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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30화 (30/138)

30회

chapter1집에 돌아왔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비적비적 몸이 이끄는 대로, 발 가는 대로 돌아왔는데 인간의 귀소본능이라는 것이 대단한 모양인지 정신을 차리니 이미 집이었다. 사실 정신을 차린 것도 내 의지로 차린 것은 아니었다.

“다녀오셨어요~.”

누나는 오랜만에 휴가였는지 집에 있었다. 내가 평소보다 빨리 돌아온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휴가이리라. 누가 돌아왔는지 맞이하려고 나오던 누나는 나를 바라보자 눈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손으로 내 두 뺨을 감싸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도 이때였다.

“……왜?”

“괜찮아?”

누나는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알아챌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별 일 없어.”

“별 일 없다는 애가 낯빛이 이렇게 창백해서는.”

누나는 그렇게 내 뺨을 한참을 잡고 있었다. 평소에도 떼어내기 힘든 누나를 지금의 내가 떼어낼 힘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개를 돌리고 있자 누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 해줄 생각 없지?”

“……어.”

“에휴, 알았어. 들어가서 쉬어.”

누나는 나를 놓아줬다. 내 뺨에서 따뜻함이 자리를 비우자 공허함이 찾아왔다. 사고를 하기 시작한 내게 찾아온 것은 시린 현실이었다. 시린 현실이 나를 손가락질 하고 있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방안을 들어왔다. 그리고는 침대에 앉았다. 아니 마침내 다리가 풀린 것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깍지를 껴서 이마를 받쳐 내 체온에 기대어 나는 생각한다. 오늘 있었던 일을 되돌아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니 과연 잘못된 것이 있는 걸까? 이게 우리의 올바른 형태였던 것이 아닐까? 이미 정원이가 여자가 된 시점에서 어쩔 수 없이 여자로써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하는 정원이와 여자를 어색해하는 나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파국을 향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아니,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원이가 잘못된 것이다. 오늘 나의 행동은 정당성을 띄고 있었으며 내 의도 역시 정원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내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정원이가 잘못한 것이다.

아직 유아기도 지나지 않은 어린애도 아니고. 의도가 좋았다고 해서 모든 일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며, 내 행동에 내재된 폭력성을 좋은 의도라고 퉁칠 수 있다고? 정원이는 심지어 여성으로써 자각을 하기 시작한 단계였으며, 자신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강압적인 폭력을 당할 뻔한 존재였다. 성에 대한 자각이 병아리만도 못한 녀석이었다.

애시당초 정원이가 내 행동에 대해 마냥 좋게 볼 수 있는 인격체였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정원이를 챙겨주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의 일이야 의도는 좋았다라며 현상에서 고개를 돌린다고 하더라도, 결국 정원이에게 쏟아낸 내 언어는 분명히 정원이를 상처 입히기 위한 목적을 지닌 수단이었다. 그런 주제에 의도가 뭐 어쩌고 어째?

좋아, 이번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누가 잘못했는가가 중요하겠는가. 박수도 쳐야 소리가 나며 하필이면 박수를 치게 유도한 관객도 있었다. 아 물론 나는 지금 성규가 이 사태를 초래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와 정원이가 둘 다 합이 맞아서 싸움이 났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사실 이 문제는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누가 원인이면 뭐 어때. 내가 혼자 잘못한 거로도 됐다. 그게 뭐 중요하겠는가. 잘못의 원인을 시시비비를 따져봐야 이 사태를 변화시킬 순 없었다.

아니, 사실 중요한 문제였다. 법정에서도 피의자의 동기를 중요시하지 않는가. 내가 만일 오롯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택시를 타고 정원이네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들기고 정원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을 것이다. 정원이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정하가 문을 열어줬을 것이다. 그럼 나는 정원이 앞에 서서 정원이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정원이의 마음을 풀기 위해 갖은 아양을 떨어댈 것이다. 정원이도 이렇게까지 사태가 어그러지기를 원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그 때 그런 표정을 지었겠지. 그러면 문제는 해결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오롯이 혼자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존심? 정의감? 가치관? 무엇이든 좋았다. 나는 우리 둘이 퍼센테이지의 차이는 있더라도 일정 파이만큼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존심이든 정의감이든 가치관이든 뭐든 이것은 일종의 선이었다.

하지만 나는 먼저 선을 넘은 것이 정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훨씬 이전부터 정원이가 그어놓은 선을 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선을 넘은 이들을 과할 정도로 가혹하게 끊어냈다. 그들을 마음속에서 지워내고, 서서히 멀어져갔다. 이 역시 고민을 하고 난 이후의 선택이었으나, 이번엔 그런 고민을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지고 있었다. 끊어내기로 결심해놓고 다시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정원이에게만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근저에 깔린 것이리라.

과연 정원이가 여기기에 내가 선을 넘었다고 한다면 언제였을까? 정원이가 내 선을 넘은 시기는 명확했다. 개찰구 앞에서 계집애마냥 쫓아오지 말라고 해놓고 내가 저를 찾은 것을 일순간 반갑게 여긴 것을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이전부터 정원이가 계집애처럼 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정원이를 동경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정원이가 여자가 된 이후로 나는 정원이를 동경하고 있었다. 정원이가 세계에 굴복하여 자신을 여자애로써 포장당하는 것이 아닌 홀로 세계에 대항하며 자신을 다정원으로써 정의하는 그 모습에 나는 정원이를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는 달랐기에 동경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원이가 여자가 된 그날 정원이를 보며 고찰했다. 과연 내게 저런 일이 생겼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에 대하여.

나는 감히 나라는 자아를 구성하는 것을 나의 정신, 나의 육체, 내 의지로 맺은 세계와의 관계에 의해 구성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자애가 된다? 이는 나의 육체의 변화를 의미하며, 나의 주도적인 의도로 구성하는 세계와의 관계가 피동적인 관계로 재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을 터였다. 세계에서 눈을 돌리고, 모두와의 관계를 끊고서 어딘가에 홀로 훌쩍 떠나 한강휘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살았을 것이었다. 한혜정이던 한예지던 적어도 한강휘로 남진 않았겠지.

그렇기에 나는 다정원으로써 남기로 한 다정원 너의 용기와, 너의 의지와, 너의 선택을 존중하며 동경하는 것이었다. 그게 너무 눈이 부셔서, 나는 계집애 마냥 구는 너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이 정원이가 넘은 선이었다.

내게 있어 선을 넘는다는 행위는 내 가치관을 무시하고 침범하는 행위였다. 정원이는 홀로 내 가치관을 침범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원이에게 있어 내가 선을 넘는 행위는 달랐다. 세계와 함께 손을 잡고 넘어와 공격하고, 파괴하고, 우롱하는 행위였을 터였다. 심지어 그것을 대항할 수 있는 이는 정원이 자신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옆에서 손을 잡고 같이 대항해주던 내가, 도리어 세계와 손을 잡고 정원이의 선을 밟은 것은 정원이에게 보다 큰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아마 견딜 수 없는 배신행위로 여겼으리라.

“후우.”

그렇게 생각하자 무겁게 눌린 폐부가 숨을 쥐어짠다. 그래, 그런 의미였는가. ‘너만큼은 나를 이해해 주어야한다.’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그런 것이었는가. 나는 이제서야 그 말을 해체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직시한다. 너무도 억지스러운 그러나 내가 반드시 지켜야했던 그 룰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뼈저리게 납득한다.

나는 정원이를 먼저 찾아갈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정원이가 오늘 내 선을 밟은 것도 일종의 실수였다. 분위기를 타서 내뱉은 말이었으며, 눈치가 모자란 정원이가 내 비언어적 메세지를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었다. 내가 좀 더 배려할 수 있었다면 직접적으로 언어화 한 메세지를 던져 줄 수도 있었겠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또한 용서받을 수 있는 실수였다.

하지만 누구나 실수를 한다고 해서 누구나 무엇이든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한 실수가 그러했다. 내가 정원이를 계집애로 여긴 것은, 여자로써 대한 것은 일종의 원죄와도 같았다. 나는 단순히 정원이를 여자로써 규정하여 세계와 같은 억제를, 폭력을 가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정원이는 내가 자신을 여자로써 규정한 순간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를 잃은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이해했다.

그렇다면 정원이는 왜 이전에 계집애처럼 굴었단 말인가. 내 속에서 고집 센 어린아이가 반발하며 묻는다. 정말 이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냐며, 외면해도 되는 문제냐며 묻는다. 나는 그에 답한다.

정원이는 지금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자신의 여성성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것이 다정원을 무너지지 않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피한다고 하여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정원의 육체가, 다정원의 호르몬이, 다정원이 자연스럽게 시행했던 습관에서 느껴지는 사소한 불편함이,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이 그를 그녀로 서서히 변하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 내가 했던 것과 같이.

나는 내가 다정원에게 여성성을 자각하길 바라면서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을 혐오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어리광이 아닌가. 역설적인 모순이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부딪히고 견디지 못해 부서진다. 애시당초 동시에 성립할 수 없는 명제였다. 다정원은 여성이다. 다정원은 여성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다정원은 여성임을 자각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으며, 나는 그것을 보조하는 주제에 다정원이 자각하길 원하지 않는다. 정의를 한 말부터가 한 눈에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렵지 않은가. 내 심정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내 심정을 똑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 현재의 기분조차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병신같은 내 자신이 너무 막막하여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그러나 눈을 돌린 곳조차 너무 어두워 더욱더 침잠해가는 기분을 느낀다. 옛날에 시골에 내려가서 바라봤던 밤하늘은 그렇게나 반짝였는데, 그때의 위안을 나는 이제 받을 수 없다.

가끔 반짝이는 빛들도 이제는 별빛이 아닌 인공위성이라고 알고 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 진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과거 희망을 상징하던 별이 이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 아파서 한숨이 폐부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막막하다는 감정을 입대한 그 날보다 더 생경하게 느낄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우우우웅

진동으로 맞춰놓은 핸드폰이 울리자 나는 빠르게 핸드폰을 집고 화면을 바라본다. 혹시라도 네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까봐. 그러나 화면엔 최성규라는 이름이 비치고 있었다. 나는 실망감을 잠시 내려두고 책임감을 토대로 전화기를 든다.

[어떻게 됐어?]

“어떻게도 안 됐어.”

[……하아, 이렇게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니 잘못이 아니야.”

[아니, 그래도. 아 미치겠네.]

성규는 진심으로 미안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성규의 탓은 일절도 없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로 니 탓 아니야. 너 만나기 전에 이미 한 번 싸웠었어.”

[아니, 그러면 더 그럼 안 됐지. 눈치 채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냐 괜찮아.”

괜찮아?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성규의 태도나 성규의 말이 괜찮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이 상황이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성규를 안심시키려고 성규가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성규를 위로한다. 정작 위로가 필요한 녀석의 얼굴은 필사적으로 머릿속에서 지워가면서 나는 성규의 인공위성이 된다.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밤이 깊어져간다. 감정과 함께 무르익어가며 헛다리나 짚어가면서 밤을 지새운다. 이미 취한 걸 알면서도 술 한 잔이 더욱 그리워지는 밤이었다.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쓸쓸함과 별 하나의 동경과 별 하나의 거짓을 헤아리는 밤이었다.[작품후기]아아아아아아 난 왜 이런 개같은 화를 써서 연참을 해야 하는 거야... 대체 왜야... 내 비축분, 내 비축분은 어디로 갔냐 이말이야...

마지막 별 하나의~ 하나의 동경과 까지의 부분은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차용한 부분입니다. 강휘의 심정을 잘 드러내 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휘의 입으로 읊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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