이 많이 줄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정원이에게 말했다.

“일어설까?”

“어? 나는 괜찮은데 너는 더 먹어야 되지 않아?”

“됐다. 어차피 단 것도 먹으러 갈텐데, 뭐.”

“아, 혹시 거기?”

“거기.”

“뭐해? 얼른 일어나지 않고. 빨리 가자, 빨리.”

정원이는 벌떡 일어나며 나를 닦달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숨을 짧게 뱉었다가 녀석의 닦달에 어울려주며 일어났다. 산책을 조르는 강아지를 보는 기분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천천히 걸음을 걸었다. 요즘은 최대한 신경을 쓰며 보폭을 줄이고 있었다.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내 원래 걸음을 빠르게 느끼기 때문이었으며, 그런 점에 대해 후회를 한 번 하고 나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내 옆에서 쫄래쫄래 걷고 있는 정원이가 그랬다.

어차피 모두 동네 안에 있는 곳이고 얼마 걷지 않아 그곳에 도착했다. 좁지만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인테리어가 특징인 그곳은 파이집이었다.

이것저것 부족한 게 많은 동네에 어색하게 꼴랑 고개를 내밀고 있는 이 가게는 알 만한 사람들만 겨우 아는 맛 집이었다. 내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실패를 각오하고라도 새로운 가게를 들어가는 취미가 없었다면 찾지 못했을 그런 가게였다.

가게를 들어서며 점장님께 인사를 하자 점장님도 반가운 듯한 눈치를 보이신다. 그러다 내 옆에 있는 정원이를 보고 살짝 놀라셨다.

“어머, 평소에 같이 오시던 분은 어디로 가시고?”

“아, 그게 사정이 있어서요.”

“하긴. 여자 친구가 생기셨으면 여자 친구분한테 신경 많이 쓰셔야죠.”

나는 그런 거 아니라고 하려다 그냥 참기로 했다.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나도 모르게 정원이에게 고개를 돌리자 마침 정원이도 나를 바라보던 차였다. 그러다가 눈을 마주친 게 어색했는지 고개를 홱 돌렸다.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이곳은 이렇게나 따뜻한 곳이었다. 나 역시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뒷목을 주물거리다가 익숙하게 럼 레이즌 애플파이 하나와 커피 한 잔을 시키고는 정원이를 바라봤다.

“너는 뭐 먹을래?”

“음, 여긴 다 맛있어서 고민 된단 말이야.”

“그래, 어릴 때 사탕 상자를 열고 고민하는 기분이지.”

“맞아! 바로 그거!”

나는 어린 시절 엄마 몰래 찬장에서 동그란 철제 사탕 상자를 열었던 추억을 기억했다. 빨강 주황 하양 초록색 사탕이 알록달록하게 흰색 가루에 묻어있던 그 상자가 얼마나 보물 상자를 보는 기분이었는지. 이 가게는 그런 추억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곳이었다.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던 차에 정원이가 드디어 일생일대의 고민을 마쳤다. 이곳에 올 때마다 매 번 있는 일생일대의 결정이었다.

“전 초콜렛 체스파이 하나랑 우유 한 잔 주세요.”

나는 정원이가 고르기 이전부터 이미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내가 익숙하게 메뉴를 골랐듯 정원이도 익숙하게 자신의 선택을 따라간 셈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잠시 기다렸더니 점장님이 파이 두 개와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 그리고 커피를 내오셨다.

포크 끝으로 파이를 자르니 파이가 파스스 흩어지며 달콤한 소스와 잘 졸여진 사과덩이가 서로를 옹기종기 껴안고 있었다. 그것을 한아름 퍼서 입에 넣으니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혀를 부드럽게 감싼다. 아삭하면서도 몰캉한 식감까지 드는 사과덩이들은 맛만으로 표현 될 수 없는 풍부한 감각을 일깨웠다. 극상의 행복이었다.

정원이 역시 파이를 먹으며 행복에 겨워하고 있었다. 눈동자에 몽실몽실한 감정이 차올라서 흘러나와 얼굴을 아예 풀리게 만들고 있었다. 본인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주보고 있는 사람조차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행복은 전염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정원이에게 애플파이를 한 스푼 떠서 넘겨줬다. 그러자 정원이는 우유를 한 입 마시더니 애플파이를 입 안에 넣었다.

“으으음!”

행복에 겨운 신음소리와 함께 정원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정원이가 이쪽을 보기 전에 커피를 입가에 댔다. 어느새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싹싹 긁어 입안에 틀어넣고 내 애플파이를 바라보는 정원이에게 나는 다소 어이없는 감정을 드러냈다.

“너 고기 먹고 배부르다며.”

“야, 디저트 배는 따로 있는 거야.”

“……무슨 말 할지 알지?”

“닥쳐. 아무튼 그런 거야.”

나는 포크로 애플파이를 반으로 쪼개 정원이에게 넘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먹는 모습을 보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원이는 닥치라고 할 때는 언제고 바로 눈을 빛내며 넘긴 애플파이를 입으로 부지런히 옮기고 있었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남과 함께 먹고, 그것을 공감 받는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굉장히 행복한 것이었다. 나 역시 애플파이를 입안에 넣었다. 달다. 달고 따뜻한 맛이 내 입안에도 퍼지고 있었다.

**

행복의 시간이 끝나고 가게를 나섰지만 정원이는 아직도 행복에 겨워하고 있었다. 옛날엔 이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요즘 단 걸 더욱 좋아하게 됐으니 더욱 행복의 역치가 낮아진 걸까. 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언제든 나를 우쭐하게 만드니 나에게도 나쁠 건 없었다.

핸드폰을 바라보니 8시. 적당히 들어가도 상관없었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니 조금 아쉬운 시간이었다. 나는 정원이의 얼굴 앞에서 박수를 쳤다.

“뭐, 뭐야?”

“정신 못 차리 길래. 이제 돌아갈래?”

그러자 정원이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답을 내놓았다.

“아, 코노 한 번만 가자.”

“아, 가고 싶다고 했었지?”

“어. 노래 불러보고 싶어서.”

“그래봐야 씹덕 여자 노래겠지.”

“왜, 시발. 그래서 불만 있냐?”

나는 두 손을 어깨위로 들었다. 네가 알아서 하십시오. 정원이는 하, 하고는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그럼 닥치고 따라와라.

정원이는 바로 편의점에 들러서 생수를 두 병 사들고는 코인노래방으로 향했다. 코인노래방에 가까워질수록 정원이의 걸음도 빨라졌다. 결국 코인노래방에 도착하자 정원이는 조금 숨이 벅찬 건지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여간에 미련하기는.

방 하나를 들어가 지폐를 넣고 기다리자 정원이가 마이크 커버를 들고 와서 씌웠다. 그리고는 생수를 따서 목을 축이고 있었다. 나는 유행하는 노래를 찾아서 넣고 불렀다. 딱히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은 아니었는지라 노래방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노래를 부르니 그 자체로도 꽤나 신났다.

정원이는 이것저것 고민하더니 일본노래를 예약해 넣은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부르긴 했으나 음정을 한참을 낮추고 부르던 곡이었다. 정원이는 그 곡을 원키로 두고 불렀다.

“아노네~, 와타시 지쯔와 키즈이떼루노~.”

정원이는 마치 노래를 부르지 못해 한이 걸려 죽은 귀신마냥 신나게 불렀다. 노래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신나는 기분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정원이는 옛날에도 노래는 썩 잘 부르는 편이었다. 그 노래가 전부 씹덕 일본노래긴 했지만. 그 때를 떠올리자니 오히려 예전보다 못 부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 부리던 기교나 커다란 몸통에서 나오는 공명음 같은 것이 확실히 줄어있었다. 확실히 아직 자신의 신체에 익숙해지지 않아서일까? 생각해보니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려나 싶었다. 정원이는 뭔가 귀여운 것 같은 노래를 끝내고는 완전히 들떠있었다.

“와! 옛날 같으면 너무 귀여워서 이런 식으론 못 부르는 노래였는데.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되는 점은 진짜 좋네!”

정원이는 그리고는 목을 축였다. 나는 무슨 곡을 넣을까 하다가 정원이에게 리모콘을 넘겼다. 그러자 정원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뭐냐, 안 부르게?”

“아니, 너 너무 신나보여서. 오늘 니 성에 찰만큼 불러보라고.”

“오.”

정원이는 그러고는 자신만만하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말 후회하지마라?”

정원이는 그러고는 여성보컬이 부르던 노래들을 연달아 예약에 넣으며 어떤 곡에선 애절하게, 어떤 곡에선 귀엽게, 어떤 곡에선 몸을 흔들며 노래를 한참이나 불렀다. 그러면서 정원이는 이 노래도 되네, 이 노래도 원키로 불러지네 하며 점점 본인의 흥을 돋우고 있었다.

나는 그런 정원이의 노래를 들으면서 정원이가 노래를 예전만큼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제 몸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건지에 대해서나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여자애가 되고 나서 아직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색하게 들리긴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가에선 묘한 웃음이 지어지고 있었다.

***

“그래서 겨우 간 곳이 피시방에 고깃집에 노래방이라고?”

정원이네 집으로 돌아가자 정하가 도깨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억울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놀다 오라고 해서 둘 다 재밌게 놀고 왔더니 왜 혼이 나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정원이를 바라보자 정원이 역시 나 같이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볼멘소리를 냈다.

“버거도 먹었는데.”

“파이집도 갔는데.”

“어이구 잘했다! 이 화상들아!”

정하는 왜인지 알 수는 없으나 가슴을 치며 답답함을 우리에게 숨기지 않았다. 그에 비례하여 나도 정원이도 입이 점점 오리주둥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정하는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애들을 다그치는 어머니마냥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 둘한테 뭘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냥 그렇다 치자. 에휴.”

정하는 그러고도 한참을 궁시렁거렸다. 옷을 그렇게 입혀놨는데, 화장을 그렇게 시켜놨는데, 강휘오빠도 그렇게나 차려입어놓고, 그런 정하를 보다가 나와 정원이는 눈을 마주치고 몰래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뭘 잘했다고 웃어!”

이크. 정하의 불호령에 우리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숨을 죽여 웃었다. 오늘은 즐거운 날이었다. 간만에 너와 익숙하게 놀았으며, 간만에 우리 모두 행복에 겨워 우리의 방식대로 휴일을 만끽한 날이었다. 이런 날이 이어진다면 우린 금방이라도 다시 익숙해질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날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작품후기]이번 화 막간은 일종의 쉬어가는 챕터입니다. 그래서 제 망상분이 좀 많이 들어갔습니다.

하여간에 최대한 가볍게 쓰려고 한 화입니다. 비유하자면 제로콜라마냥 아스파탐을 많이 첨가한?

하여간에 3일날 여느 때처럼 chapter2로 돌아오겠습니다. 부족한 글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시는 독자 여러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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