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회
chapter1밤을 지새우며 고민한지 며칠이 지났다. 의미 없이 취업 공고를 뒤졌다가, 컴퓨터 앞에서 몇 시간을 멍하니 있다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기절하듯이 잠을 자는 날이 길어져만 갔다. 방 밖으로도 잘 나가지 않기 시작했다. 밥도 안 먹었더니 누나가 숟가락으로 때리기에 누나가 돌아왔을 때 한 끼 정도 챙겨먹었다. 그 외에 방밖을 나가는 건 화장실을 갈 때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부모님이 건드리지 않는다 싶었는데 누나가 말을 잘 해준 모양이었다. 그래서 방문을 걸어 잠굴 수는 없었다. 누나가 매일 찾아오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말 안 할 거니?”
“어.”
“자살할 건 아니고?”
“그렇게 보여?”
누나가 한숨을 푹 내쉰다. 요즘 누나는 나와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나 역시 누나가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걱정하며 매일 누나를 찾았을 터였다.
“그렇게 보여.”
“……절대로 안 해.”
“그럼 다행인데.”
누나는 책상에 앉아 검지 손가락으로 책상을 주기적으로 두드렸다. 나와 판박이인 행동이었다. 생각이 깊어질 때 무심코 나오는 버릇이었다. 누나가 무슨 생각을 하나 했더니, 누나는 눈을 찡그리며 고민하다가 어느덧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대답을 들을 의도는 없다는 듯이 질문은 속사포처럼 쉬지 않고 던져졌다.
“요새 고시 준비가 힘들어?”
“고시 포기하고 다른 직장 준비하는데 부모님한테 말하기 힘드니?”
“아님 혹시 중학교 때 안 왔던 사춘기가 와서 자아 탐구하니?”
“혹시 돈이 모자라니?”
“사채 들거나 빚졌어?”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드니?”
“아무것도 안 풀려서 자괴감 드니?”
“혹시 친구 문제니?”
“……친구? 친구랑 싸웠어?”
“싸웠구나. 그럼 여자 문제니?”
누나는 그 질문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여자 문제구나.”
“아니야.”
“저번에 사진 보내줬던 걔 문제니?”
“아, 아니라고.”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누나는 내 태도에서 무엇을 느낀 것인지 확고한 기색이었다.
“엄마랑 아빠한텐 알아서 잘 둘러댈게. 대신 정리되면 나한테 먼저 말하렴.”
“하아, 아니라고. 제발.”
“알았어, 일단 아니라고 해줄 테니까.”
누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만족한 얼굴로 방문을 나가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웬만하면 니가 먼저 움직이렴. 여자애는 대부분 남자가 먼저 오길 기다리는 법이야.”
“아, 아니라고 좀!”
누나가 결국 문을 닫고 나갔다. 아직 계급도 딸려서 취조 같은 건 해보지도 않았을 텐데 척하면 척이라는 듯 알아버리는 게 어이가 없다. 정원이 문제가 여자문제인지는 둘째치고라도. 피가 통하기 때문에 아는 걸까. 나도 누나가 문제가 생기면 알게 되는 걸까? 아니, 누나가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이겠지. 경찰이라는 직업이 퍽이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카톡을 켰다가 통화버튼을 눌러 발신기록을 확인했다가를 반복했다. 고민한 시간은 길었고 고민하는 동안 답은 나오지 않았으나, 적어도 더 이상 고민을 해봐야 새로운 생각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은 도출해 낼 수 있었다.
한숨을 내쉬고 다시 숨을 들이킨다. 통화버튼을 한참을 주시하다가 다시 핸드폰 화면을 끈다. 전화를 해서 무슨 말을 하려고. 첫 마디부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우물쭈물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누구든 옆에서 바라보면 짜게 웃을 행동을 반복하던 중이었다.
위이잉
황급하게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자 정하였다. 나는 정하의 통화도 무시해야 하는가 고민했으나 결국 계속 받으라고 재촉하는 듯한 진동소리에 결국 전화기를 든다.
“어.”
[진짜 끊기기 전에 겨우 받는 거 봐.]
“어. 왜?”
[어쭈.]
뚝
정하가 통화를 끊는다. 겨우 이 정도로 전화가 끊긴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피곤해서 환청을 들은 게 아닐까 싶어 통화내역을 확인한다. 스크롤을 내릴 필요도 없이 정하가 맞다. 최신통화니까. 그 때 다시 전화가 울린다.
“어!”
[그래도 이러네. 에휴, 그래 내가 져준다.]
“뭘 져줘.”
[착하고 아름다운 다정하님이 오빠랑 언니를 위해 져준다고!]
그리고 전화가 끊긴다. 정하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정하가 하고 싶은 게 대체 뭘까 싶어 얼굴을 찌푸린다. 그런데 그 때 카톡에 익숙한 어플의 맵으로 한 지점이 찍힌다. 정하네 집 근처에 있는 치킨집이다. 이곳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려다가 만다. 어차피 정하의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난 선택을 한 셈이다. 나는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마지막으로 씻었던 때가 언제였는지를 헤아려본다. 씻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방에서 나와 꼼꼼히 샤워를 한다. 오랜만에 씻으니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씻어서 기분이 좋은 건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대해서 기분이 좋은 건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옷장을 바라보며 고민을 한다. 너무 화려하게 입고 가면 티가 나려나? 일부러 익숙한 옷을 입는다.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 밖을 나가니 점심쯤인 것 같다. 오랜만에 외출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보지 못했던 햇빛이기도 하다.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데 간만에 나온 건데도 가는 길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몸이 익숙하게 움직인다. 그 사실이 웃겨서 피식하고 웃게 된다.
익숙한 루트를 따라 역을 나와 찍혀있는 지점에 간다. 사실 직접 들려본 적은 처음인 치킨집이다. 시켜먹기는 꽤나 시켜먹었던 프렌차이즈 집이지만.
들어가려고 하는데 들어가기 전에 몸이 굳는다. 정원이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오는 길에 그것도 하나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후회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다가 주위의 눈초리가 따가워 반쯤 떠밀리듯이 가게에 들어간다.
“어, 왔어?”
들어가 보니 정원이는 없고 정하만 자리에 앉아서 손을 흔든다. 구석진 자리다. 좋은 얘길 나누는 것도 아니니 구석진 자리가 편하긴 하다. 정하의 사소한 배려에 감사를 느낀다. 나는 정원이가 없다는 사실에 반쯤은 안심하고, 반쯤은 아쉬워하며 자리에 앉는다. 정하는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어깨를 툭 친다.
“그렇게 울상일 거면서 싸우긴 왜 싸워!”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언니도 오빠도 하여간에 고집만 더럽게 세 가지고 문제야!”
정하가 타박하는 말에 반박을 할 게 없다. 정하의 타박은 치킨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이어진다.
“남자가 쪼잔하게 언니가 부를 때까지 연락 한 통 안하냐?”
“전화라도 제대로 받던가. 전화도 제대로 안 받아요.”
“싸운 이유도 진짜 어이없더라. 둘 다 애기들이야?”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아, 맞다. 치킨 오빠가 당연히 사는 거지?”
“물론이지.”
나는 당연한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하의 말이 맞다. 사실 정하가 나선 상황 자체가 웃긴 것이다. 나와 정원이는 둘 다 어른인데 말이다. 정원이에게 먼저 연락하는 게 맞나? 나는 이 순간에도 다시 후회한다. 정하는 열심히 치킨을 먹는다. 정하가 하도 맛있게 먹기도 하고, 왠지 치킨을 먹으려고 해도 넘어갈 것 같지 않아 나는 애꿎은 맥주만 들이킨다. 그리고 정하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며 묻는다.
“정원이는?”
“몰라.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못 나오겠대.”
“모른다니?”
“오빠랑 뭔 얼굴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대.”
나는 그 말에 왠지 그 모습이 나와 같다고 느껴져 동질감을 느낀다. 그 동질감이 내 안에서 따뜻하게 울려 퍼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자주 웃게 되는 날이다. 그 날 이후로 얼마나 웃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웃질 않았으니 기억을 할래도 할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어이구 화상아, 언니 얘기 하자마자 얼굴이 풀리네.”
“그런 거 아니라고.”
“난 뭐라고 안했다?”
고개를 숙여서 보이지 않지만 정하가 느물거리며 웃는 것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봐야 놀림 받을게 뻔하여 나는 곤란해 하는 기색으로 손을 젓는다.
“아니 싸웠는데 걱정할 수도 있지.”
“무슨 걱정했는데.”
나는 입을 열었다가 목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어 다시 입을 다문다. 천천히 말을 고른다. 정원이가 왔으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말도 준비하지 않았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정원이가 오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시 천천히 말을 고른다. 고르고 골라 마침내 해야 할 말이 생각이 난다. 고개를 숙인 채로 천천히 입을 연다.
“다시는 못 볼까봐 걱정했어.”
“응.”
“내 소중한 친구를 다시는 만나지 못 할까봐 걱정했다고.”
“나도 알아.”
“내 실수로 정말로 친한 친구를 잃는 게 너무 싫었다고.”
“응. 나도 그래.”
도중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든다. 어느새 정하는 뒤로 빠져있고 정원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있다. 나는 얼굴이 붉어져 그것을 숨기려고 다시 고개를 숙인다. 머리 위에서 다시 정원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뭘 숨기고 그래. 나도 쪽팔려.”
“하, 씨. 뭘 숨고 그러냐.”
“나도 무서워서.”
정원이의 목소리가 떨린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래, 이렇다면 용서할 수 있다. 너도 우리가 다신 만날 수 없다는 게 무서웠다는 것을 나도 알게 된다면 나 역시 너를 용서할 수 있다. 우리는 싸움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서로를 용서할 차례다. 나는 사과의 메세지를 한참 입 안에서 굴리다가 겨우 뱉는다.
“……미안.”
“……응, 나도 미안.”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손을 내민다. 정원이가 그 손을 맞잡는다. 맞잡은 손에 따뜻한 온기가 맴돈다. 나는 마침내 고개를 든다. 정원이가 웃는다. 나도 웃는다. 우리는 그렇게 화해를 한다.
그랬었다면 좋았을 텐데.
오늘은 7월 1일. 정원이가 대구에 내려간 날이었다. 충전이 되지 않은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나는 아직도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정원이가 없는 여름이 시작된다.[작품후기]왜 괜히 강휘가 우중충해져서 애꿎은 나만 비축분도 못 쌓고 연참을 해야하는가...
챕터가 길어지네요. 하지만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니 길어질 수밖에 없는 챕터입니다.
코멘트는 항상 확인하고 있습니다. 저저번화에 설명도 안했는데 분석이 되어 있길래 조금 놀랐습니다만은...
항상 부족한 글 좋게 봐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힘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