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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8화 (8/138)

8회

chapter1다음 날이 되고 정원이와 정하는 대구로 내려갔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께 또 한소리를 듣고 있었다.

“니가 공부하는 애가 맞니?”

“어, 이상하게 요즘 따라 약속이 잡히네. 미안.”

나는 어머니의 한숨을 먹고 자라는 괴물이었다. 아니 사실은 자라지 않고 있을지도 몰랐다. 요즘에 뭔가를 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부를 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선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정도였다. 나는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한 마디를 남기고는 방으로 들어와 카톡을 켰다. 성규에게 연락하는 것은 딱 반 년만이었다.

[ㅎㅇ]

[오랫만에 밥 한번 먹자]

[내가 사줌]

까똑

[왠일?]

[걍]

[음알써 오늘 저녁ㄱ?]

하여간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행동력 하나는 대단한 녀석이었다. 나는 ok 이모티콘을 날리고는 눈을 감았다. 어제 술을 마셔서 도중에 자긴 했지만 피로가 남아있었다. 그러니 저녁 약속을 나가려면 미리 자둬야 했다.

***

미리 맞춰놓은 자명종이 핸드폰에서 울렸다. 핸드폰을 끄고 시간을 보니 6시였다. 다행히 첫 번째로 맞춰놓은 알람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카톡을 켜보니까 성규가 카톡을 몇 개 보내놨었다

[야 근데 어디서 볼거]

[몇 시에 볼거]

[야 자냐]

[약속은 정하고 자야될 거 아냐. 강휘야.]

아, 구체적인 시간이나 장소 같은 걸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너 몇 시 퇴근인데]

그러고 나서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상의를 벗었다. 까똑! 카톡 확인이 굉장히 빠른 친구구나. 분명히 일하는 중 일텐데 정말이지 어느 회사든 이런 월급루팡들이 있기 마련이다. 성규도 그런 과 인줄은 몰랐지만.

[7시 퇴근임]

[그럼 너 회사 왕십리 쪽에 있으니까 왕십리역에서 7시 10분까지 보자]

[ㅇㅋ]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샤워를 했다. 몽롱해진 머리가 천천히 정신을 차려간다. 오늘은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술을 먹지 않고 말을 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내 자신을 바라본다. 키만 멀대 같이 컸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덩치도 산만해가지고. 대학교때는 그래도 몸 관리 했었는데. 군대 전역하고 나서 운동을 안 해가지고선 뱃살이 늘어지고. 하여간에 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요소를 찾기가 힘들었다. 남자는 거울 속의 자신을 그나마 더 멋있게 본다는 정보를 어디서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내가 봐도 용납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샤워기를 끄고 욕실을 나섰다.

“오늘도 나가니?”

“오늘은 합격한 친구 보러가. 뭐 좀 물어볼라고.”

“그래, 잘 다녀오렴.”

어머니가 조금은 만족한 얼굴을 하신다. 그 표정을 보며 나는 가시가 내 목구멍을 찌르는 기분을 느낀다. 익숙한 고통이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웃으며 집을 나섰다.

“다녀올게요.”

“공부 열심히 하고~!”

“네,”

역시 익숙한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었다.

***

왕십리역에 도착하고 핸드폰을 바라보니 7시 정각이었다. 약속시간까진 10분정도 남아있었다.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핸드폰 게임이나 할까, 10분은 딱 그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 정도의 시간이 불편해질 때 쯤 성규가 왔다. 7시 20분. 별로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아, 미안하다. 부장님이 뭐 하나 부탁하셔서.”

“괜찮아, 어차피 핸드폰 게임하고 있었어.”

“오래 기다렸냐?”

“나도 방금 도착했으.”

성규는 남자인 내가 봐도 옷을 잘 입고 다닌다. 머리 스타일을 말끔하니 올려놓고 사소한 악세사리로도 자신을 빛낼 줄 알았다. 이런 자신을 꾸밀 줄 아는 면은 성규가 키가 조금 작다거나 성규가 연예인 같은 미남이 아니라는 점을 신경 쓰지 못하게 할 정도로 세련된 스킬이었다. 하물며 성규는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높이고 상대방과 어울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 누구에게 소개해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였다.

“오늘 뭐 사주냐?”

“고기……는 옷에 냄새배서 좀 그렇겠네. 뭐 먹고 싶은데.”

“웬일? 니가 그렇게 다 맞춰주고.”

“아니, 시발. 어차피 밥 사는 거 니가 좋아하는 대로 해줄 수도 있지 새끼가.”

대충 서로 얘기를 맞춰보다가 파스타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가게에 도착해서 아마트리치아나와 봉골라를 시키고는 회사 얘기 취업 얘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음식이 오자 포크로 말아서 입에 넣는다. 맛은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성규는 봉골라를 어느 정도 먹다가 말했다.

“그래서 부탁할 게 뭔데?”

“……많이 티 났냐.”

성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핸드폰을 켜서 카톡방을 보여줬다. 내가 속하지 않은 대학 동기방이었다. 그걸 확인하니 뭔가 마음이 찜찜해졌다.

“야, 너 동기들이랑 무슨 얘기한지 모르지.”

“뭔데.”

“너랑 안 만난 세월이 길수록 니가 편한 사람이라더라. 이 새끼야.”

“푸핫!”

입 안에 음식물이 없다는 것에 감사하며 나는 성규의 카톡을 봤다. 과연, 내가 없는 다른 동기방에선 내가 인간관계를 나름대로 이으려는 노력이 없는 것이 오히려 친한 사람이라는 듯이 적혀있었다. 그만큼 티가 났다는 것이겠지. 나름대로 신경 쓰고 있었던 부분이었는데 불찰이었다.

“그래도 완전히 맞는 건 아닌데…….”

“니가 싫은 놈은 아예 안 만나지? 그럼 반은 맞네.”

“우째 그렇게 잘 아는 거냐…….”

성규는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계속 지으며 말했다.

“그거야 니가 반년이나 연락 안한 거에 대해서 나름대로 기뻤으니까 그렇지.”

“아 씨. 뭔 불러도 사람을 쓰레기로 만드냐, 진짜. 미안하게.”

“아하하하하.”

내가 미안한 듯이 뒤통수를 긁자 성규는 호쾌하게 웃었다. 이런 점이 내가 성규에게 부탁을 하기가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뭐, 무슨 부탁을 하든 들어줄 거지만.”

“어, 뭐?”

성규는 봉고레를 다 먹고 접시를 한 쪽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턱을 괴면서 말했다.

“너랑 나랑 학교 동기기도 하지만 군대에서도 동기였잖냐.”

“글치.”

“근데 그거 기억 안 나냐? 옛날에 내가 군대서 힘들었을 때 너만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줬잖아.”

“아.”

어렴풋이 기억을 되짚는다. 다시 말하지만 성규는 상승욕구가 있는 사람이었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굉장히 강했고 그것은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규는 속칭 s급 병사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동기나 선임에게 좋게 보일 수도, 나쁘게 보일 수도 있는 면이었다. 하필이면 성규의 맞선임은 그런 것을 나쁘게 보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들이 성규를 힘들게 했을 때 성규는 나에게 와서 고민을 털어놨었다.

‘내가 진짜 생각 없이 나댄 걸까.’

성규는 내가 기억하기로 그 때가 제일 힘들어 보였었고 약해져 있을 때였다. 스스로가 내고 있던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이런 건 분명히 세상이 잘못한 것이었다. 나는 성규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다가 툭 던지듯이 말했었다.

‘뭐 어때. 틀린 건 저 새끼들이잖아.’

‘뭐?’

‘아니 군대서 뺑끼도 부릴 수도 있고, 개 좆같다고 투덜거릴 수도 있는데 적어도 넌 열심히 했잖아.’

성규에게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성규에게 힘주어서 말했다.

‘누구든 간에 열심히 한 새끼 깎아내리는 건 틀린 새끼들이야. 글러먹은 새끼들이지.’

그 후에 나는 나름대로 성규 실드를 쳤다. 옛날부터 나는 퍽이나 남자새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열심히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게으름 피운 것도 아니었다. 모난 구석 없이 군대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동기들 사이에서도 선임들에게도 내 평가는 그럭저럭 좋은 편이었다.

그런 중간 위치에 있는 입장인 내가 성규 편을 들자 성규에 대한 평가도 급격하게 올라갔다. 적보다 아군이 많아진 것이었다. 곧 성규는 우리 부대에서 가장 뛰어난 병사로 군 생활을 마쳤다. 성규는 그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그것은 특별히 내 덕분이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더라도 성규의 열정을 알아준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성규를 인정했을 것이다.

성규가 성공을 중시하는 것과 같이 나는 안정을 중시했다. 그렇기에 대단한 것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아니라 성규와 마음이 맞는 선임이나 간부가 들었다면 일이 더욱 잘 풀릴 수도 있었겠지. 뭐 더 최악이 될 수 있는 게 군대이긴 하지만. 하여간에 내가 한 일이 별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뭐 그래서 난 니 부탁이라면 무조건 하나는 들어주려고 했었으니까, 뭐든 상관없어. 솔직히 오늘 밥 안 사줬어도 들어줬을 걸?”

“그렇게 말하면 내 돈이 아까워지잖냐.”

“뭐? 아하하하하. 남아일언중천금. 그냥 빼지 말고 사! 이 자식아!”

원래도 낼 돈이었기 때문에 전혀 아깝지 않아야 되는데 저런 소릴 들으니까 괜시리 아까워진다. 역시 사람은 모르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었다. 그래도 이런 성규의 격려 때문에 부탁을 꺼내기 쉬웠다.

“그, 내가 신세진 동생이 하나 있는데.”

“어.”

“걔가 너 좀 소개시켜달라고 해서. 아, 혹시나 지금 여친 있냐?”

성규는 여친이 없었던 적이 더욱 적었다. 아무리 그래도 만일 여친이 있다면 정하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맞았다.

“아, 그런 부탁? 뭐 지금 여친 없긴 하지.”

성규는 조금 난처한 듯이 웃었지만 그래도 내 부탁을 거절하진 않았다.

“예쁘게 생겼어?”

“생긴 건 꽤 이쁘지.”

나는 정하의 사진을 보여줬다. 정하는 어디까지나 기가 세보여서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는 있어도 누구나 돌아볼 만한 미녀였다. 물론 그런 외모가 정하의 분위기를 더욱더 세보이게 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성규는 사진을 보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이 정도면 내가 부탁을 해야 할 정돈데. 좋아.”

“고맙다.”

“아니, 진짜로 이 정도면 내가 부탁해야 할 처지라니까. 하하”

하나님 부처님 알라님 성규님. 남자도 반해버릴 것 같은 웃음이다. 이런 미소로 여자들을 그렇게 꼬셨겠지. 정말이지 어딜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녀석.

“언제 볼까 그럼?”

“어, 정하쪽에도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나중에 물어보고 연락 줄게.”

“그래, 알았다.”

성규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차로 집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했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하에 대해서 이런 것 저런 것을 물어보다가 화제가 조금 바뀌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너 이런 부탁 절대로 안 들어줬잖아. 학교 때도 그렇고.”

“알고 있었냐?”

“그럼. 내가 빙신이냐. 니가 적당히 끊어줘서 고마웠었지.”

성규는 운전을 하는 중이라 그런지 시선은 돌리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뭐 왜 소개시켜주는데. 얘가 그렇게 참하냐?”

“어, 뭐 그런 것도 있긴 한데……. 부탁한 걸 들어주는 조건으로 좀 소개시켜달라고 하더라고.”

“뭔 부탁?”

“그냥 지 오……, 언니 좀 술자리서 챙기라고. 걔네 언니가 내 친구인데 남자들만 있는 술자리를 간다고 하길래.”

“허어?”

성규는 갑자기 내 집 방향이 아닌 곳으로 틀었다. 네비게이션에선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라는 음성이 울렸다. 성규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곧 근처에 카페 앞에 차를 댔다.

“야. 너 원래 사줄 때는 애프터까지 확실해야 된단 말 알지.”

“어, 뭐?”

성규가 나를 보며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까지 보여주던 사람 좋은 웃음과는 조금 다른 장난기가 섞여있었다.

“커피까지 사라, 이 자식아. 매너가 없어.”

“어, 어?”

성규가 나를 어깨동무를 하며 끌고 갔다. 커피를 사는 건 딱히 상관없지만 왠지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대화의 흐름이 그랬다. 나는 그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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