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7화 (7/138)

7회

chapter1“야, 다정원! 어떻게 된 거야!”

정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서로 얼굴 한 번 안 비치더니 그래도 역시 가족이었다. 평소답지 않게 흐트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정하는 나와 정원이를 바라봤다. 정하는 안 그래도 기가 세 보이는 미인이었다. 그런 애가 이런 식으로 째려보고 있노라면 자동적으로 움츠러들게 된다, 결국 정하는 처음 보는 여자아이보다 그래도 자주 봤던 나에게 물어보기로 한 것 같았다.

“무슨 개수작이야.”

“뭐가?”

“다정원 그 새끼, 어디로 숨고 오빠만 여깄어? 그리고 얜 또 누구야?”

나도 정원이도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만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순 없었다. 그야말로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다. 나는 지금 다소 멀리서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정원이를 무대로 모시듯이 정원이를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짜잔~ 정원이 대령입니다.”

“안녕! 난 다정원이라고 해!”

정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에 힘을 줬다. 얼굴 근육 하나하나가 모두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 화내기 전에 다정원 나오라고 해라. 오늘 진짜 내가 이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이제 우리도 더 이상 희극이라고 여길 수 없는 살기였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우리가 무대 위로 강제로 끌어올려져서 비극을 연기하게 될 것이다. 정하는 어버버하고 있는 나를 밀쳐내곤 집 안에 들어왔다.

“야, 다정원! 어디 숨었어! 진짜 나오면 뒤졌어, 개새끼야!”

정하는 들어오자마자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정원이가 보이지 않자 다시 문을 쾅 닫고, 방 깊숙이 들어와 장롱을 열어보고 옷을 다 끌어냈다. 그러고도 정원이가 보이지 않자 침대를 들춰봤다. 그 행동 하나하나에 정원이가 나오자마자 죽일 것이라는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 보였던 가벼운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진심을 다해서 전하면 전해지는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는 일단 얼굴을 굳히고 최대한 마음을 담아 진지하게 말했다.

“다정원 니 눈앞에 있잖아. 현실 부정하지 마, 다정하.”

“……진심이야?”

정원이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손을 깍지 끼고 천장을, 방의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저건 예전에도 그랬다. 저 녀석은 항상 제 여동생을 어려워했다.

“진짜로 오빠가 시킨 거 아니지?”

“내가? 미쳤냐?”

“진짜 그 쪽……분이, 다정원 이세요?”

“어, 어.”

정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원이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정원이의 얼굴을, 몸을, 표정을, 전체를 훑었다. 그리곤 정원이의 머리카락을 어깨를 두들겼다. 정원이는 그 때마다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정하의 손을 쳐냈다.

“만지지마.”

“반응은 진짜 개노답 다정원이 맞는데.”

“시발, 개노답이 뭐냐, 니 오빠한테!”

“아, 진짜 반응은 맞는데.”

정하가 정원이를 발견한 부분이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정하는 눈앞에 있는 작은 여자에게서 자신의 가족인 다정원을 인식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래도 완전히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차라리 나와 정원이가 장난이었다고 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결국 정하는 편두통이 온 듯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아, 어쩌다 그렇게 됐는데? 일단 말이나 들어보자.”

“나도 몰라, 시발.”

“나랑 지금 장난해?”

“……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정원이도 몰라.”

정하는 끼어든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계속 정수리를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꾹꾹 누르다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년이 다정원 납치하거나 썰어내고 우리한테 구라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증거는?”

“없어.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다정원 맞아.”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기억, 행동, 습관, 거리감, 그리고 개노답스러운 부분.”

“야!”

하지만 정하는 그 말을 듣더니 결국 고개를 들어 올려서 천장을 잠시 보더니 정원이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일단은 믿어줄게. 강휘오빠도 믿는다고 하니까.”

“내 말은 안 믿어 주는 거냐…….”

“니가 누군 줄 알고? 사실 지금도 반신반의 중이야.”

“그래, 일단은 그런 걸로 됐다.”

정원이가 그 대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하는 그런 정원이를 잠시 바라보더니 결국 한숨을 내쉬고 안아줬다.

“야, 씨. 안지마. 짜증나게.”

“일단 가만히 있어봐. ……힘들진 않았어?”

“……몰라.”

“에휴 병신.”

정하는 그렇게 정원이를 껴안고 있었다. 정원이도 처음에는 나오려고 버둥거리더니 결국 정하에게 얌전히 안겨 있었다. 울 것 같이 눈에 눈물이 맺히는 듯 했지만 정원이는 결국 울지 않았다. 정하는 정원이를 안고 있는 채로 정원이에게 물었다.

“나 부른 거 아빠 때문이지.”

“……엉.”

“그래. 도와줄게.”

우리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정하는 자기가 불려 나온 이유를 눈치 챘다. 옛날부터 정하는 이렇게 눈치가 빨랐다. 이런 점은 나도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정하는 정원이를 풀어주고는 나에게 물었다.

“오빤 알고 있었어?”

“3일 됐나?”

“왜 혼자 쳐 알고 있었어! 이 화상아!”

그리고는 내 등을 쎄게 때렸다. 아프지만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사실 정원이가 불러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정하였다고 생각한다. 둘 사이가 서먹해져서 내가 대신 불려 나온 것뿐이지.

“됐어, 술이나 쳐 타와. 할 줄 아는 것도 그거 뿐 이잖아!”

“예이, 마님.”

나는 익살스럽게 두 팔을 들고 어깨를 까딱였다. 술을 대충 타서 주자 정하는 원 샷을 했다.

“한 잔 더.”

나는 묵묵히 정하에게 한 잔 더 타줬다. 하는 김에 정원이에게도 타줬다.

“쌩큐.”

“옹야.”

정하는 다시 원 샷을 했다. 그리고는 소리 질렀다.

“대체 이게 뭐야! 왜 다정원이 언니가 됬는데! 오빠 너 다정원 따 먹을라고 다정원 수술시켰냐?”

“이런 십, 미친년이!”

“제발 그런 소린 하지 마라. 니네끼린 부모님들 팔아도 되는데 나까지 니네 부모님들 팔고 싶어지잖아.”

정하는 한참을 지랄했다. 나와 정원이는 그런 정하를 달래기 급급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그 때부터 우리는 서로 부어라 마셔라했다. 나는 오징어 다리를 뜯으며 말했다.

“이번에 내려가면 이 년만이냐? 뭐 할 거냐 내려가서?”

“글쎄, 친구들 만나려나?”

“그러냐.”

고향 친구들이라. 나는 정원이에게 한 잔을 더 부어줬다. 짠 건배.

“으어어 취한다.”

“벌써?”

“그러게, 나도 아직 안 취했는데.”

정원이와 나는 둘이서 소주 10병은 마셔야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지금 정원이는 반병도 채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잘 됐네. 이참에 이 형님한테 술 배워라.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랬다.”

“어? 이게 미쳤나, 진짜.”

“꼬우면 한 잔 더~.”

“와~. 건배!”

정하와 내가 원샷을 하자 정원이도 눈을 질끈 감더니 원 샷을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정원이는 헤롱헤롱거리면서 말했다.

“사나이 다정원! 이 정도료눈 쥭지 안슘니다! 한 쟌 뎌!”

“어, 딱 5잔정도 되겠네, 주량. 나중에 니가 알려줘라.”

“알았어. 근데 다정원 진짜 5병은 먹던 게 5잔에 가버리네.”

“그러게 말이다.”

“아즥 안가땨교!”

나는 고개를 까딱이는 정원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없던 술버릇이 생겼지? 내가 아는 다정원은 술 먹다가 갑자기 필름 끊긴 듯이 쓰러져서 자는 최고의 술버릇을 가지고 있었었다. 뭐, 좀 더 먹이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나는 소주를 한 잔 가득 따라서는 정원이에게 넘겼다.

“남자는 뭐다?”

“원 샤시댜!”

짠 소리를 낸 술잔이 각자의 위치로 돌아간다. 정원이는 그 잔이 마지막이었다. 정말 보는 사람이 시원해질 정도로 호쾌하게 들이키더니

“아이고, 쥭는다~.”

라는 단말마를 외치곤 뻗어버렸다. 나는 그런 정원이를 조심히 안아들었다. 익숙한 술 냄새와 익숙하지 않은 달큰한 체향이 났다. 정하는 그런 나를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야 오빠야.”

“왜,”

“진짜 다정원 따먹을라고 하는 거 아니지.”

나는 정원이를 침대에 내려놓고 이불을 덮어줬다. 정하의 말은 일부러 무시하고 있었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다.

“나는 찬성인데.”

“뭐가.”

“오빠가 다정원 따먹어도 괜찮을 거 같다고.”

“일 없다.”

정하는 진지하게 낯빛을 바꾸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정원 누구라도 지탱해줘야 해. 무너질 수도 있어. 근데 자기가 저렇게 되고 가장 먼저 찾은 게 강휘오빠면 강휘 오빠가 지탱해주는 게 제일 좋을지도 몰라.”

정하는 소주를 컵에 가득 담고 나에게 넘겨줬다. 내가 평소 마시는 익숙한 방법이었다. 생각해보면 정하랑도 오랜 인연이었다. 내가 이 녀석에 대해 아는 만큼 이 녀석도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컵 안에 든 소주를 원 샷 했다.

“그래도 정말로 그럴 생각 없다. 그냥 친구야 나랑 정원이는.”

“흐응, 그래?”

정하는 어느새 짜증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녀석한테 내가 해야 할 부탁이 있었다는 점과 그 부탁이 이런 분위기에서 꺼내기 껄끄러운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정하에게 술을 따라서 주고는 내 잔을 채웠다. 짠, 건배. 술을 마시면 하기 힘든 말도 술술 나오게 되는 법이었다.

“이번에 정원이 내려가면 고향 친구들 볼 거 아니냐.”

“지가 글케 말했으니까 그렇겠지.”

나는 마지막까지도 이런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이 꺼려졌다. 하지만 최근에 찾아봤던 그런 종류의 소설이 머릿속을 배회했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은 몸집을 불려 내 상상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최소한, 정말 최저한의 안전 장치였다.

“쟤 고향 친구들 중에 여자애는 없을 거 아니냐.”

“글치.”

“니가 쟤 좀 챙겨줘라.”

정하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흐름에서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다른 의도로 해석이 될 게 뻔했다. 나는 거칠게 술을 따르고는 다시 원 샷 했다. 술기운이 올라왔다.

“오홍홍홍, 그래용~. 알았어용.”

“아, 뭐!”

“뭐가용~.”

나는 정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래서 정하에게 술을 따라줬다. 하지만 정하는 따라준 술을 바로 마시지 않았다.

“안주거리가 좋네~. 오늘은.”

무슨 말을 하던 놀림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괜히 말했나 싶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래서 나는 정하를 바라보지 않고 툴툴거렸다.

“거 아버지랑도 잘 얘기하게 도와주고.”

정하가 짓고 있는 표정에 작은 파문이 생겼다. 같은 미소였지만 조금은 쓴 웃음이 걸려있었다.

“그러게,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하지.”

정하는 술을 들이켰다. 나도 술을 들이켰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정원이를 바라봤다. 정하가 입을 열었다.

“뭐 그건 됐어. 나라고 해도 저렇게 바뀐 모습을 보니까 그냥 도와주고 싶고 그러네.”

“……고맙다,”

“으악! 징그러! 그걸 왜 오빠가 고마워해!”

정하는 내 팔을 치면서 웃었다. 나는 그저 개 병신 같이 어색하게 따라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하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맞아! 그러고 보니 나 이거 되게 큰일 하는 거잖아!”

“어? 뭐, 그렇지 그래.”

“그럼 나 부탁 하나만 들어줘!”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뭔데.”

“그 전에 사진으로 봤던 성규?오빠 좀 소개시켜줘.”

예상했던 답변이었지만 별로 듣고 싶지는 않은 말이었다.

“성규 그런 거 싫어하는데.”

“그래? 어렵나? 근데 오빠 부탁이면 들어주잖아.”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보통 오빠 주위에 있는 사람은 다 그러니까.”

나는 성규를 떠올렸다. 유일하게 내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내 동기. 외향적이고 성공 지향적이며, 자기 자신을 꾸미는 걸 잘하는 친구였다. 매너도 좋아서 한 때 대학교를 같이 다닐 때 내게 여자가 말을 걸어오면 열에 아홉은 성규를 소개시켜달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정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자 정하는 팔짱을 끼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11시 통금시간 잡고 안 오면 내가 데리러 감.”

“하아, 카톡 9시부터 넣어주면.”

“아 진짜, 질척거리네! 그거 병이야!”

“그런 거 아니라고…….”

그냥 정원이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해서 일어날 수도 있는 불상사가 걱정되는 것뿐이었다. 친구로서 그 정도의 걱정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보니 이성 중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내가 거리감을 잘못잡고 있는 지도 몰랐다. 나는 소주를 따라서 다시 털어 넣었다.

“서울 올라오면 바로 약속 잡아줄게.”

“오케이~ 약속이다!”

“오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은 절대로 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미안하다 동기야. 동기사랑나라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냐. 니가 이번엔 한 번만 도와주라. 나는 이 말을 곧 성규에게 전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 번 더 술을 털어 넣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술 먹기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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