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14화 (14/138)

14회

chapter1“역시 맛있네.”

“오~. 진짜 맛있는데?”

“아, 오빠 그러고 보니 진짜 입 맛 까탈스러웠지.”

정원이야 원래 이런 밥 같은 걸 좋아해서 호평을 기대했지만 성규랑 정하도 입에 맞는 것 같아서 조금 어깨가 으쓱한다. 사실 난 식당만큼은 내가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남을 데려오고 싶지가 않았다.

“까탈스럽다니 뭐냐. 짬밥도 잘 먹고 살았구만.”

“그건 안 먹으면 뒈지는 거고.”

정원이가 낄낄거리며 비아냥댄다. 성규는 그런 정원이를 보며 조금 놀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진짜 다녀온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여성분들은 알기 힘드실텐데.”

“아……. 뭐 그렇죠.”

정원이는 아차 싶었는지 대충 대답하고는 그릇에 고개를 박고 먹었다. 그런데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 녀석은 아직도 숟가락에 한가득 퍼고 처먹느라 음식물을 반절은 흘리고 있었다. 나는 티슈를 넘기며 말했다.

“야, 좀 숟가락에 덜 떠서 먹어라. 애새끼도 아니고 자꾸 흘리잖아.”

“야, 평생 버릇이 하루이틀 고친다고 되냐?”

그러면서 티슈로 대충 입가를 닦는 모습에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사실 썩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그래서 할 말이 없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때 성규가 돌아보며 말했다.

“강휘가 정원씨를 꽤나 챙기네요.”

“아니 뭐, 얘 척 봐도 모자라잖아.”

“누가 모자라냐. 이 자식아!”

정원이가 발등으로 내 발목을 걷어찼다. 이 녀석 몸이 바뀌고 나선 나를 때리는데 거침이 없다. 오히려 더 과격해진 것 같다. 정원이는 그러고 나서는 성규를 바라보고 더듬으며 말했다.

“그, 그리고 정원이면 되요. 어차피 동갑인데.”

“아, 그래? 그럼 나도 성규면 되. 말은 서로 까자.”

“아, 나만 말 높여서 말해야 되잖아~.”

“그럼 정하도 말 놔~.”

“정말로? 고마워 성규오빠!”

정하가 기쁜 듯이 웃으며 말했다. 꽤나 분위기가 좋다. 맛있는 밥은 먹는 사람도 기쁘게 만들기 마련이다. 처음엔 야유도 좀 있었지만 내 선택이 썩 틀린 것이 아닌 것 같아서 왠지 기분이 좋았다. 정하를 마지막으로 밥을 다 먹은 것을 확인한 나는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음은 카페나 가자. 어디 갈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서로 좀 얘기할 수 있는 카페가 낫지 않을까 싶네.”

“그런 거까지 설명 안 해도 돼~.”

정하가 웃으면서 답했다. 정원이는 성규 특유의 인싸식 대화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하여간에 이 사회성 모자란 녀석. 남을 공격할 때나 말빨이 좋아져서는 말이야. 나는 그런 정원이와 카페로 향했다. 정하와 성규가 붙어있도록 일부러 정원이를 챙긴 것 이었다. 정원이가 조심조심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야, 근데 저 허우대 멀쩡하게 생긴 미남은 대체 뭐냐.”

“뭐가?”

“아니, 너무 상쾌한 미남이라서 말하기가 오히려 무섭다야.”

“아. 성규가 좀 그렇긴 하지. 너랑 달리 어딜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지.”

“그럼 난 어디다 내놔도 부끄러운 친구냐 이 자식아?”

“어휴, 이미 내가 뭐라고 할 지 알 지 않냐?”

정원이는 날 째려봤지만 자신도 딱히 뭐라고 할 말은 없었는지 부들부들 거리기만 했다. 그래도 옛날엔 겉모습도 누구 소개시켜주기 부끄러운 친구였지만 지금은 적어도 겉모습만큼은 부끄럽지 않잖냐. 이제는 어느덧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되는 안쓰러운 녀석이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정원이가 입을 못 떼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정원이의 이미지엔 더 좋을지도 몰랐다. 우리는 카페에 도착하고 자리를 잡았다.

“나는 바닐라 라떼 휘핑크림 듬뿍~.”

“난 아메리카노로.”

“……화이트초콜렛 프라푸치노 자바칩 갈아서.”

“뭐?”

묘한 위화감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정하는 나름대로 날 배려한 간단한 메뉴에 성규는 원래 먹던 아메리카노였지만 정원이는 평소에 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 정도를 먹던 녀석이었다. 오히려 단 것은 찾지 않는 녀석이었기 때문에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생각을 되짚고 있었는데 정원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재차 말했다.

“화.이.트.초.콜.렛.프.라.푸.치.노.자.바.칩.추.가.로.”

“어, 어.”

나는 멍청하게 대답을 하고는 내 몫의 아메리카노까지 포함하여 주문을 넣었다. 그런데 화이트초콜렛 프라푸치노 자바칩추가는 대체 언제 먹어보고 시켜본단 말인가? 대구에 내려갔을 때 내가 모르는 일이 여러 가지 있었던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대구를 내려가기 전에도 저번에 병원에서 나와서 카페를 갔을 때 정원이는 초콜렛 케이크를 퍽이나 잘 먹었었다. 나는 왠지 내가 알던 정원이와 지금의 정원이의 차이가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자리에 돌아오자 정원이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번에 정하랑 둘이서 카페를 갔는데 맛있어서 다시 고른 거뿐이야.”

“……누가 뭐래냐.”

정원이는 왠지 모르게 변명을 하는 태도였고 나도 왠지 그것을 썩 납득하지 못하는 태도를 취했다. 정원이는 내 태도를 보며 얼굴을 찡그리다가 갑자기 정하를 바라봤다. 그러자 정하가 정원이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언니, 잠시 따라와.”

“엉? 그래도 돼?”

“그냥 일단 따라와.”

정하가 웃으면서 정원이를 데리고 간다. 어디로 데려가는 지는 궁금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성규도 못 들은 체 하는 것 보니 딱히 말 걸지 않았던 게 정답이었던 것 같다. 이왕 성규와 둘이 됬으니 이 기회에 정하에 대한 거나 물어보고 싶어졌다. 왠지 중매선 할머니 기분이 들지 않는가.

“정하는 괜찮냐?”

“와~. 둘이 어디 간다 그러고 숨어있을 지도 모르는데.”

설마 그럴까 싶었지만 혹시나 몰라서 내가 두리번거리자 성규는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정하 괜찮은데? 그리고 둘도 아마 이런 얘기하러 가지 않았을까?”

“글쎄다. 정하는 몰라도 정원이는 좀.”

“아 정원이. 그래. 너 아닌 척 그렇게 하더니 정작 정원이 엄청나게 챙기더라?”

또 그 얘긴가. 성규가 사정을 모르니 화를 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뭐라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일종의 피날레가 없는 도돌이표와 같았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거 아니라고.”

“그래, 아니겠지. 근데 언제까지 아니라고 하나 보자.”

“그게 뭔 소리야?”

성규는 대답을 하지 않고 미소만 짓고 있었다. 꿍꿍이가 있는 표정이었다. 성규를 알고 난 뒤 처음으로 보는 표정이다. 웃고는 있는데 전혀 웃는 것 같지가 않다.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뭔 생각을 하는 진 모르겠는데.”

“어.”

“괜한 짓 하지 마.”

성규는 평소와는 달리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성규를 노려보다가 진동벨이 울려서 음료를 가지고 왔다. 음료를 내려놓고 나서 성규에게 한 마디 더 하려고 할 때 정하와 정원이가 돌아왔다. 나는 괜히 정원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뭐였는데?”

“몰라도 돼.”

정원이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한다. 나는 그게 퍽이나 궁금했지만 왠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서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몇 번이나 꺼림칙한 벨을 울리는 직감을 믿기로 하며 나는 아메리카노를 빨았다. 나는 퍽이나 커피를 좋아했다. 단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보통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에 반해 정원이는 커피를 썩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단 것을 싫어했기에 아메리카노를 마시곤 했다.

그러나 지금 정원이는 자바칩을 추가한 화이트초콜렛 프라푸치노를 행복한 얼굴로 마시고 있었다. 단 게 그렇게나 좋을까. 아까 주문을 할 때도 느꼈던 괴리감을 재차 느낀다. 초콜렛을 그나마 좋아했었으니 딱히 이상한 게 아니지 않을까 생각을 하다가도 그것과 이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음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정원이와 지금의 정원이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퍽이나 모순적인 생각이었다. 이전의 정원이가 생각나는 요소라곤 제로콜라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성규가 말했다.

“정하는 오늘 되게 이쁘게 꾸미고 나왔는데, 정원이는 좀 아쉽네. 정하가 좀 챙겨주지 그랬어.”

“나도 안 그래도 언니 이쁘게 꾸며 줄랬는데 본인이 싫다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그래 참 아쉽네.”

성규는 아까의 그 표정이다. 나도 모르게 정원이를 바라보자 정원이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규가 오늘 처음 본 여자에 대해서 저렇게 직접적으로 아쉽다는 말을 할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아는 건 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성규에게서 어색한 느낌을 받는 것 역시 나뿐일 것이었다. 나는 조금 서둘러서 성규에게 말했다.

“원래 정원이가 이렇게 입고 다녀.”

“그래도 데이튼데 신경 써서 나올 수도 있잖아. 화장도 안하는 건 좀.”

“아니, 그, 굳이 말하자면 정하랑 너랑 만나는 자리에 나랑 정원이는 들러리라고 해야 되냐, 좀 그런 느낌으로 온 건데.”

성규는 그 말을 듣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그래도 그렇게 나왔잖아.”

성규의 그 말에 정원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자신을 내려다본다. 정원이의 고개가 숙여져서 정원이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점이 묘하게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성규의 이상한 태도도 정원이의 다른 행동도 나를 모두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나도 사실 정하가 꾸미고 나오라고 해서 이러고 나온 거야.”

“그래도 너도 그렇게 세팅하고 나오는 일 거의 없지?”

“아니 그렇긴 한데…….”

“그럼 정원이가 저렇게 나온 건 좀 아쉽긴 하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 때였다.

“야.”

정원이가 고개가 들렸다. 정원이는 성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아니 사납게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래, 정원이는 자기에 대한 공격성에 대해선 유독 민감했었다. 나는 그 사실을 겨우 떠올릴 수 있었다.

“꼽냐?”

성규의 미소가 짙어진다.

“어.”

“그러냐? 근데 뭐 어쩌라고.”

“아니, 정하가 강휘 꾸미고 나오라는 거 말해놓을 정도면 너한테도 분명히 전해줬을 거 아니냐.”

정원이는 더 말해보라는 듯이 팔짱을 끼고 노려보고 있었다. 성규는 싸해진 분위기와 대비되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너 강휘 이러고 나오는 줄 알면서도 그러고 나온 거면 진짜 강휘 맥이고 싶었나보다. 그치?”

“하!”

정원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먹던 음료를 들고 나서며 옆자리에 있는 나 정도나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본인이 참으려고 한 말을 결국 참지 못하고 중얼거린 것에 가까웠다. 사실 내가 들으라고 한 말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십새끼, 잘 알지도 못하는 게.”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서둘러 쫓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하를 보며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하는 따라가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거린다. 그리고는 나는 성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 나중에 얘기하자.”

성규는 난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흔든다.

“힘내~.”

사태는 지가 배배 꼬아놓고 힘을 내란다. 하여간에 설명을 알아서 잘하지 못한 내가 문젠 건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댄 성규가 문젠 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오늘만큼은 어딜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퍽이나 짜증나게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서 나가려다가 돌아와서는 정하에게 말했다.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알아서 처리 할 테니까 최소한 연락처는 나눠.”

“에휴~. 나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언니나 쫓아가시지?”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페를 뛰쳐나갔다. 다행히도 시야 끝 언저리에 정원이가 보였다. 나는 서둘러서 정원이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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