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37화 (37/138)

37회

1부 막간정원이네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용건만 전하고 바로 떠나셨다. 그래도 오랜만에 본 딸들이고 하루 정도는 있다 가실 줄 알았는데, 어머님께선 단 한 마디만을 남기고 떠나버리셨다.

“젊은 애들 지들끼리 좋다고 달라붙어 있는데 우리가 남아가꼬 우예하겠노.”

정하는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였고 덕분에 나와 정원이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갈 곳 잃은 시선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원이네 부모님을 배웅하고 나와 정원이가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정하가 먼저 쪼르르 달려가더니 문을 잠가버렸다. 정원이도 나도 순간적으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정신이 멍해져서 서로를 바라보다가 먼저 정신을 차린 내가 벨을 눌렀다. 그러자 문 안에서 논타임으로 정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 나가서 둘이서 놀다 와.”

“뭐?”

“그럼 그렇게 차려입고 집 안에서 뻗댈라고 했어? 나가서 놀고 와.”

결론적으로 이후에 괜히 한 마디 더 했던 나나 정원이나 정하가 “엄마, 아빠도 간 김에 집 안에서 느긋하게 혼나볼래?” 라는 말에 도망치듯이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마자 정원이를 바라보니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생기기 시작했다. 정하가 정성을 다했으리라고 추측되는 풀메이크업에 평소에 입지 않던 여성스러운 옷을 차려입고 단아한 구두를 신고 있는 모습이 누구나 지나가다가 한 번쯤은 돌아보게 할 고아한 매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요소들 때문에 더욱 피곤하리라는 것은 나 정도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밥부터 먹을래, 아님 카페로 가서 일단 앉아서 쉴래?”

“밥부터 고.”

“그래, 그럼 간단한 거라도 먹으러 가자.”

정원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단은 한껏 차려입은 터라 옷에 흘리지 않을 것을 생각하다보니 오히려 정원이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그런 요소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흘리지 않고 먹을 것을 생각하자니 너무 오랜 시간을 찾아 헤매야 했다. 그건 정원이도 나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에 옷에 뭐라도 묻으면 나중에 같이 정하에게 혼나자고 약속해버린 것이었다. 사실 여기가 대학로나 번화가도 아닌 터라 고를 만한 게 별로 없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고른 건 프렌차이즈 햄버거 가게였다. 정원이도 평소에 꽤나 좋아하던 메뉴였다. 역시나 신이 나서 평소에 먹던 엄청나게 큰 버거를 고르려는 모습이 보여 내가 작은 것을 골랐다.

“어? 겨우 그거로 돼?”

“글쎄다. 뭐 일단은?”

정원이는 오랜만에 햄버거를 먹어서 텐션이 업 되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빈자리를 향했다. 그런 까불거리는 모습에서 정원이가 혹시라도 넘어지지 않으려나 걱정을 하던 차에 정원이가 발을 헛디뎠다. 다만 생각보다 더 요란하게 넘어지려고 하기에 허리를 짚은 것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아직 메뉴가 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정원이는 겨우 자세를 잡고 나한테 어색하게 감사인사를 했다.

“어, 고마워.”

“오냐. 더 고마워해라. 감사합니다, 형님 해봐라.”

“하여간에 띄워주면 하늘 높은 줄 몰라요.”

적어도 정원이가 할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내려다보자 정원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먼저 빈자리에 앉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장난기를 얼굴에 한 아름 끌고 와서는 제 딴에 최대한 요망하게 나를 올려다보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고마워요, 강휘오빠~.”

“윽.”

내가 의자에 앉으려다가 멈칫하고는 찡그리며 노려보자 정원이의 얼굴도 덩달아 찌푸려졌다. 투덜대기 시작한 것은 덤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반응은 너무하지 않냐?”

“아니, 하. 같잖은 짓거리 그만해라, 진짜.”

“진짜로 그렇게 안 어울리나?”

정원이는 그러고선 핸드폰 카메라를 셀카모드로 돌려놓고는 안 어울리나?라는 말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귀엽다고 생각하는 포즈를 지어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정원이가 제 멋대로 오해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원이는 객관적인 세간의 눈으로 바라볼 때 취향을 가리지 않고 미인이라고 불릴 만한 얼굴이었다. 내가 순간적으로 굳은 것도 절대로 나의 문제가 아닌 세상 대부분의 반응일 터였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정하가 제 솜씨를 최대한 발휘한 날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모두 정하의 탓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주문번호를 부르기에 햄버거를 받아왔다. 그 와중에 주위에 있는 남자 몇몇이 핸드폰을 보며 애교를 떨고 있는 정원이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아마 내가 아니었으면 몇몇은 정원이에게 말을 붙였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오늘은 정원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장을 하고 나온 날이었으니까.

“오, 역시 몬스터지.”

“허이구, 예예.”

정원이가 햄버거 랩을 벗기고 한입 크게 물자 입주위에 소스가 묻어나왔다. 어린애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아직도 고치지 못했나 싶어 티슈를 들어 뺨을 문질렀다. 그러면서 일부러 애 취급을 하며 정원이를 타박했다.

“너 오늘 풀메이크업 한 건 아냐 모르냐.”

“아, 아는데.”

“그럼 그렇게 있는 대로 입안에 꾸역꾸역 밀어 넣으면 되겠냐, 안되겠냐.”

“모르겠는데!”

정원이가 되도 않는 고집을 부리기에 나는 마법의 이름을 이 자리에 소환하기로 했다.

“정하한테 이른다.”

“죄송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정원이도 오늘 아침 정하가 자신의 얼굴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알 터였다. 그랬기에 얼굴이 사색이 되서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정하라는 이름은 대체 얼마나 많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긴 나만해도 오늘 아침까지 정하에게 한참을 혼난 걸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했다.

정원이는 공격적으로 햄버거를 오물거렸지만 결국 반이나 남기고 내려놓고야 말았다. 그러고선 감자튀김이나 몇 쪼가리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정원이가 남긴 햄버거 반을 들었다. 내 메뉴를 작은 것을 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햄스터가 두 볼에 빵빵하게 해바라기 씨를 물고 가면 한쪽 구석에 몰아놓기라도 하지. 정원이는 지가 남긴 햄버거를 내가 먹는 것을 보자 미안함을 감추려는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진짜 너 여자 친구 없었던 거 맞냐?”

“왜 갑자기 명치 찌르고 지랄이야? 알잖아. 없었는데?”

“챙겨주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래.”

“이게 다 철저한 조기교육의 힘이다.”

어머니와 누나는 어린 시절부터 나를 개조해나갔다. 아버지는 그런 교육지침에 대해 딱히 반대하지 않으셨고 그런 교육의 결과가 바로 나였다.

그러고 보니 정원이가 처음에는 이런 체득된 매너를 불편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짜증을 내는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내게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썩 나쁜 변화는 아니었다. 나 역시 버릇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으니까.

밥을 먹고 나서 어디로 갈까 물어 봤더니 정원이가 뭘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야 오늘 토요일이야.”

“뭐, 아 레이드 뛰자고?”

“안 그래도 요새 에소 손실나서 부들부들하다. 던손실이, 으으으.”

정원이나 나나 기껏 차려입고 피시방을 가서 던파나 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니 꽤나 웃음이 나오는 광경이었지만 나 역시 레이드는 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원래도 주말엔 그렇게 놀았으며, 오히려 몇 주간 이 녀석 때문에 던파를 하지 못했었다는 것이 떠오르자 조금 배알이 꼴리는 것 같았다. 피시방에 도착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이전 아이디를 치려는 녀석을 말리면서 말했다.

“야, 새로 아이디 만들어야지.”

“남은 시간 아까븐데.”

“괜히 잡힐지도 모를 꼬리 만들지 말고 얌전히 아이디나 하나 까라.”

“에휴.”

정원이는 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며 아이디를 만들었다. 게임 내 계정은 어떤가 싶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접속이 됐다. 나는 아메리카노 하나와 제로콜라를 주문하고는 정원이와 오랜만에 던파를 즐겼다.

[어 머임, 진성븝따기랑 미친총박이 듀오쉑들 오랜만에 들어왔네]

[던접한 줄 알았자너 엌ㅋㅋㅋ]

[ㅈ1ㄹ. 던접은 해도 븝접은 못함]

[엌ㅋㅋㅋㅋㅋ진성븝딱쉨ㅋㅋㅋ]

길드원 녀석들도 오랜만이었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길드 연공에 들어가서 캐릭을 연달아 팔아댔다. 정원이와 나는 보통 한 파티를 가곤 했는데, 둘 다 직업군이 퓨딜이 대부분이라 서로 경쟁하듯이 딜을 꼬라박고 딜표를 까곤 했다. 참고로 요즘은 계속 나의 승리였다.

“아, 역시 븝딱이라 딜 못 꼬라박죠?”

“3각 총싸개 새끼야. 우리도 3각 나오면 너 진짜 좆 바르는데, 아.”

“응 개소리 집어 쳐. 배메 지금 삼위일체로 실질 3각이야.”

정원이가 투덜거리며 제 성질대로 딜표를 꺼버렸다. 한참을 비웃고 있었는데 정원이가 갑자기 총 맞은 얼굴을 하더니 나를 바라봤다. 나는 혹시 너무 놀려대서 정원이가 화가 났나 싶어 괜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정원이는 중대사안을 발표하듯이 목소리를 깔고 분위기를 잡았다.

“야.”

“뭐?”

나도 덩달아 긴장해서 대답했다. 그러자 정원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각오를 마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야, 혹시 지금 내가 븝미 코스프레 하면 진정한 븝아일체 아니냐?”

“뭐, 시발?”

긴장이 한순간에 재가 돼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경멸과 한심을 한껏 담아 정원이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정원이는 당장이라도 유레카를 외치고 싶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혼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유저와 캐릭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 한다는 코스프레. 이 전의 나는 역겨워서라도 불가능했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 터. 하지만 뭔가 남자로써의 자존심이, 으으으. 그래도 븝미랑 진정으로 하나가 되고 싶기도 하고, 으으으. 자존심이, 사랑이, 으으으으.”

이 새끼는 진성 노답에 뼛속까지 븝딱이다. 이 명제는 진리요, 참이나니 그것을 내가 증명하노라. 나는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고 기계적으로 입을 열었다.

“레이드 시작한다.”

“앗, 어.”

역시 프로 던창답게 정원이는 하던 고민도 던져놓고 자연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을 더 하고나자 드디어 던생을 마칠 수 있었다. 왜 하기 전엔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정작 하면 힘이 빠지는 걸까. 오랜 시간 부여잡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던파 최대의 미스테리였다.

던파를 끝내고 시간을 보니 저녁을 먹기엔 이르고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엔 애매한 그런 시간이 남아있었다. 즉, 롤 한 판 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롤을 키고 듀오를 돌렸다. 내가 실버였기 때문에 정원이도 부캐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명히 내 주라인을 정글로, 보조라인을 서폿으로 놓고, 정원이도 주라인을 탑으로, 부라인을 원딜로 하는데 바텀 듀오가 걸렸다.

“뭐할까?”

“잘하는 거해라, 제발.”

“그럼 유미로.”

“씨발!”

일부러 유미를 올려놓고 낄낄거리니 정원이가 유미를 밴해버렸다. 이런 개자식을 봤나. 결국 어쩔 수 없이 노틸러스를 픽하니 드디어 옆에서 들리던 시발소리가 사라졌다. 잘 하는 걸 하라는 말은 역시나 모두 거짓말이다. 게임이든 현실이든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게임은 굉장히 익숙한 구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망해버린 상체에 캐리중인 하체. 추가로 우정머를 외치는 탑, 미드와 솔킬 따여놓고 왜 지랄하냐는 정글. 이런 노답새끼들을 버스 태우고 싶지도 않았기도 했으나 버스를 탈 능력 역시 능력이었다. 이 녀석들은 명백히 그럴 실력도 모자랐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싸고 있는 주제에 말조차 쳐듣지 않고 있었다. 결국 게임은 명백하게 패배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에 맞춰 정원이는 한숨이 깊어졌다.

“이 새끼들 얌전하게 내 오더만 쳐들어도 이길 건데.”

“오빠 한 마디만 해도 될 걸?”

그러자 정원이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내 쪽을 향했다. 두 눈에는 공허함과 회한이 어려 있었다. 일리가 있는 소리이기에 더욱 그랬다. 마침 정원이의 아이디도 11년 동안 유구한 전통으로 이어오던 계집애 같은 아이디였다. 정원이가 한 번도 넷카마짓은 하지 않아서 누구나 사내새끼인줄은 알았지만.

정원이는 기계적으로 엔터를 누르고 무언가를 치다가 다시 백스페이스로 지우고 엔터를 누르는 행위를 반복했다. 경쟁심과 자존심 사이에서 내적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람하자니 뭔가 상황이 우습기 시작했다. 결국 정원이는 기나긴 고심 끝에 승리욕쪽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즉, 특정한 목적을 담은 메시지를 엔터로 쳐버리고야 말았다.

[오빠들, 내가 캐리 해 줄 테니까 쪼끔만 힘내주라.]

[?]

[원딜 여자임?]

[어. 그러니까 오빠들 좀 힘내 달라구.]

“이 씨발 새끼야.”

정원이는 입으로는 욕을 내뱉으며 게임 상에선 열심히 똥싸개들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지금 놀리거나 내가 던지는 순간 최소한 3일은 삐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오히려 엔터 한 번 치지 않고 빡겜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효과는 확실했다. 정원이의 핑에 팀이 모두 하나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고, 정치질 역시 어느새 사라졌다. 분쟁이 사라지고 생긴 건 하나의 팀, 하나의 움직임, 하나의 목표였다. 목표가 승리가 아니라 정원이의 관심파밍이라는 것은 정원이에겐 다소 비극이겠지만.

[나 탑 갈게, 텔 있어.]

[원딜눈나 나는 머해]

[원딜아 미드 반반선 어디로 자를까]

자기들끼리 싸우던 녀석들이 단숨에 얌전해져서 정원이의 오더를 따르는 모습을 보니 이 상황자체가 희화화가 된 것 같았다. 게임은 이겨가고 있었으나 정원이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썩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랬다.

결국 마지막 한타 때 정원이의 오더 하에 게임이 승리로 치닫자 그제서야 정원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회한과 후회가 서린 한숨이었다.

“괜히 했다, 시발. 걍 서렌 칠 걸.”

[원딜 혹시 어디 삼?]

[오빠가 캐리 했으니 알려주냐?]

[캐리 ㅇㅈㄹㅋㅋㅋ]

[원딜 담판 듀오 ㄱ?]

[ㅈ1ㄹ1ㄴ ㅅ1ㅂ] “지랄하지마라 진짜 시발.”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정원이가 욕설을 치며 서라운드로 욕설을 뱉는 모습을 보니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나는 웃음을 참으려고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부들거렸다. 정원이는 결국 세 명을 전부 차단 걸어버리고 게임을 껐다. 게임이 꺼지고 남은 것은 하얗게 불타버린 정원이였다.

“아, 왜 했지? 어차피 부캔데? 한강휘 십새끼가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혜지는 강휘였는데?”

“오냐, 수고했다.”

노틸은 혜지가 아니다. 나 역시 잘하고 있었다. 할 말은 많았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나는 정원이의 어깨를 툭 쳐주며 컴퓨터를 껐다. 정원이는 그러고도 멍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굴에 후회와 회한에 더하여 수치심과 자괴감이 창궐하고 있었다.

고작 삼십분 남짓 한 시간에 온갖 인생에서 겪어볼 수 있는 감정이 찾아올 수 있다니 정말이지 롤은 신묘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정원이의 자그마한 어깨를 가볍게 주물러줬다. 그러자 정원이가 앓는 소리를 내며 반응을 보였다.

“으으으, 내가 왜 너 때문에, 으으으으.”

“그래,그래, 수고했다. 다정원 형님의 캐리 오졌구요, 지렸구요.”

“그건 당연하고, 이 나쁜 놈아. 으으으.”

정원이는 자신의 행동을 곱씹으며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대신 나를 탓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롤을 킨 것도 나의 탓, 나와 듀오를 돌린 것도 나의 탓, 여자애로써 팀원에게 비위를 맞춘 것도 나의 탓이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나는 잠시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기로 했다. 정원이가 캐리를 해준 것과 더불어 부들거리는 것을 보면서 웃음을 참았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정원이의 어깨를 주물거리고 있자니 주위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둘러보니 몇몇이 황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긴 원딜로 하드캐리하는 예쁜 여자애는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충분한 소재였다. 등급이 실버라고 해도. 물론 다정원은 플레였지만. 나는 정원이를 달래며 의자를 살짝 당겼다.

“밥 먹으러 가야지?”

“좀 만 더 쉬고오.”

“고기 먹을 건데?”

“고기!”

정원이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본인도 조금 머쓱했는지 괜한 헛기침을 몇 번 하다가 조금 머뭇거리며 자신의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옷 입고 고기 먹어도 되려나?”

“대학 다닐 때 여자애들 차려 입고도 잘 먹던데. 그렇게 치면 아까 햄버거는?”

“그런가? 그렇지? 그럼 됐고!”

정원이는 정하에게 말할 핑계거리를 찾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공범의 마음으로 정원이의 등을 밀어준 셈이었다. 정원이는 내가 제시한 핑계거리에 기꺼이 탑승하여 고깃집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느새 정원이는 고기를 먹을 생각에 가득 차있었다. 정말 이런 점은 단순해서 편한, 아니 좋은 녀석이었다.

[작품후기]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정말 잘 쉬기만 하다가 온 녀석입니다.

이전 공지를 지우려고 했더니 코멘트가 많이 달려있어 그 코멘트들은 스샷으로 찍어놓고 글은 지웠습니다.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이번 화는 원래 아프지 않았다면 이번 화까지 딱 쓰고 일주일 휴식을 가질 예정이었던 화입니다. 그래서 chapter도 1부 막간이죠.

오늘은 00:07분에 한 번, 이따 점심(12:07)에 예약 걸어 놓은 막간 후편이 올라갈 예정입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일일 연재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00:07)

비축분을 만들진 못했지만... 어떻게든 되리라 믿습니다... 스토리는 다 짰으니까 어떻게든 될 꺼야.

아무튼 항상 관심 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주시는 독자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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