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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로콜라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6화 (6/138)

6회

chapter1정작 병원에 도착하니 내 걱정과는 달리 별다른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오히려 저번보다 더 막히는 부분 없이 클린하게 진행됐다. 민증에서 조금 걸렸지만 이번에도 어찌어찌 잘 넘겨댔다. 검사 자체는 굉장히 여러 가지를 하고 있었다. 정원이는 검사를 받고 기다리는 도중마다 시답잖은 얘기를 해왔다. 정말 별 거 아닌 얘기였다. 예를 들어 피검사를 위해 피를 뽑을 땐 그런 말을 했다.

“야, 전번에 나 신검 했을 때 거기 간호사가 내 팔뚝 세 번이나 쑤셨잖아. 핏줄 안 보인다고. 근데 이번엔 한 번에 박더라.”

“노력도 안하고 살 빼서 참 좋겠다.”

“근데 왠지 그때보다 묘하게 어지럽네.”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 무릎위에 눕는 꼬라지를 보며 힘들면 차라리 기대라고 억지로 앉혔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방사선 검사를 할 땐 그런 말을 했다.

“옛날에 했을 땐 분명히 기계 껴안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거 같은데, 이번엔 이상하게 팔이 짧아서 그런가, 잘 안 안아지더라.”

“니 말마따나 팔이 짧아서 그런 거겠지.”

“그지?”

항상 검사와 관련된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키와 무게를 재는 검사를 했을 땐 오히려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 민증 바뀌면 내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들 계정은 어떻게 되는 거지?”

“글쎄……. 사라지나?”

“안 돼! 내 빼꼬린쨩! 내 엘븐쨩! 절대 안 돼, 그건……. 으어어어 멘탈이 갈려나간다아…….”

“아 그래, 뭐 내비 둘 수도 있고 그렇지. 문의하시던가.”

“아 괜히 문의했다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거 아니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예를 들어 여성과 관련된 초음파 검사를 할 땐 실실 쪼개면서 말했다.

“아 이거 때문에 돈 더 나온다 생각하니까 되게 아깝네.”

“뭔 소리야?”

“아니, 원랜 안 해도 되는 걸 추가로 해야 된다는 게 억울해서. 뽑았던 한정캐 다시 한섭에서 뽑아야 되는 기분인데.”

“니가 하는 소릴 더더욱 모르겠다…….”

“하긴 니가 뭘 알겠냐. 아 오늘 뭐 먹지?”

“그것도 니가 정해라.”

“선택 장애냐 진짜, 니가 아는 게 뭐냐.”

“없다, 없어. 넌 아는 게 뭐냐.”

“적어도 너보단 많을 걸? 오늘 저녁 메뉴정돈 알테니까.”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게 괘씸해서 무시했는데 그 후로도 꽤나 쫑알거리는 것이었다. 예시로 든 대화뿐만 아니라 정원이는 퍽이나 여러 주제로 쫑알거렸다.

이번 던파 업데이트는 퍽이나 마음에 안 든다든지, 생각해보니 모바일 게임 3주년 이벤트를 달려야 했는데, 시간 낭비를 한다든지,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였는지를 되뇌이기도 하고, 요즘 노래방을 안가서 한 번쯤 가고 싶다고 한다든지. 그런 종류의 시답잖은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적당히 맞장구치면서 정원이가 평소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변하기 이전의 평소였다. 너무도 평소 같았다.

위화감이 든 이유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천천히 생각의 귀퉁이를 잠식해왔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정원이에게 오늘 검사결과는 일종의 선고였다. 피고인은 사형입니다라고 선고하는 것이 지금 병원이 내리는 당신은 여자입니다라는 선고와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오히려 평소와도 같은 정원이의 모습이 다른 모습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따박따박 흘러 정밀검사가 끝났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굳이 산부인과를 갈 필요도 없었다. 그냥 건강검진 목적으로 정밀검사나 해보겠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에 나나 정원이나 너무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하루나 이틀쯤을 기다려야 결과가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나온 것은 다행이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의사는 저번에 본 그 의사였다.

“다정원 씨의 몸 상태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예?”

“생리가 안 오는 것은 단순히 스트레스로 인해서 주기가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필요하시면 약을 처방해드리겠습니다.”

의사의 말은 마치 정원이가 완벽한 여자아이가 됐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원래라면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없이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더 정확하게 확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까부터 내 생각의 귀퉁이를 차지하는 생각이 나에게 질문을 요구했다.

“얘 한 번 쓰러졌었는데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맞다고요?”

“네. 죄송하지만 지금 장비로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다른 병원이라도 추천해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 이상한 건 오히려 내 질문이었겠지. 산부인과에서 정원이의 몸에서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곧 정원이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여자아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문제라 함은 남성으로써 남은 부분이 있다거나, 혹은 사람이 아닌 부분이 있다던가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그런 점이 아예 없는 염색체 xx, 생물학적 여성을 점지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정원이를 바라봤다. 정원이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검사 결과를 듣고 있었다. 이상한 모습은 없었다. 이상한 모습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구나.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구나. 나는 정원이에게 눈짓을 줬다. 정원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의사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병원을 나서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말을 고르고 있었다. 고르고 골라서 결국 나는 정원이에게 일부러 가볍게 농담을 하는 어조로 말했다.

“의사가 봐도 완벽한 여성분이라는데요?”

“야.”

“뭐.”

“나 남자야.”

정원이의 눈빛이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검사결과가 너에게 성별 상 여성이라고 선언했지만, 너는 그 재판에 대해서 재심을 요구한 거구나. 하지만 재심은 돌아가지 않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일부러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놀리듯이 말했다.

“아니 겉모습만 말이야. 겉모습만큼은 어떤 남자도 꼬실 만큼 완벽한 미소녀시다고.”

“지랄하네. 좆같은 소리 하지마라.”

정원이는 날카롭게 답하면서 나를 째려봤다. 두 눈에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짜증? 좀 더 끈적한 감정이었다. 자기혐오, 자괴감, 분노 그 무엇도 그 눈에 담긴 감정을 하나로 정리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그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늘 이 시간은 결코 단순히 검진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원이에게 세상이 선언하는 첫 번째 폭력이자 압제였다. 너는 여자아이다.

아마 오늘이 오기 전 정원이는 자기 안에 있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다시 맞춰나갔을 것이었다. 그리고 다정원이라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서 ‘남성’은 필요한 조각이었을 것이다. 그 조각은 없는 조각이고, 남성을 포함해서 맞추려 한다면 다정원은 완성이 될 수 없는 퍼즐이었다.

방법은 몇 가지가 있었을 것이었다. 빈자리에 여성을 채워 넣거나, 완성을 하지 않거나, 혹은 남성을 있는 것처럼 간주하기로 하거나. 최악의 방법은 마지막 방법이었다.

그 방법을 선택한 순간 다정원은 망가졌을 지도 몰랐다. 물론 내 생각에 지나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전신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의 정체는 나도 몰랐다.

단 하나 나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정원이의 눈에 포기나 절망과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니, 단지 내가 그렇게 느꼈을 뿐이지 정원이는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정원이는 그래선 안 됐다. 나는 정원이가 자신을 정의하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너는 네가 다정원임을 부정해선 안 됐다. 너만은 그래선 안 됐다. 나는 내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

“알았으면 됐어.”

“그래도 검사 결과, 신체적으론 여자가 된 거 맞잖냐.”

“시발. 분명히 그 의사 돌팔이 새끼야. 딴 데서도 검사해보자, 응?”

“이 미친, 세브란스 병원보다 더 정확한 데가 어딨어, 행정처리 할 준비나 하시지. 미친년아.”

“년 아니고 놈이라고 시발 놈아!”

“지랄, 큭큭큭.”

나는 숨죽여 웃는 척했다. 그걸 본 정원이는 내가 자신을 끝까지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획 하고 돌렸다. 덕분에 나는 내 굳어가는 표정을 숨길 수 있었다.

남자와 자존심을 빼면 자신은 남는 게 없다고 입에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던 다정원에게서 남자를 뺐다, 그럼 자존심뿐이 남지 않게 됐나? 그렇게 생각하자 그 사실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기분과 달리 진짜로 웃음이 비질비질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나까지도 미쳐가겠어. 차라리 이 후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쓸데없는 생각을 일부러 차단하자.

“뭐, 그래도 민증 사진이 다르면 고생 할 테니 민증 수정이 필요는 하겠지. 회사에도 설명해야 되나?”

“그렇지 뭐. 회사는 일단 나중에. 집 내려가는 버스표는 내일 점심으로 예약해놔야겠다. 부모님 설득도 해야 되고 뭐 할 거 많네.”

“왠 점심? 아침 일찍 가지 그러냐?”

“술 안마시게? 나 지금 기분 개좆같은데.”

아하, 옳은 말이었다. 만나면 반갑다고 한 잔, 헤어질 때 또 만나기 위해 한 잔. 쓸데없는 생각이 길어져서 오히려 당연한 것을 잊고 있었다. 특히나 이런 개 같은 생각을 지워내기에도 좋은 방법이었다.

“조오아. 그럼 술이랑 안주나 사들고 들어가자.”

“오~.”

아 맞다. 정원이 상태를 꼭 알아야 하는 애가 나 말고도 한 명 더 있었다. 굳이 말하면 나보다도 더 알아야 하는 녀석이었다.

“야 정하도 불러.”

“그 계집애는 왜?”

정원이는 지금까지 심각했던 분위기를 깨버리며 조금 뒤집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고양이 앞에 선 쥐 같았다. 정원이는 제 여동생을 퍽이나 어려워했다. 하지만 정하는 부모님들에게 정원이가 정원이로 인정받을 때 가장 큰 도움이 될 사람이기도 했다.

“니네 아버지 맨날 정하한텐 약했잖아. 기왕 부모님 얼굴 보러 돌아가는 거 정하라도 니 편 만들어서 돌아가.”

“으으으으음.”

다정하는 정원이의 여동생이었다. 정하 역시 지방에서 막연하게 도시를 꿈꾸고 상경한 젊은이들 중 한 명 이었다. 정원이도 정하도 마치 등불에 이끌리는 나방마냥 홀리듯이 서울로 찾아왔다. 그런 것치곤 둘 다 둥지를 잘 틀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는 두 명의 편의를 봐주는 역할을 했었고 그 결과 둘과는 꽤나 친했다.

“야 근데.”

“어,”

“정하 나 이렇게 된 거 모르는데?”

“어차피 밝혀야 되는 거 아니냐?”

“글킨 하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뭘 쓸데없는 걸로 고민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원이의 핸드폰을 뺐었다. 그리고 내가 기겁을 하고 찾아왔을 때와 똑같은 카톡을 정하에게 날렸다.

[야나위험]

[죽을거가따]

[일딴빨리좀와바]

[지금지빔]

“야 너 씹 뭐해!”

“앞으로 전화 오는 거 씹어라.”

“뭐 시발?”

나는 정원이에게 핸드폰을 다시 넘겨줬다. 그리곤 노려보며 말했다.

“나 돌아가고 나서 카톡 확인 안했냐? 너 나 이렇게 불렀어.”

“하. 시발.”

정원이는 지은 죄가 있어요. 그래서 할 말이 없어요. 그 때만 생각하면 나도 화가 아랫배에서부터 끓어오를 것 같다. 그때 얼마나 놀래서 뛰어갔었는지. 이게 바로 피해자가 낼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이었다. 이것만큼은 자업자득이었다.

잠시 후 정원이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정원이는 그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결국 받진 않았다. 어, 너 내 전화도 안 받았었어. 십새끼야.

“술 사자~. 집 빨리 돌아가야겠네.”

“하, 나, 이 개새끼 진짜.”

날씨는 맑고 막힌 속도 시원하게 뚫리고 술도 곧 마실 거고. 정말 최고의 삼박자가 내 발길을 가볍게 한다. 노세 노세 늙기 전에 노세. 늙으면 더 이상은 못 노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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